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0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강유찬은 의자에 앉아 그저 신유성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드래곤을 돌려받고 싶다라…….”
강유찬은 시선만으로 사람을 관통하는 듯 날카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알고 있나? 협회장이나 전설의 헌터 같은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 결정을 내릴 일이 참 많아진다네.”
신유성은 알고 있었다.
강유찬은 절대로 허투루 말을 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협회장님은 분명히 원하는 바가 있으신 거야.’
하지만 강유찬은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이런 난처한 상황에 꽤나 자주 처하곤 하지. 물론 그럴 때마다 유성아, 나는 내가 옳았다는 걸 느끼게 된단다.”
오히려 강유찬은 해결의 실마리를 주기는커녕 더욱 아리송한 질문을 던졌다.
“유성이 너는 원학이와 내가 가정을 만들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더냐?”
유원학과 강유찬이 가정을 만들지 않은 이유. 그건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왕이라는 이름 아래에 감추어진 유원학의 따뜻한 일면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스승님은…….’
충분히 가정을 이룰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잘 구워진 멧돼지 고기를 먼저 맛보게 해준다거나.
비가 오는 동굴에서 지친 몸을 누이면 신유성의 몸에는 거적 같은 게 덮어져 있곤 했으니까.
이제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다쳤을 땐 왜 굳은 표정을 지었는지도 이제는 명확했다. 그건 자신의 실수에 실망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신유성이 다친 상처만큼 유원학도 같이 아픈 것이 분명했다.
‘스승님께서는…… 대체 왜…….’
신유성이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하자 강유찬은 사무실에 놓인 방향제를 손아귀에 쥐었다.
“그건 지킬 것들이 많아지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이 묶인 상태로 목숨을 건 전투에서 이길 수나 있겠더냐? 떨어트리지 않는 게 고작이겠지.”
신유성은 지킬 것이 많을수록.
그것이 강해질 이유가 되고 의미가 된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겠다는 마음보다 더욱 강렬한 목표가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신유성은 강유찬의 말에 좀처럼 반박하지 못했다.
‘정말…… 이것이 스승님의 생각이라고?’
이건 다름 아닌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 유원학의 생각이었으니까. 유원학은 신유성에게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꾸욱-
그런 자신이 과연 스승님의 생각을 부정할 수 있을까? 결국 신유성이 입을 닫은 채 아무런 대답도 못 하자 강유찬은 호탕하게 웃었다.
“원학이를 향한 네 존경심이 각별한 것이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만…… 유성이 네가 이렇게 굳어버린 모습은 처음 보는구나.”
강유찬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었던 건지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 녀석은 마녀와 연인 사이였지. 로렐라이의 스승인 헌터 말이다. 그녀는 시계탑의 전설이니 유성이 너도 알고 있겠지.”
강유찬은 신유성보다 더욱 유원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신유성은 기껏해야 무신산에서 10년을 같이 보낸 수준이었지만 강유찬은 한평생을 헌터로 유원학과 함께 활동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남자가 어찌 타인과 이어질 수 있겠더냐? 유원학과 나는 외로운 존재다. 그렇기에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지. 직접 이렇게 증명하고 있지 않더냐?”
그런 강유찬이 쏟아내는 말이기에 신유성은 쉽사리 부정할 수 없었다. 강유찬은 신유성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단 몇 마디의 말로 유성의 마음을 꺾어 놓으려 하고 있었다.
“우리가 탑의 정복을 포기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검신의 부재였다. 그런 몸이 되어 주요 전력 중 하나가 반 토막 났으니……. 더 이상의 공략은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참으로 유명한 일화지.”
강유찬은 자신이 겪은 경험들에 진리라는 단어를 섞어 피할 수 없는 창을 만들고 있었다.
“그럼 그다음으로 공략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아느냐?”
이젠 그 창으로 신유성을 찔러 이 승부의 종지부를 찍을 차례. 강유찬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뱉어냈다.
“아덴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아델라 때문이지. 겨울의 마녀에게 부모를 잃은 그 아이를 돌봐줄 사람은 아덴밖에 없었거든.”
이때의 아닌 강유찬은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처럼 기이한 압박감을 발하며 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겠느냐 유성아?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많아지는 건 무척이나 달콤한 경험이지만. 결국 강함을 무뎌지게 만들고 약하게 만든다는 걸? 정점에 오르고 최강이 되려면 그런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저벅저벅.
곁으로 다가온 강유찬은 위로하듯 신유성의 어깨를 주무르며 사람 좋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주었다.
“……유성이 너는 유원학이 만든 걸작이지. 그런 작은 행복으로 만족하기엔 너무 큰 그릇이지 않느냐? 나는 그게 아까운 것이다.”
‘인류’라는 대의를 내세운 강유찬의 뜻은 천사의 속삭임인지 악마의 속삭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 소꿉놀이 같은 값싼 만족은 대의를 위해 기꺼이 버리려무나. 네 능력으로 인류를 윤택하게 만들고 세상을 바꾸려무나. 그래. 유성이 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달콤하게 속삭이던 강유찬은.
꽈악!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뜨며 크게 소리쳤다.
“유원학의 제자인 네가 나의 서포트를 받고 모든 헌터들의 정점에 군림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이더냐?”
강유찬은 방금까지의 열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툭-
그리고 그는 메모리 크리스탈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넌 똑똑한 아이니 이런 명확한 선택지를 저울질하진 않겠지. 난 네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리고 나의 다음 자리를 맡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헌터 협회장의 다음 후계자.
신유성은 아직 학생에 불과한 어린 나이였지만 절대적인 입지를 가진 강유찬의 선택이라면 과연 누가 반박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신유성은 국가대항전의 1등을 차지했고, 사도닉스 공략부터 리벨리온의 치트를 체포한 사건까지 전국에 보도되며 엄청난 업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젊다는 건 결국 전성기를 앞당겼다는 것. 경험과 실력만 있다면 그건 절대로 단점이 아니었다.
‘명확한 선택지라…….’
강유찬의 말을 듣고 있는 순간에도 신유성의 머리를 뒤덮고 있는 궁금증은 단 하나였다.
스승님은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셨을까? 하지만 신유성에겐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칠칠치 못한 녀석! 야생의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온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운다. 헌터도 마찬가지다. 항상 주변을 잘 살펴보아라.]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크게 다친 날은 유원학이 왜 슬픈 표정을 지었을까.
[이 버섯 스프가 맛있다고? 이상한 부분에서 날 닮았군! 너도 참 입맛이 특이한 모양이구나!]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그건 분명 신유성에게 유원학이 단순히 스승이 아닌 것처럼, 유원학에게도 신유성이 단순한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겁쟁이라고? 아니 그건 당연한 반응이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공포심은 너를 냉정하게 만들고 너를 지켜주는 힘이다.]
그리고 그건 유원학의 가르침 속 묻어 있던 따뜻함이 증거였다.
‘그렇다면. 스승님에게 나는 무엇일까?’
신유성은 그 질문을 던진 끝에 마침내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띠링-!
[KimSilverA: 유성아 어디야!? 벨벳은 우리가 데려왔어!]
길었던 고민이 끝난 탓일까.
김은아의 메시지를 본 신유성은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협회장님이 원하시는 일이 정말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다만…….”
신유성은 자신이 찾은 해답을 믿었고, 오늘의 결정을 믿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가 선택을 내릴 것이고, 저는 그 선택을 믿겠습니다.”
완벽하게 원했던 대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근접한 결과를 쟁취해낸 강유찬은 피식- 웃으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둘러 말했거늘. 참으로 노골적인 답변이구나. 좋다. 나를 따른다니 드래곤의 건은 내 손에서 묻도록 하지.”
신유성이 돌아서 사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강유찬은 메모리 크리스탈을 가리켰다.
“아, 가기 전에 이건 챙겨가거라. 내가 너에게 주는 환영 선물이니.”
강유찬이 메모리 크리스탈에 준비한 선물이란 무엇일까. 하지만 그곳에 무슨 정보가 담겨 있을지는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저벅저벅.
지금 신유성에게 필요한 일은 얼른 부실에 돌아가 놀란 벨벳을 끌어 안아주는 것.
툭-
사무실의 문 앞에서 멈춰선 신유성은 마지막 인사 대신 담담한 목소리로 강유찬에게 말했다.
“……협회장님. 스승님께서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는 건 틀린 말씀이십니다.”
그래.
항상 강유찬이 옳은 건 아니었다.
신유성은 강유찬이 모르는 스승님의 일면을 알고 있었다. 그 따뜻함의 온기와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는 마음을 알고 있었다.
“제가 스승님의 가족이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나가는 신유성. 강유찬은 좀처럼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멍하니 신유성이 나간 출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