소설리스트

제302화 (301/434)

제302화

협회의 빈 사무실 중 하나.

[……유성이 너는 당장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겠지만 나는 내 선물부터 확인해보는 걸 추천하마. 네 일을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란다.]

신유성은 강유찬의 마지막 충고를 떠올리며 포켓으로 메모리 크리스탈을 가동했다.

‘……나를 위한 선물?’

스승님의 친우지만 강유찬은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기에 신유성은 좀처럼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위이잉-

크리스탈의 내용을 인식한 포켓이 홀로그램 형태로 빔을 뿜어내자 곧 신하윤과 이혁의 모습이 드러났다.

- 하윤아. 다음 장소는 어디야?

- 글쎄? 역시 마지막 파츠만 남아서 그런지 좀처럼 찾기 힘드네?

홀로그램 속 신하윤과 이혁의 모습을 보자마자 신유성은 헌터 협회의 정보력에 마른침을 삼켰다.

‘협회는 신하윤이 비밀리에 아티팩트를 입수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군.’

그럼 신하윤의 모든 준비가 몽환의 마녀 모르간과 관련되어 있고 그 힘을 깨우려 한다는 의도까지 밝혀냈을까?

‘그건 아닐 거야.’

신하윤은 바보가 아니었다.

공식 허가도 없이 아티팩트를 수집하는 건 분명한 범법이지만 그 정도는 신오가문을 등에 입은 신하윤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는 것도 그저 주목을 받거나 얽히기 싫었을 뿐.

‘변명을 지어내려고 한다면 신하윤은 얼마든 지어냈겠지.’

지금 신하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헌터 협회조차 짚어내지 못했다.

‘협회가 알고 있는 건, 신하윤이 비밀리에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과 그 일이 나와 연관이 있다는 것 정도.’

그러니 강유찬은 이렇게 말을 덧 붙인 것이다.

[네 일을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란다.]

‘나의 일.’

그건 신유성에게 신하윤을 처리하다는 뜻이었다. 왜 그럴까?

도대체 영상에 무슨 힌트가 있었기에 강유찬은 신유성을 단숨에 이번 일과 연관 지을 수 있었을까?

또각또각-

흩어지는 신하윤의 발소리.

이 얼음동굴은 빙룡 아시칼시스의 무덤이었지만 던전 공략이 끝난 탓에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 이젠 더 이상 찾아볼 곳도 없는데 말이야 참 아쉬워.

신하윤이 손끝으로 바닥을 훑으며 마나의 흔적에 아쉬워하자 이혁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 네가 원한다면 대체 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준비할 수 있어. 우리가 지금까지 모은 자금이면 충분해.

이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을 했지만 신하윤은 그만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대체한다고? 아니…… 절대로 대체 못 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영원히 타오를 수 있는 연료와 그 연료를 타오르게 할 불씨.

잠깐 말을 멈춘 신하윤은 카메라가 있는 곳을 바라보더니.

- 그 강대한 힘을 담아낼 아티팩트는…….

마치 들으라는 듯 시선을 맞춘 채 말했다.

- 드래곤 하트밖에 없어.

이건 이미 예전에 녹화된 영상.

하지만 마치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신하윤의 모습에 신유성은 쥐고 있던 메모리 크리스탈을 꽈악- 쥐었다.

‘신하윤이……. 누나가 노리고 있는 아티팩트가 드래곤 하트라고?’

하지만 영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걱정하지 마. 마지막으로 미뤄둔 곳은 정말 확실하니까.

신하윤은 보란 듯 카메라에 시선을 맞췄다.

화악!

동시에 강한 힘이 카메라를 덮치며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화면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 이, 이건 드론 카메라!?

놀란 이혁의 눈이 커졌지만 이미 알고 있던 신하윤은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 다 큰 어른들이 몰래 학생들이나 찍다니.

협회가 자신의 뒤를 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이다. 분명 귀찮은 일에 휘말리겠지만 신하윤에겐 딱 그 정도에 불과한 타격.

스윽-

떨어진 드론 카메라를 쥔 신하윤은 이 영상이 누구에게 전달될 것인지 예상한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곧 받으러 갈 테니 그때까지 애지중지 모셔놔. 알았지?

파자작-!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의 힘으로 크리스탈을 깨트린 신유성이 손을 펼치자. 새하얀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하윤의 너무나도 과감한 도발에 입을 다문 신유성의 굳은 표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내비친 적 없는 차가운 분노를 담고 있었다.

‘협회는…… 아니 협회장님은 그래서 벨벳을…….’

신하윤이 노리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명백했고, 신유성과 파티원들은 그 존재를 지키기 위해 강유찬과 협회까지도 거스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강유찬은 이 영상을 본 순간 이번 일은 자신이 손을 댈 필요조차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대로라면 설령 상대가 신하윤이라도 신유성이 물러서지 않을 것은 확실했으니까.

강유찬이 벨벳을 연구소로 데려온 건 일종의 테스트에 가까웠다.

‘……벨벳을 되찾고 협회장님에게 반박한 순간. 협회장님은 이번 일을 내가 해결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건가.’

반대의 경우에도 헌터 협회는 이득이었다. 만약 협회의 결정을 수긍하고 벨벳을 포기한다면 연구소에 둠으로써 신하윤에게서 떨어트리고 보호할 명분을 얻으니까.

물론 이번 경우는 협회가 손을 쓰지 않고 신유성을 통해 신하윤을 해결하도록 만들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설령 신유성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더라도.

“이건 나의 일이야.”

이건 신유성의 유능함을 측정하는 강유찬의 테스트가 되는 셈이었다.

*     *      *

헌터부의 입지는 곧 자본.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길드나 기업의 일을 처리하며 교외 활동으로 얼마나 벌어들이느냐가 유능함의 지표 중 하나가 됐다.

덕분에 신하윤이 다루고 있는 일들은 학생들의 업무라기에는 금전의 단위가 너무 컸다. 수천에서 수억이 오가는 계약들을 신하윤의 허가로 처리하게 된 것이다.

“역시 하윤이 너는 대단해. 네가 학생회장이 된 이후 의뢰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어.”

이혁은 신하윤을 도와 서류를 검토하며 기업과 길드의 늘어난 러브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려울 거 없어~ 그냥 유용한 녀석에게는 그만한 업무를 주고. 유용하지 못한 쓰레기는 자른다. 그거뿐이야.”

신하윤의 겸손인지 아닌지 모를 대답에 이혁은 피식 웃었다.

“이제야 너답네. 어제 동굴에서 네 행동은 너답지 않았어.”

이혁이 서류를 검토하며 흘린 말에 신하윤은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너도 내가 참 편해졌나 보네. 불만도 이야기하고.”

이혁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황급히 신하윤을 보았다.

“괜찮아.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지 너는 유능하니까.”

신하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좋은 얼굴로 이혁의 무례를 넘어가 주었다.

“그래도 말해야 했어. 난 내 동생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거든. 파티원 중에 꽤 익숙한 얼굴도 보이고…….”

“익숙한 얼굴?”

익숙한 얼굴이라니 이혁은 신하윤이 그런 표현은 좀처럼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유성의 파티원 중 대체 누구를 언제부터 알았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

하지만 신하윤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중요한 건 아니야. 정말 중요한 건 상대가 먼저 내 호의를 거절했으니…….”

펜을 놓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하윤은 참기 힘들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라는 점이지.”

*     *      *

복잡한 생각을 정리한 신유성이 아카데미로 돌아왔을 땐 이미 부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모두 숙소로 돌아갔을 시간이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어쩌면 누군가 숙소로 벨벳을 데려갔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신유성의 예측은 틀렸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침대에 누워 서로를 껴안고 있는 벨벳과 아델라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부실에서 자고 있었구나.’

신유성은 발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잠든 벨벳과 아델라에게 다가갔다.

‘벨벳…….’

벨벳의 강대한 힘 때문일까.

비범한 출생 때문일까.

헌터 협회에 이어 이제는 신하윤까지 벨벳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일에 휘말리기에는 벨벳은 너무 어려…….’

지금은 벨벳이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추억을 쌓을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델라에게도 마찬가지.

‘……벨벳의 존재는 아델라가 새롭게 얻은 안식처야.’

신유성은 얼음처럼 차가웠던 아델라가 루인 성에서 흘린 뜨거운 눈물을 기억했다.

벨벳에게 시간이 필요하듯 아델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델라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낼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델라에게 필요한 건 새롭게 가족이 된 벨벳의 존재.

‘설령 신하윤이 벨벳을 노리더라도. 바뀐 건 없어. 내가 지켜내면 되는 거야.’

신유성이 마음을 다잡으며 벨벳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순간. 아델라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셨군요.”

“미안. 늦었어. 벨벳이 기다렸지?”

아델라는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말을 했다.

“네 그리고…… 저도 무척 기다렸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싱긋- 아델라가 편안한 미소를 짓자. 신유성은 그제야 걱정을 떨치고 같이 웃을 수 있었다.

“역시 금방 들어올 걸 그랬네.”

아델라가 지어준 미소는 신유성이 잡념을 떨치기 위해 한참을 고민한 시간보다 훨씬 나았다. 어찌 보면 허튼 시간을 낭비한 셈.

꾸욱-

잡념을 떨친 신유성은 아델라의 손을 잡더니 평소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벨벳은 우리가 지켜내자. 늘…… 함께 하는 거야.”

손을 잡힌 아델라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돌연 신유성을 껴안았다.

화악!

덕분에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마주친 신유성과 아델라.

“아델라?”

신유성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아델라는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일까요? 그냥…… 갑자기 당신이 안고 싶었어요.”

물론 갑작스런 상황에도 오히려 안정이 되는 기분에 신유성은 그저 웃어줄 뿐이었다.

“응.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