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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285/434)

제286화

마나 분리 결계는 리벨리온이 무려 고대급 아티팩트를 소모해서 펼친 대형 결계였다.

작동 원리는 무식할 정도로 간단했다. 설치 장소와 바깥세상의 사이에 얇은 아공간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마나를 가진 존재는 절대 통과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간단한 작동 조건이기에 지속되는 시간은 고대급 아티팩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짧다.

“주어진 건 15분……. 짧은 시간이긴 했지~ 하지만 별일이네? 신입이야 어쩔 수 없어도 클로 너까지 인질 확보에 실패하다니.”

치트가 옆에서 시끄럽게 수다를 떨어도 클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변수를 말하자면 메이린과 협회가 심어둔 고위 헌터들의 존재였지만. 그건 모두 조사 단계에서 알아낸 정보들이었다.

클로와 류진을 방해했던 가장 큰 변수는 조사에선 밝혀지지 않았던 존재.

‘……겨우 학생 두 명에게 발목을 묶이다니.’

바로, 이시우와 사쿠라.

치트는 해킹한 카메라로 그 사실을 확인했는지 진심인지, 위로인지, 도발인지 좀처럼 알기 힘든 말을 했다.

“참, 가온 아카데미라고 했나? 걔들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네~ 머리 얻어맞은 것도 억울한데 우리 전부 없애버릴까?”

하지만 작전을 방해받았다고 해서 클로는 겨우 학생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싶진 않았다.

클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네임리스의 뜻과 꿈을 지켜보는 것.

고작 학생들을 직접 상대하기에는 리벨리온에겐 더 큰 적들이 남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장. 타겟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일을 망쳤다고 생각한 건지 클로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깍듯하게 사죄를 표했지만 네임리스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모두 수고했다.”

비록 이성환을 확보하진 못했어도 네임리스는 메가폴 타워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모든 메모리 크리스탈을 확보했다. 헌터 협회와 시티가드가 가진 ‘모든 정보’를 확보한 것이다.

사아아-

네임리스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메모리 크리스탈의 빛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이 크리스탈에는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이 담겨 있으니까.”

헌터 협회가 숨기려 한 비밀부터 수없이 많은 고위 인물들의 유착 관계까지 담겨 있었다.

대의가 무너지면 사기는 바닥을 치고 결국 내부부터 파멸시키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네임리스에게 ‘정보’란 어떤 무기보다 날카로운 무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 메모리 크리스탈을 확보하려고 한 이유가 거창한 목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작은 크리스탈에는.

20년도 넘게 지났지만.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을 보겠군.’

네임리스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     *      *

천장에서 쏟아지는 밝은 빛.

정신을 잃었던 에이미는 윽- 소리와 함께 눈을 비볐다.

“으으, 눈부셔…….”

에이미는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건 딱 류진과의 결전까지였다.

시청자가 많이 몰린 건 알았지만 무려 서버가 터져버리다니?

“……여, 여긴 어디래?”

에이미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서서히 눈을 뜨자 확- 누군가의 얼굴이 다가왔다.

“캬항, 안녕! 눈을 떠써?”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에이미를 반겨주는 건 천사처럼 머리에 헤일로를 단 벨벳이었다.

“베, 벨벳?”

그러나 헤일로를 단 벨벳은 에이미의 물음에도 안쓰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캬항…… 나는 벨벳이 아니야. 천사님이야…….”

“어쩔 수 없죠.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니…….”

이젠 한술 더 떠 천사처럼 옷차림을 입은 오르카도 벨벳의 옆에서 고개를 저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캬하앙…… 놀라지 말고 드러! 사실 여긴 천국이야!”

“……처, 천국?”

꼴깍.

침을 삼킨 에이미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끼룩- 끼룩-

그러자 주변의 풍경은 갈매기 소리가 들리고, 수평선의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이제 알게써?”

둥실둥실- 벨벳은 오르카를 타고 바다의 파도를 따라 넘실거리다가 훗- 하고 고개를 저었다.

“캬항~ 벨벳은 신기해~ 천국에 온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반응이야!”

“너무 충격적인 사실은 인정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죠. 안 그렇습니까? 작은 주인님?”

오르카의 말에 벨벳이 그럼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미는 그제야 현실을 인정한 듯 주저앉았다.

“으앙, 서버만 안 터졌어도오!”

그러나 평소의 밝은 모습을 유지하기엔 너무 충격이었는지 에이미는 이내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그래서 훌쩍-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어디서 손수건이 났는지 패앵- 하고 코를 푸는 에이미.

“네가 가야 할 길은 갈매기가 길을 알고 이써! 한번 물어봐!”

벨벳이 손으로 햇볕이 쨍쨍한 하늘을 가리키자. 에이미는 고개를 들었다.

휘이잉-

에이미의 시선을 느낀걸까.

아름답게 하늘을 유영하던 갈매기는 이내 에이미의 곁으로 날아와 중후한 목소리로 물었다.

“……길을 잃었다고?”

갈매기라기엔 너무 멋있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에이미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어, 어으응…… 맞아. 나는 길을 잃은 거 같아…….”

놀란 에이미의 떨떠름한 대답에 갈매기는 마치 의식이라도 되는 듯 하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에이미의 이름을 물었다.

“그렇군. 네 이름이 뭐지?”

“에, 에이미…….”

에이미의 이름을 들은 갈매기는 한낱 조류라기엔 믿기지 않도록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너무나도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심해라 에이미. 우린 모두 각자의 삶이란 거대한 바다를 표류하는 떠돌이들이다.”

갈매기는 에이미의 어깨에 자신의 날개를 올려주었다. 이게 바로 조류들의 위로인 걸까?

에이미는 자신을 감싸준 갈매기의 날개가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구나. 떠돌이…….”

갈매기는 이해가 빠른 에이미가 영특하게 느껴졌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에 박차를 더했다.

“그래!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길이란! 무릇 이미 내면에 있는 것! 그건…… 타인에게 물어도 알 수 없는 여정이다.”

타인에게는 물을 수 없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하는 건, 자신이고, 그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도 자신이다. 라고 갈매기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지…….”

푸드덕-

다시 날개 짓을 한 갈매기는 짧지만 지금껏 에이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너는 누구지?”

“나, 나는 에이미야.”

“너는 무엇이 되려하지.”

“어으응, 헌터 중에서 최고로 유명하고…… 강하고…… 멋진, 그런 사람?”

“에이미. 축하한다. 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찾았군. 남은 건 너의 두 날개로 멋지게 걸어가는 일이다. 아, 너의 경우는…… 다리겠군.”

그 말을 끝으로.

활짝- 푸드덕-

갈매기는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여전히 바다는 끝도 없는 수평선을 자랑하며 에이미에게 미지의 공포를 새겨주었지만.

길을 알게 된 그녀에겐 더 이상 두렵기만 하지 않았다.

“맞아앗! 그래! 떠나자! 나의 길을! 남에게 물어봐선 알 수 없어! 우린 모두 인생이란 거대한 바다를 표류하는 떠돌이들이니까!”

에이미가 감명 받은 얼굴로 크게 외치자.

차악!

옆에서 벨벳은 합장을 했다.

“캬항~ 그렇게 갈매기는 머나먼 여정을 떠났답니다! 동화 끝!”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작은 주인님!”

짝짝짝-

그리곤 오르카는 벨벳에게 박수세례를 보냈다.

“뭐? 무, 무슨?”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에이미가 의아한 얼굴로 벨벳을 바라보자, 벨벳은 에이미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오르카와 말했다.

“다음에는 뭘 읽을까?”

“전 그림만 있으면 다 좋습니다요! 동화책은 다 재미있습니다!”

파지직!

“동화책!? 동화채에엑……. 헉!”

마치 스파크가 튀듯 에이미의 머리에선 여러 기억이 교차됐다. 그리곤 이내 숨겨진 ‘진실’을 깨달은 듯 에이미는…….

벌떡!

“헉, 허억…….”

너무나 거친 숨소리.

침대에서 일어난 에이미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옆을 보았다.

“동화만 많이 보면 안대. 다양한 지식을 향유해야 해~ 캬항! 다음은 경제 책이야!”

“역시 작은 주인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제야 에이미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벨벳과 오르카가 보였다.

“이야앗-! 너희 왜 내 옆에서 동화책을 읽고 있어!”

에이미는 억울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이 악몽인지 아닌지도 애매한 에이미의 개꿈은 아무래도 벨벳이 옆에서 읽어준 동화책의 영향인 모양이었다.

“캬하아- 그치마안, 여긴 벨벳 방인데!?”

갸웃- 갸웃-

벨벳이 좌우로 고개를 움직이자.

오르카는 무조건 벨벳의 편인지 당연하다는 듯 거들었다.

“몸에 다친 곳도 없고~ 깊게 잠든 정도니 병원에서도 그냥 데려가면 된다고 말했다고요.”

오르카가 에이미를 보며 지느러미를 까닥까닥- 거리는 그 순간 주방에서 스미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벳! 책은 서재에서 읽어야죠!”

“캬항! 오르카~ 서재로 가자~”

“마님이 하는 말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벨벳과 오르카가 서재로 가버리며 에이미는 방에 혼자 남게 됐다.

멀뚱멀뚱.

에이미는 문만 바라보며 10초간 가만히 멍만 때리더니.

“이게 뭔…….”

서버가 터진 억울함인지, 꿈에 대한 억울함인지 영문 모를 감정을 담아 소리쳤다.

“개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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