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화
분명 학원 도시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스미레는 이번 외출이 벨벳에게 돈의 가치를 알려주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 전용 계좌)
[예금자명]
[★최강 드래곤 벨벳★]
[입금 금액 : 11,150,000]
[총 예금 잔액 : 11,526,235]
“으으음…….”
스미레가 침음을 흘렸다.
이건 역효과가 아닐까?
벨벳은 이제 돌만 주워다 팔아도 이렇게 큰돈을 만질 수 있다고 잘못된 경제 상식을 알아버렸다.
“오르르르르- 천만이 넘는 돈! 대단하십니다! 작은 주인님!”
“캬항! 벨벳은 이제 부자야. 기쁨의 불 뿜기-!”
포켓에 적힌 금액을 보며 기뻐하는 벨벳을 보자 스미레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요?’
하지만 어쩌니 저쩌니 해도 이건 벨벳이 번 돈. 스미레가 할 수 있는 건 잘못된 경제 상식이 생기질 않길 바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뿐이었다.
“베, 벨벳! 그건 정말 큰돈이니까. 아, 아껴서 써야 해요?”
“캬항! 스미레 엄마! 벨벳만 믿어! 벨벳은 착한 드래곤이야!”
스미레는 사악하게 미소를 짓는 오르카와 쿄쿄쿄- 웃는 벨벳을 보며 그저 멋쩍게 웃어줄 뿐이었다.
* * *
아름다운 달빛이 쏟아지는 정자.
그곳에 앉은 류진에겐 잠깐의 기다림조차 영원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네 동생 정말 많이 변했거든? 못 알아볼 수도 있다? 내가 과장하는 거 같지?”
치트가 상어처럼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큭큭큭- 웃자 클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막혔던 마나가 뚫린 영향이다. 성장에도 영향을 미치지. 심지어 네 동생은 헌터의 자질을 가지고 있더군. 그럼 더욱 크게 영향을 받지.”
류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물었다. 류밍의 치료는 막혀있던 마나의 통로를 잘게 부수고 새롭게 형성하는 과정이다. 마나에 대한 적응치가 높다면 더욱 큰 고통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 끔찍한 고통을 류밍이 홀로 버텨냈을 생각을 하니 류진은 가슴이 미어졌다.
“오는군.”
저벅저벅.
클로의 말처럼 류진의 눈에는 숲속 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마치 신부나 수녀처럼 하얀 베일을 쓴 모습에 클로는 인상을 쓰며 치트를 노려보았다.
“저건…….”
“아이 왜 그래, 재밌지 않아?”
아무래도 류밍이 뒤집어쓴 베일은 치트의 독단적인 아이디어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류밍의 겉모습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게 있었다.
“오빠-!”
너무나 익숙한 아직은 앳된 목소리와 이전처럼 안겨 오는 류밍의 모습에 류진은 이를 꽉- 물며 여동생을 힘껏 받아주었다.
“……류밍.”
“괜찮아. 나, 이제 아프지도 않아. 더 이상은 오빠도…….”
베일 속에서 감춰진 류밍의 모습이 드러났다. 치트의 말처럼 너무나 성장한 류밍의 모습은 생소할 만도 했지만 류진은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나도 알고 있어 오빠. 날 위해서 이 사람들을 선택한 거지?”
“그래. ……하지만 네가 나은 것만으로 충분하다. 난 후회하지 않는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
슬픈 얼굴로 더욱 꽈악- 여동생을 껴안는 류진의 모습에 치트는 미소를 지었다.
“그 녀석들이랑 달리 우린 아주 합리적이지. 대가라도 지불하잖아? 누가 진짜 악당이겠어.”
그렇게 말한 치트가 킥킥거리며 웃자 류밍은 모두 이해한다며 류진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오빠가, 나를 지켜준 것처럼……. 나도…… 오빠의 선택을 따를 거야.”
류밍의 꿈이 곧 류진의 꿈이었던 것처럼 류진의 선택은 곧 류밍의 선택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게.”
사아아-
류밍의 손에서 퍼져나간 황금빛 마나가 류진을 감싸자. 류진의 몸에 새겨진 자잘한 생채기가 천천히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흉터만 치유하는 게 아니었다. 힘든 수련과 마정석의 사용으로 곪아버린 류진의 내부에까지 류밍의 치유력은 엄청난 효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치유라는 희귀한 특성에 황룡의 여의주까지 섭취했으니……. 이거 정말 엄청난 전력이 되겠는데?’
류밍의 힘에 치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류진을 거두겠다는 건 모두 노 네임의 판단. 과연 그는 여기까지 읽은 것일까?
‘그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스윽-
클로는 자세를 낮춰 류진과 류밍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좋은 자세야. 대장이 너희를 믿어준 것처럼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자, 이건 네 첫 임무다.”
클로가 내민 종이에 적혀 있는 건 어떤 사람의 이름과 그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었다.
“타겟의 이름은 이성환. 시티가드의 총장이다. 넌 그를 납치하기만 하면 된다.”
헌터 협회만큼 힘이 강한 건 아니지만 시티가드의 총장이란 직함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런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이성환을 납치한다는 건 유사시 6급 헌터와 전투를 치러야 할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이었다.
“간단하지? 근데 실수로라도 죽이면 안 된다. 알아낼 것도 있고, 그랬다간 정말 일이 귀찮아져 버리니까~”
하지만 치트는 류진의 패배 따윈 염두에도 두지 않은 모습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그건 류진도 마찬가지.
“……대가는 치를 테니.”
류진은 류밍을 껴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눈을 감았다.
* * *
자신의 보금자리인 드래곤 레어를 꾸미는 건 드래곤의 소양. 하지만 벨벳처럼 똑똑한 천재 헤츨링에게 금은보화나 아티팩트로 드래곤 레어를 꾸미는 건 시대착오적인 일이었다.
[아기악어 뚜르르- 뜨르-]
대중가요가 아닌 대중 동요를 시끄럽게 틀어둔 벨벳은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던 미끄럼틀에 앉아 풍요와 여유를 즐겼다.
띵똥-
마침 시켜둔 배달 음식도 도착했는지 오르카가 고풍스러운 저택의 집사처럼 모노클을 끼고 벨벳에게 치킨을 서빙을 해주었다.
“작은 주인님. Sajo- Sajo- 사족 보해르~ 치킨이 도착했습니다.”
벨벳은 깔끔하게 키친타올로 손잡이가 감싸진 치킨을 집더니 냐암- 소리를 내며 한입 가득 물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