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9화
벨벳이 눈을 빛내며 뚫어져라 바라본 탓일까?
‘벨벳이다!’
김은아는 이내 구석에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울먹이고 있는 벨벳을 발견했다.
콕콕-
김은아가 검지로 찌르며 눈길을 보내자 뒤늦게 벨벳을 발견하는 스미레.
‘벨벳!’
스미레는 울먹이고 있는 벨벳의 모습을 보니 자신도 감정이 북받치는 듯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마지막 서버 장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럼 확인 해보…….”
위이잉-!
연구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팔목에 찬 포켓이 진동이 울렸다.
“실례지만 통화 좀 받겠습니다.”
연구원이 맞춰둔 통화 볼륨은 큰 편도 아니었지만 상대가 워낙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는 탓에 연구소에 통화 내용이 울려 퍼졌다.
- 내가 의심이 가서 확인 해보길 잘했지! 거기 있는 건 가짜들이야! 서버 관리소 직원은 아직 도착도 안했다고!
움찔.
가짜라는 단어에 연구소의 모든 연구원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고 그중 하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일갈했다.
“네 녀석들 정체가 뭐야-!”
하지만 헌터인 김은아와 스미레의 움직임을 일반인이 따라갈 수는 없었다.
파직-!
김은아의 손짓에 일어난 푸른 스파크는 순식간에 연구원을 감전시켰다.
“모, 몸이 움직이지가…….”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연구원이 바닥에 쓰러지자. 김은아는 시선을 다른 연구원들에게 옮겼다.
“큰 무리는 없을 거야. 물론 적어도 3분간은 못 움직이겠지만. 우리는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
“……맞아요. 저흰 벨벳을 돌려받고 싶을 뿐이에요.”
스미레가 손등에서 보랏빛 마나를 발산하자.
고오오-
세라믹 바닥을 뚫고 일어난 해골들이 순식간에 연구원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분들은 일반인이에요. 다치지 않게 제압해주세요.”
물론 스미레는 해골들에게 연구원들이 다치지 않게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꺄아악! 해골들이!”
“그냥 움직이지 마! 이 녀석들 가만히 있으면 안 덤벼들어!”
일반인에 불과한 연구원들은 스미레와 김은아를 상대로 승부 자체가 불가능했다.
연구원에 발을 들이도록 허락하고 벨벳의 위치를 들켜버린 이상 이미 승부가 판가름 난 것이다.
벌컥!
더 이상 벨벳을 혼자 두기 힘들었던 스미레와 김은아는 유리문을 열고 방에 들어갔다.
“벨벳!”
“너 눈가가 왜 그래 울었어!? 괴롭힘 당한 건 아니지?”
그토록 기다렸던 스미레와 김은아의 방문에 벨벳은 눈물을 흘리며 짧은 다리에 걸맞지 않은 엄청난 속도로 둘에게 달려들었다.
“캬흐아아앙…… 스미레 엄마! 은아 엄마!”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장소에 혼자 떨어져 있는 사이 과연 벨벳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화악-!
스미레와 김은아는 그런 벨벳을 그저 껴안아주었다.
“벨벳…….”
“으휴, 그만 울고…….”
“벨벳 이제 집에 못 돌아가는지 아라써…… 엄마 아빠가 벨벳을 잊을 까봐, 너무 무서워써…….”
어른스러웠던 벨벳이 훌쩍거리며 서러움을 토로하자 김은아와 스미레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우리가 잊긴 왜 잊어? 당연히 데리러 오지!”
“맞아요! 벨벳은 우리 가족인 걸요? 어떻게 벨벳을 잊겠어요!”
잠깐 떨어진 사이 더욱 애틋해진 관계. 하지만 김은아와 스미레가 벨벳이 한눈이 팔린 사이.
위이잉- 번쩍!
어디선가 날아온 레이저 광선이 뜨거운 열기로 벽을 녹여버렸다.
“너! 뭐하는 짓이야! 아직 테스트도 끝나지 않은 무기를!”
놀란 레지나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파이넌의 눈은 이글거리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이대로 이 녀석들을 보내줄 거야? 감히 누구 마음대로!”
그러나 김은아는 놀라지 않았다.
“당신…… 우리가 헌터라는 걸 잊은 거야?”
오히려 평소보다도 차분해진 마음 탓에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일반인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저런 무기를 사용하면 이쪽도 방어할 수밖에 없어.’
이렇게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 해두며 결의를 다지고 있는 걸보면 김은아는 분명 신유성과 함께 있던 시간들이 깊은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벨벳만 데리고 여길 떠날 거야. 당신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어.”
벨벳을 찾은 김은아는 어떻게든 상대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파이넌은 악을 질렀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이 드래곤은 두고 가! 너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레지나는 흥분한 파이넌을 말리려고 했지만. 파이넌은 총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소리쳤다.
“아니 너희는 아무 것도 몰라! 그 드래곤한테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생물인지!”
파이넌의 악에 받친 외침에 벨벳의 등을 토닥여주던 스미레는 말없이 일어났다.
줄곧 붙어 다닌 김은아조차 처음 볼 정도로 무서운 표정을 한 스미레는 파이넌을 보며 너무나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말대로 저희는 그런 건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 평생 몰라도 상관없어요. 저희가 알고 있는 건……. 벨벳은 저희들의 가족이라는 사실이에요.”
레지나는 스미레의 말에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자신들은 보호라는 목적으로 벨벳을 데리고 있었지만 정작 벨벳을 드래곤이라는 샘플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어. 정말 이 드래곤을 인간 사회에 스며들게 하고 싶다면. 아마 저 아이들과 있는 게 훨씬 도움이 될 테지.’
레지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파이넌을 바라보았다.
“측정 결과 못 봤어!? 그 드래곤은 위험하다고! 그 위험한 녀석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너희 소꿉놀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파이넌의 말에 레지나는 연구원으로써 동감하지만 그건 지극히 인간들의 관점에서 본 시선이었다.
사회와 단절되어 연구실 속에서만 지낸 드래곤이 정말 10년 뒤 인간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동물원이나 연구소에서 태어나 보호받은 동물들은 야생에 돌아가도 대부분은 적응을 못 하고 죽는다. 드래곤이라고 그게 다를까?’
레지나는 한 명의 연구원으로서 벨벳의 존재에 담긴 천문학적인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이넌이 왜 벨벳에게 집착하는지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파이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없어. 그러니까…….”
레지나가 파이넌을 말리기 위해 손을 총으로 가져간 순간.
딸칵-!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 파이넌은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이건…….”
처음 맞닥뜨린 상황과 엄청나게 쌓인 긴장 속에서 파이넌은 실수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위이이잉-!
덕분에 총구 앞에는 검은색 입자가 순식간에 모였다.
지이익-!
미처 반응조차 하기 전에 엄청난 속도로 레이저가 빛을 발산하자. 위험을 느낀 벨벳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안대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