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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260/434)

제260화

집중력이란 자신이 무언가에 몰두하게 도와주는 힘. 적어도 일반인의 상식에선 그랬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맹수들은 어떨까? 찰나의 순간. 사냥감의 목숨을 끊고 승패와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집중력이었다.

과연 그 본능에 가까운 감각도 집중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신유성의 집중력이란, 그 맹수들의 본능적인 감각조차도 훨씬 초월한 영역이었다.

‘시야의 사각을 노린 건가?’

쐐액-!

예를 들면 동체시력으로는 반응 할 수 없는 시야의 사각. 그곳을 노리고 들어오는 매서운 찌르기.

하지만 신유성은 그 형체를 느낄 수 있었다.

검을 어떻게 휘두르는지.

무엇을 노리는지.

그 길이가 얼마인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알 거 같아.’

신유성은 지금 류진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상대의 검로를 피하는 것만으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쐐액-!

예를 들면 방금의 찌르기는 진짜가 아니다. 그저 간결한 공격으로 상대를 압박하며 거리를 좁히기 위함이며.

부웅-!

류진의 노림수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돌풍이었다.

화악!

마나를 해방하며 만들어낸 돌풍은 주변의 나무마저 부서트리며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자세가 무너질 만도 하지만 신유성은 자리에 꼿꼿이 서서 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초월적인 감각이 바로 신유성에게 집중력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였다.

하지만.

탓!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신유성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류진은 마치 신유성처럼 공격을 읽은 듯 간결한 동작으로 거리를 벗어났다.

지금 신유성이 느끼는 기시감은 단순히 집중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건.’

그래.

처음부터 느꼈던 기시감.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류진이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방식도 공격에 대처를 하는 방식도 자신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걸.

‘어쩌면 당연한 일이군.’

신유성의 스승은 유원학이었다.

당연히 그 가르침의 토대가 되는 건 유원학의 경험. 그렇다면 권왕이 자신의 실력을 연마할 정도로 강력한 상대는 누구일까?

아마 권왕의 가르침은 그가 상대했던 가장 강한 헌터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대는 분명 검신.

스릉-

류진이 검을 겨누자.

신유성은 상대의 자세에 집중하며 자연스럽게 거리를 유지했다.

마치 둘 사이에 무형의 줄이 새겨진 것만 같았다.

상대의 빈틈을 노리며 자신의 거리를 주지 않는 마치 줄다리기와 같은 전투,

“……마치 나의 거리를 알고 있다는 듯 움직이는군. 그저 너의 직감인가?”

결국 류진이 신기하다는 듯 묻자.

유원학의 가르침이 떠오른 신유성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직감이 아니야. 나는 지금 너의 거리가 보이거든.”

그래.

이건 무신산에 입산한 이후 꾸준히 배워온 기술이다. 어찌 잊을까?

[이놈! 무작정 돌진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유성이 너는 검을 상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느냐?]

물론 처음 유원학의 가르침을 들을 땐 신유성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이렇게 답했다.

[검은 조심해야 해요. 엄청 날카로워서 베여버리면 아픕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어린아이가 아니었기에 신유성은 당당히 답할 수 있었다.

‘검을 상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

비단 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창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무기에 있어서 거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검은 결국 무기다. 무기에는 모두 만들어진 용도가 있기 마련이고 그걸 다루는 사람의 버릇이 남기 마련이지.]

유원학은 자신의 손을 뻗어 신유성의 이마를 누르며 말했다.

톡-

[만약 내 손가락이 창이라면 내게 가장 유리한 거리란 무엇이겠느냐? 당연히 창끝을 노릴 수 있는! 딱 이 정도 거리지 않겠더냐?]

아직 어렸던 신유성이 오오- 하고 눈을 빛내며 감탄을 하자 유원학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창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하겠느냐?]

창은 격투가를 상대로 거리가 멀수록 유리하다.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며 조금씩 다가온다면 상대는 창의 긴 거리에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방법은 간단하다.

[저는 창을 피해 가까이 붙겠습니다!]

창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가까이 붙으면 될 일.

[그렇지. 하지만 상대도 그걸 알고 있기에 쉽사리 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할 거다!]

하지만.

[그럼 상대가 든 것이 검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검은 찌르기가 아닌 베기에도 유용한 무기였다. 공격에 실패해도 창보다 훨씬 회수가 빨랐다.

[모, 모르겠습니다!]

어린 신유성에게 검이라는 무기는 마치 단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기를 다루는 건 결국 사람이다.

[좋다. 그럼 생각을 바꿔보도록 하지. 몬스터에게는 특징이 있듯. 헌터에게는 특성이 있다. 만약 괴력이 특성인 헌터라면 어찌 상대 하겠느냐?]

그런 헌터가 사용하는 검이라면 분명 힘을 백분 활용 할 수 있는 거대한 대검일 것이다.

대검은 분명히 파괴적이지만 무거운 질량과 강력한 힘을 얻은 만큼 속도를 포기하기 마련이었다.

[상대가 공격을 실패한 이후를 노리겠습니다!]

[그래! 결국 무기를 사용하는 건 사람이고. 상대가 어떤 장점 때문에 검을 골랐는지 안다면 그걸 역이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신유성은 검신의 천하패검이 어떤 검술인지는 몰랐지만. 유원학이 검신의 검술에 어떻게 맞서려 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내 거리가 보인다고?”

그래서 신유성은 류진의 물음에도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지금 신유성은 류진의 어깨 너머로 검신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내게 그 검술은 무척 익숙하거든.”

반복해서 수련했던 궤적.

신유성은 그 시간을 통해 처음 맞서는 류진의 검로가 보였다.

경고하듯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숫자로 허공에 그어진 붉은색의 실금들이 신유성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허세가 아니라면 재미있는 이야기 군.”

류진은 최대한 안전하게 경기를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신유성은 자신이 전력을 쏟아내야 할 상대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나?”

그 누구에게도 무관심했던 류진이 이런 말을 던지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어쩌면 류진은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권왕. 그는 너에게 어떤 스승이었지?”

신유성은 과연 권왕에게 자신이 검신에게 가지는 이 감정을 똑같이 가지고 있을까? 자신과 똑같이 의심하고, 원망하고 있을까?

신유성은 의외의 질문에도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생각을 했다.

신유성에게 유원학을 무엇이라 단정하고 설명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유원학은 꿈이란 것을 포기한 칙칙했던 회색의 삶에서 신유성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해준 스승이며, 이전까지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비를 맞으며 밤을 지새우고, 맛없는 산짐승과 버섯 따위를 구워 먹어도 신유성은 무신산에서의 생활이 신오가문에서 지낼 때보다 너무나 행복했다.

그건 아마.

“그분은…….”

신유성에게 처음으로 생긴 의지 할 수 있는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내 진짜 가족이야.”

신유성의 대답에 류진은 부가적인 설명 없이도 둘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완벽하게 비틀려버린 자신과 검신의 관계와는 본질부터 다른 것이 느껴졌다.

쏴아아아-

어디부터 꼬인 것일까. 류진은 검신의 친절을 원한 것도. 가족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병을 낫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하지만 검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고삐를 쥐기 위해선 류밍의 병을 낫게 하는 거보단 지금의 상태가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건 참…….”

쏟아진 비가 류진의 얼굴을 적셨다. 류진은 신유성을 보며 너무나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럽군.”

*     *      *

차아아악-!

공중에서 물웅덩이로 착지한 김은아는 기다란 자국을 남기며 급경사를 슬라이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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