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아예 멱살까지 붙잡고 먼저 입을 맞춘 쪽은 김은아였다.
김은아가 생각한 건 프렌치키스 같은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그건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밝히기 위한 표식과 같았다.
하지만 입술이 맞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은아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뭐지?’
신유성은 한쪽 손으로 김은아의 등을 감싸더니 자연스럽게 리드하기 시작했다.
‘지, 진짜 뭐지!?’
아무리 키스가 처음이라도 김은아는 신유성의 행동과 대처가 너무 능숙하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다.
‘이건…….’
그래. 이건 이상해.
하지만 김은아가 아무리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워도 변하는 건 없었다.
김은아의 머릿속에서 신유성의 이미지는 너무나 둔감하고 여자라곤 모르는 바보 중의 바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였다.
신유성은 김은아와 입을 맞춘 채.
‘이건 사도닉스랑도 했었던 거네…….’
따위의 너무나도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뭐든 빠르게 배우는 신유성의 능력은 이런 쪽에서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었다.
“흡, 자, 잠……!”
먼저 시작을 한 건 김은아였고 먼저 포기한 쪽도 김은아였다.
“잠깐만-!”
참다못한 김은아가 신유성을 밀치며 서로의 입술이 멀어졌을 땐 이미 둘의 반응이 명백히 달랐다.
김은아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자신의 입술을 손등으로 가리고 있었고,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김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아야.”
신유성은 얼굴이 붉어진 김은아가 걱정이 됐는지 자상하게 물으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괜찮아?”
그러나 그건 역효과였다.
김은아는 신유성의 손이 닿자 찌릿찌릿- 정전기를 내뿜더니 옷을 들어 입을 가렸다.
“으응, 괜찮아…….”
그리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 빠진 목소리로 조심스레 대답했다.
* * *
김은아와 신유성을 지켜보던 이수현은 이미 한참 전에 본래의 임무를 잊어버렸다. 분명 일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김석한에게 은아를 지키라느니. 무슨 일이 있으면 보고하라느니. 하는 명령을 들었었지만 이미 이수현은 김은아를 전력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후후…….’
지지부진하게 보였던 관계 속에서 그런 엄청난 키스라니.
‘순진하게 봤는데. 저런 면이 있었다니……. 역시~ 남자는 남자라는 건가?’
이수현은 뿌듯한 얼굴로 턱을 만지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이수현은 임무 때문에 지켜봤던 김은아의 연애사를 어느새 자신의 일처럼 응원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이수현이 힘을 써줄 곳은 따로 있었다. 만약 오늘 본 일들을 곧이곧대로 보고서에 적어 김석한에게 올리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김석한은 신유성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자, 은아랑 키스한 사실은 빼고……. 그래. 혹시 모르니 손잡은 이야기도 빼야겠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로 새롭게 작성하는 이수현. 아무래도 오늘 본 진귀한 구경은 이수현의 마음까지 녹여버린 모양이었다.
* * *
“……자네는 참 호기심이 많군.”
강유찬이 그 말과 함께 어깨를 잡자 이시우는 뱀을 마주한 개구리처럼 온몸이 굳어버렸다.
전설의 헌터인 강유찬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그것만으로 공포가 되기 충분했다.
‘……실수다. 이 사람 앞에서 마나를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강유찬도 이시우의 행동이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던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강유찬의 앞에서 투시와 천리안을 사용한 것만으로 이시우의 패착이었다.
“난 자네를 알고 있다네. 유성이의 파티원이지? 국가대항전에도 나왔었고 말이야……. 듣기론 특성 덕분에 눈이 꽤 좋다지?”
어깨를 붙잡은 강유찬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정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이시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 맞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했나?”
이미 훔쳐보려 했던 의도가 들킨 이상 이시우는 모든 걸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강유찬은 거짓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협회장님 정도 되시는 분이 직접 메모리 크리스탈을 찾으러 온 게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메모리 크리스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궁금했고요.”
이시우가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강유찬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곤 굳은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시혁을 물러나게 만든 뒤, 반대편 통로를 가리켰다.
“그럼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으니. 나와 이야기 좀 하지.”
저벅저벅.
강유찬은 행선지가 어딘지도 말을 하지 않은 채 통로를 걸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이 통로의 끝에 있는 건 ‘데이터 베이스’라 불리는 장소로 헌터 협회는 물론 정부의 중요한 사건들을 모두 메모리 크리스탈로 기록해 저장하고 있었다.
띠딕- 띠리릭-
강유찬은 홍채와 지문으로 인증을 하여 데이터 베이스의 문을 열었다.
위이잉- 치이익-
그가 입을 연 것은 문이 완전히 열리고 난 이후였다.
“자네도 그 방송은 보았겠지? 마천루 아카데미의 류진. 그가 빌런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말일세.”
국가대항전을 통해 생중계된 류진의 선언은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해졌다.
“네. 보았습니다.”
이시우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강유찬은 수십만 개의 메모리 크리스탈 중 하나를 골라 꺼내며 한결 무거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허허허, 그래. 내 하나 묻지. 자네의 아버지는 시티가드가 되길 바란다지? 그럼에도 헌터가 되려는 이유가 뭔가?”
이시우가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자 강유찬은 마나 영사기 위에 메모리 크리스탈을 올려다 놓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헌터가 되려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지. 그것이 부와 명예일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지.”
잔잔한 강유찬의 목소리는 바다와 같은 위압감이 있었다. 파도처럼 몰아치지 않아도 강유찬이 가진 본연의 무게는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대에서 활동한 헌터들은 모두 목표가 같았다네. ……우리의 목표는 모두 생존이었지. 나의 생존. 그리고 시민들의 생존.”
강유찬은 검은색 가죽 의자에 앉아 깍지를 끼고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헌터들의 목표는 생존이 전부가 아니고. 시민들도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네. 모두에게 미래가 생긴 거지.”
이야기를 듣던 이시우는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직감.
강유찬의 이야기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강유찬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즐거운 얼굴로 이시우에게 물었다.
“자네에게 묻지……. 만약 1명의 희생으로 백 명을 구할 수 있다면. 아니! 천 명, 만 명도 구할 수 있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희생이라면 어떤…….”
이시우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어도 강유찬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허허허, 그냥 간단한 예일세. 얼른 대답해보게. 자네는 수많은 생명을 위해 1명을 희생시킨다는 결단을 내리겠나?”
이시우가 대답이 없자. 강유찬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누구도 악역이 되길 원하지 않지. 다만 나는 악역을 자처했다네. 모두의 꿈을 위해.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
팟-
강유찬은 이시우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진실을 직접 틀어주었다. 마나 영사기가 비추는 풍경 속에는 병실처럼 보이는 장소에 100여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 나는 벤덤 연구소의 파올라다. 기록을 시작하지.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밝힌 연구원은 한 소년에게 이름을 물었다.
- 자, 꼬마야 지금부터 네 이름이 뭐라고?
파올라의 질문에 소년은 생기 없는 눈으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3017.
더욱 정확히는.
EP-TEST-No.3017.
그는 리벨리온의 대장인 네임리스였다. 반면 담담한 네임리스와 달리 옆에 있는 소녀는 파올라를 본 것만으로 겁을 먹은 듯 손을 떨고 있었다.
- 네 이름은 뭐라고?
- 2, 2997요!
무려 3천에 가까운 숫자를 보며 이시우는 시선을 피했다. 3천의 숫자가 실험체의 숫자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중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살았을까?
꿀꺽.
긴장한 이시우가 침을 삼키자 강유찬은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입을 열었다.
“1명이네. 벤덤의 실험에서 살아남은 건 말이야. 단 1명이야.”
강유찬은 이시우가 훔쳐보려 했던 진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꼬이고 꼬인 운명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꼬마는 지금 리벨리온의 대장. 네임리스가 됐지.”
강유찬은 지금 순수하게 묻고 있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맺은 협약이, 벤덤의 실험이, 그선택들이 잘못인지 이시우에게 묻고 있었다.
“……어떤가. 자네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겠나?”
“저라면…….”
이시우는 한참을 입을 열지 못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수많은 생명을 실험체로 희생시키는 게 옳은 일인가?
전설의 헌터인 강유찬의 위압감과 기세에 손끝이 저려 왔지만 이시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저라면.”
이시우는 강유찬이 왜 이 모든 사실을 말해주는지 알고 있었다. 벤덤의 실험이라는 게 정말 전 헌터 협회가 협약한 실험이라면 이 사실을 공표하는 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건 강유찬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그는 이시우를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시우는 그 장단에 순순히 어울려주고 싶진 않았다.
“……더 나은 방법을 찾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 얻은 평화 같은 건 누구도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한 적막.
의자에 앉은 강유찬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참 뒤 다시 눈을 떴다.
“……그렇군. 이제 나가봐도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