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98화 (297/434)

제298화

벨벳은 부실에서 직접 시간을 세어 본적이 없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고 온통 재밌는 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지금은 오르카와 함께 돌을 줍기 위해 모험을 떠날 시간이었다.

[작은 주인님! 제가 엄청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좀 멀어도 강을 따라 내려가면 매끈매끈한 돌이 있습니다!]

‘오르카…….’

물론.

돌을 주워도 예전처럼 반짝 반짝 빛나게 하진 못할 것이다.

[마나 억제 장치]

꽈악-

벨벳은 목에 걸린 답답한 구속구를 잡아당겼다. 이 괴상한 목걸이를 찬 후로 벨벳은 좀처럼 가진 마나를 발휘할 수 없었다.

게다가 목걸이의 영향인지 몸에 힘도 없고 식욕도 없었다.

냠.

벨벳은 희멀건 죽 같은 걸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이 요리 맛 업써. 차라리 은아 엄마의 카레가 더 마시써…….’

냠냠.

그 뒤 몇 숟가락을 더 퍼먹자 배고픔은 사라졌지만 대신 벨벳은 가슴이 한 편이 따끔거렸다.

‘벨벳. 스미레 엄마 케이크가 먹고 싶어…….’

부실에서는 언제나 스미레가 준비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매시간 디저트가 나왔다.

이곳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

하지만 정말 벨벳이 그리워하는 건 맛있는 디저트가 아니었다.

다시 가족들을 볼 수 있다면 평생 이 맛없는 희멀건 죽만 먹어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툭-

하얀색 접시에 숟가락을 놓은 벨벳은 다시 구석으로 가 힘없이 누워버렸다. 벨벳은 손가락을 집어 가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루는 24시간.

1년은 그 하루의 365배.

연구원들은 그 10배인 10년 정도는 이 연구소에서 있어야 한다고 했으니 약 87,600시간이었다.

연구소에서 이곳에 온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을까.

벨벳이 태어나고 겪은 시간의 몇십 배나 되는 그 아득한 시간보다 더욱 벨벳을 무섭게 만드는 건.

‘엄마 아빠들이 벨벳을 잊지 않으까…….’

그 시간이 모두 지났을 때 가족들이 자신을 잊을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훌쩍 훌쩍.

구석에 누워버린 벨벳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더니.

“캬우으-”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     *      *

마나의 주인 드래곤.

타고난 능력 때문에 성장하기만 하면 최소 위험도가 6급에서 시작되는 엄청난 종족.

‘……지금까지 우리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탑의 기록이 전부였지.’

하지만 이젠 이야기가 달랐다.

수석 연구원인 파이넌은 탑의 기록에 새겨진 정보가 아닌 진짜 드래곤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드래곤을 나보다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벨벳은 샘플 중에서도 최상이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인간에게 적대심이 없으며 재능까지 뛰어났다.

‘그야말로…… 이 드래곤은 헌터계를 성장시키기 위해 인류에게 내린 보물!’

파이넌은 심각한 얼굴로 스크린을 보았다.

‘드래곤이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마나 구속구를 채운 상태인데도 또 체내의 마나가 늘었다…….’

억제 장치를 끼워도 마나가 늘었다는 건 뭘 의미할까? 그건 따로 사용하거나 훈련하지 않아도 체내의 마나가 증가한다는 뜻이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녹아든 산소로 호흡하듯…… 주변에 녹아 있는 마나를 체내로 흡수하고 있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따로 엄청난 수련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체내의 마나가 증가한다니. 그건 인간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만약 이 원리가 뭔지를 밝혀낸다면……. 그건 인류 역사상 얼마나 위대한 발견이 될까?’

파이넌은 자신의 동료 연구원인 레지나를 비밀리에 불렀다.

“나중에 연구실에 혼자 남으면 간단한 샘플 좀 채취해줄 수 있어?”

“샘플이라니?”

무언가 위험을 감지했는지 자연스럽게 조용해진 레지나의 목소리. 파이넌은 구석에 쓰러진 벨벳을 흘겨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잘 달래서 저 꼬마 피 좀 채취해줘. 많이도 필요 없고 10밀리리터 정도면 충분해.”

“너, 미쳤어? 학원도시 지부장이 건드리지 말랬잖아.”

레지나는 누가 들었을까 식은땀까지 흘리며 주변을 살폈지만 연구열에 불이 붙은 파이넌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번 생각해봐. 외부에서 받아들인 마나가 어떤 식으로 저장되는지 궁금하지 않아? 만약 그 운반체가 혈액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당연히 아닐 확률이 높겠지. 근데 만약 맞으면? 저 능력의 차이가 혈액 때문이고 우리가 그 성질을 분석해내면?”

이 사실을 다른 연구원들에게 모두 공개하면 분명 반대가 나올 것이다. 특히 벨벳의 경우는 메이린이 직접 부탁을 했기에 연구소에서 그녀를 적으로 돌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파이넌은 그렇기에 레지나를 골랐다. 파이넌은 레지나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쉿-

더욱 목소리를 줄인 파이넌은 레지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 드래곤한테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테스트만 할 거야. 내가 생각해둔 게 있어. 들키면 혹시 병이 있는지 간단한 검진만 했다고 하지 뭐.”

레지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럴싸한 파이넌의 설득에 점점 혹하고 있었다.

‘파이넌 말대로 간단한 실험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이게 얼마나 위대한 발견이 될지도 모르고……. 메이린 그 여자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겠어?’

장점과 단점을 저울질 할수록 레지나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인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생각이 ‘이건 타인을 위한 일이다.’ 까지 닿자.

“……그럼 내가 잘 달래서 야간 근무 때 채취해볼 테니까. 책임은 네가 져.”

레지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

김은아와 스미레는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연구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도 아닌가요?”

만약 허탕을 친 듯 안내해 준 연구원이 이렇게 물으면 스미레는 심각한 표정으로 기계를 이곳저곳 살피며 혼신의 연기를 했다.

“어, 으음…… 문제가 생긴 건 맞지만…… 이 기계도 아니네요. 좀 더 찾아봐야 할 거 같아요!”

하지만 스미레는 기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까지 스미레가 다뤄본 기계는 냉장고나 오븐 같은 가전제품이 전부.

‘여기도 벨벳이 없네요.’

실상은 연구소 내부를 돌아다니며 벨벳이 있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만약 벨벳을 찾기 전에 진짜 직원이 도착하기라도 한다면 이번 작전은 거기서 끝. 김은아는 1분 1초가 애가 타는 상황 속에서 입술을 질근 물었다.

‘벨벳…… 어디 있는 거야?’

*     *      *

바닥에 누워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던 벨벳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나에.

살랑-

벨벳은 자신도 모르게 꼬리를 움직였다. 강아지가 사람의 발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면 드래곤은 사람의 마나를 구분할 수 있었다.

‘……정전기처럼 찌릿찌릿! 케이크처럼 포근포근!’

살랑살랑-

벨벳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꼬리를 흔들었다.

‘정말……. 스미레 엄마? 은아 엄마인 거야?’

벨벳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캬우으…… 그럴 리가 없는데…… 벨벳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말도 안 하고 왔는데…….’

그런데 어떻게 이 머나먼 곳에 자신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벨벳은 이미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막만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 이렇게 포근하고 찌릿찌릿한 마나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있었다.

‘캬우…….’

그리고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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