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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300/434)

제301화

포탈을 넘어 부실로 돌아온 벨벳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부실을 떠나 연구실에 간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지만 벨벳은 아주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던 것처럼 반갑게만 느껴졌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발을 파닥거리던 거실. 자신이 읽다가 던져둔 동화책. 냉장고에 척척 쌓여있는 스미레의 맛있는 요리들.

달그락. 달그락.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벨벳은 스미레가 차려준 식사를 말없이 맛있게 먹었다. 입에 안 맞았던 연구소의 음식들과 달리 스미레가 차려준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그렇게 모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치운 벨벳의 수저 소리가 멎자. 김은아는 그 모습이 애처로운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벨벳 너처럼 똑똑한 애가 왜 그런 곳을 따라갔어?”

김은아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벨벳을 탓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혼자 마음고생을 한 벨벳이 안쓰러운 듯 연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벨벳은…….”

껌벅.

벨벳은 숙였떤 고개를 들어 천천히 모두의 표정을 확인했다. 아델라는 맞은편에서 슬픈 얼굴로 입술을 지그시 물고 있었고.

“벨벳…….”

스미레는 벨벳과 눈이 마주치자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벨벳.”

“애가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기가 죽어서 조용해진 것 봐!”

물론 에이미는 걱정을 해주는 모습도 에이미다웠다.

“우리도 이번에는 고생 좀 했다?”

“괜찮아 벨벳~ 난 재미있었어~ 시우랑 붙어 있을 수도 있었고.”

까칠하게 구는 척해도 은근히 잘 챙겨주는 이시우와 방긋 웃어주는 사쿠라의 모습까지. 모두를 확인한 벨벳은 그제야 안도한 듯 입을 열었다.

“벨벳은 모두가 좋아…….”

벨벳은 마나 폭주로 주변인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메이린의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벨벳은…… 벨벳이 사실 나쁜 드래곤이라서 모두를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벨벳에게는 이 부실이 전부였다.

그런데 메이린의 말처럼 자신이 부실을 위험에 빠트린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일이 있을까?

“그래서 따라가써…… 엄마 아빠를 못 보는 건 너무 슬프지만…… 아프게 하는 게 더 슬퍼…….”

이런 모습을 보면 벨벳은 모두의 성격을 조금씩 닮아 있었다. 장난기가 많고 활발하지만 상냥하고 따뜻했으며 어린아이라기에는 너무 속이 깊었다.

그러나 생각이 깊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의 모습은 분명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순간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네가 왜 우리를 다치게 한다고 그래……. 이렇게 착한데 어떻게 다치게 해! 우리가 그렇게 안 둘 거야…….”

마음이 약한 김은아가 결국 눈물을 터트리자 벨벳은 황급히 일어나 김은아를 안아주었다.

“호걱…… 울지 마 은아 엄마…… 벨벳이 잘못해써…….”

떨어진 동안 마음고생을 한 건 벨벳만이 아니었다. 왜 소중한 것은 빈자리를 느끼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특히 김은아는 이번이 2번째였다.

“바보야……. 설령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널 포기하는 선택지 같은 건 없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마음이야.”

김은아의 말에 스미레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벨벳은 저희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저흰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걱정이 된다면 마나를 다루는 법을 배우면 되는 거 에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델라는 번쩍- 손을 들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오늘부터 부실에서는 벨벳의 교육도 겸하도록 하죠.”

방금 생각해낸 아이디어지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나 폭주는 어디까지나 마나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에게 벌어진다. 벨벳이 마나를 자유롭게 다룬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사건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교육 쪽으로 치우치자 학구열이 높은 벨벳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오, 캬오오…… 대단해, 벨벳 공부 하는 거야?”

“네! 최강의 헌터나…… 음, 드래곤? 등을 목표로 다 같이 열심히 해봐요! 벨벳!”

스미레의 말처럼 거창한 목표를 위해 달려가진 않겠지만 벨벳은 헌터 아카데미의 부실에 어울리는 진정한 멤버로서 거듭난 것이다.

쿠웅-!

그리고 그 순간.

혼자 편하게 있을 순 없다며 바깥에서 노숙을 하던 오르카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작은 주인니이이임-!”

“캬항! 오르카아-! 너도 보고 시퍼써!”

“돌아오셨군요! 제가 얼마나 애타고 그리운 마음으로 작은 주인님을 기다렸는지 절대로 모르실겁니다! 오르르르르-!”

“캬하앙!”

얼마나 기쁜지 어깨동무까지 하고 들썩들썩 춤을 추는 오르카와 벨벳의 모습에 모두는 그제야 웃음을 터트렸다.

*     *      *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밤이 늦었지만 신유성은 김은아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한 이후를 끝으로 아직 부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피로가 쌓였을 벨벳을 위해 아델라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캬항…… 아델라 엄마랑 같이 자니까 너무 좋아.”

“저도 너무 좋습니다. 벨벳이 원한다면 잠이 들 때까지 동화라도 읽어주겠습니다.”

아델라가 직접 읽어주는 동화라니 확실히 그건 보기 드문 장면이긴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벨벳도 재밌는 동화보다는 그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아니야. 벨벳은 이렇게 아델라 엄마랑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아.”

번쩍!

갑자기 눈을 빛내는 걸 보니 벨벳은 무언가가 재밌는 이야기 주제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캬항-! 아델라 엄마는 벨벳처럼 어릴 때 뭐하구 놀아써?”

그 사건이후 좀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기에 아델라는 벨벳을 껴안은 채로 생각에 빠졌다.

‘……곰 인형.’

왜일까? 생각해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은 항상 귀여운 갈색 아기곰 인형과 함께였다.

“제가 벨벳처럼 어릴 때는 항상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거 같아요.”

결국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낸 아델라의 대답에 벨벳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곰 인형도 오르카처럼 말해!?”

오르카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벨벳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상. 아델라는 그런 벨벳의 반응이 귀여운 듯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후후. 아뇨. 그냥 평범한 인형이었습니다. 다만…….”

왜 잊고 있었을까?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아니면 떠올리는 것만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아델라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더 이상은 아델라를 아프게 하지 못했다.

“……제가 무척 사랑하는 사람들이 준 선물이라 항상 곁에 그 곰 인형을 지니고 다녔죠.”

숨기고 피하며 잊으려 하는 것이 아닌 당당히 마주한 것으로 아델라는 치유될 수 있었다.

껌벅 껌벅.

벨벳은 미소를 머금은 아델라를 빛나는 눈망울로 바라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벨벳도 사랑해! 근데 어떤 사람이어써?”

순수한 벨벳의 질문에 아델라는 머리를 쓸어내려 주며 입을 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잊기 위해 꽁꽁 숨겨 둔 기억이 이젠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제가 벨벳처럼 어릴 적에는 불이 꺼진 방이 무척 무서웠어요.”

“호걱, 아델라 엄마가!?”

불이 꺼진 것만으로 겁을 먹는 아델라라니 지금의 아델라를 생각한다면 그건 좀처럼 대조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럼요. 어릴 적의 저는 무척 겁쟁이였답니다. 벨벳처럼 똑똑하지도 않았고…… 울보였죠.”

“믿을 수가 업써…… 완전 흥미진진해…….”

아델라가 가온에서 얼음 공주라는 이명으로 불린 건 단순히 얼음을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표정하고 무감각하며 타인에게 무관심한 아델라의 반응이 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델라와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사건을 겪기 전 아델라의 어린 시절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같이 잘래요. 무서워요…….]

밤이 되면 부모님의 방문을 열고 들어와 같이 잠을 청했고. 낯을 심하게 가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이 다가오면 부모님의 다리 뒤로 숨기 일쑤였다.

곰 인형은 그런 아델라에게 부모님이 준 선물.

[아델라? 이 곰돌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렴.]

[이젠 혼자가 아니니 두렵지도 않을 거야. 또래와 친해지는 법을 알려줄게!]

“……그래서 저는 곰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정말 친구처럼 대해 주었답니다. 일종의 연습이었죠. 어린 제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아델라는 무언가 떠오른 듯 벨벳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벨벳도 친구를 사귈 장소가 필요하겠군요. 역시 유치원일까요?”

만약 벨벳이 가게 될 곳을 정한다면 일반적인 유치원보다는 교육원일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미 5살이 넘어서 특성을 개화한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는 교육소를 많이 만들어두었다.

일반적인 아카데미로 넘어가기 이전에 간단한 교육을 받는 장소인 것이다.

“캬하앙~ 그런 것보다 지금 그 곰 인형은 어디 이써?”

물론 지금 벨벳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아델라의 곰 인형이었다.

그러나 소중한 물건이니 각별하게 보관했을 거라는 벨벳의 예상과 달리 아델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잊어버렸어요.”

“흐, 흐엑…… 잊어 버려써!? 어쩌다가!?”

그런 곰 인형은 잊어버렸다고.

“아니, 지금은 기억이 났으니 잊어버렸었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이제야 떠올랐다고.

좀처럼 아리송한 대답을 한 아델라는 꽈악ー 벨벳을 끌어안아주며 감사를 표했다.

“모두 벨벳 덕분이에요.”

소중한 것은 왜 뒤늦게 그 빈자리를 알게 되는 걸까? 아델라는 이제야 본래의 자리를 되찾은 일상에 감사하며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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