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93화 (292/434)

제293화

신유성, 스미레, 김은아.

3명이서 11층부터 시작해 19층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20시간. 혹시 이러다 하루 만에 공략을 끝내는 게 아니냐며 김은아가 들뜬 것이 바로 어제.

“꼬박 하루를 새웠어…….”

탈진해버린 김은아는 산등성이에서 주자 앉아 초췌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라리 보스를 잡고 말지……. 이거 진짜 있긴 한 거야?”

[퀘스트: 비명의 능선에서 환상종 식물 만드라고라를 채취하십시오.]

환상종.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에 이 단어가 붙는다는 건 2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그것이 영약이든 장비를 만들 때 쓰이는 재료이든 엄청난 값을 자랑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게 일생에 한 번 보기가 힘들 정도로 몹시 귀하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하루를 넘게 비명의 능선을 돌아다니며 찾아 다녔지만 아직 만드라고라의 잎사귀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은아 씨…‥ 만드라고라에는 유명한 전승이 있어요.”

짙은 다크서클을 유지한 채 입을 떼는 스미레.

“뭔데?”

김은아가 축 처진 어깨에 힘이 빠진 얼굴로 묻자 스미레는 손가락으로 앙증맞게 사람이 걸어 다니는 흉내를 냈다.

“만드라고라의 또 다른 이름은 맨드레이크……. 사람처럼 생긴 식물이라 밤이 되면 땅에서 걸어 나와 자신이 원하는 지역을 찾아 걸어 다닌다는 전승이에요.”

감히 식물 주제에 다리가 달려있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닌다니. 그냥 다른 식물처럼 얌전히 땅에 파묻혀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설령 만드라고라가 여기 있었다고 치더라도……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겠네?”

“19층이 언제부터 이 퀘스트로 유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악의 경우는……. 네. 비명의 능선에는 이미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런 엄청난 채취 난이도 때문일까. 비명의 능선 중심에는 워프 포탈이 있었다.

포탈만 사용한다면 언제든 1층으로 돌아가 탑을 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건 마치…….’

언제 탑에 오든 언제 나가든 상관없다. 만드라고라만 채취한다면 20층을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탑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고 도발하는 것 같잖아…….’

김은아와 스미레가 강행군에 뻗어버린 순간에도 신유성은 능선을 돌아다니며 만드라고라를 찾느라 좀처럼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산에 익숙한 신유성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3일 안에 찾을 수는 있을까?”

“저어, 사실…… 예전에 트레저 헌터의 책에서 만드라고라를 채취한 일대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트레저 헌터는 던전이나 탑을 돌아다니며 귀한 보물이나 아티팩트는 물론이고 식재료부터 부산물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것을 찾아다니는 헌터를 말했다.

특히 만드라고라 같은 환상종은 트레저 헌터들에게도 몹시 귀한 물건으로 취급을 받아 그에 관한 내용이 자랑스럽게 책으로 정리된 경우가 많았다.

“그 트레저 헌터가 만드라고라 채취에 걸린 시간은…… 딱 한 달이었어요.”

“하, 한 달!?”

놀란 김은아가 벌떡 몸을 일으키자 스미레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도 운이 좋은 경우였어요. 만드라고라가 이미 멀리 떠나버렸다면 찾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리 만드라고라의 채취가 어려워도 20층에 가기 위해서 19층을 클리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19층만 임의로 넘기는 것도 불가능한 만큼 이번 퀘스트는 꼭 넘어서야 하는 통곡의 벽.

“우리 이러다 2학년이 될 때까지 만드라고라만 찾는 거 아냐? 주말이 되면 찾으러 오고, 외출증을 신청해서 또 찾으러 오고…….”

김은아는 그런 생활이라면 설령 그게 휴양지라도 사양이었다. 하지만 여긴 그냥 잡초 따위로 풀 냄새가 가득한 평범한 산이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젠 끔찍하게 느껴지는 풀 냄새를 맡으며 만드라고라를 발견하거나, 발견하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난 그렇게는 못 살아…….”

망연자실한 김은아가 잡초에 누워 힘없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 스미레는 웅크려 앉아 이것저것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래도…… 힘이 닿는 곳까진 찾아봐야죠.”

스미레가 초췌한 얼굴로 잡초를 뽑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만드라고라의 잎은 문어나 카멜레온이 주변 사물의 모습처럼 의태하듯 주위에 있는 식물의 잎 모양을 흉내 냈다.

그게 잡초라면 잡초의 잎사귀로, 꽃이라면 꽃잎으로.

만드라고라는 생존을 위해 잎사귀를 변형시켜 자유자재로 의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뜻은 곧 이 주변 구역의 풀이란 풀은 모두 뽑아봐야 한다는 이야기.

“흐흐……. 손이 초록색으로 물들었어요…….”

하루 종일 풀만 뽑았더니 정신이 나가버린 걸까. 스미레는 잡초를 뽑으며 헤실헤실 웃었다.

스미레는 제초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100여 구가 넘는 해골을 소환해 잡초를 뽑게 만들었지만.

이제 3구도 남지 않았다.

와르르-

방금 막 무너진 해골을 카운트하면 2구. 이미 스미레의 체력은 한계가 오고 있었다.

“……걱정되네요. 벨벳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그러게. 만들어둔 반찬도 3일 정도 먹을 양 아냐? 그 전에 돌아가야 할 거 같은데.”

“그래야죠. 저희를 기다리느라 무척 외로울 거예요.”

웅크린 스미레가 벨벳을 생각하며 걱정을 하자.

“……아니면 여기 데려와서 같이 풀이나 뽑을까.”

대자로 뻗어버린 김은아는 농담이 아닌지 모를 말을 했다. 물론 19층에 오려면 18층을 클리어해야 하니 그건 불가능한 일.

거기다 더더욱 문제는 이 끔찍한 만드라고라 채취는 1개만 찾는다고 끝인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근데 1개 찾기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 파티가 3개니까. 만드라고라를 3개나 찾아야 하네?”

김은아의 말처럼 이번 퀘스트의 최대 인원 제한은 3명.

“19층은 파티 당 인원 제한이 3인이었으니……. 확실히 어떤 식으로 파티를 짜든 3개가 필요하네요.”

3명씩 짝짓더라도 1명이 남으니 나머지 파티가 19층에 도착했을 때 필요한 만드라고라의 개수는 3개였다.

“우리가 트레저 헌터도 아니고 이건 미친 짓이야. 3개를 채취하기 전에 늙어 죽는 게 더 빠를……. 어, 그러고 보니 스미레!”

스미레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일까, 김은아의 머리에 한 줄기 빛이 번뜩였다.

“그 트레저 헌터가 만드라고라를 찾은 건 결국 팔려고 그런 거 아냐?”

“네! 그렇죠! 만드라고라는 무척이나 귀한 약재니까요. 책에 적혀 있진 않았지만 분명 엄청난 거금에…….”

스미레가 잡초를 뽑으며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그 순간 김은아는 이미 포켓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나 좋은 아이디어가 났어.”

비록 김은아는 편린을 얻은 스미레와 학생이라 불리기엔 괴물이 되어버린 신유성의 강함에 19층까지 큰 활약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김은아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만드라고라 3개. 생각보다 금방 찾을지도 몰라.”

오직 파티에서 김은아만 가능한 발상이었다.

*     *      *

지이이잉-

포켓이 손목에서 진동을 울려대자 이수현은 발신자를 확인했다.

[KimSilverA]

“얘, 탑에 오르고 있지 않았나? 뭐…… 연락이 되는 층인가 보네.”

이수현의 생각처럼 19층은 환상종을 찾는 채취형 퀘스트라 그런지 자유롭게 입장이 되는 층이었다. 덕분에 포켓을 통한 연락도 자유자재.

띠릭-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이수현이 홀로그램을 통해 살갑게 영상통화를 받자. 김은아는 초췌해진 얼굴로 입을 뗐다.

- 나, 물건 좀 준비해줘.

“물건이라면……. 탑의 공략에 필요한 헌터 용품이신가요?”

- 응. 비슷해.

“네! 뭐든 말씀해주세요. 제가 바로 준비해보겠습니다.”

대체 뭐가 필요하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부탁을 하던 김은아는 검지로 볼을 긁적이더니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 만드라고라 3개.

싱글싱글.

계속 상냥하게 웃고 있던 이수현은 김은아의 무리한 부탁에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입꼬리가 삐죽 움직였다.

“만, 드라고라…… 그것도 3개요? 제가 아는…… 환상종 식물 만드라고라 맞죠?”

차마 믿기 힘든 부탁에 이수현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을 때 저 너머에서 놀란 스미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흐에에엑!? 은아 씨 만드라고라를 구매하시게요?

- 여기서 늙어 죽기 싫으면 이 방법뿐이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머리까지 헝클어진 김은아의 외침에 이수현은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도, 돈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환상종 식물을 3개나…….”

하지만 이수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성그룹의 공주인 김은아가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는데 어디 금액이 문제겠는가?

어차피 여긴 썩어 넘치는 게 돈.

신성그룹의 회장인 김석한이 알게 된다면 김은아를 위해 세상의 모든 만드라고라를 구매해 만드라고라 밭을 만들어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가씨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     *      *

겨우 연락을 한 지 2시간.

단 2시간 만에 김은아는 이수현의 호출을 받고 탑의 1층에 다녀왔다.

“너희~ 이게 뭔지 알아?”

1층을 다녀온 김은아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보석함처럼 생긴 화려한 함.

“은아야, 이건?”

흙투성이가 된 신유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대강 상황을 아는 스미레는 함을 보며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으, 은아 씨 설마 그거…….”

김은아는 훗- 하고 뿌듯하게 웃더니 준비해둔 귀마개를 끼며 스미레와 신유성에게 경고했다.

“다들 귀 막아.”

곧이어 탁- 김은아가 함을 열자.

그곳엔 주먹만 하지만 얼추 인간 형태를 한 한 3개의 식물이 문자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우, 우와 이게…….”

“만드라고라!”

놀란 스미레와 신유성이 감탄을 하자.

꿈뻑.

시끄러운 소리 탓인지 햇빛이 닿은 탓인지 만드라고라들은 갑자기 잠에서 깼다.

“아, 아, 주아아아아아악-!

“가아아아악!”

“도아아아악!”

그리곤 듣는 이의 귀청이 떨어져라 괴상한 비명을 지르는 만드라고라들. 그러나 김은아를 비롯한 파티원들은 이미 귀마개나 손가락을 통해 비명에 대한 방비를 마친 상태였다.

“자 그럼. 이 만드라고라를 땅에다 묻고…….”

김은아는 제자리에서 비명의 능선의 가장자리에 흙을 파고 만드라고라를 파묻었다.

그리곤 곧바로 만드라고라를 하나 뽑아 들었다.

파악-!

이건 누가 봐도 정상적인 공략 방법은 아니었지만.

[비명의 능선에서 환상종 만드라고라를 채취하여 탑의 19층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탑의 축복이 따르기를.]

탑은 근력이나 실력이 아닌 경제력도 인정해주는 모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