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65화 (265/434)

제265화

스미레가 요리를 하던 주방.

그곳에서 잔뜩 혼난 벨벳은 스미레에게 직접 교육을 받고 있었다.

“벨벳! 사람을 향해 불을 뿜으면 안 된다고 했죠?”

스미레가 단호하게 주의를 주자 벨벳은 고개와 꼬리를 같이 절레절레 흔들며 억울함을 설파했다.

“아, 아냐! 안 잊어써! 벨벳도 알아! 근데 벨벳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인 줄 아라써…….”

권왕 유원학.

헌터들의 정점인 그의 위압감은 벨벳에게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괴물이라니! 아니에요! 권왕님은 유성 씨의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벨벳은 스미레의 이야기에 바보처럼 입을 멍하니 벌리더니 갸웃- 고개를 움직이며 말했다.

“아, 아빠의 아빠? 하지만…….”

벨벳은 권왕의 얼굴.

그리고 신유성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렸다.

“미, 믿을 수 업써……. 할아버지는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아써!”

도도도- 톡-

벨벳은 의자에서 내려와 스미레의 팔뚝을 만졌다. 벨벳은 이렇게 상대와 피부가 맞닿으면 아직 생각을 읽진 못했지만 감정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호, 호엑. 거짓말이 아니야!”

비록 종족도 머리색도 전혀 달랐지만 벨벳은 자신과 신유성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드래곤답게 벨벳은 나름 미의 기준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벨벳은…….”

벨벳은 고개를 저으며 슬픈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얼굴. 드래곤에게 미모라는 것은 귀중한 보물이었다.

“아빠가 할아버지를 닮지 않았으면 좋게써……. 절대 안대…….”

스미레를 앞에 두고 벨벳은 부디 그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진지하게 기도했다.

*     *      *

세월은 빠르다.

겨우 5살에 불과했던 꼬마가 훤칠한 청년이 된 모습을 보며 유원학은 미소를 지었다.

“유성아.”

유원학은 칭찬에 인색했다.

무신산에서도 아무리 신유성이 자랑스러워도 잘했다는 한마디가 전부였고, 이 세상에는 강자들이 넘쳐나니 자만하지 말아라!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이제 너도 헌터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구나.”

신유성은 그런 스승에게 인정을 받았다. 하산 이후 신유성은 정말이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 어떤 승리와 성공도 권왕의 칭찬보다 기쁘진 않았다.

“스승님…….”

어쩌면 이건 줄곧 꿈꿔온 순간.

신유성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마주 보자 유원학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물론 아카데미 수준에서나 말이다! 계속 정진해야 한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신유성은 그런 유원학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전의 신유성이라면 곧이곧대로 유원학의 말을 받아들였을 테지만 오늘은 익숙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신유성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을 꽤나 가까운 곳에 두고 있었다.

‘이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신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과 은아의 모습이 겹쳐 보이다니…….’

그건 김은아가 안다면 신유성을 가만두지 않을 상상이었다.

유원학은 제자의 발칙한 상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국가 대항전의 우승을 기념해 너에게 선물을 주려 했지만……. 내용을 바꿔 네가 부탁을 말해 보거라. 들어주마.”

“그렇다면…….”

유원학의 말에 곰곰히 고민을 하던 신유성은 아까완 다른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스승님께 묻고 싶습니다. 류진이 말한 사건의 전말……. 협회의 진실을 스승님께선 알고 계십니까?”

하지만 유원학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잠깐의 뜸을 들인 유원학은 신유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임리스가 리벨리온을 만든 이유와 거기에 협회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곤 도저히 믿기 힘든 충격적인 말을 했다.

“어쩌면 리벨리온의 탄생은 우리의 죗값이니 말이다.”

“리벨리온의 탄생에 협회가…….”

신유성이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자. 유원학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강유찬 그 녀석은 겁을 먹었거든.”

한국의 헌터 협회장이자 최강자의 헌터 중 하나인 강유찬이 겁에 질리다니?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유원학은 의문만 쌓여가는 정체불명의 이야기에 더욱 궁금증을 더했다.

“유성아. 우리가 탑에서, 아니 차원의 저편에서 본 것이 궁금하지 않더냐?”

“탑의 고층 말이십니까? 하지만 스승님과 동료 분들께서 본 것이라면…….”

인터뷰에서 밝힌 것 이외에 또 다른 진실이 있단 말인가?

유원학은 혼란스러워 하는 신유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궁금하다면 말해 주마. 우리가 본 것을. 탑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     *      *

신유성이 유원학과 부실을 나가고. 부실에 남게 된 파티원들은 모두 신유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쫑긋- 쫑긋!

하지만 이번에도 레이더처럼 꼬리를 세우며 신유성의 기척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벨벳이었다.

“아빠가 돌아 와써-!”

아니나 다를까, 벨벳의 말처럼 곧이어 문이 열리고 신유성이 들어오자. 아델라와 벨벳은 문까지 직접 걸어가 신유성을 반겼다.

“캬항! 아빠-!”

“금방 돌아오셨군요.”

달랑달랑~

신유성의 다리에 매달린 벨벳.

“응. 스승님께선 무척 바쁘셔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가온을 떠나셨거든.”

신유성을 보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팔짱을 끼고 소파로 인도하는 아델라.

‘저게 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은아는 몹시 불편한 듯 한쪽 턱을 괴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스미레는 김은아의 날 선 반응과 달리 아델라의 스킨십이 상관없는 듯 신유성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셨는데……. 아쉬우셨겠네요.”

“응 어쩔 수 없지 스승님 같은 강한 헌터는 세계에서 찾는 곳이 많으니까.”

하지만 김은아는 위로하는 스미레와 수긍하는 신유성을 보며 결국 아이디어를 냈다.

“그럼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는 건 어때?”

“사진?”

“……뭐, 넌 찍은 적도 없지? 보고 싶을 때, 가끔 꺼내보면 얼마나 좋은데? 요샌 포켓으로 보내기도 쉽고…….”

시큰둥한 얼굴을 하면서도 착실하게 신유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김은아.

“좋네요! 마침 저희 스크린에는 촬영 기능도 있으니까요! 저희 가족들에게도 보내야겠어요!”

스미레가 스크린의 세팅을 마치는 동안 신유성은 소파에 앉았다.

“그래. 모두 함께 찍자.”

“그럼 벨벳은 제일 중앙-!”

벨벳은 냉큼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신유성의 무릎 위에 앉았다.

‘난 유성이 옆이네.’

아까부터 쭉 소파에 앉아 있던 김은아는 자연스럽게 신유성의 옆자리가 되었다.

‘사진 찍는데 너무 달라붙는 것도 그러니까.’

가족들에게 보낼 걸 감안해 신유성과 김은아는 너무 부끄럽지 않게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했다.

착-

하지만 아델라의 생각은 김은아와 다른 모양이었다. 완전히 몸을 밀착시켜 팔을 끌어안더니 머리는 아주 어깨에 기대버렸다.

‘아, 아니 사진 찍는데 저렇게까지 붙어?’

정말 사진을 찍고 싶은 게 맞은 지 아델라가 신유성을 끌어안고 만족한 듯 행복해 보이는 얼굴 눈을 감자.

‘저게 진짜…….’

용기를 낸 김은아는 질 수 없다는 듯 자신도 신유성에게 팔짱을 꼈다.

“자 그럼 모두 스크린 쪽을 바라보며 웃어 주세요!”

세팅을 끝낸 스미레는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지만.

“응!”

“캬항! 벨벳은 엄마가 세 명이니까! 트리플 쁘이-!”

그 말을 따르는 건 벨벳과 신유성뿐이었다. 아델라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며 행복을 느끼고 있었고, 김은아는 찌릿찌릿- 한 눈빛으로 그런 아델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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