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62화 (262/434)

제262화

자연물.

마녀.

드래곤.

언데드에 이르기까지 신유성은 다양한 존재들의 마나를 확인하고 느껴보았다.

생물의 마나는 모두 본질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족의 마정석도 변함이 없었다.

아니 변함이 없어야 했다.

‘저 기운은…….’

류진이 사용한 마정석은 마족의 마나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고유한 성질들이 혼합된 느낌이었다.

마족은 물론이며 특정한 몬스터.

거기다 여러 인간의 마나가 억지로 뒤엉켜 있었다.

탓-

자신의 무게를 가볍게 해서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류진은 신유성에게 검을 휘둘렀다.

쩌엉!

마나를 두른 신유성의 손이 검을 막아냈다.

‘보이지 않아.’

류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건 오직 신유성의 감각.

마정석의 힘으로 가속을 극한까지 이루어낸 류진의 속도는 가히 초월의 경지였다.

“……너도 느껴지나 보군.”

류진은 마정석의 힘이 믿기지 않는 듯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신유성처럼 세세하게 분류할 순 없었지만 사용자인 류진은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힘인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힘인지.

그래.

이런 규모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리벨리온의 말은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마정석을 누가 전해줬는지도 알고 있나?”

국가대항전의 결승은 그야말로 전 세계의 인류가 주목하고 있었다. 아무리 헌터 협회의 주축이라도 대회를 중지하거나 가상 포탈을 방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국가대항전은 류진이 진실을 공표하기 위한 최대의 무대가 된다.

“리벨리온이다.”

류진의 충격적인 선언.

“……리벨리온?”

신유성의 표정이 굳었다.

전 세계에 수배가 내려진 리벨리온은 김은아를 납치하려고 한 빌런 단체였다.

“그래. 그렇다면 이 자리를 빌려 말해주지. 이 금지된 마정석을 연구한 건 누구일까?”

류진은 천천히 신유성에게 다가왔다.

“넌 이 마정석을 위해, 몇 명의 실험체가 희생됐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나?”

류진은 전투의 의지가 없는 듯 보였다. 방금의 공격도 마정석의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3천 명이다. 그중 살아남는 건 한 명. ……신유성 너에게 묻지.”

류진은 신유성에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 질문은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금지된 연구를 하고도 절대로 발각되지 않을 자……. 그런 거대한 시설을 헌터 협회의 눈을 피해 만들 수 있는 건 과연 누구일까?”

류진이 내어준 질문은 추측이 어렵지 않았다. 협회에서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는 몇 명 존재하지 않았다.

강유찬. 마녀. 권왕. 검신. 아덴.

전설의 헌터 5명.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건 협회장인 강유찬이었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굳은 표정으로 뱉는 신유성의 말에 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여준 적 없는 미소를 지었다.

“신유성. 너는 믿기 힘들겠지만. 난 내 스승을 믿는다.”

그건 환한 미소가 아닌, 씁쓸함과 불신이 담겨 있었다.

“검신 그는 ‘강함’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걸.”

참으로 길었던 시간이었다.

류밍을 위해 검신의 제자가 되기를 택하고 얼마나 긴 시간을 수련으로 보냈을까?

[과연 검신이 네 동생을 낫게 해줄 거 같아?]

[그럴 생각이었으면 진작 낫게 해주었겠지. 그 사람은 그럴 힘이 있거든.]

리벨리온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며 무릎까지 꿇었음에도 검신은 조소로 답했다.

[그래. 그 정보가 옳다고 생각해보자꾸나. 내가 류밍을 낫게 한다면 내게 넌 무엇을 줄 수 있지?]

그에게 류밍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검신에게 류밍은 그저 류진을 다루기 위한 목줄 정도의 역할었다. 류밍의 불치병이 낫는다면 그 역할이 부서진다.

‘겨우 그까짓 이유로…….’

검신은 고통받는 류밍을 무시하고 이용한 것이다. 자신의 명분과 목적을 위해 약자를 이용한다.

그것이 리벨리온이 말한 실험체들을 희생시킨 마정석의 연구와 무엇이 다를까? 검신은 제자인 자신에게조차 똑같은 행동을 해온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질려버렸다.”

류진이 손을 들었다.

마정석의 붉은 마나는 팔을 휘감으며 거칠게 요동쳤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류진에게 남은 건 분노도 원망도 아닌 잿더미 같은 감정.

“그래. 내 동생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빌런의 손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

츠즈즉-!

원래의 감각이 실타래 같은 집중력을 따라 가는 것이라면 지금 류진이 머금은 힘은 폭죽과 같았다.

츠즉! 팟-!

붉은 스파크가 류진의 몸에서 튀었다. 마정석의 마나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류진의 힘은 강대했다.

낙화유수.

원래의 검로는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운 선을 보여주었지만.

콰자자작-!

천하패검(天下敗劍)

멸검(滅檢)

섬경(纖莖)

마정석으로 발휘한 천하패검의 힘은 그저 순수한 파괴였다.

“부서져라.”

마정석의 기운으로 류진의 오른팔이 검게 물들었다.

화악-!

류진이 일자로 검을 휘둘렀다.

가상포탈조차 구현해낼 수 없는 미지의 마나가 공간을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가상 포탈의 마나 수치가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일자로 시작된 일그러짐은 동그란원을 만들며 블랙홀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콰아아앙!!

[시뮬레이션 실패]

[포탈을 강제로 종료합니다.]

가상포탈이 만들어낸 세상이 류진의 힘에 의해 강제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     *      *

비가 내리는 날은 김은아에게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주었다.

쏴아아-

물은 전기가 통하는 전도체.

상대가 물에 젖어 절대로 공격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김은아는 파괴력만 끌어 올리면 될 일이었다.

물론 같은 파티원이 함께 있다면 능력이 제한되지만 서로의 거리가 멀어진 건 천운이었다.

번쩍!

덕분에 하늘에서 떨어진 푸른 번개와 함께.

[극, 그거걱…….]

콜트는 멋진 등장과 달리 일격에 탈락. 김은아는 하늘에서 번개를 내려치는 것만으로 간단히 승리할 수 있었다.

“끝냈다. 이제 유성이한테…….”

하지만 그때 김은아의 눈앞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가상 포탈의 모든 것이 동그란 점을 향해 빨려들며 마치 블랙홀에 삼켜지듯 눈앞에 보이는 세상 전체가 흡수되기 시작했다.

쏴아아-!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시끄러운 경고음.

거칠게 휘날리는 머리카락.

김은아는 나무를 잡고 최대한 버텼지만 이내 거친 돌풍에 휩쓸리고 말았다.

*     *      *

결승전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해야 할 경기장에는 모두가 약속을 한 듯 침묵만이 가득했다.

포탈에서 나온 류진은 아무 말 없이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류진의 시선이 머문 곳은 검신이 있는 라운지.

“은아야! 괜찮아?”

신유성이 포탈 앞에 쓰러진 김은아를 일으켜 세워주자. 김은아는 머리를 짚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윽, 으……. 으응, 몸은 멀쩡해…… 그냥 현기증이야.”

가상 포탈과 현실은 철저히 분리된 세상이었다. 덕분에 신유성과 김은아는 포탈에 들어서기 전 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제로 공간을 찢어버린 장본인인 류진은 여전히 마정석의 힘을 오른팔에 두르고 있었다.

“이게 당신이 원하던 결과인가?”

류진은 자신을 보고 있을 검신을 향해 라운지를 보며 외쳤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류진의 목표는 같았다. 만약 바뀐 게 있다면 오직 하나. 충성할 대상이 검신에서 네임리스가 되었다는 점 그것뿐이었다.

즈즈즉-

리벨리온은 그런 류진을 환영하듯 포탈의 앞에 공간을 찢어 보라색 아공간을 열어주었다.

“붙잡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6급 헌터 쇼이치는 류진에게 달려들었지만. 마정석을 사용한 류진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슥-

짧게 검을 휘두르자.

쩌억!

엄청난 소리를 내며 갈라진 경기장의 땅. 결국 쇼이치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자 포탈에서 나온 누군가가 그를 비웃었다.

- 객기 부리지 마~ 오늘은 인사를 하러 온 거니까. 응?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특유의 기계음으로 말을 하는 건 치트였다. 빌런으로서의 시그니처인 타이즈를 입은 치트는 헬멧에 달린 전광판으로 메시지를 띄웠다.

[ㅋㅋㅋ~♥]

아공간 앞에선 클로는 겁에 질려 다가서길 꺼리는 헌터들을 경멸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쯧, 헌터 협회의 끄나풀들…….”

클로의 도발에도 덤빌 생각을 하는 헌터가 없었다.

- 빨리 와. 대장이 기다린다고.

“리벨리온의 새 멤버가 된 걸 환영한다.”

치트와 클로가 화려한 데뷔식을 마친 류진을 환영해주자. 류진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검신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제 나는 당신의 제자도. 협회의 헌터도 아니다. 그러니 나를 방해하는 자는…….”

착.

류진이 검에 묻은 기운을 털어내자. 검은색의 끈적한 기운이 경기장 바닥을 녹였다.

그 장면은 류진이 마정석의 마나를 견디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새삼 알 수 있었다.

“모두 벤다.”

이건 검신이 아닌 헌터 협회.

아니 인류 전체를 향한 류진의 선전포고였다.

츠즈즉-

점점 좁아지는 아공간을 보며 클로가 말했다.

“인사는 거기까지 하도록.”

- 그래~ 충분해~ 다들 알아먹었을 거야.

저벅저벅.

아공간을 향해 걷던 류진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류진은 그들이 자신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이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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