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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화 (261/434)

제261화

헌터들에게 움직임이나 속도와 관련된 특성은 수도 없이 많았다.

자신의 신체를 강화해서 속도를 높이는 특성도 여기에 해당했고, 사물을 던지는 속도나 결계 형태로 상대의 속도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 능력만으로 특성이 S등급을 부여받을 순 없었다.

“그래……. 그렇군.”

[가속]

류진은 몸 안의 마나가 요동치며 자신의 신체를 돌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비축해두었던 마나는 빠르게 연소되어 사라지고. 그 흔적을 류진의 몸 안에 남겼다.

이 상태가 바로.

제3식 비경(祕境)

마나를 변환시켜 단순하게 류진의 신체 능력을 증가시켰다. 물론 류진은 기본적인 신체의 능력치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적을 비경 상태로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류진의 [가속]이 S등급을 받게 된 진짜 능력은 그다음 경지부터였다.

제2식 월광(月光)

비경이 단순히 마나로 신체 능력을 강화하여 속도를 올린다면 월광은 변환의 힘이었다.

월광 상태에 돌입한 류진은 마나로 물리법칙을 무시할 수 있었다.

땅을 박찬 순간, 가속된 속도는 질량을 머금고 엄청난 속도로 뻗어나간다. 그 힘을 유지한 채 신체의 무게를 가볍게 변환한다면?

그럼 류진은 탄환처럼 쏘아지고 한 줄기 빛처럼 상대를 향해 돌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를 베기 직전.

자신의 상태를 돌려놓으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적의 공격이 완성됐다.

제1식 비천(飛天)

비천은 간단하게도 그 속력에 살상력을 더해주는 경지였다. 단순히 검격에 한 번 더 마나를 싣는다.

너무나 심플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월광을 사용한 상태에선 그렇지 않았다.

류진은 찰나와 같은 순간.

자신을 가속하고.

무게를 가볍게 변환하며.

상대를 베어내기 전 가속을 유지하며 다시 원래의 상태로 무게를 돌려놓아야 했다.

비천은 이 빠듯한 시간 속에서 [강화]라는 공정을 하나 더 넣는 행위였다.

제0식 무형(無形)

그다음은 류진이 [가속]으로 구현해낸 최고의 경지. 무형.

“나의 스승은……. 너와 다르다.”

툭.

류진이 내려놓은 검은 바닥에 닿자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사아아-

대신 류진의 손에 쥐어진 건 무형의 검이었다. 더욱 빠른 속도로 상대를 베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헌터 협회에선 류진의 특성을 가속이라 불렀지만 더욱 정확한 명칭은 가속과 변환이었다.

류진의 특성이 가속류 최강의 특성이라 불리는 건 단순히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거기에 응용력을 더하는 변환 능력 덕분.

류진은 자신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원래의 검을 버리고. 무형의 마나 덩어리를 택했다.

무형의 마나 덩어리는 류진이 검을 휘두를 때만 질량을 가져야 하는 원리 탓에 복잡한 마나 연산이 필요했다.

류진은 비천을 사용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무형의 검을 더한 것이다.

단순히 속력을 빠르게 만들기 위해 류진은 수없이 많은 요소들을 자신의 특성으로 접합시켰다.

“그는 비겁한 자다.”

무형의 검을 쥔 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류진은 그저 스크린을 보고 있을 류진에게 전하고 싶었다.

“전성기의 힘을 잃고……. 타인에게 꿈을 맡긴 도망자이며.”

류진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했다. 검신을 향한 원망이나 악감정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의 천하패검은 그런 비겁한 자에게 전해 받은 반쪽짜리 검술.”

류진은 원망의 말이 아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만약 하늘이 있다면. 나의 검술은 너에게 패배를 맞이하는 것이 옳은 길이겠지.”

이제 류진은 이 세상의 모두에게 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류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없다.”

이 세상은 불공평하며.

비열하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만이 나아 갈 수 있다. 류진은 정말이지 잔인한 진실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

하늘을 기다려도 바뀌는 건 없었다. 한때는 검신이 하늘이라 믿은 적도 있었지만 동생을 구하고 싶다면 결국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었다. 류밍이 곧 모든 것인 류진에게 그 과정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사아아-

그의 손안에 만들어진 건 작은 크리스탈 모양의 결정. 이것이 바로 류밍을 위해 자신이 택한 길.

모든 결정을 내린 류진은 쓰게 웃었다. 그래 이건 일종의 선전포고.

콰아아아-

류진은 눈을 감고 마정석의 마나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마나와 성질이 다른 마족의 마나는 붉은색의 빛을 내며 몸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진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강대한 힘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저 빌런들의 말이었으니까.’

씁쓸하게 웃은 류진은 이전에 들었던 치트의 말을 떠올렸다.

[자~ 이 마정석이 우리들의 증거야. 해킹으로 빼낸 데이터에 모든 진실이 낱낱이 적혀 있지.]

상어 같은 톱날 이를 드러내며 치트는 진실을 말했다.

[이 위험한 샘플의 원본을 헌터협회가 만들었다는 게 믿어져?]

강유찬을 비롯해 헌터협회가 정의라는 이름하에 비밀리에 실행했던 연구들.

[무엇이 정의지? 빌런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대장은 그저 복수하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넌 단 하나도 그들의 추악함을 몰라. 그런 녀석들이 네 동생을 살려줄 거 같아?]

류밍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한 검신의 말. 마정석의 힘을 흡수한 류진은 이제 모든 게 명확하게 느껴졌다.

이 전투는, 류진이 검신을 향해 날리는 선전포고였다.

*     *      *

빌런들의 회의실이라기엔 너무나 깔끔한 인테리어와 잘 정돈된 사무실. 에르제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어주었다.

“훗…….”

붉은 눈에 환한 핑크빛 머리카락.

생기 넘치는 모습이지만 에르제의 나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흡혈]의 능력으로 타인을 희생시키며 계속 젊음을 유지했다.

오직 자신의 쾌락과 젊음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그녀는 리벨리온의 누구보다 진정으로 빌런에 어울렸다. 거기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그녀는 네임리스 다음 가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정말 공식 석상에서 사용할 줄이야. 깡이 대단하네.”

물론 베테랑 헌터라도 류진이 사용한 물건이 뭔지는 맞추기 어려웠다.

평범한 마정석이라면 검사를 통과해서 가상 포탈에 반입될 리가 없고. 특이한 형태와 엄청난 힘은 다른 마정석과 차원을 달리했다.

하지만 분명 마정석을 만들었던 그들이라면 류진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받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안전하다고도 느껴지는군요. 검신. 강유찬.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고위 헌터들. 그들이 어떻게 류진이 마정석을 사용했다고 발언하겠습니까?”

잘 정리된 유월의 추론에 치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뒤가 구린 놈들인데? 절대로 못 하지.”

이건 그야말로 선전포고.

금지된 연구와 관련된 사람들은 폐기되었던 ‘붉은 마정석’이 다시금 등장한 것만으로 아연실색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건 이번 전투를 끝낸 후 류진이 다시는 헌터 협회를 향해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오직 단 몇 명의 헌터에게만 전달되지만 아주 강렬한 메시지였다.

“그럼 저 녀석 엄청 빠르니까. 코드네임은 치타나 타조로 하자.”

친절하게 직접 코드 네임을 지어주는 치트와.

“쯧- 당신의 낯짝처럼 정말 끔찍한 이름이군요.”

그런 치트를 경멸하는 유월.

둘은 같은 소속임에도 좀처럼 친해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클로는 둘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네임리스에게 물었다.

“그럼 그 아이의 처후는…….”

류밍.

류진의 동생이자 불치병을 가진 시한부 목숨의 꼬마. 네임리스는 자신의 안경을 치켜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약속은 지킨다. 너는 이미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약속을 지키시더라도 방법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클로의 말이 재미있는지 네임리스가 예시를 들어보라며 웃자. 클로는 담담하게 말했다.

“새 인형에 정신을 담는 것 정도는 간단하시지 않습니까?”

“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네. 분명 대장의 능력이라면 가능하겠죠. 차원 계약자의 힘을 통한 다면요.”

클로의 말에 네임리스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고 정신을 옮겨준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네.”

“대장이 가진 차원 계약자의 힘이라면 분명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로의 말처럼 오직 네임리스만 넘나들 수 있는 차원 너머에는 인간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들이 많이 있었다.

걔 중에는 분명 클로의 말처럼 인간의 신체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 수 있는 존재도 있었다.

“그래도 새 식구가 원하는 건 그런 방법은 아닐 거야. 같은 소속이 된 이상 그런 말장난을 할 순 없지. 그래서야……. 그놈들과 똑같은 놈이 되는 거니까.”

네임리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빌런이었다.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강유찬. 그리고 더 크게는 헌터협회에 복수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희생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리벨리온은 달랐다.

다른 멤버가 어떻게 생각하든. 네임리스는 적어도 자신의 소속에 한해선 진심으로 단원들을 아꼈다.

“이럴 때 아티팩트를 아까워하면 쓰겠어? 우리 새 멤버에게 신뢰를 보여줘야지.”

“……알겠습니다.”

클로는 예상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32번 아티팩트를 꺼내겠습니다.”

32번 아티팩트 황룡의 여의주는 구슬처럼 생긴 영약이었다. 엄청난 마나를 머금고 있지만 일반인의 몸으로 그런 마나를 받아들인다면 몸이 과부하를 못 버틴다.

하지만 황룡의 여의주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재생력.

영약을 통해 마나가 돌아다니는 통로를 과부하시켜 터트리고 재생력을 통해 회복시킨다.

고통을 동반하는 방법이지만 적어도 효과는 확실했다. 다만 황룡의 여의주는 고대급 아티팩트답게 작은 도시를 살 정도로 귀한 보물.

“그래. 부탁해. 분명 그럴 가치가 있어.”

네임리스는 그런 보물을 류밍에게 쾌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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