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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281/434)

제282화

“네! 듣고 싶어요!” 

신유성의 옆에 의자를 가져와 궁금하다는 얼굴로 경청하는 스미레.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지 신유성은 지금까지 무감했던 것들에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신기한 걸.’ 

가령 스미레에게서 나는 향기 같은 것들. 무신산에서 신유성은 약초를 캐는 일에는 오감을 총동원했으면서 왜 항상 가까이 있는 스미레에게서 나는 향기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까. 

스미레에게선 항상 신유성이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처럼 달콤한 향기가 났다. 

하지만 감상이 딱 거기서 멈추면 좋으련만 신유성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스윽- 

신유성은 갑자기 스미레에게 몸을 가까이 붙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스미레를 껴안았다. 

“에? 유, 유성 씨-!?”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스미레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신유성의 목적은 스미레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스미레의 머리에선 바나나 향이 나는구나.” 

스윽- 

신유성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스미레의 머리카락을 훑어 넘기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지…… 이 끝에서 머무는 달콤한 향……. 바닐라?” 

당사자인 스미레의 입장에선 지금 바닐라인지 바나나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미레는 그저 표정이 굳어 웃는 건지 당황한 건지 좀처럼 기분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읏, 네엣…… 마, 맞아요오! 저, 바닐라 향 샴푸에요!” 

아무래도 스미레의 기분은 둘 다인 듯 보였다. 

좀처럼 없던 일에 놀란 당혹감과 신유성이 자신을 안아주었다는 사실에 바보처럼 굳은 스미레는 입 끝만 움찔거렸다. 

‘바닐라 향 샴푸. 저, 정말 최고예요오…….’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감은 신유성은 달콤한 바닐라 향을 마음껏 맡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그냥 간단해. 난 항상 너희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거 같아.” 

빠른 학습. 

그건 권왕마저 인정한 신유성의 타고난 재능이었다. 하지만 오늘 김은아에게 배운 걸 곧장 스미레에게 써먹고 있는 신유성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김은아는 뭐라고 말할까? 

“……고마운 마음이든. 내 감정이든. 그렇지 스미레?” 

신유성은 오늘 김은아에게 배운 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아니 한 걸음 나아가 그 이상의 것으로 재창조해냈다. 

둘만 남은 방에서, 언제나 자신을 이해해주며 서포터를 자처했던 스미레에게 먼저 행동을 취한 것이다. 

“아니에요! 유성 씨!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행복한 얼굴로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꽈악- 신유성을 마음껏 껴안는 스미레. 

툭- 

스미레의 머리카락을 놓아준 신유성은 감동한 얼굴로 스미레와 눈을 맞췄다. 

“……정말?” 

부드럽게 어깨를 감싼 신유성이 자상한 목소리로 묻자 이미 홀려버린 스미레는 로봇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정말로오…….” 

전혀 모르는 것과 배웠음에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신유성의 이해도는 완벽했다. 

“항상 고마워.” 

청출어람(靑出於藍) 

신유성은 단 하루 만에 스승인 김은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자신의 방식으로 완벽히 소화해낸 것이다. 

“유성 씨…….” 

얼마나 감동을 받은 건지 눈시울이 붉어진 스미레. 

와락! 

“저도! 항상 유성 씨에게 감사해요! 언젠가…… 유성 씨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감격한 스미레가 꽈악- 신유성을 껴안은 채 폭포수처럼 말을 뱉어내자, 신유성은 미소를 지으며 스미레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지금도 스미레는 내게 큰 힘이 되는걸?” 

오늘따라 유독 스미레를 아껴주는 신유성의 행동에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는지 라플라스는 텔레파시로 스미레에게 말을 걸었다. 

- 저렇게 먼저 마음을 표현해주고 이렇게나 달콤하다니……. 

스미레의 짝사랑에 가까운 상황에 라플라스는 신유성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 후우, 정말이지…….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 오늘만큼은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라플라스는 신유성의 행동에 크게 기뻐했다. 덕분에 스미레는 더욱 한 걸음 용기를 냈다. 

“저 그…… 유성 씨…… 그럼 오늘 고민하시던 건…….” 

이해심이 깊은 스미레는 언제나 신유성이 먼저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렸지만 오늘은 먼저 신유성에게 물어보았다. 

스미레는 신유성이 어떤 고민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고 그 고민을 기꺼이 공유하고 싶었다. 

“그게…… 예정보다 빠르게 탑을 올라가야 할 거 같아.” 

신유성은 ‘탑의 진실’과 관련된 스승님의 이야기 그리고 가장 큰 걱정인 신하윤의 일을 털어놓았다. 

스미레의 편린인 라플라스는 몽환의 마녀 모르간과 연관이 깊으니 이건 스미레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 

“편린도 없이 마녀의 힘을 각성하겠다니…….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확실히…… 걷잡을 수 없어지겠네요.” 

스미레는 이내 이해했다는 얼굴로 신유성을 보며 웃어주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일정을 당기려고 하는 신유성의 선택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미레는 그럼에도 신유성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유성 씨는 모두가 걱정 되시는 거군요?” 

탑의 30층부터는 단순히 헌터들의 강함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각 층의 다양한 변수에 노련히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건 큰 위험으로 이어졌다. 

“……내 선택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는 게 아닌지 걱정됐거든.” 

스미레는 신유성의 말에 알겠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파티의 가장 큰 목적은 팀플레이로 ‘임무’를 해결해나가는 것에 있다. 어떤 헌터도 혼자서 모든 던전을 공략할 순 없기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힘을 모은다. 

그것이 파티. 

그러나 아무리 성공률이 높더라도 신유성에게 파티원들의 존재는 저울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1명 1명의 파티원이 너무나 소중하고 무거웠다. 

이 고민은 곧. 

신유성의 상냥함의 증거이고. 

자신들을 무엇보다 아낀다는 증명이지 않을까. 

“유성 씨…….” 

스미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꿈이 뭔 줄 아세요?” 

뒤에서 신유성의 귓가로 들려오는 스미레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달콤하며 꿈결 같이 부드러웠다. 

“제 꿈은 ……지금보다 무척, 무척 강해지는 거에요.” 

스미레의 꿈이라기엔 너무나 의외의 목표 그러나 스미레는 이런 꿈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다음 유성 씨의 곁에서 모든 소중한 순간을 지켜보고……. 함께하고! 유성 씨의 꿈을 함께 이뤄드리고 싶어요.” 

스미레가 뒤로 돌아간 탓에 신유성은 스미레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분명. 

분명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스미레.” 

감동을 받은 신유성이 자신의 이름을 읊조리자 스미레는 배시시 웃으며 신유성에게 다가갔다. 

“유성 씨는 무척…… 엄청나고 대단한 최강의 헌터가 되실 테니까. 어쩌면 제 꿈은 저한테 과분할지도 몰라요.” 

“그렇기에 저는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열심히…… 정말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렇게요.” 

스미레는 걱정 투성이인 신유성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포근히 안아주었다. 

옷 너머로 전해지는 서로의 체온. 

“그러니까, 저는…… 모두 각오했던 일이에요. 그리고 파티의 중심은 유성 씨인 걸요? 저희들은 모두 유성 씨를 믿고 왔으니까요.” 

스미레의 진심 어린 위로에 신유성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과분한 고민이었다. 

파티원들은 눈앞에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함께 해쳐나갈 의지가 있었다. 그런 파티원들의 진심과 잠재력을 가장 믿었어야 할 파티장이 오히려 의심을 하다니. 

“스미레.” 

모든 고민을 정리한 신유성은 짤막하게 스미레를 불렀다. 

그리곤 짤막하게 말했다. 

“좋아해. ……정말로.” 

스미레는 그런 신유성을 더욱 강하게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눈을 감고 진심을 담아 답했다. 

“……저도요.” 

그러나 온기가 가득한 둘만의 밀회는 신유성과 스미레만의 비밀이 아니었다. 

지금 바깥에는. 

끼익. 

서재의 문틈 사이로. 

“캬아앙…….” 

조용히 감탄하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벨벳은 똑똑해.”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벨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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