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3화
애니멀 가든(Animal garden)
이곳은 학원 도시에서 유일한 동물원이자 국내 최대의 동물원이었다.
학원도시의 동물원답게 최신식 설비를 자랑했지만 애니멀 가든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성아! 저기! 저기 좀 봐바! 저기 있는 토끼가 애니멀 가든의 마스코트야!”
김은아가 가리킨 유리 돔 안에 있는 건 아름다운 반월의 무늬가 새겨진 귀여운 흰색 토끼였다.
“쟤는 달순이라고 달토끼의 교배종인데 저렇게 반월 무늬가 있을 확률은 1억 분의 1이래!”
“그렇구나. 하지만 괜찮은 거야? 달토끼는 만월이 뜨면 엄청 난폭해지는 1급 괴수잖아.”
신유성의 걱정처럼 애니멀 가든은 던전이나 차원 균열을 통해 등장하는 다른 차원의 생물도 있었다.
하지만 김은아는 그런 사실 따위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
“무리 지어 다니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리고 귀엽잖아! 그리고 원래는 지금 시기가 되면 달토끼들은 동면에 빠지는데 쟨 잠도 안 잔다?”
“그렇구나……. 확실히 가을을 넘어서면 달토끼를 본 적이 없는 거 같네.”
신유성이 마치 이전에도 달토끼를 본 듯 이야기하자 김은아는 갸웃 고개를 움직였다.
“너 애니멀 가든 처음 아니야? 희귀종이라 다른 동물원에서는 보기 힘들 텐데…….”
의아해하는 김은아에게 신유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충격적인 말을 덧붙였다.
“아, 동물원이 아니라. 무신산에서 많이 봤어. 대부분 먹었지만.”
호로록- 뚝-
슬러시를 마시던 김은아는 흠칫하며 신유성을 흘겨보았다.
“……그, 그래?”
김은아는 장난이지?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신유성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스럽게 꺼내놓았다.
“산에서 먹을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거든. 거기다 수련이 길어지면 더더욱. 덩치가 큰 동물들은 손질하지 않으면 금방 냄새가 나.”
“아…….”
“반면 달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은 손질이 늦어져도 크게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아아……, 그렇구나…….”
그 대답을 끝으로 길게 이어진 침묵. 김은아는 토끼풀을 우물거리는 귀여운 달순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신유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저건 봤어?”
차아아아아-
김은아가 데려간 곳은 에메랄드빛의 호수였다. 거기다 중앙에 세워진 건 오직 비취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분수.
“진짜 신기하지!? 호수가 온통 에메랄드빛인 이유가 비취 잉어의 비늘이 바닥에 떨어져서 그런 거래.”
“은아 넌 생선을 무서워하잖아.”
“호수가 예쁘잖아. 그리고 누가 무서워한데?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징그러워서 싫은 거야.”
사실 김은아와 기준에선 징그러울지 몰라도 신유성의 기준에서 토끼와 잉어는 비슷했다.
‘오히려 토끼보다 잉어 쪽이 나은 편이지.’
민물고기 특유의 흙내를 잡느라 조리에 고생을 하지만 그래도 토끼보다는 잉어가 수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리 지어 다니는 특성 덕분에 수렵도 쉽고.’
신유성은 호수 속에서 입을 뻐끔 내민 비취 잉어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비취 잉어는 단단한 살맛이 일품이라고 했지……. 찜이나 탕으로 먹으면 좋다고…….’
뻐금뻐끔.
자신과 눈이 맞은 비취잉어를 보며 신유성은 스미레를 떠올렸다.
‘만약 스미레에게 가져간다면 요리를 할 수 있을까?’
스미레는 튀김요리는 뭐든 잘하니 튀겨서 소스를 붓는 탕수도 좋고. 칼집을 내어 찜을 해 먹어도 좋을 것이다.
‘전부 맛있을 거 같아서…… 도저히 고를 수가 없네.’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신유성이 하고 있던 건 딱 그 정도의 생각.
하지만 김은아에게 신유성의 모습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에메랄드 빛 호수를 배경 삼아 우수에 찬 눈빛의 신유성을 보고 있자면 김은아는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다, 알고 있어. 너, 뭔가 고민이 많은 거지?”
신유성이 하고 있던 건 탕수와 찜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지에 관한 고민이었지만. 김은아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조바심도 나고…… 이렇게 잘 지내고 행복해도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잖아. 맞지?”
아무래도 김은아는 호수를 바라보던 신유성의 눈빛을 아주 심각한 고민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이, 바보야. 그렇게 달리기만 하면 쓰러지는 거야. 무리하다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한다?”
김은아가 신유성의 볼을 당기며 엄한 표정을 짓자. 신유성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지? 고민 금지. 이런 날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놀기만 해야 하는 거야.”
“으응.”
“다음에 또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으면 호수에 빠트린다?”
엄포를 놓은 김은아 덕분에 비취 잉어의 요리법을 고민하던 신유성의 고민은 금지령이 내렸다.
아직 김은아는 몰랐다.
남자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사실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진실을.
“알겠어. 은아야.”
하지만 진실은 딱히 필요 없었다.
“그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신유성의 얼굴을 보자 김은아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아, 알았으면 됐고……. 빨리 가자! 갈 곳이 많아!”
* * *
김석한의 명령 때문에 김은아의 뒤를 밟던 이수현은 영화보다 더 슬픈 장면을 보고 말았다.
“아니…….”
김은아가 눈까지 감고 기껏 용기를 내며 허락했건만 팝콘을 집어가는 신유성을 보며 이수현은 열불이 났다.
“무슨 저런…….”
가끔 미울 때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팝콘에게 패배해 외면당한 김은아를 보며 이수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지가 돌부처야 뭐야?’
김은아가 저렇게까지 어필을 하는데도 감히 신성그룹의 ‘작은 아가씨’를 거절하다니?
심지어 김은아를 버리고 택한 것이 팝콘이라니!
와작! 와작!
신경질적으로 팝콘을 입에 넣고 으적거린 이수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아가씨랑 만난 게 언제 적인데 아직도 진도가 저 모양이야?’
이수현은 머릿속에 번개가 친 듯 충격받은 얼굴을 한 채 자신의 입을 막았다.
‘설마 마음에 안 드나!?’
비록 성격은 개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수현은 김은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외모만큼은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또 모르지.’
각자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 너무 이상형과 맞지 않다면 이건 김은아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될 확률도 높았다.
‘옆에 여자애들도 많더니. 안 그래도 의심스럽더라…….’
척하면 척.
이수현은 이미 머릿속에서 드라마 한편이 재생되는 듯했다.
[후후, 뭐 나~ 신유성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김은아 정도면 옆에 두기 괜찮은 편이지.]
이수현의 상상 속에서.
[아아, 너무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일단 후보 정도로는 둘까? 혹시 모를 일이니 말이야~ 하하!]
신유성의 이미지는 현실과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내가 잘 알지. 아주 생긴 대로 논다더니…….’
신유성은 김은아가 포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관리하는 게 아닐까?
김은아는 순진한 얼굴을 한 신유성의 손에서 애만 태우는 피해자가 아닐까?
‘은아만 불쌍하게 됐네.’
이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라면 하나 끓일 줄 모르면서 스스로 초콜릿까지 준비하던 김은아의 모습이 이수현의 머릿속에서 겹쳤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잘 안 녹네…….]
[아가씨 차라리 그냥 파티시에한테 맡기시면…….]
[아, 아냐 내가 만들 거야. 누가 잘 만들고 싶대?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라니까?]
조악한 손재주로 신유성에게 줄 초콜렛을 만들겠다고 고생을 하던 김은아의 모습이 스쳐지나가고.
[아가씨! 이제 문장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하시면!]
[좀 더? 근데 그건…… 어, 너무 간지럽지 않나?]
신유성에게 보낼 메시지를 고심하던 김은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흘러지나가며.
[흠, 이렇게 오버룩으로 하의를 가린 느낌?]
[짠, 이렇게 흰색 니트에 올 블랙!]
[이렇게 오버롤 원피스? 안에 옷 하나 덧입고.]
어떻게든 잘 보이겠다고 입고나갈 옷 하나를 몇 시간씩 고심하던 김은아의 모습이 하나 둘 이수현을 건드렸다.
‘하, 옛날 생각나게 만드네…….’
그래 무엇을 숨기랴.
이수현에게도 달콤하면서도 시린 첫 사랑의 추억은 있었다.
‘저때는 다 그런 거지.’
이수현은 그때를 회상하며 눈을 감고 씁쓸한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실은 너무나도 얄팍한 것…….’
마치 사색에 빠진 시인처럼 이수현은 우수에 찬 얼굴로 영원히 김은아가 듣지 못할 말을 마음으로나마 전했다.
‘그래. 은아야. 어른이란 그렇게 아픔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란다.’
하지만 너무 깊이 사색에 빠져버린 탓일까?
스크린의 막이 오르며 관객들은 분주하게 영화관을 나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김은아와 신유성은 자리에 없었다.
‘어, 어디 간다고 했더라?’
현역과 너무 멀어진 탓일까. 이수현은 오늘따라 실수가 잦았다.
* * *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투명한 관. 그 너머에 펼쳐진 수많은 해양생물과 푸르른 조명이 켜진 아쿠아리움의 전경은 마치 하나의 생태계를 보는 듯했다.
수많은 인파.
그중 대부분의 일행들은 아쿠아리움을 설명해줄 전문 큐레이터가 따라붙었지만 이미 사전에 공부를 한 김은아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여긴 온통 처음 보는 생물뿐이네.”
제법 많은 동물을 알고 있었던 동물원과 달리 아쿠아리움은 신유성에게 별천지였다.
‘그래. 이런 건 처음 보겠지.’
김은아는 드디어 신기해하는 신유성의 반응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물이라면 질색을 하면서도 아쿠아리움을 택한 이유는 아쿠아리움의 전경이 무신산에서만 지낸 신유성으로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김은아가 아쿠아리움을 택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은아는 이성이라면 돌부처에 가까운 신유성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
‘……내 모든 작전이 성공하면. 넌 끝이야.’
아쿠아리움을 둘러보며 신기해하는 신유성을 보며 김은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