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5화
벨벳이 사라진 부실.
‘……벨벳.’
신유성은 굳은 표정으로 방 안의 물건을 만지며 하나둘 벨벳과의 기억들을 되새겨보았다.
[엄마!]
거실에는 벨벳이 알을 깨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던 장소였고.
[넌 내게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아, 아빠…….]
거실은 신유성이 한쪽 무릎을 꿇고 벨벳과 가족이 되기로 맹세했던 장소였다.
저벅-
밤이 되어 조용한 부실에 신유성의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늦은 시각이 되어 모두 숙소로 돌아갔지만 신유성은 다시 부실을 찾은 것이다.
“……오셨군요.”
신유성이 벨벳의 방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힘없이 축 처져있던 오르카가 몸을 일으켰다.
오르카에 빙의한 토이킹은 기껏해야 10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동안 붙어 다니며 정이 들었던 벨벳과 강제로 이별을 시키니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오르카. 그들이 어떻게 벨벳을 데려갔어?”
신유성의 질문에 오르카는 분한 표정을 지었다. 인형의 몸으로 잔뜩 찡그린 얼굴은 오르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녀석들……. 처음에는 작은 주인님도 가기 싫다고 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르카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결국 꽉- 입을 다물었다. 그때의 기억에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신유성은 씁쓸한 얼굴로 빙긋- 웃더니 솜으로 이루어진 오르카의 등을 도닥여주었다.
“괜찮아…….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오르카는 부드러운 신유성의 위로를 얻은 듯 지느러미를 꽉 쥐며 외쳤다.
“아뇨! 말하겠습니다! 제가 본 건 전부!”
오르카는 알고 있었다.
이 부실에서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고 벨벳을 다시 부실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신유성뿐이라는 걸.
“그들은 작은 주인님이 부실에서 버티려고 하자.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모두 곤란하게 될 거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곤란해진다?”
“네. 작은 주인님의 능력이 부실의 사람들을…… 전부,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고……. 그 말에 작은 주인님은 결국 그들을 따라가셨습니다. 제가 말렸지만…….”
오르카가 본 것은 여기서 끝.
벨벳을 지키려 인형의 몸으로 달려들었지만 상대는 헌터였다. 다행인 건 그들은 오르카를 신기한 장난감 정도로 생각한 건지 가볍게 제압해 방안에 던져놓았다.
“벨벳이 보고 싶니?”
신유성이 물음에 오르카는 지느러미로 문밖의 거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작은 주인님은 당연히 여기 있어야 합니다.”
여긴 벨벳이 태어난 곳이자.
모두와 추억을 쌓은 곳이며.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그러니 벨벳이 떠날 수 없는 장소라고.
“작은 주인님 집은…… 여기예요.”
그리고 그 말은 신유성도 동감이었다. 벨벳의 집은 이곳. 파티원들은 이제 벨벳과 떨어진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 맞아 오르카. 벨벳의 집은 여기야. 우린 모두 가족인걸.”
다만 신유성은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벨벳에게 측정한 엄청난 마나 수치에 격리를 결정한 메이린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격리를 허락한 강유찬의 선택에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약속할게. 늦어도 내일. 우린 벨벳을 돌려받을 거야.”
물론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되던 신유성은 벨벳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 * *
연구실의 구석.
벨벳은 뚱- 한 표정으로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건 집에 돌려보내달라는 벨벳 나름의 반항.
“신기하네요. 드래곤의 마나 기관은 인간들과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할까요?”
“지능은 어떻고요? 이렇게 똑똑한 걸 보면 갓 태어났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요.”
그러나 벨벳은 이미 연구실에 있는 과학자들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전 믿습니다. 탑의 기록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꼬마는 드래곤 중에서도 마나는 물론 지능까지 뛰어난 게 확실합니다.”
“인간이 기른 탓일까요? 드래곤이 등장하는 탑의 배경이나 다른 차원에선 저희 쪽 세상이 가장 정보를 습득하기 쉬우니까요.”
“……포켓을 익숙하게 사용한 걸 보면 확실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군요.”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맞대어도 벨벳의 협조가 없다면 연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 꼬마야? 혹시 특별한 능력이라거나…… 경험이라거나? 그렇게 엄청난 마나를 가지게 된 계기 같은 게 있니?”
그러나 벨벳이 연구원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할 리가 없었다.
찌릿-
항상 해맑게 웃기만 하던 벨벳은 연구원에게 날이 선 눈초리를 보냈다.
“벨벳은…… 오르카랑 놀고 싶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멀리 떨어진 연구원들은 벨벳의 말에 풋- 하고 웃었다.
“엄마? 아빠? 아~ 그 가온의 아이들인가요?”
“정이 들긴 했나보네요. 뭐, 이제 한 동안은 연구실에서 있어야겠지만.”
벨벳에게 들리도록 말을 하진 않지만 그들은 빨리 벨벳이 단념하길 바라고 있었다.
이미 격리조치가 취해져 연구실에 갇힌 상황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협회를 좌지우지 할 정도의 권력이 있거나. 리벨리온처럼 협회를 적으로 돌릴 깡이 있지 않은 이상 다시 벨벳을 데려갈 순 없었다.
“돌아간다거나 그런 생각은 슬슬 포기해줬으면 좋겠는데.”
“똑똑한 아이니 곧 알게 되겠죠.”
처음 벨벳에게 말을 걸었던 연구원은 벨벳의 호감을 사려는 듯 굿캅의 역할을 자처했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는 널 돌려 보내줄 생각이란다.
“진짜? 돌려보내죠?”
“연구를 마치고 안정기를 거치고. 음…… 인간 사회에 있어도 네 존재가 안전하다고 판별이 된다면. 우리가 널 여기에 가둬둘 이유가 없지 않겠니?”
연구원은 벨벳을 회유하려는 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미 가족들과 떨어져 기운이 없는 벨벳은 그저 홱- 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벨벳은 위험하지 않아. 벨벳은 천재 드래곤이야. 드래곤은 마나로 실수 안 해.”
“그래. 널 연구소에 데려온 건 너와 우리가 그걸 증명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벨벳도 집을 갈 수 있다는 연구원의 말에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벨벳은 얼른 집에 돌아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델라의 품에 안기고, 스미레와 같이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김은아와 끔찍한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아니 뭘 하든 상관없었다.
가족들의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하든 재밌을 테니까.
꾸욱-
목에 낀 답답한 제어 장치를 만지작거리며 벨벳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캬우으……. 그럼, 얼마나?”
“넌 갓 태어난 드래곤이니. 아마 10년. 빠르면 8년 정도가 지나면 보호관찰을 끝내겠지.”
두둥-
연구원의 말에 벨벳은 그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10년…… 그건 안대……. 벨벳은 엄마 아빠가 없이 하루도 살 수 업써…….”
벨벳은 10년이라는 어마어마하고 끔찍한 현실에 그만 눈에 몽글몽글한 눈물이 맺혔다.
“캬우으…… 엄마 아빠한테 벨벳을 돌려보내죠…….”
연구원은 그런 벨벳의 반응에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연구원 중 한 명에게 이리 오라며 다급한 손짓을 했다.
“빨리 이리 와 봐요!”
“네네. 지금 갑니다.”
결국 성화에 못 이긴 여자 연구원이 옆으로 다가오자. 연구원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벨벳을 달래주었다.
“자 지금부터 이 사람이 엄마. 내가 아빠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지?”
“네!? 제가요!? 전 결혼도 안 했는데요?”
“말이 그렇단 거지. 누가 뭐 입양이라도 하랍니까?”
그러나 벨벳은 티격태격하는 그 둘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벨벳에게는 당신들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고 화를 낼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돌려보내달라며 떼를 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1년 365일.
거기에 10배를 곱한 시간 동안 엄마 아빠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벨벳은 그만.
“벨벳은 혼자 있고 시퍼…….”
온몸의 힘이 빠져버렸다.
* * *
공략을 끝내고 돌아온 일행들.
소파에 앉은 사쿠라는 벨벳의 일을 듣고 분한 듯 인상을 썼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말도 없이 데려가는 건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이건 말도 안 돼. 처음부터 허락한 건 그쪽이었잖아.”
아무리 벨벳이 이시우를 귀찮게 하고 옆에서 시끄럽게 굴어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자신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벨벳을 데려간 헌터 협회의 행태에 이시우는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깍둑- 깍둑-
스미레는 말없이 도마에 얹어둔 양갱을 썰었다. 포켓에서 영상을 본 벨벳이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른 탓에 스미레가 일본에서 주문한 디저트였다.
평소와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은 맛있게 디저트를 먹어줄 벨벳이 없다는 것.
‘……혼자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 떨어져 얼마나 외로울까요?’
결국 오늘만큼은 참지 못한 스미레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자. 그걸 본 에이미는 꾹- 입술을 깨물며 스미레에게 다가왔다.
“스미레……. 울지 마……. 벨벳은 파티장님이! 꼭 데려와주실 거야! 분명 거기서도 엄청 골치일 걸? 벨벳 성격이면 완전 쌩쌩하게 불도 뿜으면서 행패를 부리고 있을 거야!”
스미레는 에이미의 위로에 훌쩍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벨벳이라면 분명……. 씩씩하게…….”
하지만 스미레는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벨벳이 연구소로 격리된 지금 애써 위로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꾸욱-
스미레는 입술을 물고 눈물을 참으며 아델라를 보았다. 아델라는 스미레가 이번 일로 가장 걱정이 되는 파티멤버였다.
덕분에 스미레는 아델라가 당장이라도 헌터 협회로 쳐들어가기라도 할까봐 걱정을 했지만. 의외로 아델라의 반응은 담담했다.
스윽-
아델라는 그저 말없이 벨벳의 물건을 무표정한 얼굴로 만지작거릴 뿐.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함처럼 평소보다도 조용해서 스미레는 그런 아델라가 더욱 걱정됐다.
‘아델라씨…….’
지금 아델라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평소보다 더 무표정한 아델라의 얼굴은 감정이 없는 인형 같아 도저히 기분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괴로우신 거겠죠.’
에이미는 점점 바닥을 향해 치닫는 부실의 분위기를 띄워보려 어떻게든 애를 썼다.
“다, 다들 기다려보자. 파티장님께서 가셨으니까. 분명……
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부실의 분위기.
쿠웅-!
그때 거칠게 문을 열며 방안에 나온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포켓을 쥐며 읊조렸다.
“……찾았다.”
좀처럼 기분을 알기 힘든 무표정한 아델라와 달리 누가 보아도 100% 열이 받아 있는 김은아의 표정.
꽈악-!
김은아가 포켓의 버튼을 부서져라 쥐자 허공에는 정체불명의 지도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김은아는 무엇을 찾아낸 건지 축 처진 아델라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뭐해? 빨리 일어나.”
“……무슨?”
고개를 든 아델라가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자 김은아는 그런 아델라를 보는 게 괴로운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야기가 잘되든 안 되든 벨벳은 되찾겠다며!”
모두가 벨벳을 그리워하고 걱정을 할 때 김은아는 인맥이 넓은 이수현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벨벳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럼 지금 보러 가야지.”
이대로 결과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건 김은아의 성질에 도저히 맞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