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66화 (266/434)

제266화

정사각형의 구조물.

환하게 달빛이 비추는 하늘.

찰랑. 찰랑.

클로의 주변에는 물이 넘실거리는 수로(水路)가 있었다.

‘대단하군.’

리벨리온의 멤버들이 영약을 흡수하거나 제련할 때 사용하는 이 장소의 이름은 수로사방진(水路四方陳).

특수처리된 물에는 주변의 기운을 정사각형의 구조물로 모아주는 힘이 있었다.

“……끔찍한 고통일 텐데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군.”

클로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신기한 얼굴로 물었다. 수로 사방진은 기본적으로 마나 결계다. 주변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마나는 한 곳으로 밀집되며 즙을 짜내듯 농축된다.

심지어 클로가 들고 있는 건 황룡의 여의주.

“아프지 않은가?”

망망대해의 바다처럼 방대한 여의주의 마나는 마나 통로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야 정상인 상황에서도 여의주의 재생력은 끝까지 대상자를 치료한다.

기본적으로 류밍이 걸린 마나 질환은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지만 이건 병을 제거하는 치료 같은 게 아니었다.

병에 걸린 통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새롭게 재탄생 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그 대가는 당연히 뒤따르는 끔찍한 고통이다. 고통에 찬 비명은 당연하고 어쩌면 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류밍은 눈을 번뜩이며 이를 꽉- 깨물고 클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이런 고통 같은 건. 익숙해요. 이것만 참으면…… 나을 수 있으니까.”

용케 기절하지도 않고 정신을 붙잡은 채 중얼거리는 류밍을 보며 클로는 흥미를 느꼈다.

“그래? 그럼 너에게 고통만 안겨준 이 불공평한 세상이 원망스럽진 않나?”

클로의 물음에 류밍은 슬픈 얼굴로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네. 오빠는, 제 걱정을 무척…… 많이 했으니까.”

류밍은 고통 때문에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클로가 쥔 여의주를 올려보았다.

“저 알고 있어요. 오빠는, 이거 때문에 무척…… 소중한 걸 포기한 거죠?”

클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체도 정신도 모두 갉아먹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자연히 단련되었기 때문일까?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 허약해 보이는 이 꼬마에겐 이상하리만큼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전 알아요. 몸이 아픈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잠깐의 숨 고르기.

“정말, 참을 수 없이. 아픈 건 마음이니까. 그러니까 분명 오빠가 더 아팠을 거예요!”

말을 끝낸 류밍에게 클로는 한 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너를 아끼기 때문에?”

하지만 류밍은 대답 대신 고통 때문에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헤헤- 하고 웃어 보였다.

“멋지군.”

콰악-!

클로가 여의주를 움켜쥐었다.

사아아-!

황룡의 여의주가 부서지며 새어 나온 금빛의 물결은.

콰작, 카드득-!

알의 껍질을 부수고, 빈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듯 류밍의 몸으로 새어 들어갔다.

“윽, 끄으윽-!”

류밍은 몸 안의 마나 통로가 터져 나가는 고통에 이를 꽉 물었다.

눈과 입의 근처에서 금빛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구우웅-!

금빛의 마나는 류밍의 몸을 터트려 버릴 듯 진동하며 파장만으로 돌풍을 만들어냈다.

철썩-! 철썩!

그 여파로 수로의 물이 매섭게 철렁이며 주변 위협하자 클로는 자세를 낮춰 류밍에게 속삭였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지. 새에게 알은 곧 세계다.”

그렇다면 류밍에겐 무엇이 알일까. 마나 질환으로 자신을 갉아 먹어온 저주받은 몸일까?

아니면 병원의 생기 없는 회색 풍경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일까?

그 알에 갇혀 있는 건 무엇일까?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너의 허물을 부숴야 하는 거야.”

클로는 금빛의 물결로 잘게 부서지는 류밍에게 속삭였다.

“……너는 지금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거다. 자, 말해봐. 무엇이 되고 싶지?”

기이잉-!

수십 수백 개의 거대한 쇠 톱날이 회전하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류밍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번쩍.

눈앞에서 점멸하는 빛과 함께 소리는 씻은 듯 사라졌다.

“어…….”

류밍의 눈 앞에 펼쳐진 건.

황금의 바다.

넘실거리는 물결.

자신을 내려다보는 금빛용.

“……여긴?”

어안이 벙벙해진 류밍이 고개를 들자. 거대한 금빛용은 붉은 눈으로 류밍을 꿰뚫었다.

- 내가 너를 부른 것이 아니다. 네가 나를 부른 것이다.

그렇게 말한 금빛용이 고개를 숙이자. 류밍은 벌벌 떨면서도 홀린 듯 금빛용의 머리에 올라탔다.

부웅-

금빛용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자. 류밍은 좁고도 좁은 자신의 세상이 한눈에 보였다.

금빛의 물결이 넘치던 수로.

회색의 병실.

유일한 낙이었던 창가의 풍경.

류밍의 모든 것이었던 세상은 클로의 말처럼 부서지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 너는 무엇이 되고 싶지? 네 세상을 어떻게 다시 창조하고 싶나?

류밍은 금빛용의 어렵고 거창한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전, 그냥, 적어도……. 저와 제 곁에 있는 사람만이라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답이 되었던 걸까.

- 정해졌군. 좋다.

금빛용의 목소리와 함께 세계가 꺼졌다. 눈앞은 다시 캄캄해졌고.

철썩- 철썩-

시끄럽게 파도처럼 철썩이는 수로의 소리가 류밍을 깨웠다.

“아…….”

마치 긴 잠에서 깬 듯 몽롱한 얼굴로 눈을 뜬 류밍에게 클로는 흰색 가운을 걸쳐주었다.

“축하한다. 넌 새롭게 태어났다. 아, 그래. 직접 확인해보는 게 좋겠지.”

딱-

클로가 손가락을 맞대 소리를 내자 류밍의 앞에는 전신 거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거울에 비친 건 지금까지의 자신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긴 생머리.

160에 가까운 제법 큰 키.

이젠 흐릿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외모.

“이, 이건…….”

류밍은 놀라는 목소리마저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네가 새롭게 얻은 몸이다. 아마, 병에 걸리지 않고 마나가 넘쳤다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겠지.”

류밍은 황룡의 여의주로 모든 결핍을 채우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바뀐 건,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넌 아직 느껴지지 않는 건가?”

류밍은 클로의 말에 그제야 화끈거리는 손등을 보았다. 손등에는 지금껏 본적 없는 문양이 금빛으로 새겨져 있었다.

“제, 제게, 특성이 생긴 건가요?”

클로는 류밍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처음부터 헌터였다. 가려져 있었을 뿐.”

스윽-

류밍에게 다가온 클로가 장갑을 벗었다. 장갑 속에 가려진 손에는 칼에 베인 듯 오래된 흉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특성은…….”

클로는 흉터가 있는 손으로 류밍의 손을 잡았다.

사아아-

그러자 류밍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금색의 빛과 함께 씻은 듯 사라지는 클로의 흉터.

“우리에게 엄청난 전력이 될 거 같군.”

류밍의 특성은 헌터 협회에서도 구하지 못한 가장 희귀한 특성. 치유계 능력이었다.

*     *      *

샤워를 끝내고 남색 파자마를 입은 김은아는 후우- 숨을 내쉬며 노곤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뭐, 내가 데려온 마당에~ 눈치 볼 필요는 없어. 편하게 걸치고 네 집처럼 지내.”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생각에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채널을 하나씩 돌려보는 김은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침 챙겨온 옷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샤워실로 들어간 아델라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김은아는 못 볼 꼴을 본 듯 기겁을 했다.

“너, 너 뭐야! 그 꼴은!”

얼마나 놀랐는지 소파에서 일어나 얼이 빠진 얼굴로 아델라를 바라보는 김은아.

“무엇이 말입니까?”

반면 아델라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빨대로 체리 맛 콜라를 쥬으읍- 빨았다.

“다, 당연히 네 옷이지!”

김은아는 어이가 없는 듯 위아래로 아델라의 옷을 훑어보았다. 헐벗은 것보다 더욱 파렴치한 이 옷은 대체 어디서 준비해온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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