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6화
이번 벨벳 탈취 사건에서 브레인을 자처하게 된 김은아는 쭉- 가슴을 펴며 파티원의 얼굴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일단 벨벳을 데려오기만 하면 상황은 유리해져.’
왜 헌터 협회는 연구소에 벨벳을 데려간 사실을 세간에 공개하지 않았을까?
‘그건 벨벳이 드래곤이기 전에 인격을 가진 생명체기 때문이지.’
인류의 발전을 위해 헌터나 연구원들이 탑에서 포획하거나 얻은 생물들을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실험을 한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몬스터가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불법적인 감금과 실험은 국제 법에 의거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벨벳을 연구소에 강제적으로 감금한 사실이 밝혀지는 건 협회로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그럼 세간에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거야.’
만약 감금 사실이 밝혀진다면 김은아의 생각처럼 헌터 협회는 대응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럼 당연히 마나 수치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벨벳이 태어난 드래곤 알은 기본적으로 기록상 신유성과 아델라가 얻은 보상으로 분류됐다.
‘마나 수치를 빌미로 벨벳을 연구소에 감금한다는 건. 헌터들이 바보도 아니니까. 또 다른 의문을 자아내겠지.’
시민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아티팩트라면 헌터 협회가 일방적으로 회수하는 게 맞는가?
벨벳을 위험한 생물로만 분류한다면 그럼 헌터 협회는 신유성의 공략 보상을 강제적으로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번 사례를 통해 고위 헌터들의 이탈이 벌어질 건 불 보듯 당연한 일.
‘후우…… 이런 머리 복잡한 일은 오빠한테 맡겨두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생각하면 협회도 기업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김은아는 이런 기업의 이해관계를 정립하는 부분에서 신성그룹의 대표 이사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김윤하의 재능을 백분 흡수한 천재였다.
‘거기다 드래곤이기 전에 벨벳은 인격을 가진 어린아이니까. 이렇게 강제적인 구금은 세간의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거고.’
결국 이런 까다로운 상황 속에서 협회는 이번 사건을 세간에 공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난 상대가 어디가 아픈지 잘 알고 있으니까. 벨벳을 데려오기만 하면 돼. 그다음은 생각이 있으니까.”
호언장담하는 김은아의 자신감에 일행들은 벨벳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한 마음이 되어 김은아를 바라보았다.
차악-!
김은아는 그런 부름에 답하듯 선글라스를 쓰고 진지한 목소리로 작전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명심해! 이번 작전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해낼 수 있는 작전이야! 누구 하나라도 실수를 한다면 작전은 실패야!”
끄덕!
아델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스미레가 네! 라고 외치자. 김은아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모두 준비가 된 거 같네. 좋아, 그럼 작전을 설명할게! 이번 사건의 시작은 투입조야.”
김은아는 화이트보드에 끔찍한 실력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럭저럭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슥- 스스슥-
김은아가 그린 건 수상해 보이는 모자를 꾹 눌러 쓴 아델라와 에이미의 모습.
“투입조의 첫 번째 목적은 들키지 않고 연구소의 지하로 잠입하는 거야.”
김은아는 다시 매직펜을 쥐더니 커다란 건물 밑에 바다가 넘실거리는 그림을 그렸다.
“자, 이것 봐. 벨벳이 있는 연구소는 서버의 데이터베이스를 냉각하기 위해 지하에서 주변의 바닷물을 끌어다 쓰고 있어.”
“설마…… 이상한 그림이 나랑 아델라야?
에이미는 김은아의 그림 실력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김은아는 무시하고 브리핑을 이어갔다.
“아델라는 지하에서 냉각용 물을 끌어다 쓰지 못하게 물을 전부 얼려버려. 이게 바로 이번 벨벳 탈취 사건의 시작이야. 벨벳이 있는 곳까지 당당하게 들어가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야.”
평소보다 무척이나 똑똑해진 김은아의 브리핑에 모두는 짝짝짝- 박수를 쳤다. 비록 필기에 큰 관심은 없지만 확실히 엘리트 교육을 받아온 김은아는 태생적인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다만 연구소의 지하로 진입하기 위해선 아직 문제가 있었다.
“근데 들키면 어떻게 하지? 그런 연구소 시설에는 감시 카메라가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그건 바로 에이미의 말처럼 감시 카메라의 발을 뚫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 시티가드를 처리하는 게 네 역할이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시선을 끌어줘.”
“으엑, 내가!? 거기다 작전이 그게 전부야?”
“넌 임기응변에 강하잖아.”
김은아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에이미의 임기응변을 무척이나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끄덕!
그러나 결심을 다진 아델라는 이미 연구소에 침입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하의 냉각 시스템을 고장 내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죠!?”
아델라가 손까지 들며 열의를 불태우자 김은아는 선글라스를 벗더니 손가락 2개를 펼쳐보았다.
“비서한테 들은 정보에 따르면 연구소에서는 서버 관리를 외주 업체에게 맡기고 있어. 고장이 나면 당연히 그쪽에 연락을 하겠지?”
김은아는 모두에게 자랑하듯 외주 업체의 유니폼을 두 벌이나 펼쳐 보였다.
“그럼 나랑 스미레는 이 옷을 입고 잠입할 거야. 일명 탈취조! 벨벳을 데려오는 게 우리 임무지.”
김은아의 설명에 사쿠라는 흐으음- 소리를 내며 곰곰히 생각을 하더니 결국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럼 진짜 외주 업체는? 서로 같이 도착하면 가짜인 게 들키는 거 아냐?”
사쿠라의 말처럼 연구소의 검문을 통과해서 벨벳의 곁까지 다가가려면 어디까지나 의심을 받지 않아야 했다.
만약 탈취조인 업체와 동시에 도착해 의심을 받는다면 임무는 거기서 실패였다.
“아니. 사쿠라. 직원이 연구소에 도착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우리 역할이니까. 내 말 맞지?”
눈치가 빠른 이시우의 말에 김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쿠라랑 이시우는 미리 외주 업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직원이 출발하기 전에 시간을 지연시켜.”
김은아의 브리핑이 끝나자 스미레는 탄식하듯 감탄을 연발했다.
“알겠다! 그럼 그 직원을 대신해서 저와 은아 씨가 잠입하는 거군요!? 은아 씨! 정말! 대단해요-!”
“뭐, 별거 아냐…….”
애써 말은 그렇게 해도 스미레의 칭찬에 들썩이는 김은아의 입꼬리. 부실에서 필기 점수가 가장 뛰어난 건 스미레였지만 김은아는 다른 방식으로 머리가 좋았다.
그러니 신유성이 부실에 없는 지금 모두가 김은아의 말을 따르는 것도 당연한 이치.
“그럼 시작해볼까?”
스타트를 끊는 김은아의 한마디에 파티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도심과 한참 떨어진 산속.
절벽 아래로 바다가 맞닿은 접경에서 에이미와 아델라는 한참 동안 울창한 숲을 지났다.
철썩-!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요새처럼 설치된 거대한 건물과 산 아래에 만들어진 냉각 건물을 보며 에이미는 탄식을 뱉었다.
“마치 비밀기지 같아……. 왜 은아가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 건지 알 거 같네…….”
감탄하는 에이미와 달리 아델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1, 3, 7…… 카메라는 총 7대. 들키지 않고 지하로 진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연구소의 주위에는 김은아가 말한 대로 감시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시티가드들이 한눈을 팔며 낮잠이라도 자고 있지 않은 이상. 멀쩡하게 침입하는 건 불가능.
툭-
그러나 에이미는 그런 아델라의 걱정을 읽은 듯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했다.
“날 믿어! 내가 해볼게!”
평소와 달리 너무나 믿음직한 에이미의 모습. 아델라는 에이미가 보여주는 묘한 자신감에 힘을 얻었다.
“에이미…….”
“넌 하나만 생각해! 은아랑 스미레를 위해 지하의 물을 전부 얼려버리는 것!”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장기가 있는 법. 에이미는 바닷물을 얼릴 힘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그런 힘을 가진 아델라를 위해 시간을 끌어줄 수 있었다.
“난 걱정하지 마! 남의 주목을 끄는 건~ 나 에이미가 한평생 해온 일이니까!”
* * *
연구소 기지 관리국.
천혜의 요새처럼 주위를 둘러싼 바다와 산악지대 덕분에 이곳을 노리는 빌런들은 아직까지 없었다.
‘오늘도 하루종일 카메라만 쳐다보다 퇴근하겠구만…….’
덕분에 이곳에 근무하는 시티가드들은 일은 편안하지만 업무가 너무나 지루했다.
하아암-
이젠 아예 기다란 하품까지 토해내며 시티가드가 눈을 껌뻑이던 그 순간.
- 쯔아! 여러분 여기가 바로 제가 정보를 입수한 그 소문의 연구소! 어떤가요? 마치 비밀기지 같지 않나요?
시티가드는 정문에서 아예 드론까지 띄우고 방송을 진행 중인 에이미를 보며 그만 의자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뭐, 뭐야! 1번 카메라에 저거! 드론까지 띄우고 저 여자애 지금 뭐하는 거야!”
“그 가온에서 방송한다던 그 애 아냐? 여긴 어떻게…….”
“뭐!? 미친 거 아냐? 방송!?”
시티가드는 다급하게 포켓을 켰다. 아니나 다를까 에이미는 방송으로 5만 명에 육박하는 시청자들에게 연구소의 정문을 소개하고 있었다.
“5, 5만 명!? 뭐해 빨리 당장 가서 방송 끄게 해!”
연구소 건립 최초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 * *
“저도 오기 전까지는 믿기 힘들었는데 역시 시청자 제보가 맞았네요! 정말 건물의 외곽부터 분위기가 엄청나지 않나요?”
[Amy♥: 바다 위에 비밀 연구소? 건축가분이 로봇 만화 좀 봤나 봄 낭만이 있네;;]
[MSI: ㅋㅋㅋㅋㅋ 근데 이거 찍어도 괜찮냐?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님?]
[꼴깍이: 그래도 어그로는 확실 하네 벌써 시청자 6만임]
비밀 연구소의 위치를 무려 6만 명의 시청자에게 생중계 중인 에이미.
“당시이이인-! 지금 뭐하는 거업니까아아아아-!”
“당장 방송 끄세요-!”
결국 감시 카메라를 지켜보던 시티가드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자 에이미는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오옷! 안녕하세요! 혹시 두 분! 잠깐 인터뷰는 괜찮을까요!?”
위이잉-
귀여운 드론이 마이크를 들이밀자 시티가드들은 당혹스러운 상황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인터뷰가 아니라…… 여긴 방송 송출이 금지된 장소입니다!”
“네!? 대체 왜…… 그리고 여긴 연구소 안도 아니라 밖인데요?”
[Amy♥: 에이미 말 잘한다~]
[Airgsa: 내가 법을 좀 잘 아는데 야외는 아마도 괜찮음ㅋ]
[방구석변호사: 미리 고지한 적도 없고 팻말도 없구만 억지 부리네]
“여기 보세요! 시청자분들도 야외는 괜찮다고 하시잖아요!”
오히려 에이미가 채팅창까지 보여주며 당당하게 나와 버리자 시티가드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그러니까, 이 연구소 자체가 비밀리에 설립이 된 것이기 때문에…… 팻말 같은 건…… 설치하지 않았지만…….”
“그럼 제가 방송을 끌 의무는 없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제가 이 먼 곳까지 이유도 없이 온 건 아니에요!”
오히려 에이미는 시티가드 둘을 상대로 강하게 몰아세우더니.
“최근에 리벨리온이 처 들어온 메가폴 타워! 사건! 제가 거기서 얼마나 엄청난 활약을 했는데요? 후우우, 그런 일을 겪었더니…… 다른 곳은 방범 설비가 잘 되어 있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현란한 말솜씨로 시티가드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아니…….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게 절차도 있고 외부적인 위험도 있고…….”
“아 그렇지 그래! 절차! 학생 마음은 알지만 모두 순서란 게 있는 법이니까……. 방송은 좀…….”
당황한 시티가드들이 말을 흐리자 에이미는 고개를 저었고.
“서로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럼 인터뷰해주세요! 그럼 갈게요! 시청자가 벌써 7만 명인데 그냥 끌 순 없죠!”
드론은 여전히 마이크를 들이밀며 정신 사납게 시티가드의 주위를 뱅뱅 돌았다.
- 삐빅~ 인터뷰 해달라 삐빅! 인터뷰 안 해주면 방송 안 끈다~ 삐빅!
7만 명의 시청자를 등에 업은 에이미가 이렇게 나오니 시티가드들의 입장에선 미쳐버릴 노릇.
‘이걸 확 강제로 잡아 던질 수도 없고…….’
시티가드들을 잠깐 서로를 바라보더니 결국 어쩔 수 없이 에이미의 요구에 맞춰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알겠어. 그럼 인터뷰가 몇 분 정도 걸리는데?”
에이미는 아델라를 위해 시간을 끌어주겠다는 미션을 완벽하게 성사시킨 것이다.
“두 분이니까 한 30분?”
물론 에이미가 환한 승리의 미소를 지어도 시티가드들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턱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