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아까 전 무리를 한 탓일까.
마나의 반발로 김은아는 다리 전체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신체를 한계까지 각성한 탓에 뒤늦게 혹사당한 신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았다.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한참 전에 넘겨버려 과부하가 온 것이다.
‘……이대로 싸웠으면 그대로 질 뻔했어.’
냉정한 정신을 유지 할 수 있게 해준 스미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링크로 받은 마나가 사라지며 김은아는 그 실타래 같은 연결고리마저도 희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탁.
걸음을 멈춘 김은아가 나무에 등을 기댔다. 긴장됐던 정신의 줄이 끊어지며 온몸의 힘이 주우욱- 빠지는 탈력감이 찾아왔다.
‘망할, 이대로 상대를 만나기라도 하면…….’
전투 혹은 도주?
아니,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금의 김은아는 멧돼지 한 마리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스으윽-
입술을 질끈 문 김은아가 나무에 기댄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이렇게 됐을까?’
정말 만약의 이야기.
자신이 아델라처럼 강했다면.
그래. 신유성처럼 강했다면.
전투의 결과가 이렇게나 비참했을까?
‘스미레는 이미 탈락했고. 나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목숨이야…….’
스미레는 자신에게 어떤 마음으로 마나를 건네주었을까. 만약 자신이 강했다면 탈락해야 했을까?
반항조차 못 한 채 아델라에게 붙잡혀야 했을까? 기습을 끝낸 디안을 두고 도망쳐야 했을까?
“난…….”
약해.
힘이 빠진 김은아가 숨을 몰아쉬며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김은아는 가온에서도 손에 꼽히는 랭커였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희들이 태어난 순간 가졌던 무언가를. 난 모든 걸 포기했음에도 갖지 못했다.]
흉측한 오른팔과 함께 머릿속에 맴도는 디안의 말. 하지만 김은아는 그 모습이 익숙한 누군가와 겹쳐 보였다.
[오빠! 흑, 흐끅! 오빠가 그럴 리 없어 대체 왜…….]
뛰어나지 못한 재능 때문에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파멸을 택한 게 누구일까. 그 결과는 자그마치 2년이었다. 김준혁이 그렇게 혼수상태에 빠져 2년이란 시간을 잠들어 있는 동안. 김은아의 마음 속 빈 공백은 날마다 커졌다.
차라리 자신의 재능이. 오빠에게 갔다면 어땠을까?
‘……그래.’
그런 생각을 안했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은아의 재능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온 아카데미에서의 성적은 2등을 유지했고 지금까지 세븐넘버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나 스스로.
정말 내 자신이 이룬 게 있을까?
“후으, 흐…….”
김은아가 다리의 통증에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마나를 모두 잃고 숲에 숨어 들어와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보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난 진짜 뭣 하나 똑바로 해본 게 없구나…….”
아카데미의 최하위권에서 스미레가 지금의 실력까지 노력하는 동안. 자신은 바뀐 게 뭘까?
특성? 재력? 외모?
디안의 말이 맞았다. 주위에서 대단하다며 치켜세워주는 건 모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들이었다. 자신에게 노력이란 단어는 너무나 멀었다.
어쩌면 자신은…….
사그작!
“진짜 여기 맞아? 마나가 전혀 안 느껴지는데?”
가까운 곳에서 나뭇잎 밟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해. 여기 봐. 이 발자국. 숲을 향해 들어간 게 확실해. 그것도 방금 막.”
흡- 하고 숨을 참은 김은아는 나무에 몸을 더욱 밀착 시켰다.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활과 단검을 든 2명이 보였다.
“분명 아까 그 마력 폭발과 연관이 있을 거야. 이긴 사람이거나 패배해서 도망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활을 든 여학생은 냉철한 추리와 함께 경계태세를 갖췄다. 이미 그녀는 누군가 숲에 숨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지, 도망칠까?’
그러나 몰래 도망치기엔 거리가 너무 가깝다. 그리고 김은아는 마나와 체력이 바닥난 지금 2명이나 따돌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을 거야.’
김은아는 포기하지 않고 생각했다. 이제 쉽게 포기하는 자신의 나쁜 버릇은 버리고 싶었다.
신유성과 스미레라면 분명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을 찾을 것 같았다.
‘……할 수 있어. 내가 둘 다 탈락 시키는 거야.’
나무에 기댄 채 숨을 고르며 그렇게 마는 김은아. 분명 김은아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조차 놀랄 만큼 냉철한 정신이 그 증거였다.
스윽.
‘지금의 마나로 번개를 내려 칠 수 있는 건. 단 한 번…….’
정확한 공격은 물론이고.
김은아는 둘을 한 번에 맞추는 최선의 루트를 만들어야 했다.
사그작. 사그작.
바닥에 널린 나뭇잎과 풀잎들을 헤치며 추적자들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 오는 그 순간.
탓!
김은아는 온몸의 힘을 짜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다!”
“빨리 쫓아!”
아니나 다를까.
풀숲을 향해 달려가는 김은아를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하는 둘.
‘내가, 쉽게 당해줄 거 같아?’
절망적인 상황에도 이를 악물고 질주하는 김은아는 옅게 웃음기를 띄고 있었다.
* * *
탈락한 아델라가 대기실로 들어서자. 소피아와 레온은 진중한 얼굴로 아델라를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빨리 탈락하다니…….”
김은아와의 걸전에서 패배한 소피아는 자신이 발목을 잡았다는 생각에 사과를 했다.
이 국가대항전에서 아델라의 강함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결승전이라도 이런 조기 탈락은 자신의 실책에서 비롯되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아델라는 김은아와 스미레를 상대로 훌륭하게 버텨냈다. 만약 그 상황에 소피아의 전력이 더해졌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소피아는 좀처럼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당신이 왜 제게 사과를 합니까?”
아델라는 그런 소피아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보였지만 소피아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델라 씨는…… 저희를 믿으시지 않죠? 저희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도……. 가온을 그리워하시는 것도…….”
고개를 든 소피아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씁쓸한 표정을 아델라에게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전부 이해가 가네요. 저흰 당신이 의지할 만큼 강하지도 않고……. 아델라 씨의 마음도 열지 못했으니까요.”
소피아는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저희 파티가 결승전에 온 건 아델라 씨의 활약이지만……. 저희 팀이 패배할 확률을 올린 건 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의 아델라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들이 약한 건 사실이니까.
처음부터 의지한 적도 믿은 적도 없다며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자책하는 소피아를 보며 아델라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편함과 함께 가슴 한편에서 몽글거리는 이 기분은 뭘까.
“그냥 저희들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확률을 높여준 건 아델라 씨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파티면서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시 소피아가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아델라가 느끼는 감정은 더더욱 명확해 졌다.
“당신…….”
옆에 있던 레온도 미소를 짓더니.
아델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델라 오르텐시아.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전 기껏해야, 짧은 시간을 버는 게 전부였음에도.”
가상 포탈에서의 격양된 모습과 달리 레온의 목소리는 너무나 진중하고 차분했다.
“당신은 끝까지 활약해주었습니다. 저희에겐 과분한 파티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회가 끝난다면 아델라가 비앙카 아카데미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레온은 편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았다.
“당신 정도의 강한 헌터면 분명 제가 해낼 수 없는 무언가를 이룩하겠죠.”
짧은 웃음.
아까보다 여유가 생긴 레온은 아델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아델라와 달리 황금처럼 빛나는 레온의 눈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제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도. 방금 전 당신을 쏘아붙인 것도. 모두 열등감을 느낀 제 탓입니다. 어쩌면 전 당신이 부러웠을지 모르겠군요.”
아델라는 직감했다.
레온은 자신보다 약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무언가가 있었다.
“부디 아델라 양이 저를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자신은 절대로 뱉지 못할 말을 하며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는 레온은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잘못이 없음에도 자신에게 사과를 한 둘을 향해 자신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은 신유성처럼 마음을 울리는 위로도, 스미레처럼 타인을 향한 배려도 할 줄 몰랐고, 김은아처럼 직선적으로 솔직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둘을 지나친 아델라는 자리에 앉았다.
“당신들의 말처럼……. 처음부터 단 한 번도 당신들을 믿은 적은 없습니다.”
그리곤 아델라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소피아와 레온의 얼굴에는 서운한 기색이 스쳤지만 아델라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승전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당신들의 덕분입니다.”
파앗.
약속이라도 한 듯 소피아와 레온은 좀처럼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아델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델라는 당연한 말이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뱉고 있는 건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변화한 아델라의 생각이기도 했다.
과연 지금 아델라를 통해 말을 내뱉고 있는 건 누구일까?
신유성일까.
김은아일까.
아델라일까.
벨벳일까.
어쩌면 모두일까.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원히 그렇게……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죠.”
아델라는 그 대상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자신의 파티원이었던 둘의 이름을 담담히 불러주었다.
“……지금까지 모두 수고했습니다. 레온. 소피아.”
아델라의 한마디에 놀란 소피아 레온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 아델라 씨!”
“네! 수고했습니다. 아델라 양!”
정말이지 그건 우승보다 믿기지 않는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