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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282/434)

제283화

방송으로 유명해진 에이미가 헌터 관련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우와…… 역시 메가폴 타워는 스크린도 장난이 아니네. 무슨 대기실이 영화관 같아.” 

하지만 메가폴 타워는 에이미조차 새삼스럽게 감탄할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그럼, 미팅까지 30분도 넘게 남았으니까. 그 동안…….” 

푹! 

대기실의 소파에 점프한 에이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스크린을 켰다. 

- 긴급 방송입니다! 지금 K채널에서 전파 드립니다! 

에이미는 스크린을 틀자마자 나오는 긴급한 리포터의 목소리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야, 긴급 방송? 큰일이라도 생겼나?” 

- 현재 메가폴 타워의 기습은 리벨리온의 주도로 밝혀졌습니다. 둘러싼 마나 결계는 고대급 아티팩트로 헌터 협회조차 진입이 어려운 걸로 밝혀져……. 

에이미는 쯔쯔쯔-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이런 대낮에 도시에서 테러를 벌여? 이젠 아주 막 나가네 막나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근데…… 메, 메가폴?”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반응하던 에이미는 다급하게 창가로 달려나갔다. 

건물을 빼곡하게 둘러싼 인파와 진을 친 헌터들 그리고 건물을 감싼 붉은색 결계를 보며 에이미는 꿀꺽 침을 삼켰다. 

“허허…….” 

리벨리온이 테러를 벌이고 있는 건 바로 에이미가 있는 메가폴 타워였다. 

- 나도 이제 유명인인가 봐! 

- 요새 왜 이렇게 일이 쏟아지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나날들. 

“어쩐지 요즘 운이 좋더라니.” 

하지만 울상을 짓는 것도 잠시. 

에이미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결의를 다졌다. 

“……주, 죽기야 하겠어?” 

*     *      * 

특성의 등급은 협회가 분류한 주관적인 평가라면 헌터들의 강함은 꽤 객관적이다. 

일명 ‘급수’ 시스템. 

마나와 통상적인 전투력을 수치화하고 현역들은 시험까지 치르면서 공식적인 급수를 올려야 했다. 

그러니 헌터 협회 소속의 헌터라면 ‘급’을 통해 강함이 매겨지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5급 헌터부터는 노력의 영역이 아니었다. 

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의 선택 받은 재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의 실력이…… 겨우 이 정도였다니.’ 

그런 엄청난 실력자들이 지금 류진의 발밑에는 5명도 넘게 널브러져 있었다. 

헌터들의 세계에서 강함이란 상대적이다. 승부의 결과는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결정되는 게 대부분의 전투였다. 

‘이젠……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군.’ 

류진의 스승인 검신은 시야가 달라진다는 표현을 썼다. 

[강자가 되면 시선이 달라진다.] 

아직 어렸던 류진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고차원의 가르침이었다.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게 되고 약자의 공격은 도달조차 할 수 없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강자와 약자의 시선이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 검신은 최악의 스승이었지만 최강의 헌터. 약자들의 공격을 본 그의 시야가 이러했을까? 

[약자는…… 눈앞에 다가온 검을 보지만. 강자는 호흡을 느끼고. 흐름을 느낀다.] 

“리벨리온! 결계가 부서지는 건 시간문제다! 어서 투항해라!” 

특수 제작된 총을 겨눈 시티가드들이 자신을 포위했지만 류진은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 경고다! 투항할 생각이 없다면 발포하겠다!” 

탕-! 

시티가드가 3번의 경고 끝에 총알을 발포하자. 일순간 사라지는 류진의 몸. 

번쩍! 

류진은 마치 섬광처럼 점멸했다. 

그물처럼 펼쳐진 탄환 세례는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무의미했다. 탄환은 가속 능력을 가진 류진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반인에 불과한 시티가드들의 동체시력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감지할 수조차 없었다. 

“컥-!” 

그저 짧은 단말마와 함께 10명도 넘는 인원들이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졌다. 

“대단한데~?” 

치트는 생각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류진의 실력에 만족한 듯 보였다.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근데 너무 무른 거 아냐? 기절만 시키다니……. 그러다 후회한다?” 

절대로 살상을 하지 않고 기절만 시킨다는 것. 물론 치트가 굳이 살생을 저지르는 살인마는 아니었지만 무르게 일을 처리하는 법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게 내 방식이다.” 

하지만 류진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치트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이젠 한참이나 어린 류진에게도 무시를 당하게 된 치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뭐…… 언제까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보자고.” 

류진의 목표가 이성환이라면 치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메가폴 타워의 저장된 방대한 정보. 

[SR- ERROR 014] 

[Search….] 

[인증이 완료됐습니다.] 

해킹을 통해 메가폴 타워의 데이터베이스에 입장한 치트는 빈 메모리 크리스탈을 꺼내며 씨이익- 하고 웃었다. 

“자~ 듣고 있지 클로? 이쪽은 미션 끝.” 

정예를 추구하는 리벨리온답게 단 2명의 인원으로 메가폴 타워를 초토화시킨 셈이었다. 

*     *      * 

만약 헌터가 빌런들과 싸우기 전에 방송을 킨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세에 미쳤다며 곱게 보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에이미의 경우는 그들과 많이 달랐다. 

[변신(특성) - 일정 시간 동안 신체의 능력치를 올립니다. 변신 중에는 수호의 마음이 항시 적용됩니다.] 

그 차이점은 바로 에이미가 가진 ‘변신’이라는 특성에 있었다. 

[수호의 마음(스킬) - 지켜야 할 대상이 많을수록 변신의 효과가 강해집니다.] 

지켜야 할 대상. 

좀 더 넓게 보자면 에이미를 응원하며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면 에이미는 그 응원에 힘입어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에이미의 특성은 타인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응원을 힘으로 바꾸는 특성인 것이다. 

저벅저벅. 

마치 저승사자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통로를 걸어오는 류진. 

[Amy♥: 미쳤다! 에이미랑 리벨리온의 일기토!] 

[ksy96: 에이미가 류진 이기려면 시청자 몇 명 찍어야 함?] 

[냉철의 브레인: 그건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시청해도 불가능임ㅠㅠ] 

응원인지 놀리는지 모를 채팅들을 보며 에이미는 얼마나 긴장한 건지 꼴깍- 침을 삼켰다. 

‘……아니 왜 대기실 앞에 류진이 있는데?’ 

그냥 에이미는 대기실 앞에 나온 것뿐이었다. 부상 당한 헌터들이 있으면 안전을 확보하고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그런 임무가 주목적이었다. 

근데 왜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반대편에서 류진이 걸어오고 있는 걸까? 

‘무, 무, 무조건 진다! 반드시 살해당해! 갈기갈기 찢길 거야!’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지금의 상황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Amy♥: 와 에이미; 미리 리벨리온이 오는 장소 예측한 거임?] 

류진의 위치를 예측했다느니. 

[헌터킹: 그것도 류진한테? 이건 용감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용감하다느니. 

[냉철의 브레인: 그래도 에이미가 류진을 이기는 건 불가능함. 승률 0.0001%도 과분할 듯ㅠ] 

[헌터킹: 승산이 중요한 게 아님! 너는 혼자 막겠다는 에이미의 결연한 결단을 모르겠냐?] 

[Amy♥: 이게 바로 헌터 정신? 진짜 미쳤고…….] 

헌터 정신이라느니. 

시청자들은 에이미에게 엄청나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삐질 삐질 

채팅을 읽는 에이미는 줄줄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다들…… 나는 진짜 그런 거 모른다고……. 문을 열었더니 그냥 있더라니까?’ 

당장이라도 진실을 실토하고 도망가고 싶지만 이미 상황은 엎질러진 물. 에이미는 목숨 대신 쇼맨십이라도 챙기려는지 갑자기 류진을 삿대질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그, 그래! 가온의 헌터인 내가 류진 널 막으러 왔다아아-!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물론 5급 헌터를 줄줄이 쓰러트린 류진이 에이미의 경고에 물러설 리는 없었다. 

저벅저벅.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통로를 걸어오는 류진. 

[Amy♥: 너라면 돌아가겠냐?] 

[꼴깍이: 그냥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도망치자.] 

이미 현역 헌터들도 감당할 수 없는 레벨이 된 류진을 에이미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에이미의 패배를 직감한 그 순간. 

‘근데 뭐지 이 힘은…….’ 

에이미는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마치 샤워를 끝내고 따뜻한 우유를 마신 뒤 포근한 이불 안에 들어간 것만 같은 끝내주는 기분. 

‘전혀 긴장이 안 돼! 오히려 정신이 맑아져! 거기다 몸 안에서 힘도 넘쳐!’ 

어느새 거리가 몇 미터 남짓할 정도로 좁혀지자 류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넌 가온의……. 너도 나를 막을 셈인가?” 

류진의 입장에선 신유성도 아닌 에이미가 자신을 막아서니 가소로울 만도 했다. 

“그, 그래! 이 앞은 아직 도망가지 못한 시민들도 있어!” 

“나를 막아서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내 목표는 오직 하나. 시티가드의 총장이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 싶다면 그가 직접 나서는 게 좋을 거야.” 

류진은 건물에 숨어있을 이성환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 말을 했다. 에이미의 방송을 숨어있는 이성환을 압박하는데 이용한 것이다. 

팟-! 

류진의 몸이 다시 사라졌다. 

류진의 가속 능력은 에이미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부웅! 

그러니 류진은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이용해 손등으로 에이미의 목덜미를 쳐 기절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에이미는 반응하지 못했어도 에이미의 스킬인 수호의 마음은 주인을 위협하는 적을 가만두지 않았다. 

위잉-! 번쩍! 

에이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마나와 환한 빛. 

“……윽!” 

류진은 마나의 돌풍에 휩쓸려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물론 돌풍보다 더욱 류진을 당황하게 만든 건 섬광탄처럼 밝은 정체 모를 빛. 

“이건…….” 

당황한 류진이 얼굴을 부여잡고 눈을 감자 멀리서 에이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인을 벌하고-! 선인을 수호하기 위해-!” 

가까스로 눈을 뜬 류진은 그제야 에이미를 볼 수 있었다. 에이미는 마치 어린이 프로에서나 볼법한 마법소녀의 옷차림을 입고 포즈를 잡더니 당당히 소리쳤다. 

“매지컬 에이미 새롭게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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