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아무래도 따뜻한 걸 껴안고 있어야 잠이 온다는 아델라의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아니 추우면…… 방 온도를 높이든지.’
이 넓은 침대에서 굳이 서로의 몸이 맞닿은 채로 민망하게 붙어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눈을 감거나 잠을 자려고 하는 게 아니라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델라의 시선이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대체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데?”
껌벅껌벅.
눈을 깜박인 아델라는 김은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군요.”
사람 얼굴을 보며 신기하다니.
무슨 뜻인진 몰라도 욕이 아닐까? 김은아가 찝찝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자. 아델라는 김은아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염색도 아닌데 이렇게 색이 다르다니. 유전인가요?”
끄덕끄덕.
“어어, 뭐, 맞긴 한데…….”
볼이 붉어진 김은아는 멋쩍게 답하자 아델라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볼을 쓸어내렸다.
“피부도 무척 좋군요. 따로 관리를 받고 있는 겁니까?”
“우리 집에 있을 땐 그랬는데 나 혼자선 그냥, 간단하게…… 팩 정도?”
이런 민망한 순간에도 칭찬에는 약한 그녀였다. 서로를 탈락시키기 위해 전투를 치렀던 상대와 이렇게 한 침대에서 잠이 들게 되다니.
하지만 김은아는 아델라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해도 싫진 않았다.
‘……이 녀석. 몸이 닿는 정도는 신경도 안 쓰는구나.’
신유성은 산 속에서 12년을 살았으니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뭘까.
‘그러고 보니…….’
1학년 내내 라이벌을 자처했지만 김은아는 아델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렇게 김은아의 생각이 깊어지며 표정이 굳자 아델라는 손을 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혹시 불편합니까? 불편하면 떨어지겠습니다.”
“아니. 상관없어. 근데…… 나, 하나만 물어도 되냐?”
아델라는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은아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다…….”
아델라는 그런 김은아의 반응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당당함을 넘어 시끄러울 정도면서 갑자기 이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왜일까?
“정말 괜찮습니까? 저에게 궁금한 게 있었던 거 아닙니까?”
결국 아델라가 집요하게 추궁을 하자 김은아는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아니, 그냥……. 전에 유성이랑 너 한참 둘이 있었잖아. 그때 뭔 일이 있었나 하고…….”
김은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지만 뒤에 붙인 한마디는 초조함이 덧붙였다.
“둘이…… 많이 친해진 거 같던데…….”
아델라는 김은아의 말에 곰곰이 생각을 짚었다. 이탈리아로 방문 했던 신유성. 그 뒤에 벌어진 사도닉스 레이드. 하지만 김은아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더욱 뒤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아마…… 루인성의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루인성의 이야기를 하라고 해도 콕 짚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일에 관해서 설명하려면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루인성? 들어본 거 같은데.”
아마 김은아가 루인성의 이름을 읽은 곳은 분명 교과서일 것이다. 겨울의 마녀 루이스의 재림은 꽤 유명한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이스를 공략한 헌터가 아덴인 건 알아도 루이스에게 피해를 입은 헌터가 누구인진 몰랐다.
“겨울의 마녀. 루이스가 공략한 장소입니다.”
아델라는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향한 감정이 명확해진 지금. 아델라는 조금은 괴로운 듯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뭐, 뭐야, 너 괜찮아?”
김은아는 처음 보여주는 아델라의 약한 모습에 당황스러운 듯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델라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루인성에 간 이유는…… 벨벳을 위한 냉매를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고 나서야 아델라는 아덴이 루인성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신의 가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델라는 김은아를 보더니 좀처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닌,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미소는 김은아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 아마…… 오빠는 집에…… 있겠지? 지금 엄마는 일본에 있을 거고…….”
하지만 그 대답에 그저 담담하게 웃어주는 아델라를 보고 나서야 김은아는 알아챌 수 있었다.
“제 가족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아델라가 지어준 미소에 담긴 감정은 그리움이자 슬픔이라는 걸.
“……루, 루인성? 미안! 이런 걸 물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루인성은 겨울의 마녀가 있던 장소. 이 이상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김은아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자 아델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난 일입니다.”
저런 큰 사건을 어떻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겉이 멀쩡해 보인다고 속도 멀쩡한 건 아니었다. 워낙 잘난 탓에 주변의 모든 일에 무감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감정이 닳아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지금의 저에겐 벨벳이 있으니까요.”
김은아는 그제야 너무나도 벨벳에게 애틋했던 아델라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아델라에게 벨벳은 ‘가족처럼 소중한’ 것이 아닌, 가족 그 자체였다.
“벨벳을 만나고……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아델라가 헌터가 된 원동력은 단순했다. 적어도 가슴이 뛰는 전투를 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더욱 강한 상대와 싸운다.
딱 그 정도의 각오가 목표이자 이유였다.
“전, 수많은 위협에서 세계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벨벳을 위해서?”
김은아가 하나밖에 없는 정답을 조심스럽게 말하자. 아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긴 벨벳이 살아갈 세상이니까요.”
스윽-
아델라가 시선을 맞춘 채 엉금엉금 기어 침대를 짚으며 다가오자.
통.
“어, 읏…….”
뒤로 물러서던 김은아는 자연스럽게 침대에 눕혀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델라는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았다. 홀릴 듯 아름다운 붉은 눈으로 무표정하게 김은아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당신은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추위를 겪어본 적이 있나요?”
아래를 향해 늘어지는 하얀 머리카락. 주황빛 조명. 이상하게 숨이 막히는 분위기에 숨을 참은 김은아는 대답 대신 침대보를 움켜쥐며 고개를 저었다.
“참을 수 없는 추위는 모든 의지를 꺾어 놓습니다.”
어느 때보다 차가운 눈을 한 아델라는 침대보를 쥔 김은아의 손을 지그시 눌렀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게 만들죠. 하지만…….”
꽈악-
아델라는 김은아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만큼 강하게 손을 움켜쥐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치 속삭이듯 작아지는 아델라의 목소리.
“그건…… 외로움입니다.”
홀로 남겨진 이의 외로움을 아델라는 잘 알고 있었다.
홀로 방에 남아 캔에 담긴 음식을 먹고, 홀로 침대에 누워 곰 인형을 껴안은 채로. 수없이 많은 밤을 보냈지만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는 벨벳을 위해 이 세상을 지키고 싶지만. 그 이상으로 벨벳을 홀로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아델라가 이야기하는 목표란 세계를 구하겠다는 이타적인 감정이나. 거창한 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김은아는 더욱 이해가 됐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신유성이 아델라에게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분명 상처 받은 아델라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며 따뜻함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자신이 신유성을 좋아하게 된 이유. 김은아는 신유성이 얼마나 올곧은지 알고 있었다.
“그럼…… 유성이는?”
아델라는 과연 그런 신유성에게 무슨 감정을 느낄까?
김은아는 체면조차 잊은 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자신이 발가벗은 듯 창피했다.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지켜주던 얇은 벽조차 모두 허물어진 듯 느껴졌다.
“유성이는 너한테 뭔데?”
하지만 도저히 참지 못하고 김은아가 질문을 하자 아델라는 아아- 하고 고개를 흔드는 것이 명쾌한 대답을 찾은 모양이었다.
“벨벳은 저와 그 사람의 마나를 양분 삼아 태어났습니다. 저는 벨벳의 어머니고……. 그 사람은 당연히…….”
아델라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김은아는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잠깐 잠깐! 마나를 좀 나눠준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벨벳은 같이 키운다며! 벨벳은 나도 엄마라고 부르는데!”
발끈한 김은아가 힘을 주며 일어나자 아델라는 순순히 뒤로 넘어져주었다.
깜박. 깜박.
김은아를 보며 깜빡이는 투명하고 붉은 아델라의 눈.
“하지만…… 벨벳의 아버지가 그 사람이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벨벳의 엄마는 자신이고.
아빠는 신유성이다.
그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아델라를 보며 김은아를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서! 뭐 유성이랑 가정이라도 차리겠다는 거야!?”
하지만 진짜 김은아를 열을 받게 만드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델라의 모습이었다.
“좋은 가정을 위해 벨벳에겐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벨벳을 위한 가정을 차리기 위해 신유성을 가지겠다니?
자신의 기준에서 너무나도 파렴치한 아델라의 말에 김은아는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델라가 말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캬항~ 아델라 엄마! 결혼 축하해! 웨딩 불 뿜기-!]
웨딩 드레스를 입은 아델라와 정장을 입은 신유성. 그리고 그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벨벳.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잘 어울리는 셋의 모습에 김은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후.
단호해진 얼굴로 아델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유성이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