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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296/434)

제297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바닷물은 잘 얼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함유된 염분이 높아 어는점이 내려가고, 온도에 따라 물이 위아래로 순환되는 대류 현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델라가 가진 건 그런 상식을 간단히 파괴하는 힘.

즈으윽-!

마치 공간이 찢어지듯 매서운 파열음과 함께 아델라는 얼음 창을 만들어 쥐었다. 아델라의 목표는 지하 시설과 맞닿은 바닷물.

‘……당신의 말처럼.’

얼음 창을 쥔 아델라는 눈을 감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오히려 아델라의 집중력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저는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힘을 쓰게 되었군요.’

벨벳이라는 목적이 뚜렷하니 그 어떤 세찬 바람도 아델라를 흔들리게 만들 수 없었다.

“……개화해라.”

상대가 그 어떤 강적이라도.

설령 대자연의 일부인 바다라도.

벨벳을 구하기 위해선 무찔러 보일 것이다.

그래. 벨벳을 위해.

타악!

얼음 창을 쥔 아델라가 자세를 잡으며 땅을 박찼다. 얼음 창의 주위에선 마나가 하얀 꽃잎처럼 흩날렸고 창의 촉에선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섬광이 맺혀 있었다.

이제 아델라가 해야 할 일은 이 창을 바다에 꽂아 넣는 것뿐.

“겨울의 창.”

아델라는 몸이 휠 정도로 역동적인 자세로 창을 던졌다.

지이이익-!

얼음창은 이리저리 마나를 비산하며 끔찍한 소리를 냈고.

풍덩-!

물속으로 들어가자 연구소 주변 일대의 바다를 꽁꽁 얼려버렸다.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는 대낮.

얼어붙은 바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신비로운 아델라의 존재는 그 방점을 찍었다.

툭.

새하얀 얼음 빙판 위로 가볍게 착지해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델라.

사아아-

그러자 아까 전의 돌풍이 무색하듯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아델라의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제 몫은 여기까지. 모두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     *      *

와작- 와작-

컴퓨터 앞에 앉아 세상만사가 귀찮은 얼굴로 감자 칩을 집어 먹던 남자는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큰일 났다…….”

빙글빙글-

심심한지 옆에서 볼펜을 돌리며 농땡이를 부리던 직원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물었다.

“또, 왜?”

“아니 우리가 관리하던 연구소 중 하나가…… 쓰읍…… 서버 온도가 너무 올랐기에 트래픽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냥 냉각 시스템이 아예 멈췄는데?”

“그게 왜 멈춰~ 누가 목이라도 말라서~ 아주 바닷물을 몽땅 마셔버렸대?”

“장난칠 때야? 당연히 소프트 쪽 문제겠지. 일단 지금 바로 가서 확인해야 할 거 같은데…….”

“알았어~ 내가 갈게~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참이었습니다요. 근데 내가 진작 컴퓨터에 이거 붙이라고 했지?”

볼펜을 돌리던 직원이 가리킨 건 컴퓨터에 붙은 노란색의 부적들.

[서버안전]

[무사태평]

“내가 이거 붙이고 난 후에 서버 고장이 절반은 줄었다니까? 돈 모아서 2장만 더 붙이면 평생 출장 안 나가도 돼~”

“아나 바쁘다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

결국 한 소리를 듣고 만 서버 관리실의 직원은 투덜거리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어디보자 내 차가…….”

룰루룰루-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 주차장을 돌아다니던 직원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흐윽…… 누구 없나요!? 여기 누가 좀 도와주세요!”

지하 주차장을 울리는 건 도움을 바라는 한 소녀의 간절한 외침.

“뭐야, 거기 누구 있어요!?”

놀란 직원은 방금까지의 지루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아, 다행이다! 사람이 있었네요! 진짜 여기서 사람이 오기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목소리의 정체는 검은 교복을 입은 소녀였다. 게다가 바라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미모 탓에 놀란 직원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아, 아니 학생 주차장에서 대체 왜…….”

“그게 제가 발을 접질렸는데…… 포켓을 잃어버려서…….”

발목을 삐어 걷지도 못하는데 연락할 포켓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걱정하지 마요! 내가 병원까지 데려다줄 테니!”

직원이 사쿠라를 향해 기사처럼 굳은 표정으로 장담을 하자.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 사쿠라는 숨어 있는 이시우를 향해 윙크를 했다.

‘다행히 착한 사람이네……. 안 데려다주면 시우가 자동차 타이어에 총알 구멍을 내주려고 했는데.’

지금 본 성격이라면 이런저런 이유로 한두 시간을 붙잡고 있는 건 일도 아니었다.

툭.

사아아-

다행이라며 다시 포켓에 총을 집어넣는 이시우.

‘우리도 미션 성공이군.’

비록 과정은 소박했지만 훌륭하게 작전을 성공시킨 것이다.

*     *      *

부우우웅-!

평소의 거창한 리무진이 아닌 평범한 차를 타고 김은아와 스미레는 연구소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순조롭게 작전이 진행될 수 있었던 비서인 이수현의 정보력과 순발력 덕분이었다.

“아쉽게도……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네요. 연구소로 들어간 후부터는 아가씨와 스미레 양 손에 작전의 성공이 달려있어요.”

그럼에도 겸손하게 말을 하는 이수현. 정작 당사자인 김은아는 연구실의 입구가 다가오자 긴장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 이 유니폼 이상하지 않은가? 의심스럽진 않지?”

“전혀요 잘 어울리세요. 역시 아가씨는 옷빨이 잘 받으시네요.”

하지만 김은아와 스미레는 차림새가 문제가 아니었다. 직원이라기엔 너무 어린데다 이목을 사로잡는 외모는 어딜 봐도 의심을 사게 만들었다.

부르릉-

그러나 차는 검문소 앞에 멈췄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유니폼을 입은 시티가드가 검문소에서 걸어 나왔다. 헬멧에 가려진 탓에 묘하게 뭉개진 시티가드의 목소리.

“우, 우리, 연구원들이 불러서 기계 고치러 왔잖아. 그렇지? 우리 없으면 큰일 나는데……. 빨리 고쳐야 하는데…….”

긴장한 김은아가 갑자기 횡설수설 떠들기 시작했지만 이수현은 어른답게 당황하지 않았다.

“연구소에 연락해보세요. 서버의 냉각 시스템이 고장 나서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잠깐 기다리시죠. 그럼 소장님과 연락해보겠습니다.”

시티가드는 포켓을 꺼내 연락을 취하더니 누군가와 한참 동안 말을 주고받았다.

저벅저벅.

“지금 서버에 문제가 생긴 건 방금 소장님과의 통화로 확인했습니다. 그럼 신분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시티가드가 손바닥을 내밀며 사무적인 말투로 신분증을 요구하자 이수현은 홀로그램으로 자신의 신분증을 허공에 띄웠다.

“일반 신분증인데 괜찮죠?”

“헌터 출신이라…… 특이한 이력이군요. 출장 지원을 나오신 해당 기업의 사원증은 없으십니까?”

시티가드가 신분증으론 곤란하다는 얼굴로 서버 관리소의 사원증을 요구하자 이수현은 도리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여기 이미 신분증에 적혀 있잖아요. 신성그룹의 소속이라고. 서버 관리소도 신성 그룹에 속한 곳인데 더 이상의 확인이 필요해요?”

이수현의 기세에 점점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시티가드.

“그래도 출입을 허가하려면 명목상 해당 기업의 사원증이…….”

이수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눈을 가늘게 뜨더니 김은아와 스미레가 앉은 뒷좌석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진짜 빡빡하게 구시네. 야! 너희 사원증 가져왔어?”

“네!? 아, 아뇨!”

유니폼을 입은 스미레는 이수현의 연기에 놀라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김은아는 심플한 스미레의 반응과 달리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엄청나게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나? 아, 아니? 오늘은 놓고 왔네? 원래는 가지고 다니는데 이상하네……. 근데…… 다들 물건 깜박하고 두고 오는…… 그니까, 이런 실수 한 번쯤은 할 때 있지 않나? 내말은 솔직히 전부 들고 다니기도 힘들고…….”

당황한 김은아의 끝나지 않는 중얼거림 속에서 이수현은 들으라는 듯 하아- 하고 짜증 섞인 한숨을 쉬더니 홀로그램 신분증을 픽- 하고 꺼버렸다.

“아 그럼 그냥 돌아가서 가져올게요. 신분증을 보여줬는데도 다시 돌려보낸 거니까~ 시간이 늦어서 서버가 복구할 수 없어도 우리 쪽 책임은 없습니다. 알았죠?”

이수현이 네 마음대로 하라며 다시 핸들을 틀려고 했다. 검문소의 일개 시티가드가 감당하기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상황.

촤악!

“아, 아닙니다! 상황이 급하기도 하고 신분 증명은 충분한 거 같으니 일단 들어가시죠!”

결국 항복한 시티가드가 도로에 뛰어들어 차를 불러 세우자.

“알겠습니다. 일단 그럼 들어가서 서버부터 고쳐볼게요~”

이수현은 기뻐하는 기색조차 없이 당연하다는 듯 모든 상황을 너무나 여유롭게 대처했다.

부우웅-!

연구소의 정문이 열리고 다시 차가 출발을 하자. 꽁꽁 숨겨 두었던 연구실 내부의 건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벨벳이 있는 곳까지 정식으로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성과의 주역은 다름 아닌 김은아의 비서 이수현.

“와……. 나, 진짜 들키는 줄 알았어. 어떻게 연기를 그렇게 능청맞게 해?”

김은아가 혀를 내두르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정말 대단해요! 이게 바로 어른의 기술…….”

손을 모은 스미레가 동경의 눈빛으로 우러러보자.

“에이~ 별거 아니에요. 남들 비위 맞추려면 이 정도 연기는 기본이죠~”

기분이 좋아진 이수현은 아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하하호호- 즐거운 분위기도 잠시.

“누구 비위를 맞추는데?”

예리한 김은아의 질문에.

“어, 으음…… 그, 글쎄요?”

말문이 막힌 이수현은 머쓱한 얼굴로 운전에 열중했다. 아무래도 재벌 집 아가씨의 비위를 맞추려면 이 정도 연기 실력은 필수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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