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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278/434)

제279화

분명 나갈 때만 하더라도 김은아와 둘이 나갔던 신유성은 혼자 부실에 돌아오게 되었다.

지이잉-

문이 열리자마자 돌아온 신유성을 반기는 건 다름 아닌 벨벳.

“캬항! 아빠다-!”

도도도도-

짧은 다리를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달려온 벨벳은 신유성에게 안겨들었다.

“벨벳!”

“캬항! 아빠!”

오래 보지 못한 것도 아니지만 반갑게 서로를 마주하는 두 사람.

살랑살랑-

인형옷을 입은 벨벳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행복한 얼굴로 신유성을 껴안고 있었다.

거실에서 벌어진 소란스러운 상황에 방에서 나온 아델라는 둘을 힐끔 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물었다.

“돌아오셨군요. 아, ……저도 같이 껴안아도 괜찮겠습니까?”

“아, 응! 괜찮아.”

그걸 또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허락하자 아델라는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끼워 넣고 신유성에게 머리를 기댔다.

부비적- 부비적-

그리곤 더욱 신유성의 온기를 느끼겠다는 듯 어깨에 기댄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아델라를 보고 있노라면 신유성의 파티는 확실히 다른 파티와 달랐다.

파티 활동은 팀워크가 중요한 만큼 파티원끼리 서로를 아껴야 한다는 의미로 ‘가족 같은 파티!’를 강조하는 곳은 많았다.

하지만 신유성의 파티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파티원들은 신유성과 함께 벨벳의 양육을 하게 되었고, 아델라는 어머니를 자처했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가족 같은 파티.

물론 신유성의 파티는 평범한 가정과는 가족 구성부터 달랐다.

“캬으으으- 맞다!”

드래곤인 벨벳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너무나 비범했다.

“캬항! 벨벳은 이제 부자야~ 아빠는 이제 일 안 해도 대~”

신유성은 호언장담을 하는 벨벳을 보며 용돈을 모았구나-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걸. 스미레가 줬나?’

드래곤인 벨벳이 사회에 어울려 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금전 교육을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하지만 벨벳에세 금전 교육을 가르친 건 스미레가 아니었다.

“정말? 어디 한번 볼까?”

신유성이 귀엽다는 듯 벨벳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묻자. 벨벳은 자랑스럽게 포켓으로 홀로그램을 띄웠다.

“여기! 이게 벨벳 통장이야~”

(어린이 전용 계좌)

[예금자명]

[★최강 드래곤 벨벳★]

[총 예금 잔액 : 16,726,435]

정말 이게 용돈을 모아서 만들어진 금액이 맞는 걸까?

김은아에게 용돈을 받았다면 모를까 스미레에게 용돈을 받아서 생길 금액은 도저히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이게 대체…….”

신유성은 설명이 필요했는지 아델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아델라는 설명을 해줄 상황이 아니었다. 바짝 몸을 밀착시킨 아델라에게 이미 그런 주제는 뒷전.

“향수인가요? ……당신에게서 좋은 향기가 납니다.”

애정행각이 1순위인 아델라를 대신해서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스미레는 초췌한 얼굴로 신유성에게 다가왔다.

“앗, 유성 씨…….”

아무래도 많은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에이미는 자랑스럽게 벨벳을 보며 검지로 스윽- 코를 닦으며 말했다.

“파티장님 아무래도 벨벳은 천재인 거 같아요. ……투자의 천재!”

벨벳은 레어에서 잠만 자도 금은보화가 굴어 들어온다는 드래곤의 행운을 현대식 자본주의에 적극 사용하고 있었다.

*     *      *

퍽! 퍽퍽! 퍽!

“미쳤어. 진짜 내가 미쳤지.”

침대에 누운 김은아는 애꿎은 베개를 주먹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었다. 이건 모두 오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 때문.

톡톡-

김은아는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건드리더니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진짜 미쳐…….”

그런 짓을 해버리고 이제 어떻게 신유성의 얼굴을 봐야 할까. 하지만 부끄러움에 새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랐어도 후회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처음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김은아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차올랐다. 너무 능숙한 게 걸리긴 해도 김은아는 신유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둔감한 바보가 자신 말고 다른 사람과 이미 입을 맞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히죽.

김은아는 배시시- 웃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녀석도 운 좋은 줄 알아야지. 나처럼 예쁘고 착한 여자가 어디 있어?’

가끔은 진실을 모르는 게 약.

물론 환영인지 현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유성은 이미 이탈리아의 공략전에서 사도닉스와 입을 맞춘 적이 있었다.

드래곤이 아닌 인간으로 치자면 김은아가 처음이 맞지만 따지고 보자면 완전한 처음은 아닌 셈.

“흐흐…….”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귀까지 붉히면서도 계속 오늘 있었던 일을 상기하는 걸 보면 김은아는 아주 행복한 모양이었다.

*     *      *

시티가드의 상징인 메가폴 타워는 늦은 시각임에도 엄청난 인파로 발 디딜 곳 없이 붐볐다.

“리벨리온 전담팀의 인원은 이미 예정된 상태입니까?”

“국제적 공조라는 건 이미 리벨리온의 아지트 위치를 파악했다는 의미입니까?”

“이건 시티가드의 의견입니까? 아니면 공식적인 헌터 협회의…….”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 속에서 시티가드의 총장인 이성환은 단호한 얼굴로 마이크를 들었다.

“전담팀의 인원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급수로 팀을 구성할지에 대해선 확정된 상태입니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한 차례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리벨리온에는 유능한 해커가 있어 아지트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아지트로 의심 가는 장소를 6곳이나 파악했지만. 모두 거짓 정보였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시우는 그런 이성환을 멀찍이 서서 쳐다보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이성환이 시티가드의 총장이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본인의 유능함 덕분이었다.

‘정말 헌터 협회의 지원을 약속받다니.’

물론 덕분에 빌런들 중에는 이성환을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 시티가드의 총장인 이성환은 권력과 정보의 중심. 그는 언제나 목숨을 위협받는 위치에 있었다.

‘……이런 사람의 경호를 맡게 됐으니.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내 쪽인가.’

이시우가 한숨을 쉬며 주변을 확인하고 있을 때 이성환의 발표는 더욱 열기를 더해갔다.

“강유찬 협회장님의 의견은 곧 헌터 협회의 의견! 다시 강조 드리지만 협회장님은 이번 전담팀의 창설에 대해 적극 지원해주시겠다는 의견을 표했습니다.”

6급에서 7급.

아무리 돈이 많아도 쓰기 힘든 국가급 인재들을 리벨리온의 전담팀에 지원해준다는 소식에 기자들과 시티가드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스타에 가까운 고위 헌터들은 그만큼 시민들에게 상징적인 존재.

이 중 헌터 협회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질문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건 같으니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최근 리벨리온에서 메모리 크리스탈의 공개를 요구한 사건은 알고 계실 겁니다.”

연설장의 모두가 이야기에 집중한 그때 이성환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한 인체 실험 같은 건 애당초 벌어진 적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 메모리 크리스탈은 시티가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최근 치트가 퍼트린 일련의 정보와 주장들은 모두 거짓이란 말씀이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이성환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슬픈 일이지요. 저희가 신뢰를 드리지 못했기에 그런 거짓 정보가 힘을 얻어 득세를 한 것이 아닌지……. 하지만 총장인 제 이름을 걸고서 그들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이성환의 주장에 표정이 굳은 이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이시우는 어제까지만 해도 몰랐던 진실을 지금은 알고 있었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

누구의 주장이 가짜인지.

‘처음부터 정답이 없는 문제야.’

[그리고 그 꼬마는 지금 리벨리온의 대장. 네임리스가 됐지.]

이시우는 강유찬의 앞에서 했던 대답과 달리 어느 쪽이 옳은 지는 이시우도 아직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가. 자네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겠나?]

소수를 희생해 다수를 살린다.

이시우는 지금까지 이성환의 아래에서 교육받으며 실리를 중요시하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가온의 생활을 통해 실리만이 모든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구를 희생시키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그런 걸 과연 한낱 사람이 정해도 되는 것일까?

“……후우.”

긴 한숨을 쉰 이시우는 최대한 무감한 표정으로 포켓의 메시지 목록을 훑어보았다.

[Sakura✿: 뭐해?]

[Sakura✿: 너 바쁜가 보다? 요즘 통 안 보인다? ( ´•︵•` )..]

[Sakura✿: 오늘 궁도부원들이 아버지한테 선물을 줬거든? 뭔 줄 맞춰볼래?]

[Sakura✿: 안 궁금해? 그럼 말고 ヽ(ˇヘˇ)ノ]

[Sakura✿: 정답은 거북이야.]

[Sakura✿: 거북이처럼~ 아버지가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래. 다들 참 착하지?]

메시지가 온 첫날은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가 끝이 났다. 이시우가 한 번도 답변을 보내지 않았지만 사쿠라는 혼자 메시지를 이어갔다.

그 다음 날도.

[Sakura✿: 오늘도 무시할 거야?]

그 다음 날도.

[Sakura✿: 무슨 일 있는 거지?]

그 다음 날도.

[Sakura✿: 사람 걱정하는데 살아있다고 생존 신고로 답변 정돈 보낼 수 있잖아.]

이젠 분노가 느껴질 정도의 메시지가 도착했지만 이시우는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Sakura✿: 내가 싫어진 거야?]

그리고 이게 오늘 도착한 마지막 메시지.

“그래 이거면 돼.”

아무래도 이게 이시우가 이별을 선고하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이시우는 자신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쿠라의 도장이 이성환에게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쿠라를 붙잡고 이런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사쿠라가 이시우를 포기하더라도.

아니면 도장을 포기하더라도.

이시우는 알고 있었다. 진실을 아는 순간 사쿠라는 어느 선택을 하더라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러니 이런 형태로 조용히 사라지는 걸 택한 것이다.

물론 이시우도 지금의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근데~ 시우 넌 왜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그렇게 항상 같은 표정이야?]

사쿠라는 이시우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지금. 너 엄청 기쁘잖아.]

어쩌면 이런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시우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사쿠라를 위한다는 말로 이런 선택을 했다.

[그때까지 아빠는…… 궁도장을 잘 지키고 있어줘야 한다? 다음…… 관장은 나니까…….]

사쿠라에게 이 도장이 얼마나 소중한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시우는 자신을 버리는 쪽이 더 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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