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화
아우로라(Aurora)
마녀 모르간이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아낀 목걸이.
“이 목걸이 말이야.”
아우로라를 쥔 신하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혁에게 물었다.
“내가 얻게 될 확률이 과연 몇 분의 1이었을까?”
이혁은 신하윤의 이야기에 나름의 계산을 해보았다.
아우로라는 7급 보스인 모르간의 물품으로 워낙 고위급 아티팩트이기 때문에 탑의 기록에 정보가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정말 다른 ‘차원’을 넘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그 물건을 얻을 수 있는가? 에 관한 건 순전히 운이었다.
던전에서 보스를 처치하더라도.
탑을 공략하더라도.
그 보상으로 어떤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는가에 관한 건 순전히 운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탑 안에 얼마나 많은 차원이 구현되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보스가 존재하는지, 얼마나 많은 아티팩트가 드랍되는지까지 알아야 정확히 계산이 가능하겠지. 물론 탑의 기록에 수록된 정보만 봐도……. 정말 까마득한 확률이지.”
영롱한 목걸이가 오로라처럼 아름다운 오색의 빛을 뿜어내자 신하윤은 그 빛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물건이 알아서 내 손안에 들어왔어. 후훗, 이런 걸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글쎄?”
“운명.”
이혁은 신하윤의 말에 동감했다.
신하윤이 계획한 모든 일들은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들어가듯 절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툭.
신하윤이 테이블 위에 붉은 보석을 놓았다.
[해왕의 저주]
평범한 보석처럼 보이지만 가운데 새겨진 파충류의 눈 같은 무늬는 어쩐지 오싹하게 느껴졌다.
“그럼 해왕의 저주가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에 대해선 읽은 적 있지?”
신하윤은 질문을 좋아했다.
그게 타고난 버릇인지는 모르지는 마치 자신과 같이 있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묻는 것 같아서 이혁은 답변을 모를 때면 은근히 초조한 마음이 들곤 했다.
“말 그대로 영원한 저주지. 단 한 번이지만 어떤 이상 현상도 영구적으로 지속되게 만들어주잖아.”
“맞아. 해왕의 저주로 만들어낸 이상 현상을 해제하려면 최소한 같은 급의 아티팩트는 있어야 하지.”
툭.
[아우로라]
마녀 모르간의 목걸이.
이번에도 고대급 아티팩트에 해당하는 보물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신하윤은 다시 물었다.
“해왕의 저주가 영원히 타오르도록 만드는 연료라면. 아우로라는 불씨야. 마녀 모르간이 사용하던 몽환의 힘을 더욱 강대하게 발휘하도록 만들어주지. 그럼 난 이걸 이용해서 뭘 하려고 하는 걸까?”
정답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말을 아끼는 게 좋다고 생각한 건지. 이혁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 너무 이른 질문이었나? 아직 재료가 하나 부족하니까.”
즐겁게 미소를 짓는 신하윤을 보며 이혁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뭘 하는지만큼 중요한 건. 그걸 ‘왜’ 하는지 아니겠어?”
신하윤은 왜 이런 목표를 가지게 되었을까? 왜 그 목표에 이렇게까지 집착하게 되었을까? 이혁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다.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그걸 설명하는 건 신하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답지 않게 한참을 고민하던 신하윤은 너무나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너, 죽어 봤어?”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어 보았냐니.
세상에 이렇게 어이없는 질문이 있을까?
“아니……. 하윤이 네 앞에 이렇게 살아 있잖아.”
“그럼 이해 못 해. 내가 원하는 건 영원이거든.”
툭-
신하윤은 이혁의 턱을 잡더니 이내 검지로 턱선을 타고 내려와 목을 쓸어내렸다.
사아악-
점점 내려간 검지는 신하윤의 검지는 이혁의 왼쪽 가슴 위.
심장에 닿았다.
“알고 있어? 난 이혁 네가 참 마음에 들어. 넌 참 똑똑하거든. 절대로 네 주제를 넘지 않고. 내 심기를 거스르지도 않지.”
이건 칭찬일까. 비난일까.
“이 세상에선 그 어떤 생물도 영원을 탐할 순 없어. 그러니까 내가 바꿔주겠다는 거야. 영원한 세상으로. 그리고 나는…… 그 영원한 세상의 지배자가 되는 거지.”
이혁이 점점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에 자신도 모르게 윽- 하고 숨을 참자. 이야기를 끝낸 신하윤은 경멸을 담아 웃었다.
“이런 점은…… 참 어리석네? 왜 하필 나야?”
그 어떤 질문에도 최선을 다해 대답을 하던 이혁은.
“그건 나도 모르겠어.”
이번만큼은 신하윤의 질문에 답변을 포기했다.
* * *
야생에서 살다 보면 가장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 무엇일까?
신유성의 방안을 본 스미레는 그 해답을 알고 있었다.
‘유성 씨……. 정말 청소에 익숙하지 않으시구나.’
사용한 물건은 꼭 제자리에 두는 신유성의 성격상 겉으로 보기에는 방이 정돈되어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먼지를 털거나 청소기를 사용한 흔적 같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어쩐지 동생들이 생각나네요.’
생각해보면 스미레의 남동생인 스이토와 스고로의 방이 딱 이랬다. 딱히 어질러둔 건 아니지만 딱히 청소를 하지도 않는 평범한 남학생의 방.
뒹굴-
정작 방주인인 신유성은 침대에 누워 포켓을 보고 있었고, 스미레는 먼지를 대비해 마스크를 쓰고 앞치마를 조여 입으며 집안일이라는 전쟁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냉장고 현재 온도 섭씨 4도]
일단 청소를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한 건 전장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 스미레는 보급이 중단된 물자들을 채우기 위해 구석구석 방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와……. 그 사이 반찬을 전부 드셨구나.’
스미레는 한 번 신유성의 기숙사를 찾으면 냉장고가 가득 찰 정도로 반찬을 만들어놓고 갔다. 그건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데다 혼자 사는 신유성을 위한 스미레 나름의 배려이자 봉사였다.
‘이렇게까지 제 요리를 좋아해 주시다니.’
그런데 이렇게까지 잘 챙겨 먹어주는 모습을 보니 만드는 보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도 유성 씨가 좋아하시는 고기반찬이랑 야채절임이랑 계란말이를 만들어두고…….’
요리 메뉴를 정했으니 이제는 다른 집안일을 살펴볼 시간. 바구니에 담긴 신유성의 빨랫감과 책상 위의 먼지를 확인한 스미레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쪽도 엄청 쌓여 있네요.’
스미레는 얼마나 집안일에 통달한 건지 순식간에 순서를 정해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촤아악!
첫 시작은 커튼을 걷고 베란다에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일.
‘다른 일을 마치고 바로 빨래를 널려면 지금 세탁기를 미리 돌려두어야겠죠.’
그다음 스미레가 찾은 건 세탁기였다. 청소와 요리가 끝났을 때 바로 빨래를 널 수 있도록 스미레는 익숙하게 시간을 맞춰두었다.
‘청소는 순서가 중요해.’
예를 들면 청소기를 돌리는 타이밍은 언제가 좋을까? 최종 단계인 걸레질보단 빨라야 하고, 두 번 청소하고 싶지 않다면 가구의 먼지를 터는 것보단 느려야 했다.
탁탁-
앞치마를 입은 스미레는 키가 닿는 곳을 위주로 빠르게 먼지털이를 사용했다. 그야말로 현역도 울고 갈 프로의 솜씨.
‘키, 키가…… 닿지 않아.’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팔을 높이 들어 올려도 냉장고 위에는 좀처럼 손이 닿지 않았다.
“거긴 내가 할게 스미레.”
결국 보다 못한 신유성이 일어나려고 하자. 스미레는 절레절레 양팔을 저었다.
“아, 앗! 안 돼요! 마스크도 없이 먼지를 마시면 엄청 몸에 나쁘니까요!”
“그, 그래도…….”
“그리고 유성 씨는 파티의 계획을 고민하시느라 무척 피곤하시잖아요. 내일 발표를 위해서라도 푹 쉬시는 게 좋아요!”
어디서 힘이 솟은 건지 극구 거절하며 도로 신유성을 침대로 돌려보내는 스미레.
‘제가 먼지를 자주 청소하지 않으면 결국 그 먼지를 유성 씨가 마시게 되는 거예요!’
스으윽-
힘들어도 의자의 도움까지 받아 높은 곳의 먼지를 모두 털어낸 스미레는 기쁜 얼굴로 땀을 닦았다.
‘자 다음은 청소기네요!’
하지만 응당히 있어야 할 곳에 청소기가 없었다. 스미레는 청소기를 항상 제자리에 두었고, 신유성이 청소기를 돌린 적이 없으니 갑자기 청소기가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미스터리.
“어, 어라 분명 여기…….”
당황한 스미레가 두리번거리며 청소기를 찾자. 신유성은 뒤늦게 떠오른 듯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아, 스미레. 청소기라면 레니아가 빌려 갔어.”
“헉……. 금방 가져올게요!”
그러나 부랴부랴 달려간 레니아의 기숙사에는 믿을 수 없는 명패가 걸려있었다.
[외박 중!]
결국 다시 세븐 넘버 기숙사까지 돌아가 자신의 방에서 끙끙거리며 청소기를 가져온 스미레.
‘무, 무거워요오…‥.’
정말 청소는 전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물론 괴로움도 잠시 걸레질까지 모두 끝낸 스미레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이제 빨래만 널면…….”
이건 가장 쉬운 일이었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스미레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동생들의 옷이나 속옷은 상관없지만 신유성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건 언제 해도 부끄럽네요…….’
스미레는 괜히 묘하게 부끄러워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움마저 모두 이겨내고 집안일이라는 전쟁을 마쳤을 때, 스미레는 개운하게 팔다리를 쭉 펼치며 이렇게 외칠 수 있었다.
“청소- 끝!”
싱글싱글-
스미레는 기쁘게 웃더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침대에 누운 신유성의 옆으로 다가왔다.
“유성 씨! 오늘 드시고 싶은 메뉴가 있으신가요? 아니면 반찬으로라도!”
“음, 난 닭튀김?”
역시 이번에도 신유성의 선택은 스미레의 시그니처 요리 중 하나인 카라아게.
“아, 좋죠! 마침, 재료도 충분히 사 왔으니까 제가 잔뜩 만들어 드릴게요!”
청소를 끝냈다는 만족감과 요리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스미레가 여러모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1인분을 추가시켰다.
“아, 그리고 지금 은아가 온다니까. 은아 것도 부탁해.”
“갑자기 은아 씨가요?”
갑자기 저택에서 귀찮음을 감수하고 기숙사까지 오겠다니 자신의 요리가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걸까.
스미레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신유성은 포켓을 내밀었다.
“응. 한번 볼래?”
궁금해하는 스미레를 위해 기꺼이 메시지 기록을 보여준 것이다.
[KimSilverA: 뭐해?]
[신유성: 스미레랑 있어.]
[KimSilverA: 단둘이?]
[신유성: 응]
[KimSilverA: ㅋ]
[KimSilverA: ㄱㄷ 지금 감]
[KimSilverA: 딱 기다리셈]
어쩐지 뒷덜미가 오싹해지는 김은아의 메시지에 하루종일 고생을 한 죄밖에 없는 가엾은 스미레는 꼴깍 침을 삼켰다.
“이, 이거 뭔가……. 화나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