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촤아아아아-
보슬보슬 쏟아지던 비가 폭우로 바뀌고 동굴을 가득 채운 그 순간.
“앗, 으……. 으흐, 아으으, 완전 제대로 삐었네…….”
다시 동굴 안을 김은아의 앓는 소리가 채우기 시작했다. 발목을 삔 김은아는 다리를 쭉 뻗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고,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의 발목을 만지며 마나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래도 좀 낫지?”
“응, 근데, 나 좀 더 왼쪽……. 아, 아야야…….”
김은아는 엉망이 된 발목을 보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가상포탈이 현실에 가까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들었다.
딱 적당히 전투를 치를 만큼만 구현이 되면 좋으련만 이 망할 공간은 머리카락 한 올과 귀를 간질이는 빗소리, 그리고 끔찍한 발목의 통증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의미로 김은아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인대가 다친 거 같진 않고……. 아무래도 근육이 무리한 모양이야. 이 정도는 마나만으로 회복할 수 있어.”
마나를 불어 넣기 위해 자신의 발목 근처에 신유성의 기다랗고 차가운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김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텁텁- 하고 숨을 참았다.
‘간지럽기도 하고…….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지한 얼굴로 발목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신유성의 시선은 이상하게 김은아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좀처럼 생각을 읽기 힘든 우수에 가득 찬 표정. 신유성은 과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걱정하려나? 아니면 경기? 그것도 아니면…….’
스윽-
그때 신유성의 손이 발목을 타고 종아리로 올라오자 김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아-!”
종아리에 닿은 것만으로 이정도 반응이라니 신유성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여기도 통증이 심해?”
“아……. 아니, 아니, 괜찮아. 그런 건 아니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김은아는 신유성의 시선을 피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개, 갠차나! 계속해!”
그리곤 바보처럼 발음이 세자 김은아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이건 그냥 치료니까.’
마나 공명을 깨우친 신유성은 이제 마나의 순환을 느낄 수 있었다. 헌터로서도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이다. 덕분에 마나를 다루는 솜씨가 날로 늘었다.
이런 간단한 근육통은 마나를 미세하게 불어 넣는 것만으로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었다.
‘확실히 나아지긴 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마나를 불어넣으며 신유성의 차가운 손가락이 종아리의 반절을 넘어 위로 타고 올라오자. 김은아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나, 그, 그 위로는…… 괜찮아! 지, 진짜 안 아파!”
이젠 얼굴을 넘어 귀까지 빨갛게 물든 김은아는 괜히 헛기침을 하더니 검지로 자신의 발목을 가리켰다.
“바, 발목이랑. 그, 종아리만……. 좀 더 해주던지…….”
신유성은 김은아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과 비교하면 확실히 김은아는 엄살이 심하긴 했다.
‘종아리 뒤편의 근육도 전혀 발달이 안 됐고……. 발목도 너무 가늘어. 역시 은아는 아직 수련이 덜 됐구나.’
아무리 마나의 도움을 받아도 이렇게 말랑말랑한 종아리로 격투술이라니. 신유성은 김은아가 좀 더 근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은아가 스승님처럼 될 순 없겠지만…….’
검지와 엄지로 종아리를 지그시 누르자 김은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참았던 숨을 뱉어냈다.
“……힉!”
김은아는 신유성과 눈이 맞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이라도 지은 사람처럼 다급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개, 갠차나.”
김은아의 입장에선 민망하기 짝이 없는 치료. 그러나 발목에 마나가 퍼지기 시작하고 통증이 사라지자 김은아는 차츰 신유성의 손길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슥-
그렇게 신유성이 발목과 종아를 만지던 손을 떼자.
“끝났어. 아마 움직이기 훨씬 나 거야.”
김은아는 마치 들으라는 듯 어색한 말투로 떠들어댔다.
“와, 지, 진짜네! 이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곤 쭈욱 다리를 뻗더니.
휙휙-
이리저리 발목까지 흔들며 멀쩡해진 걸 어필하는 김은아.
“다행이다. 그럼 최대한 재정비를 하자. 분명 다음 전투로 우승이 결정될 거야.”
“어, 응응!”
둘만 남았기 때문일까?
방금 전의 치료 때문일까?
아니면 쏟아지는 빗소리와 모닥불이 부분부분 비추는 동굴의 묘한 분위기 때문일까?
김은아는 애써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어색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대화가 좋은데…….’
하지만 신유성은 대화는커녕 모닥불에 마른 장작을 뒤집으며 불씨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쟤는 참 한결같아.’
턱을 괸 김은아는 빤히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신유성처럼 행동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한 방법이 아닐까?
물론 김은아는 자신과 이렇게 단 둘이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신유성의 모습이 어쩐지 괘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뷰어 OFF]
마침, 타이밍 좋게 꺼져 있는 뷰어를 보며 김은아는 작지만 큰 용기를 냈다.
“큼, ……저기. 유성아?”
“응, 왜 은아야?”
김은아는 늘 가슴 한켠에 묻어두었던 질문이 있었다. 워낙 상대가 둔하니. 아마 자신이 묻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진 못할 것이다.
‘그래. 그 정돈 알고 있지.’
하지만 김은아는 그럼에도 묻고 싶었다.
“유성이 넌……. 날 어떻게 생각해? 그러니까…… 파티원이라거나 그런 거 말고…….”
그렇게 말을 꺼낸 순간, 김은아는 숨이 덜컥 막히더니 이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겨우 질문 한마디로 이렇게 긴장을 하다니.
“내가 은아 너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신유성에게 김은아의 말은 좀처럼 알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지만. 그래도 두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김은아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는 것. 질문을 하는 김은아의 얼굴이 너무나 진지하다는 것.
“난……. 뭐어, 너랑 있으면 재미있다……거나, 파티원이라서 소중하다~ 거나? 응, 그런 거 말고도. 나는 좀 더 깊게 생각해.”
그 말을 한 김은아는 어쩐지 쓰게 웃었다.
“파티원이나 동료가 아니라. 그냥 유성이 너에 대해서만 말이야.”
이 정도로 질러버렸으니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젠 완전히 선을 넘어버렸다.
가슴이 숨이 막힐 정도로 두근거렸지만 그럼에도 김은아는 어쩐지 시원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을 보는 신유성이 좀처럼 대답이 없자. 김은아는 급하게 무마하려 했다.
“그냥! 나는, 네가 그랬잖아! 우리 집에서…… 둘만 있을 때, 그때! 내가 없으면 엄청. ……슬플 거라고. 그렇다고 내가, 너를 떠나겠다는 건 아닌데…….”
대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김은아는 당황한 탓인지 한참을 횡설수설하더니. 슬쩍-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너는 어떤데?”
“나도 은아 너랑 평생 같이 있고 싶은 건 사실이야. 내게 넌 무척 특별하니까.”
평소처럼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꼴을 보니 김은아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아?”
김은아는 언제 다가왔는지 신유성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곤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신유성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쿡쿡-
유연하게 자신의 발가락으로 신유성의 허리를 간질였다. 이런 장난을 치는 걸 보니 발목은 완전히 나은 모양.
“엉? 너 알아 몰라? 설마 파티원으로 평생 네 옆에 있으라고 하는 건 아니지?”
김은아의 행동은 둔한 신유성을 향해 장난과 원망이 반반 섞인 행동이었다. 이만큼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니 분명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 동료가 아니라. 가족이 될까?”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급전개를 말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어, 어…….”
김은아는 당황한 표정 그대로 마치 돌이 된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너, 그러니까, 그으…….”
말을 멈춘 김은아는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더니 얼굴을 파묻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말이 없는 김은아
하지만 1분.
2분이 지나고.
“……후우.”
깊은 한숨.
김은아는 어이가 없었다.
신유성에게 상식을 바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중간 단계라는 게 있었다. 가령…….
‘……사귄다든가.’
김은아는 애써 고개를 들고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의식해서 바라본 탓인지 신유성의 얼굴을 마주하는 건 정말 죽을 맛이었다.
온몸이 화끈거리고.
입안의 침까지 말라왔다.
하지만 더욱 화가 나는 건.
그런 중대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자신을 보며 싱글싱글 웃는 신유성의 모습이었다.
그래. 이 녀석이 뭘 알고 있을까?
김은아의 머리에는 벌써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장소는 부실.
[……은아야. 스미레. 아델라. 이시우. 에이미. 우린 이제 모두 가족이야.]
자신이 알고 있는 신유성이라면 분명 한술 더 떠서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자랑스럽게 지껄일 게 분명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벨벳은 분명 이런 식으로 기뻐할 게 분명했다.
[캬항-! 아빠 최고야! 파티원이 다 가족이 대써! 6인 결혼식이야! 캬항!]
그래.
지금의 신유성이라면 분명 가능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김은아를 더 무섭게 만드는 건…….
[저는 행복해요!]
지금까지 본 스미레의 행동이라면 정말 그 정신 나간 상황을 기뻐하며 받아들일 것만 같았다.
‘지, 진짜 그건 아니야…….’
김은아는 적어도 ‘아직’은 죄가 없는 신유성을 바라보더니 질색하는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유성아. 넌 참 죄가 많아. 분명 지옥에 떨어질 거야.”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를 신유성의 입장에선 그저 당황스러울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