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80화 (279/434)

제280화

메가폴 타워.

사쿠라는 시티가드의 상징과 같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의 궁도장과 달리 커다랗고 위세 있는 건물은 어쩐지 시작하기도 전에 지고 들어간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기가…….”

하지만 사쿠라는 꽉- 주먹을 쥐며 메가폴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정부 기관 중 하나인 시티가드의 권력은 이성환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가 있었다.

국가마저 다르지만 그들이 인정하는 정식 훈련 업체에서 해제된 것만으로 사쿠라의 도장은 간판을 내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은 그들이 선정한 리스트에 오른 것만으로 도장은 활기를 띠며 북적이고 있었다. 이 메가폴 타워의 시티가드들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저벅- 저벅- 저벅!

하지만 사쿠라는 주눅 들지 않고 힘차게 메가폴 타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쵸텐 아카데미 소속.

- 하나사키 사쿠라.

- 신분이 확인 되었습니다.

유명 헌터 아카데미의 세븐넘버인 사쿠라는 대부분의 장소를 프리패스로 진입 할 수 있었다.

‘시우가 여기 있다는 거지?’

이젠 이시우를 찾는 일만 남았다.

이시우가 한국으로 복귀해 시티가드의 업무를 돕고 있다는 건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이미 국가대항전으로 유명해진 이시우의 소식을 전해 듣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위이잉-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화난 얼굴의 사쿠라는 팔짱을 낀 채 올라탔다. 같이 살다시피 했던 이시우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책임하게 연락을 끊었지만 사쿠라는 지금까지 기다려주었다.

그건 이시우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이시우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분명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 6층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사쿠라는 더 이상 기다릴 순 없었다. 연인처럼 지내던 이시우가 떠나버린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활을 쏠 때도 자신도 모르게 옆자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식사를 준비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1인분의 몫을 더 만들 때도 있었다.

바보처럼 답장도 오지 않는 메시지 함을 계속 바라보며 시간을 버린 적도 많았다.

‘이젠 못 참아.’

사쿠라도 이젠 한계였던 것이다.

지이잉!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인파로 가득 찬 강당 속에서 사쿠라는 이시우를 찾기 위해서 눈을 번뜩였다.

*     *      *

메가폴 타워의 옥상.

휘이잉-!

거세게 부는 바람에 류진의 검은 망토는 힘차게 펄럭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트레이드마크인 가죽옷과 전광판이 달린 헬멧을 낀 치트가 서 있었다.

“첫 임무인데 기분이 어때? 뭐 궁금한 거라던가?”

킥킥거리며 웃은 치트는 아찔한 높이의 난간에서 갑자기 몸을 던져 뛰어내렸다.

번쩍!

물론 그대로 추락을 한 건 아니었다. 치트의 몸은 하얀빛을 내더니 특성인 블링크 스킬로 순식간에 류진의 뒤에서 나타났다.

“뭐든 물어봐. 이제 한배를 탄 마당에 숨길 게 뭐가 있겠어?”

평소라면 무관심하게 치트를 무시했을 테지만 이건 류진에게도 궁금한 주제였다. 류진은 정식 멤버가 되었음에도 아직 리벨리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빌런 단체인 리벨리온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대장인 네임리스는 더더욱 그랬다.

“……이런 위험한 잠입을 하면서까지 시티가드에게 얻고 싶은 정보가 뭐지?”

치트는 류진의 질문에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미없는 주제네. 클로의 전 남친 이야기나 비밀의 ‘공석’이 누구인지 물을 줄 알았더니~”

치트는 진지한 류진을 비꼬기라도 하듯 전자음이 섞인 목소리로 하아암- 소리를 내며 일부러 하품을 했다.

“아아~ 또 이렇게 진지한 녀석이 늘어버렸네.”

치트는 툭툭- 류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헬멧의 전광판에 치트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인 상어 이빨이 형광 빛으로 드러났다.

“그야~ 복수를 위해서겠지? 그게 우리 대장이 그녀를 추모하는 방식이거든.”

리벨리온에 모인 빌런들의 목표는 제각기 다르지만 적어도 이번 임무를 통해 네임리스의 목표는 헌터 협회를 향한 복수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치트가 ‘그녀’라 말한 존재는 대체 누구인가? 이건 대체 누굴 위한 추모인가?

“……그녀?”

“아, 그러고 보니 넌 아직 본 적 없겠네? 다행이다~ 한 번이라도 그 몰골을 보면 꿈에서도 잊기 힘들 거야.”

궁금해진 류진이 관심을 보이자 치트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소리를 내어 킥킥킥- 하고 비웃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실험에 관한 문서 정도는 내가 해킹으로도 얻을 수 있었어.”

하지만 이리저리 블링크를 사용하며 류진의 옆에서 깐죽거리는 것만 빼면 치트의 설명은 꽤 친절했다.

“하지만 대장이 원한 건 메모리 크리스탈 그 자체란 말씀. 어디다 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류진이 알 수 있는 사실은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았다.

네임리스는 희생당한 ‘그녀’의 복수를 위해 헌터 협회라는 거대한 단체를 적으로 돌렸으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조차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

류진이 보기에는 헌터 협회와 리벨리온 어느 쪽도 정의 같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공감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류진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고, 그걸 잃었다면 검신이 됐든 헌터 협회가 됐든 적으로 돌릴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그건 용기가 아니다.

설령 그 끝이 죽음이라도.

더 이상 겁을 낼 이유가 없어졌을 뿐이었다.

“이제 그만 시작하도록 하지.”

*     *      *

강당에는 이성환의 연설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티가드 소속인 사람들은 이성환의 말끝마다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지만 이시우는 무감한 표정으로 하품을 했다.

그저 소원이 있다면 빨리 이 모든 지루한 행사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얼굴.

“어!?”

하지만 그런 이시우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놀란 얼굴로 동공이 커지며 이시우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여기에!’

그리고 그건 맞은편에서 이시우를 죽일 듯 노려보던 사쿠라도 마찬가지였다.

“야악!”

사쿠라는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드디어 이시우를 찾았다고 삿대질을 하더니 무작정 달려오기 시작했다.

- 이게 바로 국가 간의 장벽을 초월한 개혁안! 새로운 형태의 연합인 것입니다!

이성환의 연설과 함께 다시 박수 갈채가 쏟아지자 사쿠라의 “야아아악! 이시우!” 라는 외침은 자연스럽게 묻히고 말았다.

“여긴 또 어떻게 찾은 거야!”

결국 이시우는 두리번거리며 몸을 숨을 곳을 찾더니 일단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타닷!

사쿠라에게 붙잡히기 전에 강당을 빠져나와 긴 복도를 따라 달리는 이시우. 하지만 사쿠라가 입구에서 오는 탓에 이시우는 막다른 길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우당탕! 쿵!

결국 한 대기실에 들어와 다급하게 문을 닫는 이시우.

‘……이게 뭔 꼴이야.’

저벅! 저벅!

그때 복도를 울리는 사쿠라의 발소리. 정말 발소리만으로 화가 났다는 걸 표현 할 수 있다니 이시우는 사쿠라에게 다시 한번 감탄했다.

쿵!

옆방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시우는 얄팍한 몸을 이용해 문 뒤편으로 숨었다.

쿠웅!

거칠게 대기실의 문을 여는 사쿠라. 하지만 이시우가 뒤편에 숨었다는 건 모르는지.

끼이익-

슬금슬금 문이 닫히더니.

빼꼼,

사쿠라는 문을 닫다 말고 고개를 내밀었다.

“……죽을 듯 도망치더니 이게 최선이야?”

도끼눈을 뜬 사쿠라와 멋쩍어 하는 이시우.

“그, 그러게…….”

대기실로 들어온 사쿠라는 한 동안 말없이 이시우를 가만히 노려만 보았다.

“……왜 떠나는지. 나한테 설명 정돈 해줄 수 있었잖아.”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낼 줄 알았건 만 사쿠라의 첫 마디는 꽤나 차분했다.

“설명하고 싶지 않았어.”

차라리 욕이라도 하면 나으련만 이시우는 그런 사쿠라의 반응이 더욱 가슴 아팠다.

“왜?”

담담하게 묻는 사쿠라.

“그냥 이것저것.”

짤막하게 답하는 이시우.

물론 그 와중에도 사쿠라의 예리한 촉은 어디가지 않았다.

“도장 때문이야?”

질문에 이시우가 대답이 없자 사쿠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왜 너는…… 그렇게 나쁜 사람을 자처 하는 거야?”

사쿠라의 말에 이시우는 좀처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시우는 그냥 모두 떠맡는 쪽이 더 편했을 뿐이었다.

“네가, 그렇게…… 네 마음대로만 행동하면!”

결국 참지 못한 사쿠라는 분이 폭발한 듯 이시우에게 달려들었다.

이시우는 ‘올게 왔구나.’ 라는 얼굴로 겸허히 받아들였지만. 그다음 벌어진 일은 이시우조차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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