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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251/434)

제251화

전통 무술.

냉병기인 검에서 최신 기술이 담긴 레이저 건까지 다양한 무기를 사용해 몬스터를 처치하는 헌터들의 세계에서 무술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무술도 누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파괴력이 다른 법이지.”

만두 머리를 한 웨이린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허리춤에 손을 얹더니 신유성에게 말했다.

“난 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 얼굴도 잘생겼지~ 나와 같은 무투파! 그리고 네 스승인 권왕님은 내가 검신님만큼이나 존경하는 헌터니까!”

웨이린은 당당한 얼굴로 말을 하더니 엄지를 척 올렸다.

“후후, 네 전투를 봤어. 빠른 속도를 이용한 기습과 자연스러운 콤비네이션. 하지만 같은 무투파인 날 상대로는 그리 쉽지 않을걸?”

웨이린은 우승 후보인 신유성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은 것부터 자신감이 가득해보였다.

“뭐, 무기 빨이나 받는 총잡이들은 무술을 우습게 알지만. 알다시피 무술이란 장난이 아니거든~”

으쓱-

어깨를 치켜 올린 웨이린.

“특히 내 특성은 말이지.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후우, 참, 이게 말로는 설명해도 어려운 감각이긴 한데……. 나는 남들은 볼 수 없는 마나의 맥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눈을 감고 뿌듯하게 웃는 웨이린이 계속 떠드는 모습을 보며 신유성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수다스러운 거구나.’

싸우기 이전에 자신의 능력을 털어 놓다니 절대 정상적인 정신머리는 아니었다.

“너무 놀랄 필요 없어. 보통은 느끼지 못하는 거니까. 근데 말이지 나는 이 특성을 통해 혈을 찾아서 요로케 탁탁-! 기맥을 막아 버리거든. 자, 그럼 헌터들이 어떻게 되겠어?”

심지어 S급 특성을 자처한 웨이린의 능력은 신유성의 기준에서 그리 대단하지 않아 보였다.

상대의 마나를 느끼는 것이 S급 특성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가?

아티팩트 같은 물체와 헌터는 물론이고. 신유성은 대기의 공기 같은 자연물에게서까지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신유성에게 헌터들의 혈자리를 짚는 건 숨 쉬듯 간단한 일이었다.

‘알겠군. 트릭인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주절주절 읊는 것도 그렇고. 저렇게 별 것 아닌 능력이 전부일 리가 없었다.

“표정이 굳은 걸 보니 놀란 모양이네? 후훗, 그래 믿을 수 없겠지. 마나의 흐름을 나처럼 세밀하게 느끼는 건……. 절대 노력으론 되지 않으니까.”

까딱. 까딱.

“하지만 믿는 게 좋을걸? 내 손에 잡히면 마나를 쓰는 헌터는 전부 끝이거…든!”

좌우로 검지를 움직인 웨이린은 땅을 박차 엄청난 속도로 신유성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웨이린이 노린 건 신유성이 아니었다.

가속과 무게가 실린 자신의 발로 웨이린은 땅을 내려쳤다.

콰앙-!

마치 지진처럼 땅이 흔들리며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건 웨이린이 갈고 닦은 무술 중 하나인 진각(震脚).

웨이린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잡았다-!”

그녀의 눈에서 아른거리는 붉은 빛. 웨이린은 절대로 놓치지 않을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사용하는 기술의 이름은 금나수(擒拿手). 옷소매만 잡는다면 매치기로 이어질 수 있는 끝내기 기술이었다.

“어?”

하지만.

신유성은 중심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금나수를 피해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이건…….’

진각을 버틴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신유성은 정확히 웨이린의 공격에 반응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동작도 허투루 쓰는 것 없이 간결한 동작으로 반격을 했다.

퍼억!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 오히려 웨이린의 눈앞이. 아니 세상 전체가 빙글 돌아갔다.

“억-!”

짧은 단말마와 함께 빙글 돌아가는 세상. 웨이린의 뛰어난 동체시력은 그 와중에 사형 선고처럼 다가오는 신유성의 손을 캐치했다.

‘당한다! 당한다! 무조건 당해!’

이 끔찍한 상황을 역전 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웨이린의 본능은 순식간에 방책을 떠올렸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한다!’

무투파인 웨이린은 신유성이 손을 뻗는 각도만으로 어느 곳에 주먹이 닿을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데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나를 압축시켜 그 면적에 부여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잡히면 끝이라고 했지!’

그래, 한 대만 버티자.

웨이린은 혈자리를 짚어 기맥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럼 상대는 더 이상 마나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없었다.

‘아무리 너라도 마나도 없이 나를 이길 수 있을까?’

그래.

딱 한 대!

웨이린은 눈을 번뜩였다.

이를 꽉 깨물고 마나를 압축시켜 옆구리에 실었다. 단 한 번의 공격만 버티면 그 뒤에 이어질 콤비네이션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우웅-!

대부분의 작전이 그러하듯.

웨이린의 작전은 주먹이 닿기 전까지만 유효했다.

퍽!

옆구리에 정확히 꽂힌 신유성의 주먹은 웨이린의 생각을 깨끗하게 지워주었다.

삐이이이-

옆구리를 맞았는데 마치 강하게 머리를 맞은 듯 정체불명의 신호음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아른아른.

단 한 대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억들.

‘……나, 죽나?’

숨이 꽉 막히며 짜릿하게 스며들어오는 신유성의 마나에 웨이린은 정신이 흐릿해졌다.

[웨이린. 너의 실력에 자신감이 높은 건 좋은 일이란다. 하지만 그게 방심으로 이어지는 건 너의 나쁜 버릇이란다.]

아, 숙부님?

촤아아-

흰수염을 기른 숙부의 얼굴이 물안개처럼 흩어지자. 이번에는 학원 도시의 지부장 메이린이 말했다.

[때로는 한 번의 말이 천 냥의 빚을 갚는 법이야. 물론 웨이린 네 말 대부분 동전 한 닢의 가치도 없지만.]

촤아아-

물안개로 흩어진 메이린은 어느새 검을 든 류진으로 변해 말했다.

[넌 참 말이 많군.]

왜 회상들이 하나 같이 말이 많다고 구박을 하는 걸까? 웨이린은 솔직히 억울했다.

‘이건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냥 상대가 존나 쎄다고…….’

쿠당! 타다다당-!

옆구리에 박힌 주먹질과 함께 웨이린은 웃긴 자세로 땅바닥을 3바퀴나 굴렀다.

“푸-!”

웨이린이 입술에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려 바람을 불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이 갈비뼈가 나간 기분이 들었다.

“어, 어떻게 내 진각을…….”

하지만 신유성의 주변을 본 웨이린은 금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신유성의 바닥에는 똑같은 크기의 구멍이 생겨 있었다.

‘설마 내 진각에 맞춰 자기도 땅을 박찬 거야?’

진각의 원리가 단순한 힘이 아닌 마나 반응인 이상, 파동을 파동으로 상쇄시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배리어가 52% 남았습니다!]

[데미지 48%]

[누적 데미지가 100%를 채우면 포탈 밖으로 퇴출됩니다!]

“큭, 쓰읍…… 주먹질 한 방에 배리어 절반을 태웠네.”

하지만 웨이린은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그래도 쿨럭! 방심한 거 같은데? 내가 말했지? 나한테 닿으면 끝이라고! 아하하하-!”

촤악!

웨이린은 검지와 중지를 자랑스럽게 치켜들며 신유성에게 당당히 소리쳤다.

“몸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 넌 이제 마나를 못 써! 내가 이 두 손가락으로! 네 기맥을 아주 어! 확실하게 막았거든-!”

침까지 흘리며 큰소리를 친 웨이린은 스윽 입가를 닦더니 자신의 옆구리를 쓸어내렸다.

“아무리 네가 어? 아무리 강해도! 엉? 마나도 없이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어-!?”

당당하게 소리를 친 것과 달리 웨이린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 그러니까. 내 말은 둘 다 전투를 치루기 힘든 상태니까. 지금은 무승부로 하자는 거지! 어때? 좋지?”

하지만 신유성은 멀뚱히 웨이린을 바라보더니 손바닥 위로 푸른색 불길을 만들었다.

화륵!

이건 특성이나 스킬로 불길을 만들어낸 게 아닌, 순수하게 마나를 공기 중에 연소시키는 행위.

웨이린의 말대로 마나가 막혔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어? 어, 어라, 그, 그거 어떠케……. 했어?”

얼마나 당황한 건지 혀가 짧아진 웨이린의 질문에 신유성은 당연한 듯 대답했다.

“네가 내 몸에 마나를 불어 넣는 게 느껴졌거든. 같은 양을 기맥에 불어 넣었어.”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겠지만 결과를 직접 본 웨이린은 추욱 늘어진 얼굴로 물었다.

“으, 으응…… 그, 그게 돼?”

“응 동시에. 내 쪽에서도 마나도 불어 넣었지. 네 기맥을 막았으니 마나를 사용 할 수 없을 거야.”

웨이린은 신유성의 말에 자신의 손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평소라면 몸 안 깊은 곳을 타고 밖으로 뿜어져 나와야할 마나가 어딘가 통로가 막힌 기분이 들었다.

“스읍-”

웨이린은 분한 듯 침을 삼키더니 신유성을 흘겨보았다.

“이,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맥을 짚는 것 같진 않던데.”

이미 자포자기 웨이린의 질문에 신유성은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굳이 혈을 짚어서 통로에 불어 넣지 않더라도. 마나 공명을 이용하면 괜찮아.”

웨이린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신유성은 특성이라거나 무투파라거나 강하다거나 같은 그런 상식의 범주가 아니었다.

헌터들이 상식으로서 정해놓은 약속이자 규칙을 부수는 그야말로 이레귤러였다.

‘저 괴물. 류진이라면…… 이길 수 있을까?’

웨이린은 지금까진 단 한 번도 류진의 승리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류진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파티장이자 검신의 제자.

웨이린은 류진이 고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신유성을 상대론 승리를 장담 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웨이린은 잠깐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뭐, 이렇게 다 끝난 마당에 굳이 맞아서 탈락 할 필요는 없겠지. 나도 눈치는 있거든.”

패배를 인정한 웨이린은 긴 한숨과 함께 기권을 했다.

[마천루 아카데미]

[웨이린 탈락]

단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웨이린을 탈락시킨 신유성은 나무가 빽빽이 자란 숲을 바라보았다.

‘은아는 분명 저 곳에 있을 거야.’

본 드래곤의 문브레이크와 아델라의 격돌은 섬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마나 폭풍을 만들었다.

물론 그 다음에 신유성에게 도착한 건 스미레가 탈락했다는 알림.

‘분명 은아는 스미레와 같이 있었을 거야.’

아델라를 탈락시킨 게 김은아인 것 까진 알 수 없었지만. 김은아와 아델라가 전투를 치른 건 명확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김은아의 상태는 절대로 멀쩡할 리가 없었다.

‘내가 먼저 은아와 합류하는 방법밖엔 없어.’

그러니 신유성은 자신이 늦기 전에 이 숲 전체를 뒤져서라도. 김은아를 찾아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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