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4화
에이미의 특성인 ‘변신’의 힘은 지킬 존재가 많아질수록,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등 다양한 제약이 붙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걸 한 줄로 정리했다.
- 시청자가 많을수록 강해진다!
그렇다면 지금 대체 몇 명의 시청자가 보고 있기에 이렇게 강대한 힘이 자신의 몸 안에서 넘치고 있는 걸까?
‘내 평소 생방송 시청자가 1만 명을 조금 웃도니까…….’
에이미가 생각한 시청자의 숫자는 대략 10만 명 정도. 하지만 현실은 에이미의 예측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현재 시청자: 12,420,202명]
10만도 아니고.
100만도 아닌.
무려 1,000만.
지금 에이미의 방송에 리벨리온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급속도로 번지며 국내는 물론 해외의 시청자들까지 이 진귀한 장면을 보기 위해 모이고 있었다.
“뭐야아아, 1,000만!? 아니 거기다 점점 늘어나잖아!”
시청자는 이미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이미 1,500만을 훌쩍 넘겼다. 그건 플랫폼이 평소에 감당하는 트래픽의 몇 배나 되는 양이었다.
[헌터킹: 뭐야 실시간 시청자가 1,600만 명?]
[Amy♥: 걸어 다니는 대기업….]
[꼴깍이: 어떻게 된 거냐? 권왕이랑 협회장이 도시에서 싸워도 이 정도 시청자는 못 나오겠다.]
지이이잉!
에이미는 몸을 감싸는 핑크빛 마나에 눈을 크게 뜨며 하늘을 향해 용감하게 소리쳤다.
“다 덤벼-!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10배! 아니 100배는 강하다아아-!”
기선 제압을 끝낸 에이미는 손가락으로 새총을 만들어 류진에게 겨누었다.
“얍-!”
에이미가 팽팽하게 줄을 놓는 시늉을 하자 핑크빛 탄환이 류진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액-!
‘……보기보다 빠르군.’
무해해 보이는 핑크빛과 달리 에이미의 탄환은 류진조차 감탄하게 만드는 엄청난 속도였다.
스윽!
류진은 몸을 틀어 탄환을 피했지만 순수한 마나 덩어리는 벽에 닿자마자 폭발했다.
쾅-!
건물의 벽이 무너지며 이리저리 비산하는 파편. 에이미는 류진을 향한 후속 공격도 잊지 않았다.
“프리즘 샤인-!”
우뚝-
에이미가 검지로 류진을 가리키자 정체불명의 오색 빛이 폭격처럼 쏘아졌다.
콰과과과아앙-!
[Amy♥: 에이미! 강하다!]
[꼴깍이: 미쳤네; 지금 에이미는 권왕도 이기는 거 아님?]
[MSI: 꼴깍이 미쳤냐? 선 넘네…]
보는 시청자들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믿기 힘든 파워. 그리고 그 반응은 에이미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나, 너무 강한데!?’
지금 에이미의 방송은 단순히 시청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이건 에이미의 단독 출연 방송. 모든 시선과 모든 관심이 에이미에게만 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변신’의 스킬인 수호의 마음을 통해 모두 마나와 능력치로 치환이 됐다.
덕분에 마나가 모자라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들도 지금의 에이미는 난사를 할 수 있었다.
“프리즘 서머너-! 소환-!”
에이미의 부름에 나타난 2마리의 마스코트는 고양이, 강아지를 닮은 귀여운 모습이었다.
“주인님이 반년 만에 우리를 불렀다 냥!”
“주인님 대단하다! 이젠 우리를 소환하고 쓰러지지 않았다! 멍!”
에이미의 힘은 헌터가 빌런의 테러 범죄에 대항하는 숭고했던 분위기를 아동 만화로 변화시켰다.
“얘들아! 모두 나를 도와서 빌런을 처치하자아아앗-!”
“주인님 우린 준비 됐다 냥! 사랑의 힘으로 악인을 막아보겠다 냥!”
“주인님의 적에게 죽음보다 끔찍한 공포를 선사해주겠다 멍-!”
에이미가 필살의 기술까지 선보이자 류진은 기꺼이 본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인정하지. 넌 강하군.”
그 말과 함께 류진이 발도 자세에서 검을 뽑자.
천하패검(天下敗劍)
일검(一檢)
천경(天傾)
에이미가 반응조차 못 한 사이.
마나를 담은 류진의 검격은 에이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둥실-
그러나 비눗방울처럼 변한 프리즘 고양이는 류진의 검격을 고무공처럼 가볍게 튕겨냈다.
“오오-! 막았어! 대단해! 대단해! 냥냥아!”
“기본이다 냥~”
지금 에이미가 구사하는 프리즘 서머너들은 비주얼이 웃겨도 6급 헌터 정도는 되어야 발휘할 수 있는 고차원 스킬이었다.
평소의 에이미라면 스킬에 소모되는 엄청난 마나를 버틸 수 없지만 이미 2,000만 명을 돌파한 시청자는 드래곤 하트처럼 무한한 마나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자 끝이다!”
시청자들 중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에이미의 믿기 힘든 대활약.
“멍멍아! 깨물어 버려어어엇-!”
자신감이 잔뜩 오른 에이미가 검지를 류진에게 치켜세우며 외치자.
화르륵!
귀여운 강아지처럼 보였던 프리즘 서머너는 이빨을 화염으로 바꾸어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파멸의 이빨(Doom teeth)-!”
류진을 상대로도 이만큼이나 활약을 할 정도니 에이미의 프리즘 서머너인 냥냥이와 멍멍이는 창과 방패처럼 최강의 콤비였다.
“어-? 어어…….”
우뚝-
그때,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에이미는 심각한 표정으로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에이미만 느낀 게 아니었다.
“주, 주인님 저희들의 몸이…….”
“머, 멍멍!?”
희미한 마나 입자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하는 프리즘 서머너들.
“서, 설마…….”
무언가를 눈치챈 에이미는 포켓을 통해 방송을 확인했다.
휙!
[Error]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용자가 많거나 일시적인 오류로 인해 서비스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다시 접속을 하거나…….]
왜 안 좋은 직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에이미의 방송을 보기 위해 한방에 2,000만 명을 넘는 과도한 시청자가 몰리자 방송 서버는 터져버렸다.
풀썩!
결국 자리에서 주저앉은 에이미는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힘이 빠져 나간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지금 에이미가 느낀 절망을 담은 길고 긴 절규.
“크, 켁!”
결국 힘을 잃고 류진의 손날에 목덜미를 맞은 에이미는 벌러덩 개구리처럼 뻗어버렸다.
“하늘이 핑핑 돌아아…….”
멋진 활약을 보여줬지만 서버 점검에 그만 허무하게 리타이어 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류진이 에이미에게 내린 평가는 딱.
“……이상한 녀석이군.”
이 정도였다.
* * *
절뚝! 절뚝!
시티가드의 총장이라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이성환은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견뎌왔다.
“리벨리온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러나 지금만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적은 없었다. 빌런의 공격을 피하느라 건물의 파편에 다리를 다쳤고,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빌런은 지금 이성환의 바로 뒤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추격을…….”
저 괴물을 따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하에 있는 벙커는 너무 멀고 다친 다리로는 금방 따라 잡힐 뿐이었다.
‘딱 1번만 더…….’
간절한 기도가 닿은 걸까.
“총장님!”
“어서 대피하십시오!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다른 길목에서 경호 인원들이 추가로 다가오자 이성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네. 그럼 자네들만 믿…….”
홰애액-! 펑-!
귀를 찢을 듯 엄청난 바람 소리와 함께 장정 2명이 수 미터를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쿠웅!
“커허억!”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능력에 둘이나 되는 시티가드의 경호원은 단숨에 기절하고 말았다.
저벅저벅.
“……체크메이트.”
통로에 울려 퍼지는 젊은 여성의 청아한 목소리.
“재미없는 숨바꼭질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마스크를 쓴 검은 머리의 여성은 이성환을 보며 무감한 얼굴로 물었다.
“……다리라도 부서트리려 했건만.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군.”
코드네임 클로.
리벨리온의 멤버 중에서도 엄청난 체술을 자랑하는 클로는 상대가 공격을 눈치채지 못한다 하여 소리 없는 죽음으로 불렸다.
이성환은 그런 클로를 상대로 도망치는 건 발악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이미 데이터베이스를 점령했으면서 총장인 나까지 노리다니……. 아니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가? 클로.”
이성환의 도발에도 클로는 무감했다. 그녀에게 최우선적인 목표는 네임리스에게 받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성환의 도발은 한 번 더 이어졌다.
“아니지…… 치에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려나?”
쿠웅-!
언제다가 온 건지 클로는 이성환의 목을 조르며 눈 깜짝할 사이 땅바닥에 때려눕혔다.
“……네 더러운 입으로 그 이름을 부르지 마.”
“윽, 크윽!”
목을 졸린 이성환이 살려달라는 듯 발버둥 치자 다시 이성을 되찾은 클로는 평소의 차가운 목소리로 마지막 경고를 했다.
“다음은 없다. 죽이지 않는 걸 감사하게 여겨.”
데이터베이스를 점령했고, 목표였던 이성환을 붙잡았으니 이제 복귀만 하면 이번 임무는 끝이었다.
척-
클로가 포탈을 열기 위해 포켓에 손을 올린 그 순간.
타앙-!
쐐액-!
클로는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사용해 멀리서 날아온 탄환과 화살을 간단히 붙잡았다.
홰액-
그리곤 클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선 이시우와 사쿠라는 총과 활을 겨누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은 없다?”
“죽이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
6급 헌터들조차 벌벌 떤다는 리벨리온의 정예 멤버에게 이제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이빨을 들이민 것이다.
클로는 그제야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짧게 조소했다.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