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76화 (275/434)

제276화

공연 시작 10분 전.

푸르른 물이 가득 찬 거대한 수영장에 하나둘 사람들이 가득 차자 김은아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공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도 진짜 오랜만이네-!”

보기 드물게 아이처럼 기뻐하는 김은아의 모습이 신유성은 신기한 듯 보였다.

‘엄청 기대하고 있구나.’

김은아는 추억에 빠진 듯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추억이다 추억이야. 거의 10년만인가? 물론 그때랑은 애니멀 가든도 많이 달라졌지만…….”

하지만 이 아쿠아쇼 공연장만큼은 김은아의 어린 시절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가족들이랑 왔었나 보구나?”

“응. 엄청 어렸을 때인데 뭘 했는지 지금도 다 기억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 김은아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신유성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어릴 때 일이니까 웃으면 안 된다? ……난 이 공연을 보고 한 동안 꿈이 있었어.”

“꿈?”

신유성이 관심을 가지자 설명을 하는 김은아는 더욱 신이 났다.

“응! 공연장에서 범고래가 조련사를 태우고 점프를 했는데…… 그게 너무 멋있는 거야.”

슬쩍.

김은아는 신유성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뭐, 엉뚱하지만 어렸을 때니까. 그런 꿈을 꾼 거지.”

아이처럼 신이 나서 설명을 하던 김은아는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졌는지 헛기침을 했다.

“……범고래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는?”

끝이 없는 망망대해의 바다. 그런 바다를 범고래와 유유히 여행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김은아.

“범고래라…….”

이런 반응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신유성은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김은아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닮은 것 같기도 해.’

마침 흰색 셔츠 위에 검은색 드레스를 덧입은 것도.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자리 잡은 흰색의 머리카락도 김은아는 묘하게 범고래를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김은아는 아까보다 진지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유성이 너도 그런 거 있어?”

김은아는 조심스러웠다.

다른 게 아니라, 김은아는 신유성의 입에서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어렸을 때 하고 싶은 일이나. 꿈같은 거…….”

말을 덧붙였음에도 신유성이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자 김은아는 자신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그렇구나.’

신유성은 안절부절못하는 김은아를 보며 그제야 김은아가 왜 이 장소를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김은아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좀처럼 신유성은 입을 열기 어려웠다.

“음, 내 꿈은…….”

하지만 신유성은 서서히 갈피를 잡고 있었다. 김은아가 말한 꿈이라는 건 신유성에게 좀 더 간단했으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난 인정받고 싶었던 거 같아.”

또한 너무나도 복잡했다.

하지만 동료들을 만나고 신유성에게도 명확해진 게 있었다.

“스승님에게도. 그리고…… 신오가문의 사람들한테도…….”

그래.

그럼에도 신오가문의 제안을 거절 할 수 있었던 건 더 이상 그들의 인정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가문에서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치열함이었지만. 그다음은 자신을 거두어준 스승님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 되었다.

그러나 스미레를 만나고. 김은아와 지내며 신유성은 많은 게 바뀌었다. 지금의 그가 원하는 건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었다.

“……네 말처럼 어렸을 때 일이니까. 근데 지금은 좀 달라.”

“……어, 어떻게?”

아무래도 지금 신유성의 대답은 김은아가 그토록 기다린 순간이 맞는 모양이었다.

“막상 설명하긴 어렵지만…….”

눈을 마주친 김은아는 꽈악- 신유성의 옷을 잡아주었다.

“이제 그런 건 신경 안 써. 오히려 지금의 나는…… 지키고 싶은 쪽이야.”

이전에는 몰랐던 기분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인정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신산의 신유성에게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것만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달콤함을 알게 되었다.

김은아는 그런 신유성의 태도에서 무언가를 느낀 걸까.

“너, 너는 그럴 자격이 있어!”

“자격?”

김은아는 붉어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더니 신유성의 의아한 얼굴에 민망해졌는지 설명을 덧 붙였다.

“그, 제일 고생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했으니까…….”

얼굴을 마주보고 말을 하려니 김은아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일 행복해질 자격.”

하지만 지금 김은아가 하는 말은 이 데이트의 이유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게.”

그리고 김은아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 나랑 가족 해!”

김은아가 드디어 저질러버렸다는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이건 영락없이 프러포즈나 다름없는 말. 하지만 신유성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 은아야.”

정말이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신유성의 대답에 입을 벌린 김은아는 멍한 얼굴로 감탄사를 뱉었다.

“……어,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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