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68화 (268/434)

제268화

밤하늘의 별이 밝게 빛나고.

어둑해진 숲에서 한기가 감도는 새벽.

[유월이랑 이야기했었지? 나도 신하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

신유성은 익명으로 누군가에게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물론 익명이라고 해야 이런 정보를 나누고 있는 건 신유성에겐 유월이 유일했다. 메시지를 보낸 건 당연히 그와 관계된 사람일 터였다.

‘그래. 어차피 했을 정신 수양에 약간의 시간이 얹어질 뿐이야.’

헌터에게 마나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마나를 갈무리한다는 것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갈고닦는 것과 같았다.

‘신하윤의 비밀…….’

자신은 신하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신하윤은 피를 나눈 혈육이었지만 신유성에겐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5살 때 이미 어른들을 상회하는 범상치 않은 행동들과 능력. 거기에 고대어를 읽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유월의 이야기까지.

신유성은 신하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신오가문에서 보여준 태도로 보아 가주 자리조차도 그녀에겐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신오가문과 유수가문의 지분을 가지게 되면 엄청난 부와 명예가 뒤따른다. 하지만 신하윤은 신유성이 신오가문에만 돌아온다면 기꺼이 자리를 나누겠다는 입장이었다.

신유성이 알고 있는 신하윤은 절대 무언가를 쉽게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하윤이 무언가를 양보한다면 그건 모두 ‘투자’였다.

‘내 능력을 빌려서라도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뭘까.’

신유성은 지금까지의 정보를 머릿속에서 되짚었다.

[거짓말. 근데 유성아. 상관없어. 네가 뭘 봤든……. 세상의 그 누구도 네 말을, 아니 내 힘은…… 믿지 않아.]

그래. 그때 신하윤이 보여준 행동들은 절대 5살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난 말이지. 유성아…… 모두를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어, 나약한 수준 미달들에게 군림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신하윤이 마치 이미 또 다른 인생을 겪어본, 그게 아니라면 ‘기억’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라면?

‘그런 게 가능이나 할까?’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통해 추리를 한다면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고서를 읽을 수 있는 신하윤의 지식. 그리고 어른들을 뛰어넘는 계산적인 행동. 5살 때 이미 염동력을 자유자재로 다룬 실력.

‘만일의 가능성이지만 신하윤이 누군가의 편린을 얻었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야.’

물론 대부분의 편린은 고랭크의 던전이나 탑에서나 얻을 수 있기에 가정부터가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이라도 하지 않으면 신하윤의 존재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내 추리대로 생각한다면…… 신하윤은 누구의 편린을 얻었을까?’

그렇기에 신유성은 짜 맞춰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동화율이 높으려면 편린의 주인은 신하윤처럼 염동력을 다루는 존재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금의 정보로는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하다못해 아티팩트를 모으고 있는 이유만 알 수 있어도…….’

그러나 벌써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신유성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온을 찾아온 구원투수가 있었다.

사그작. 사그작.

조용한 호숫가에서 마른 나뭇잎을 밟으며 추운 날씨에도 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갈색 머리의 소녀.

“안녕,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이젠 너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더구나.”

그리고 그 옆에는 익숙한 얼굴인 유월이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유성아.”

하지만 유월은 같이 따라온 소녀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당신이 직접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그래도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느니라. 근데…… 역시 잘 찾아온 거 같구나. 참, 피는 못 속인다고 해야 할까?”

에르제는 신유성의 손을 잡더니 손등에 코를 대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혹시, 불쌍한 사람을 위해 헌혈할 생각은 없더냐?”

에르제는 신유성의 마나가 마음에 들었는지 혀로 입술을 훑으며 입맛을 다셨다.

에르제에게 농축된 힘과 정갈한 마나를 가진 헌터의 피는 정말이지 극상의 미식이었다.

그러니 일주일 전부터 흡혈을 참고 굶은 에르제가 탐을 내는 것도 당연한 이치.

“이 정도로 달콤한 마나라면…… 한 모금만 마셔도 참 기쁠 거 같거늘.”

물론 신유성의 손에 이를 드러낸 에르제는 금방 유월에게 목덜미를 잡혀 제압당했다.

“악!, 켁! 무슨 짓이냐!”

“그런 짓을 했다간 당신에게 마늘로 목걸이를 만들어주겠습니다.”

“끄으윽! 그놈의 마늘! 대체 네가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마늘을 무서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결국 신유성의 피를 탐내던 에르제가 뒤로 끌어내고 유월은 신유성의 앞에 섰다.

“유성아. 널 부른 건 다름이 아니고 이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사아아-

유월이 포켓에서 꺼낸 건 보랏빛 보석이 아름답게 빛나는 목걸이였다.

물론 평범한 목걸이는 아니었다. 보랏빛 보석에서 풍겨 나오는 엄청난 마나로 보아 목걸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아티팩트’.

“이건?”

거기다 등급도 유니크 이상의 엄청난 가치의 보물이었다.

“이 목걸이의 이름은 아우로라(Aurora). 마녀 모르간이 쓰던 목걸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물론 신하윤 그 앙큼한 계집이 노리던 아티팩트 중 하나라는 사실이지. 우리들에게 빼앗겼지만 말이다.”

유월의 말을 끊은 에르제는 목걸이를 빼앗아 들더니 약간의 마나를 불어 넣었다.

츠즈즛!

에르제의 손에서 특유의 진홍빛 마나가 목걸이를 감싸자 아우로라는 그 힘에 공명했다.

구우웅-

만족한 듯 미소를 지은 에르제는 호수를 향해 다가갔다.

“자 보아라.”

그리곤 에르제가 목걸이를 호수에 담그자 목걸이를 통해 뿜어져 나온 진홍빛 마나는 물감처럼 주변을 향해 퍼져나갔다.

아니, 호수만이 아니었다.

호수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인 아우로라의 힘은 푸르른 새벽의 달빛을 진홍빛으로 바꿔 놓았다.

이건 환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을씨년스러운 지옥의 풍경이었다.

“아우로라는 몽환의 마녀 모르간의 목걸이니라. 소유자의 마나에 반응해 원하는 대로 공간 전체를 왜곡하지.”

마녀 모르간의 아티팩트.

왜곡의 목걸이 아우로라.

“몽환의 마녀 모르간?”

만약 에르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하윤은 왜 모르간의 아티팩트를 비밀리에 손에 넣으려고 했을까?

그리고 왜 자신이 아티팩트를 모으는 사실과 ‘모르간’이라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길 원했을까.

하지만.

“그래. 유월 당신이었구나?”

적막한 숲을 가로지는 신하윤의 목소리.

저벅저벅.

“안녕 모두? 후훗……. 내가 못 올 곳을 왔나?”

“하윤이 네 말대로. 정말 숨어들어왔었군.”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신하윤과 그 곁을 지키는 이혁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우로라가 신하윤이 찾던 아티팩트라는 에르제의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스으윽-

신하윤이 에르제를 향해 손을 뻗자 염동력의 힘이 엄청난 물리력으로 목걸이를 끌어당겼다.

쐐액!

팡-! 와장창!

마치 유리처럼 아우로라의 결계가 부서지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세상. 신하윤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아우로라를 바라보더니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내 뒷조사를 하는 건 알았지만 아우로라를 손에 넣은 게 당신이라니. 유월 당신 꽤 유능하구나?”

신하윤이 아우로라를 쥔 반대편 손을 머리 위로 올리자.

푸드득-

금색의 동공을 가진 보랏빛 올빼미가 신하윤의 손등 위로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조심했어야지. 낮말은 새가~ 밤말은 쥐가~ 듣는다. 아, 후후, 물론 내 경우는 올빼미지만.”

신하윤이 다루는 올빼미는 패밀리어 소환. 마녀의 흑마술과 관련이 있는 스킬이었다.

“놀란 건 내 쪽이다. 네가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이 일련의 사건은 끝까지 숨기려던 게 아니었나?”

씨익-

신하윤은 한쪽 입꼬리를 높이 올렸지만 눈은 너무나도 차갑게 유월을 노려보았다.

“뭐, 당신들이 잘 짚은 거지. 내게 아우로라는 그럴 가치가 있는 아티팩트거든. 당신들이 귀찮은 짓을 한 덕분에 말이야. 계획이 많이 꼬였거든.”

하지만 웃는 건 거기까지 신하윤은 유월을 노려보며 딱딱하게 표정이 굳었다.

“설마 당신들~ 날 상대로 아우로라를 돌려받고 싶은 건 아니지?”

신하윤의 기세에 반응한 건지 부엉이는 깃털처럼 세공된 손잡이를 가진 레이피어로 변했다.

콱!

레이피어가 부드러운 흙바닥에 꽂히자 이혁은 그 레이피어를 뽑아 쥐며 말했다.

“원한다면 전력으로 상대해주지.”

유월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에르제를 바라보자. 에르제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벌써 전면전을 할 생각은 이쪽도 없었거늘. 물론 이 귀여운 꼬마가 도와준다면 못 할 것도 없다만…….”

유월도 에르제도 신유성을 끼어들게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끌끌. 그럼 이 정도는 거래라고 생각하자꾸나. 체면도 잊고 이렇게 쫄래쫄래 온 것을 보면…….”

말을 하던 에르제는 훗- 하고 신하윤을 비웃었다.

“네 목표가 마녀 ‘모르간’을 부활시키는 일과 연관된 사실을 자백한 셈이나 다름없지 않더냐?”

이미 의심을 산 이상 신하윤은 모르간과 자신이 연관된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모르간의 부활이라. 재밌네. 완벽히 맞춘 건 아니지만 비슷해.”

신하윤은 모르간의 기억을 가진 채 환생했다. 그렇기에 이건 세계를 ‘몽환’의 힘으로 물들이고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기 위한 자신의 두 번째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번에는 달라.’

신성왕의 후계자.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멸악(滅惡)의 기사.

라플라스를 처치한 기사는 모르간에게 담담하게 판결을 선고했다.

[마족과 결탁하여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의 무게는 너의 목숨으로도 갚을 수 없을 만큼 크다.]

멸악의 기사는 이름처럼 모르간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 악을 멸했다.

그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르간은 그게 자신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벌써 섣부르게 소란을 키울 필요는 없겠지.’

힘을 되찾고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지금은 신하윤에게도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조용히 돌아섰던 신하윤은 유월과 에르제가 거슬린 듯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너희 뒤에 누가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소란 피우진 마.”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신하윤과 이혁.

‘동화율은 상관없어.’

신유성은 그런 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신하윤이 얻은 편린은 마녀 모르간의 것이다.’

공교롭게도 마침 신유성의 파티에는 또 다른 마녀가 있었다. 모르간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마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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