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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253/434)

제253화

일분일초.

아델라는 에이미와 함께 부실에 두고 왔다는 벨벳이 못내 마음에 걸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초조하게만 느껴졌다.

“……얼른 가온으로 돌아가면 좋겠군요.”

국가대항전 때문에 벨벳은 가족과 마찬가지인 사람들과 멀어졌다.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 아이가 자신과 파티원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아델라는 벨벳 생각을 하니 조급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도도도-

- 흐거걱, 좌표를 잘못 찍어써!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었어!

- 언제는 확실하다더니!

짧은 다리로 다급한 종종걸음을 하는 발소리와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에 아델라는 눈이 커졌다.

“……벨벳?”

아니나 다를까 에이미와 티격태격하는 소리와 함께 쾅- 하고 열리는 대기실의 문.

뻐금뻐금.

벨벳과 아델라는 말없이 3초간 서로 눈을 마주쳤다. 며칠도 안 되는 기다림이 그렇게나 길었던 걸까. 벨벳의 눈에는 동그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델라 엄마아아아-!”

“벨벳-!”

“얘들아-!”

“네에-!”

벨벳. 아델라. 에이미. 스미레.

감동의 4인 상봉.

벨벳은 후다다닥- 소리를 내며 아델라에게 달려오더니 통- 하고 점프를 해 아델라의 배에 안겼다.

“흐극, 휴, 배가 그대로 이써……. 다행이야. 아델라 엄마 배는 아직 멀쩡해써…….”

벨벳은 아델라가 디안에게 당한 모습이 그렇게나 충격이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아델라의 배를 마음껏 더듬었다.

“후훗, 간지럽습니다. 벨벳. 무척 놀란 모양이군요.”

“휴우, 진짜 다행이야…… 아델라 엄마 배가 뚫린 줄 아라써…….”

벨벳이 아델라의 배에 포옥- 안겨서 한참이나 볼을 비비자, 아델라는 마냥 좋은지 웃으며 벨벳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걱정하게 만들지 않을게요 벨벳.”

“응! 맞아. 아델라 엄마는 나랑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우리 아빠 경기만 끝나면 다 가치 돌아가는 거자나. 맞지?”

처음은 분명 신유성과 자신을 아빠와 엄마로 따른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델라에게 벨벳의 말은 너무 당연하게 들렸다.

“그럼요. 이제 평생 함께입니다.”

“헤헤, 아빠를 응원해야겠다! 기분 조케 다들 돌아가는 거야!”

하지만.

“어, 저기!”

스미레가 검지로 가리킨 방송에 비친 건 신유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빈사에 가까워진 몸으로 숨을 거세게 내쉬고 있는 건 너무나 익숙한 얼굴.

“으, 은아 엄마다!”

“은아 씨…….”

탈락이 코앞까지 다가온 김은아의 모습이었다.

*     *      *

포장된 도로가 아닌, 숲길을 달리는 건 평소보다 배의 힘이 들었다. 거기다 엉망진창이 된 몸은 마나가 바닥이나 마음대로 속력을 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무작정 들어가지 마!”

“딱 보면 모르겠어? 다리를 절고 있잖아. 저 녀석 이미 전투를 치르고 부상까지 당한 상태라고!”

김은아에게 다행인 건 자신을 쫓고 있는 둘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김은아가 부상을 당한 걸로 의견이 좁혀지자 창을 든 남학생은 매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탓!

창과 자신의 속력을 더해.

쐐액-!

김은아를 향해 직선으로 내지르는 창은 무게가 실려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쿠웅!

김은아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양팔을 교차해서 창을 막았지만 한참이나 흙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큭-!”

번개를 내리쳐야 할 마나를 이딴 곳에 쓰다니 김은아의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 가는 상황이었다.

“역시, 마력폭풍을 추적한 건 정답이었어. 이렇게 요리가 끝난 상태로 거저먹게 되다니.”

남학생이 다시 창을 쥐며 자세를 잡자. 옆에 있던 여학생은 남학생을 말리며 김은아에게 활을 겨눴다.

“혹시 모르니까. 가까이 가지 마. 내가 처리할 테니까.”

상대가 활을 겨눈 지금.

‘……지금이라면 가능할까?’

김은아는 화살촉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골랐다. 상대에게 당하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길은 살아남기 위해 화살촉을 바라볼 때가 아닌,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나서야 찾아낼 수 있었다.

번쩍.

남학생과 여학생의 뒤에서 번뜩이는 은색의 빛.

스렁-

동그랗게 생긴 칼날의 이름은 챠크람. 부메랑처럼 던져진 챠크람은 숲에서 무성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비친 햇살을 반사하며 번뜩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끝내 주…….”

서걱!

싸늘한 소리와 함께 동그란 칼날이 여학생을 지나치자. 활시위를 겨누던 여학생은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입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너-!”

불의의 기습에 당황한 남학생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떼는 늦었다. 멀리서 날아온 거대한 투창은 남학생의 몸을 꿰뚫었다.

파아아-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남학생의 몸을 보며 언제 다가왔는지 갈색 단발머리의 한설아는 씨익- 조소를 지었다.

“1분 남짓했나? 이 2명을 이렇게 쉽게 먹을 줄은 몰랐는데.”

[무기구현]

챠크람과 투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닌 마나로 구현된 특성의 힘이었다. 그렇기에 한설아의 무기는 보통의 냉병기가 아닌, 하나하나가 아티팩트급 파괴력을 자랑했다.

물론 다양한 무기를 구현해낼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려면, 모든 무기에 능통해야 한다는 단점이 존재했지만 한설아 또한 마천루 아카데미의 세븐넘버.

그녀는 웨폰 마스터라는 호칭처럼 모든 무기를 평균 이상으로 다룰 수 있었다.

‘물론 체력이랑 마나만 멀쩡했다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상대는 아니지만…….’

이런 몸 상태의 김은아가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셈.

“안녕~?”

씨익- 한설아가 여유롭게 웃자,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낸 김은아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흠, 뭐야, 소문으론 앞뒤 안 가리고 덤빈다고 들었는데. 도망치게? 성격이 불같아서 조금만 성질을 긁으면 된다던데…….”

한설아의 노골적인 도발에도 김은아는 넘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가 되던 머리를 질끈 묶고서 전투 자세를 취챘다.

한설아는 휘파람을 불었다.

“올~ 도망가는 건 아닌가 봐? 그래 그건 아니지~ 하마터면 재미없을 뻔했다?”

“내가 이길 텐데 바보처럼 도망갈 생각은 안 하지.”

김은아가 자신의 기세에 밀리지 않자. 한설아는 김은아의 몸을 위아래로 훑으며 피식- 웃었다.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허세 부려도 괜찮아?”

김은아를 훑어보던 한설아의 시선은 어느새 얼굴에서 멈췄다. 그리곤 검지로 자신의 주근깨를 스윽- 훑으며 김은아를 보았다.

“피부 좀 봐라? 부잣집이라더니 돈 좀 쓴 거 같은데? 너~ 훈련은 하는 거 맞아? 트레이닝 룸보다 피부 관리를 더 자주 받으러 간 거 같은데.”

“어쩌지? 그건 타고난 건데.”

“그래? 잘됐네. 너는 헌터보단 다른 일이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말이야.”

서로 단 한마디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 양손에 암기를 든 한설아는 김은아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응? 헌터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부잣집 아가씨 취미로는 좀 벅차지 않아?”

김은아의 불같은 성격을 미리 전해 들은 한설아는 헌터는 그만두고 다른 일이나 찾아보라며 도발을 했지만 김은아는 능글맞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넌 모르겠지만 예쁜 사람을 질투하는 건 어딜 가든 똑같아서. 나는 익숙해. 너 같은 반응.”

“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딱 잘 어울리는 상황. 한설아의 이마에는 한줄기 핏줄이 솟아올랐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일까~?”

김은아는 숨을 골랐다.

상대의 도발에 응해서 핏줄을 세우고 덤벼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마나를 대부분 소진한 자신은 어디까지나 상대에게 사냥당하는 먹잇감의 입장.

‘오히려 내 쪽에서 상대를 도발해야 해. 페이스를 흩어놓으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해질 거야.’

김은아의 머리는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다. 이제 링크가 끊겨 스미레의 마나와 생각은 김은아에게 남아 있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그녀에게 변화를 주었다.

이제 김은아는 자존심을 버리고 승리를 위해 어떤 방법이든 기꺼이 사용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상대를 놀리는 건 김은아에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

김은아는 턱을 들어 콧대를 뽐내더니 풋- 하고 웃었다.

“그걸 물어야 알아?”

김은아가 자신을 뽐내는 모습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한평생 부둥부둥 칭찬만 받으며 살아온 김은아의 잘난 척은 품위가 있었다.

“예쁘면 질투를 받는다고.”

“뭐?”

한설아는 콤플렉스를 제대로 당한 건지 다시 자신의 코 옆 주근깨를 만지작거렸다.

한설아는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땡볕에서 구르며 무기를 수련했다.

여름만 되면 피부는 타기 일쑤였고, 언제 생긴 건지 얼굴에 난 주근깨는 지워질 생각조차 없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좋은 말로라도 예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건만 자신과 정반대로 보이는 김은아의 모습을 보니 한설아는 눈꼴이 사나웠다.

한설아에게 김은아는 적이 아니더라도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지는 상대.

“대체, 누구한테 그리 질투를 받을까?”

한설아가 꽉 깨문 이를 드러내며 인상을 쓰자. 김은아는 도발을 위한 종지부를 찍었다.

“당연히 너 같은 애들이지.”

“이년이 진짜-!”

분노에 젖은 한설아는 눈을 부라리며 암기를 던졌다. 한설아의 숙련된 암기 투척은 평소처럼 훌륭한 정확도를 자랑했지만 흥분한 기색을 숨길 순 없었다.

평소보다 묘하게 벌어진 두 암기 사이의 틈.

‘빠르다. 하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어!’

자세를 낮춘 김은아의 다리가 전기에 휩싸였다.

팡!

암기 사이로 순식간에 마치 하늘을 날 듯 점프를 한 김은아.

“뭐, 뭐야!”

마치 토끼를 보는 듯 엄청난 점프력에 한설아는 당황했지만 김은아는 단 한 번뿐일 이 기회만을 기다려왔다.

자신의 몸이 세찬 바람을 가르는 이 기분. 땅의 중력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 기분. 하지만 너무나도 빠른 속력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이 기분.

“뭐긴, 뭐야?”

이건 기술 같은 건 아니었지만.

신유성에게 배운 전투의 지혜 중 하나였다.

‘상대를 때려눕히는데 꼭 번개 같은 거창한 공격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

때로는 허를 찌른 돌발적인 한 방이 거대한 번개보다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

파직, 파지직!

김은아에게 주어진 건 단 한 번의 일격이었지만 김은아는 그걸 강력한 번개가 아닌 자신의 주먹에 걸었다.

“한 대 맞는 거지!”

단 한 번의 도약.

가속을 실은 김은아의 펀치가 1초도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에 한설아의 이마에 적중했다.

쩌억!

너무나도 묵직한 타격감.

“억-?”

마치 수박이 깨지는 듯 시원한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머리를 맞은 한설아는 충격에 뒤로 머리가 꺾이더니 이내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고.

쿵! 털썩-!

머리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찌르르르-

마치 전기가 통하는 듯 저릿한 오른손의 통증을 느끼며 김은아는 왠지 모를 고양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김은아가 느낀 건 낚시꾼들이 꿈에서도 못 잊는다는 감동적인 첫 손맛이었다.

‘왜 기분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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