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화
첫 시작은 푸른빛.
그다음 이어진 건 붉은빛.
그러나 끝을 맺게 된 건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밝은 황금빛.
사아아-
벨벳이 마나를 불어넣자.
평범한 돌덩이는 마치 생명을 가지게 된 듯 환한 빛을 발산했다.
“캬항~! 역시 벨벳은 반짝이는 돌이 조아!”
아무래도 벨벳이 이번에 만든 마나석들은 판매 목적이 아닌 수집의 목적인 모양이었다.
환한 빛을 내뿜으며 벨벳의 방에 아름답게 전시된 다양한 마나석들의 모습에.
“다 팔아버렸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모아두니 장관이군요!”
오르카는 지느러미를 치켜들며 감탄했다. 물론 오르카가 감탄한 이유는 마나석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은 주인님. 마나석을 만드는 요령이 생기신 모양입니다? 예전보다 하루에 만드실 수 있는 마나석의 양이 2배는 많아지셨습니다.”
점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벨벳의 마나. 거기다 설령 현역 헌터라도 이 정도로 엄청난 마나를 무리하게 사용하면 몸져눕는 게 대부분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벨벳은 아무리 마나를 사용해도 후유증이 없었다. 오히려 다음날이 되면 쌩쌩하게 회복이 되었다. 벨벳의 비정상적인 강대한 마나는 계속해서 회복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캬항! 벨벳은 꿈이 이써-!”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알아챈 걸까? 벨벳은 반짝거리는 마나석을 땅바닥에서 굴리며 그에 맞춰 고개를 갸웃갸웃 움직였다.
“이 반짝이는 돌이 집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아지면~ 벨벳은 아빠랑 엄마랑 쭉 있고 싶어!”
“확실히! 그렇게나 돌이…… 아니 돈이 많으면! 일을 안 해도 될지도 모르겠군요!”
“마자! 책에서 읽어써! 부자는 일 안해도 대! 벨벳의 꿈은 부자야!”
사실 신유성의 파티는 이미 벨벳이 상상도 못 할 금액의 단위를 지원받고 있었다.
거기다 바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신성그룹의 후계자 김은아의 재산을 생각한다면 벨벳의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어 보였다.
다만.
“캬하항~ 아빠랑 엄마는 벨벳이랑만 쭉 있으면 좋게써!”
하루종일 같이 있어도.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같이 있고 싶을 만큼 벨벳은 신유성과 파티원들을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알에서 태어난 벨벳에게 이 좁은 부실은 세계였고 신유성과 아델라를 비롯한 파티원들은 가족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실 겁니다요. 마님이랑 주인님들도 곧 돌아오실 거고요!”
딩동-
설마 간절한 벨벳의 바람이 닿았던 걸까? 누군가 벨을 울리자.
“헉.”
놀란 벨벳은 도도도- 거실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앗.”
“캬항…….”
하지만 벨벳의 기대와 달리 인터폰의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건 학원 도시의 지부장 메이린이었다.
-정기 검사를 위해 헌터 협회에서 왔습니다. 미안하지만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그러나 구면이라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문을 열어준다는 건 벨벳에게 꽤 큰 결정.
“캬흥, 열어줘야 할까? 나쁜 사람이면 어떠케 해?”
벨벳은 인터폰을 앞에 두고 급하게 오르카와 회의를 진행했다.
“확실히 전에도 본 적 있는 얼굴이긴 한데……. 나쁜 사람이라는 가정은 배제할 수 없죠. 여긴 값이 비싼 물건이 많으니까요!”
“마자…… 벨벳 방에는 돌이 벌써 10개도 넘어!”
“어른이 없는 사이에 훔쳐 갈 수도 있어요!”
“호엑!”
인터폰 너머로 둘의 회의를 지켜보던 메이린은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 저기 모두 들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니니 부디 문을…….
메이린의 간절한 부탁이 벨벳에게 통한 걸까?
끄덕끄덕.
벨벳은 좌우로 꼬리를 흔들더니 엄격한 얼굴로 고개도 끄덕였다.
“캬흠…… 확실히 나쁜 사람의 마나는 아니야! 그런 나쁜 사람의 마나는 따끔따끔이야!”
엄격한 검사 끝에 문을 열어주는 벨벳. 메이린은 그제야 부실을 둘러보았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
서재에 널브러진 장난감과 책.
정체불명의 마나석.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도 있었지만 벨벳이 자라고 있는 육아환경은 스미레의 손길이 닿은 탓에 관리가 잘 되어 훌륭했다.
“탑에 올라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역시 휑하군요. 혹여 외롭진 않은가요?”
그래도 혹시 몰라 묻는 메이린의 질문에 벨벳은 걱정하지 말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엄마 아빠가 떠나도 벨벳에겐 오르카가 이써, 심심하면 책을 읽거나 반짝이는 돌을 만들면 대.”
반짝이는 돌?
그리고 그걸 직접 만든다?
좀처럼 믿기 힘든 벨벳의 말에 메이린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그럼 여기 있는 이 마나석이 전부…….”
표정에서 보이는 뿌듯함.
벨벳은 너무나 자랑스럽게 허리에 손을 얹어 포즈를 취했다.
“맞아! 전부 벨벳이 만든 거야!”
부실에서 돌아다니는 수십 개의 마나석은 전부 벨벳이 만든 물품이었다. 심지어 마나석은 조잡하게 만들어진 게 아닌, 순도 높은 마나가 농축되어 담겨 있었다.
“그럼…… 저 반짝이는 돌을 만드는 과정을 저에게도 보여줄 수 있나요?”
어느새 벨벳의 충실한 심복이 된 오르카는 메이린의 부탁에 지느러미를 격하게 흔들었다.
“그건 안 됩니다! 작은 주인님께선 이제 막 쉬시려고…….”
하지만.
“쉿-”
벨벳은 검지 하나로 상황을 일축했다. 마치 이 모든 일들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자신의 능력을 검증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평범한 돌을 주워 왔다.
“벨벳은 아직 할 수 있어.”
그리곤 이내 아까 보여주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헌터들이 사용하는 푸른빛의 마나가 돌을 휘감았다.
사아악-!
벨벳의 마나가 푸른 물방울처럼 돌을 휘감자. 메이린은 그만 숨을 턱- 하고 멈추고 말았다.
‘……이건.’
[마나 코팅]
흔히 헌터 용품인 마나 배리어나 실드에 사용되는 기술로 사물에서 마나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반대 성질의 마나를 압축하여 얇게 도포하는 공정을 말했다.
‘그 공정을…… 기계도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해낸다고?’
물론 놀라는 건 아직 일렀다.
벨벳은 단순히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마나석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하나하나가 예술에 가까웠다.
위이잉-!
벨벳은 푸른빛의 마나를 물결처럼 일으키며 돌과 공명시켰다. 자연물이 가진 고유한 값에 마나의 파장을 맞춘 것이다.
그건 마치 숙련된 소프라노가 목소리로 유리잔을 깨트리는 일과 같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소리의 파장 대신 마나의 파장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공명시켜야 한다는 것.
지이이잉-!
붉은빛과 황금빛이 뒤엉키며 공명을 시작하자 인간의 범주를 한참이나 넘어선 마나가 벨벳의 손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왜애애앵-!
가열된 용광로처럼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돌이 마나와 공명했다.
아니, 이미 벨벳의 손에 쥐어진 건 평범한 돌이 아니라 최상급의 마나석이었다.
“얍-!”
거기다 더욱 메이린을 놀라게 만든 건 이 모든 과정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해내는 벨벳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