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화
병원의 텅빈 천장을 바라보며 이성환은 생각했다.
‘……이것 참.’
아무리 국가의 치안을 상징하는 메가폴 타워로 빌런이 쳐들어오는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네임리스가 주도하는 리벨리온은 그런 단체였다. 이성환은 그들의 뒤가 없는 행동에 놀란 게 아니었다.
정말로 이성환을 놀라게 만든 건 오히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존재였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시우가 헌터를 한다고 했을 때 이성환은 그 선택을 치기 어린 반항이라고 생각했다.
이시우는 이성환이 어린 시절부터 길러낸 최고의 무기. 헌터보다 시티가드에 어울리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자질을 꽃피울 수 있는 건 언제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사쿠라의 도장을 이용해 협박을 해서라도 자신의 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틀린 걸지도 모르겠군.’
메가폴 타워에서 보여준 이시우의 모습에 이성환은 지금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시우는 6급 중에서도 손꼽히는 헌터인 클로를 상대로 자신을 구해냈다. 그런 강력한 적을 상대로 목숨을 거는 도박을 하다니. 정말 이성환의 교육이 우선이었다면 그건 이시우가 절대 내리지 못했어야 하는 판단이었다.
정말 자신이 옳을까?
이성환이 좀처럼 확신을 내리지 못하던 그 순간 커튼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쿠라…… 너도 환자인데 누워있지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목소리의 주인인 이시우.
거기다 커튼 너머로 비치는 실루엣을 보니 이시우의 침대 옆에는 한 명이 더 있었다.
“……당연히 너보다 일찍 깨어났으니까 여기 있지. 너도 일찍 깨어났으면 나한테 왔을 거잖아.”
“하아……. 너…… 그래. 다행이다. 괜찮긴 한가 보네.”
“그래. 눈을 뜰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무덤이 될 뻔했잖아?”
이시우와 사쿠라가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가자 엿듣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이성환은 기척조차 낼 수 없었다.
‘사쿠라라면……. 그래. 그 도장의 아이군,’
시티가드의 훈련 리스트에서 도장을 제외시켰던 이성환은 사쿠라가 자신을 원수처럼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생각이 바뀐 건 아니었다. 활은 몬스터를 잡기에 총보다 훨씬 많은 훈련이 필요했고 무기로 사용하기엔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원망했었겠지.’
다만 그 도장을 다시 시티가드의 훈련 장소로 허가해준 덕분에 이시우를 다루기 쉬워진 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협박도 통하지 않았던 이시우가 사쿠라의 도장을 빌미로 잡자 금방 자신의 곁으로 복귀했다.
이성환의 입장에선 참 편리한 일이었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이시우의 잠재력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성환의 그 믿음이 조금씩 깨어지고 있었다.
* * *
사쿠라의 표정에는 이시우가 깨어났다는 기쁨과 못마땅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이제 설명해줄 때가 됐지?”
“그, 그게…….”
이시우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사쿠라를 휘말리게 한 마당에 무엇을 숨길까.
“말했잖아. 난 너한테 도장과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 거기엔 사쿠라 네 꿈이 있잖아. 줄곧 품어왔던 꿈이…….”
사쿠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시우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시우를 책망할 생각은 이미 없었다.
그저 서운함만이 가득했다. 자신을 위해 악역을 자처하며 도망치다니 그런 행동을 사쿠라가 고마워할 리가 없었다.
“근데 난 기껏해야 너랑 있게 된 지 몇 달이니까…….”
“그래서 도장을 위해 내 앞에서 사라지려고 한 거야?”
“도장에 사람이 늘어난 걸 보며 기뻐하는 네가 떠올랐거든.”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사쿠라는 한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시우의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우야…….”
“또 우네…… 울지 마. 사쿠라. 네 잘못은 없어. 그냥 내가 겁쟁이였을 뿐이야.”
항상 활발해 보이던 사쿠라가 실은 이렇게 울보였다니 당황한 이시우는 사쿠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겁?”
“뭐…… 네가 나 대신 도장을 택한다고 하면 엄청 슬플 거 같았거든. 그래서 그냥 먼저 포기했던 거야.”
분명 떠난 건 이시우인데도 사쿠라는 화를 낼 수도, 책망할 수도 없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널 어떻게 혼내주지?”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을 위해서 일을 벌인 이시우를 더 이상 뭐라 책망 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바보라도 이렇게 속이 깊은 바보라면……. 역시 놓치는 건 싫으니까. 한 100년 정도만 내 곁에서 봉사해. 그럼 봐줄게.”
“너, 너무 길지 않아?”
언제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냐는 듯 금방 풀어진 사쿠라.
“그럼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야?”
“사쿠라 넌 어떻게 생각해. 만약 도장이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정말 괜찮아?”
“내가 얼마나 유명한데? 이젠 그렇게 안 돼!”
주우욱-
사쿠라는 이시우의 볼을 잡아당기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가 우리 도장을 좋아하는 아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고, 그런 아빠를 믿고 찾아와주는 사람들 때문이야.”
사쿠라의 목소리는 자상하면서도 장난스러웠고, 이시우의 마음을 뜨끔하게 만들면서도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했다.
“시우 너를 희생하면서 얻어야 할 건 나한테 아무것도 없어.”
사쿠라의 말이 끝난 이후로도 고개를 숙인 이시우는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응?”
결국 기다리다 못한 사쿠라가 간절하게 묻자.
스으윽-
반대편의 커튼이 걷히고 2미터에 가까운 거구의 실루엣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선택할 필요 없다.”
언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걸까. 옆자리에서 일어난 이성환은 이시우와 사쿠라를 내려다보며 고압적이게 말했다.
“아무리 인질을 구한다고 해도 넌 리벨리온에게 승산도 없는 전투에 목숨을 걸었지. 이 사쿠라라는 아이도 함께 휘말리도록 말이야.”
이성환은 이시우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부터 총을 잡게 만들었다. 이시우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시티가드는 냉철한 판단력이 우선이다. 그렇게나 교육했건만 내가 틀렸다. 너는 시티가드에 어울리지 않아.”
이성환이 목숨을 구해주려고 한 이시우에게 이렇게까지 말을 하자 듣다 못한 사쿠라는 이성환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시우는 당신을 구하려고…….”
“잠시만 사쿠라.”
하지만 무언가를 느낀 걸까.
이시우는 오히려 사쿠라를 말렸다. 그리곤 자신의 아버지인 이성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주었다.
“그래……. 시우 너는.”
저벅저벅.
“시티가드보다 헌터가 어울릴 거 같구나.”
왜 이성환은 자신이 틀렸으니 헌터가 되어도 좋다는 말을. 이시우를 인정한다는 말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시우는 그 정도 표현으로도 충분한 모양인지 닫힌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 * *
모든 작전이 끝난 밤.
아지트를 빠져 나온 클로는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기나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을 놓아주시죠. 그렇게만 해준다면 당신을 막지 않겠습니다.]
‘그 녀석은 변한 게 없군.’
만약.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자신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메이렌을 만났을까?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클로는 피로 손을 물들이더라도 단죄를 택했다. 위인전에나 나올법한 정의의 사도가 되는 대신 복수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 대가로 잃은 건 명확했지만.
얻을 것은 너무도 희미했다.
이미 타인에 의해 지워져버린 기억은 파편만 남아 클로의 머리를 떠돌아다녔다.
[저런…….]
그리고 그 기억의 시작점은 언제나 같았다.
[가엽게도 기억을 잃었구나? 그래. 그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겠지.]
클로는 자신을 가엽게 여기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누군가의 손길을 떠올렸다.
[치에! 네 이름은 치에야!]
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는 클로에게 치에라는 이름을 정해주었고.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넌 우리와 함께 큰일을 이룰 거란다. 그래. 잃어버린 가족 대신,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해도 좋아!]
가족을 자처했다.
클로가 그녀를 따르게 된 것도 당연한 이치. 기억을 잃은 클로에게 그녀의 존재는 하나뿐인 빛이었다.
[네가 잃어버린 기억? 너는 아직도 그런 게 궁금하구나.]
클로는 그녀의 말이라면 모두 믿었다.
[넌 몬스터의 습격에서 헌터들에게 구조됐어.]
그것이 무엇이든.
[그 과정에서 충격을 받았는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었고, 가족도 마찬가지지.]
어떤 내용이든.
[우린 그런 너를 거두어준 거야. 치에……. 우리의 말이 모든 진실이야. 네 머릿속을 떠도는 그 간악한 속삭임은…… 그 기억들은.]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전부 거짓이야. 그건 그저 고쳐야 할 병에 불과할 뿐이야.]
자신을 거두어준.
천사 같은 그녀가.
왜 자신을 속이겠는가?
하지만 그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메이린. 나는 너와 달라.’
클로는 배신당했다.
‘나에겐 어떤 진실도 허락되지 않았다.’
잃어버린 기억.
클로가 겪었다는 참사.
그리고 가족까지.
그녀의 이야기에는 무엇 하나 진실인 것이 없었다. 그녀가 말해준 클로의 과거는 모두 꾸며진 이야기에 불과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사실은 클로에겐 같이 버림받은 자매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2997.’
클로의 자매였던 존재.
그러나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채 숫자 4자리와 함께 스러진 존재.
[왜, 왜 나를! 진실을 알았다고 무언가 달라졌을 거 같아!?]
진실을 알게 된 클로는 악에 받쳐 소리치는 그녀에게 짤막한 답과 함께 이 모든 관계를 끝냈다.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 복수는…… 내가 당신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야.]
그렇게 손을 피로 물들이며.
클로는 맹세했다.
기억을 되찾는 순간까지.
이 모든 일을 벌인 이들을 어떻게든 징벌하겠다고.
하늘이 아닌 자신에게 맹세했다.
저벅, 저벅저벅.
소심한 성격 탓인지 조심스럽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
“……왜 따라 나왔지?”
쳐다보지도 않고 던지는 물음에 류밍은 정장을 입은 클로의 어깨를 가리켰다.
“그 어깨가…….”
류밍의 말에 클로는 자신의 어깻죽지를 바라보았다. 정장 너머로 피가 묻어 나왔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클로에게 치명상도 아닌 이 정도는 가만히 놔둬도 자연 치유가 될 정도로 흔한 상처였다.
“……됐다. 상관없으니 너는 아지트로 돌아가도록 해.”
하지만 클로의 차가운 대꾸에도 류밍은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크, 클로 님에게는 별거 아닌 상처겠지만. 그래도! 아프신 건 마찬가지잖아요.”
클로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류밍의 모습에 결국 옷을 벗어 어깻죽지를 드러냈다.
류밍은 그제야 만족한 듯 손을 올려.
사아아-
황금빛을 뿜어내며 클로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상처라도. 아픈 건 마찬가지라.’
클로는 류밍의 단 한마디의 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류밍은 정말이지,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