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화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부실로 돌아온 신유성과 김은아.
“에이미는 어디 있어?”
부실을 둘러 본 김은아가 에이미를 찾자. 소파에 앉은 벨벳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방송하러 가써. 은아 엄마도 이거 가치 볼래?”
아델라와 벨벳은 스미레의 음식을 기다리며 [기계 문명과 공룡의 전투]라는 정체불명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이 영화 엄청 재밌다! 근데 왜 드래곤이 날개가 없는 거야? 불도 못 뿜어!”
“벨벳? 저 생물은 드래곤이 아니라. 공룡입니다.”
어지간히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아빠도 여기! 여기!”
도도도-
달려온 벨벳이 신유성의 손을 잡아끌자.
“그래. 그래. 알겠어. 벨벳.”
신유성은 기꺼이 미소를 지으며 소파로 끌려가주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은아는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당신은 오늘의 외출이 끝나신 건가요?”
아델라는 스크린을 보며 신유성에게 말을 걸더니 아무렇지 않게 신유성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 착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부부처럼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에 김은아는 옆 소파에 앉아서 허- 하고 헛웃음을 쳤다.
‘아니 소파도 큰데 왜 저렇게 딱 붙어 있어?’
무표정한 얼굴로 이젠 신유성의 팔에 몸을 기댄 아델라.
“역시…… 당신 몸은 따뜻하군요. 당신만 있다면 손난로는 필요 없겠습니다.”
겨우 ‘따뜻하다.’라는 이유로 몸을 밀착시킨 아델라를 보자니 입가가 파르르- 떨려올 지경이었다.
‘여긴, 정상인이 없어.’
어쩜 이렇게 부끄럼도 상식도 없는 걸까? 아니 어쩌면 내가 이상한 걸까?
한가지 다행인 사실은 김은아가 아델라와 신유성이 루인 성에서 연인처럼 안아주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아마 그 사실을 안다면 분명 삐져버리거나 토라져 버리겠지만 아직까진 질투와 심기가 불편한 수준에 그쳤다.
‘겨우 따뜻하다고 남들 다 보는데 저러면 부끄럽지 않냐고……. 아니면 정말 이성으로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김은아의 상식에 태클을 거는 건 이제 시작이었다.
“아…… 그리고 오늘은 당신의 숙소에서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아, 그러네. 아델라 네 짐은 내일 옮길 예정이라고 했나?”
김은아가 보는 앞에서.
김은아가 절대 용납 못 할 일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는 둘을 보며.
“……그럼. 내 숙소에서 자.”
찌릿.
김은아는 심기가 불편한 눈으로 아델라를 바라보았다.
스미레는 벨벳과 지내고 있으니 이해한다지만 김은아 자신을 두고 신유성의 숙소에서 지내겠다니? 그녀는 아델라의 부탁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델라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전 오늘은 신유성 당신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김은아보단 신유성과 함께 있고 싶고. 김은아보단 신유성의 숙소가 좋다. 분명 그건 아델라의 솔직한 마음이었지만 김은아를 결국 길길이 날뛰게 만들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결국 참다 참다 화가 터져버린 김은아.
“……왜죠?”
아델라는 김은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묻자. 김은아는 허- 허허허 하고 웃더니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래!”
“하지만 제가 스미레의 숙소에 머물 때는…….”
“나, 남자랑 여자는 달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미쳤어!? 나는 설명 못 해! 그, 그건 원래 당연한 거야!”
김은아가 불편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제 막 굴러들어온 돌 주제에 박힌 돌을 제쳐두고 신유성에게 연인처럼 팔짱을 끼고 있는 아델라를 보고 있자니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벨벳은 그런 김은아를 빤히 바라보더니 헉! 하고 놀랐다.
“앗! 벨벳 알게써! 지금 은아 엄마의 기분을 읽어써! 은아 엄마는 지금 질, ㅌ…… 웁!”
그렇게 김은아의 성질을 건드리고 비밀까지 누설하려던 죄로 결국 입을 막혀 버린 벨벳.
“뭐라고?”
얼굴로는 웃지만 타오르는 불처럼 이글거리는 김은아의 눈빛에 벨벳은 슬쩍 고개를 피했다.
“아, 아니야. 벨벳이 틀려써…… 벨벳은 아무것도 몰라! 앗, 벨벳 공부할 시간이야.”
도도도-
그렇게 눈치가 빠른 벨벳이 위험을 느끼고 책을 꺼내 읽는 척을 하자. 김은아는 신유성과 아델라의 앞에 섰다.
그리곤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쓰윽 아델라와 신유성의 사이에 끼어 들었다.
“아아…….”
둔한 반응의 아델라와.
“엇, 은아야?”
놀라는 신유성.
“흥.”
자리를 빼앗은 김은아는 아아- 하고 시무룩해진 아델라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 몸도 따뜻해. 정 원하면 넌 내 팔이나 안고 있어.”
원조 파티원답게 아델라와 위계질서를 정리한 김은아는 단호하게 첨언했다.
“아,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넌 오늘 내 숙소에서 자.”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요. 알겠습니다.”
자신의 숙소 파트너가 신유성에게 김은아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아델라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난 괜찮은데…….”
신유성이 눈치 없이 말을 덧붙이자 김은아는 신유성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김은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화를 낼 것이라 예상했을 테지만 신유성과 눈을 맞춘 김은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싫어.”
그리곤 김은아가 축 처진 표정으로 신유성에게 푹 안겨버리자.
“은아야…….”
미소를 지은 신유성은 영문도 모른 채 김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쩌면. 나와 아델라가 친해지는 것에 질투를 느끼는 걸까?’
먼저 파티에 있었던 스미레와 달리 아델라는 한참을 뒤늦게 들어온 파티원이었다. 어쩌면 김은아는 그런 아델라가 자신보다 친해지는 게 싫었던 게 아닐까?
신유성의 추리는 옳았다.
연애 감정만 추가한다면.
아델라는 그런 김은아를 멀뚱멀뚱 보더니 갑자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당신…… 보기보다 어리광이 심하군요. 벨벳과 닮은 것 같아 꽤 귀엽습니다.”
결국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신유성의 손길을 받으며 아델라에게 껴안긴 김은아.
흥얼흥얼-
콧노래와 함께 주방에서 나온 스미레는 앞치마 차림인 걸 보니 요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앗! 하고 놀라며 흔들흔들 반갑게 손을 움직이는 스미레.
“모두 돌아오셨군요! 곧 식사도 완성이에요!”
하지만 서로 껴안고 있는 아델라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신유성의 모습을 보자. 스미레는 뭔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국가대항전으로 많이 힘드셨죠?”
이젠 스미레까지 합류해 모두를 껴안아 주자. 방금까지만 해도 삐져있던 김은아는 조금 기분이 괜찮아졌는지 입을 내밀며 괜히 투덜거렸다.
“역시 너희들은 다 이상해…….”
* * *
김은아와 신유성이 나간 사이 부실에는 꽤 많은 손님이 있었다.
물론 그들을 모두 반갑게 맞이한 건 벨벳.
[난 교장인 진병철이다! 기억하고 있니?]
[아빠는 업써!]
[그래? 우린 우승을 축하하고자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선물을…….]
[벨벳한테 주면 대.]
첫 손님은 교장인 진병철이었고.
[안녕? 네가 그 소문의 드래곤 꼬맹이구나?]
[너는 누구야?]
[나? 나는 가온의 학생회장이야. 신유성의 누나지.]
[헉, 하지만 아빠 업서.]
[괜찮아. 내가 왔다고 전해주기만 해. 축하한다는 말도 함께.]
이혁을 대동한 신하윤도 부실에 들렀었다. 물론 벨벳은 그들을 모두 문 앞에서 돌려보내버렸다.
하지만.
이런 손님은 처음이었다.
그오오오-!
멀지 않은 곳에서 마치 드래곤 로드의 마나를 압축시킨 듯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누군가 부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허걱…….’
벨벳은 느낄 수 있었다.
드래곤인 벨벳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부실로 다가오는 자는 너무나 위험했다.
탓!
책을 읽던 벨벳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빠!’
지금 다가오고 있는 손님에게 벨벳식 비유를 붙여주자면 덩어리였다. 이것저것 세상의 모든 것을 뭉친 거대한 마나 덩어리.
드래곤조차도 상대할 수 없는 본질이 다른 생물이었다.
토다다다-
‘가족드리 위험해!’
벨벳은 짧은 다리로 순식간에 소파를 향해 뛰어왔다.
“엄마아빠! 지금 큰일나써! 모두 빨리 벨벳 뒤로 숨어! 벨벳이 지켜주께!”
벨벳이 불을 뿜을 준비를 하며 경계태세를 갖추자. 놀란 스미레는 벨벳에게 달려왔다.
“벨벳? 대체 무슨 일이에요?”
“스미레 엄마! 완전 대 위험이야! 벨벳 뒤에 이써! 벨벳이 불을 뿜어서 지켜주께!”
결의에 가득찬 눈으로 입구를 지켜보는 벨벳. 어느새 부실의 문이 열리고 벨벳이 경계한 누군가가 들어왔다.
“캬항! 벨벳! 불 뿜기-!”
말로만 하는 줄 알았지.
정말 불을 뿜을 줄이야.
캬오오오-
벨벳은 정말 화려하게 손님을 향해 불을 뿜었다. 그동안 아델라에게 재롱을 부리며 불 뿜기 실력이 늘었는지 제법 화력도 강해져 있었다.
“꺄악! 벨벳!”
“어……, 벨벳?”
놀란 스미레와 멀뚱멀뚱 지켜보는 아델라.
“어, 어어!? 쟤 뭐하냐!?”
눈이 휘둥그래진 김은아.
불이 걷히고 수염 하나 타지 않고 너무나 멀쩡하게 드러난 얼굴은.
“크하하! 오랜만에 만난 스승을 이런 식으로 반겨주다니!”
최강의 헌터.
신유성의 스승인 권왕. 유원학.
“스승님!”
너무나 기쁜 얼굴로 신유성이 한걸음에 유원학을 향해 달려가자 벨벳은 무언가 잘못된 걸 느꼈다.
“캬, 캬항? 사, 사람이어써?”
아무래도 벨벳의 감지 레이더가 잘못 발동한 모양. 벨벳은 유원학을 인간이 아닌 아주 무서운 존재로 착각한 상태였다.
“벨벳? 사람을 향해 불을 뿜으면 안 된다고 했죠?”
그리고 그 상황을 너무나 무섭게 지켜보는 스미레.
꿀꺽- 침을 삼킨 벨벳은 도도도- 달려가 아델라 뒤에 숨었다.
“벨벳은. 아, 아직…… 아기 드래곤이야. 실수할 수도 이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