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90화 (289/434)

제290화

[수수께끼: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엔 두 개 저녁에는 세 개가 되는 것은?]

[퀘스트: 수수께끼의 정답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사냥하시오.]

[정보: 정답이 아닌 몬스터를 사냥할 시 수수께끼가 더욱 어렵게 갱신됩니다.]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수수께끼의 내용에 사쿠라는 아아앗! 하고 감탄을 했다.

“이거! 정답 인간 아냐?”

이시우는 순수한 사쿠라의 정답에 풋- 하고 웃어버렸다.

“아니. 정답은 그림자 거미야. 몇몇 헌터들은 아홉 발 거미라고도 부르지.”

“흐응, 그렇구나. 그림자 거미?”

“그림자 거미는 자신이 가진 8개의 발 중, 시간에 따라 각각 다른 발을 써.”

이시우는 예시를 들기 위해 하늘을 가리켰다.

“태양의 고도가 높아 그림자가 잘 생기지 않는 오전에는 4개의 몸에서 가장 긴 다리를 써. 몸체를 부풀려서 사냥감을 압박하지만 실제로 사냥을 나서진 않아.”

“알겠다. 가장 약한 상태구나?”

“그렇지. 그림자 거미는 자신의 그림자 길이에 따라 강해지니까. 태양의 고도가 높은 오전은 가장 약한 상태야.”

사전에 공부라도 했던 걸까?

이시우가 줄줄 아무렇지도 않게 어려운 내용들에 대해 읊자 사쿠라는 감탄을 하며 물었다.

“그럼! 점심은?”

“6개의 다리를 펼치지만 그중에서 움직일 때는 짧은 2개의 발만 사용해. 그럼 딱 그림자가 생기기 좋은 높이가 되거든. 그리고……. 저녁에는 두 개를 더 펼쳐서 8개로 만들지.”

대부분의 거미는 발이 8개.

그리고 그건 그림자 거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홉 발 거미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름부터 스포일러를 내포하고 있었다.

“으음? 그렇지만 그럼 발이 9개가 아니잖아. 하나가 모자란데?”

사쿠라가 이렇게 묻는 것도 당연한 일. 이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발 하나는 그저 비유일 뿐이야. 발처럼 생겼어도 사실 그건 그림자 거미의 특수한 독침이거든. 상대가 아닌, 상대의 그림자를 찌르는 독침이지.”

이시우가 모든 설명을 끝내자 탑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퀘스트의 내용을 갱신시켰다.

[퀘스트: 그림자 거미를 사냥하시오.]

[정보: 그림자 거미가 아닌 몬스터를 사냥할 시 수수께끼가 더욱 어렵게 갱신됩니다.]

[정보2: 밤이 되면 그림자 거미의 마지막 독침이 개방됩니다.]

“시우야! 정답이었어!”

“이 정도는 기본…….”

와락!

이젠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더욱 적극적으로 변한 사쿠라의 스킨십.

“역시 내 남편~ 정말 똑똑해~ 똑똑해~”

갑자기 껴안은 사쿠라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이 취급을 하자. 얼굴이 붉어진 이시우는 윽- 하고 시선을 피했다.

“됐고…… 빨리 그림자 거미나 잡으러 가자. 밤이 되면 골치 아파지니까.”

*     *      *

신유성.

스미레.

김은아.

[수수께끼: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엔 두 개 저녁에는 세 개가 되는 것은?]

[퀘스트: 수수께끼의 정답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사냥하시오.]

[정보: 정답이 아닌 몬스터를 사냥할 시 수수께끼가 더욱 어렵게 갱신됩니다.]

“그림자 거미인가.”

“그림자 거미네요.”

“아, 그림자 거미야?”

동굴 앞에서 홀로그램을 본 일행은 김은아를 제외하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금방 퀘스트의 내용이 갱신이 된 것도 당연한 이야기. 신유성은 담담하게 나무 작대기를 하나 가져와 바닥에 세웠다.

“태양의 위치를 보아. 그림자 거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간은 아니야. 우리 쪽에서 찾으러 가야겠어.”

그림자 거미는 3급 보스지만.

밤이 되면 4급 보스에 버금가는 위험도를 가지고 있었다. 본체가 아닌 그림자를 노리는 거미의 공격은 오직 그림자 거미에게만 유리한 전투 방식이었다.

‘그러니 첫 번째 목표는 서식지를 찾는 건데.’

신유성은 몸을 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평범한 산지가 아닌 열대지역에 가까운 장소 같았다.

“주변에 늪지가 많은 걸 보니 멀리 떨어진 장소는 아닐 거 같아.”

“그럼 저도 언데드부터 풀어야겠네요!”

자신은 배운 적도 없는 내용을 술술 뱉어내는 신유성과 스미레를 보며 김은아는 벙찐 얼굴로 둘에게 물었다.

“이, 이거…… 학교에서 가르쳐준 내용 맞아?”

스미레처럼 이론에 빠삭한 건 아니었지만 김은아는 ‘그래도 내가 기본은 하지!’ 라는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다.

“아 나는 전에도 그림자 거미를 사냥한 적이 있거든.”

“도, 도감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저어, 혼자 사전을 보는 게 취미였으니까…….”

하지만 실전에서 그림자 거미를 찢어 죽인 신유성과 친구도 없이 하루종일 반에서 책만 보던 스미레의 지식을 따라갈 순 없는 법.

“흐음…….”

그렇다고 기껏해야 3급 보스에 불과한 그림자 거미를 잡는데 파티원의 전투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이거…….’

아무래도 이 파티는 3명이 모이면서 정보력도 전투력도 심하게 과잉된 모양이었다.

*     *      *

미지의 공간인 탑은.

각자의 목적으로 탑을 오르는 헌터들에게 상상도 못 할 시련을 내려준다고들 한다.

그러나 겨우 11층에 불과한 지금. 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시련을 내려주다니?

[수수께끼: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엔 두 개 저녁에는 세 개가 되는 것은?]

“마, 말도 안 돼! 이거 정답 인간 아냐아아-!?”

기겁을 한 에이미가 눈을 크게 뜨고 소리치자.

“인간이라…….”

아델라는 무표정한 눈으로 에이미를 흘겼다.

“흐걱, 뭐야…….”

주춤, 주춤-

에이미가 뒤로 물러나자 아델라는 같은 보폭으로 다가갔다.

“설마 아델라 나를…….”

만약 정답대로 인간을 사냥해야한다면 아델라에겐 이미 사냥감이 가까이 있는 게 아닐까?

“……에이미.”

자그마한 동굴에 아델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청아하고 맑은 아델라의 목소리는 평소에 신비감을 자아냈지만 오늘은 그 신비감이 끝없는 공포로 작동했다.

지금 아델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

“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 야다다닷!”

무슨 상상을 한 건지 겁에 질린 에이미가 도망치자 다급하게 아델라는 손을 뻗었다.

“머리에 거미줄이…….”

그러나 전력으로 도망치는 에이미를 잡는 건 역부족. 보기보다 재빠르게 동굴 입구로 도망을 가던 에이미는 갑자기 멈춰 섰다.

껌벅- 껌벅-

동굴 입구 근처에는 믿을 수 없이 거대한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에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갸악…… 어떻게 클리어하라고 시작 장소를 이렇게 준 거야?”

거미를 죽이지 않으면 동굴 안에서 나갈 수조차 없이 만든 것이다.

[히든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퀘스트: 각시 인면지주를 사냥하시오.]

츠즈즈즉-!

인면지주는 보라색 실을 뿜어 에이미를 노렸다. 거미 중의 왕이라고 불리는 인면지주는 몸 안에 품고 있는 독성이 워낙 강해 뿜어내는 거미줄조차 독성이 가득했다.

촤악-!

그러나 땅에서 송곳처럼 솟구친 얼음들은 거미줄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에이미. 제 뒤로 오십시오.”

어미 새가 아기 새를 보호하듯 아델라가 손을 뻗어 지켜주자.

“아델라…….”

동그랗게 눈을 뜬 에이미는 아델라를 올려보았다. 생각해보면 비록 대련장에서는 순식간에 얼음 아이스크림이 되어버렸지만. 지금의 아델라는 든든한 파티원이자 한 팀이었다.

이 험하고 험한 미지의 땅에서 파티원을 믿지 못한다면 과연 누굴 믿을까?

두두두두두-

인면지주는 8개의 다리로 매섭게 전진해오더니 입에서 독액을 토해냈다.

“크으웨엑-!”

치이익-

마치 뜨겁게 달군 쇠구슬을 얼음에 놓은 것처럼 독은 아델라의 얼음을 녹여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몰아쳐라.”

인면지루를 향해 손을 뻗으며.

“겨울의 눈.”

아델라가 작게 읊조리자.

화아아악-!

주변이 콱 막혀있던 동굴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새하얀 눈밭으로 변해 있었다. 눈밭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태양도 달도 뜨지 않았으며 이곳이 현실인지 아닌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촤아아아-

이건 아델라가 마나로 구현해낸 축소판 세계. 부모님을 찾아 혹한의 추위를 버티며 볼테라를 떠돌던 어린 시절의 심상을 구현해낸 세계.

“키에에엑-”

추위에 취약한 열대의 거미 인면지주에게는 지옥 그 자체의 공간이었다.

“치이익!”

참다 못한 인면지주는 결국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아델라에게 달려들었지만 거미의 긴 다리는 눈밭에서 너무나 불리했다.

푹푹-

다리가 눈을 파고드는 탓에 너무나 느릿한 속도로 달려오는 인면지주에게 아델라는 다시 조용히 읊조렸다.

“꿰뚫어라.”

쐐애액!

아델라의 말과 함께 인면지주의 다리를 노리고 각자 쇄도하는 8개의 얼음창.

파바바박!

“키에에엑-!”

다리가 꿰뚫린 인면지주가 괴성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자 아델라는 자신도 모르게 옅은 인상을 썼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감정이라는 게 불필요한 게 아닐까? 자신과 파티원을 삼키려 드는 몬스터의 아픔에 공감해서야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것뿐.’

아델라가 치켜든 검지와 함께.

기다란 얼음창은 자비롭게 인면지주를 꿰뚫었다.

파악!

독인지, 피인지 모를 보라색 체액이 사방에 흩뿌려지고 상황을 모두 끝낸 아델라는 에이미에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에이미?”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부부터 걱정하는 아델라를 보며 에이미는 그제야 알게 됐다.

‘아델라…….’

아델라는 바뀐 게 아니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냉혹했던 얼음의 여왕은 원래부터 한없이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어어-! 널 오해하다니!”

그저 자신마저도 그 따뜻한 마음 모르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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