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팔로 시작되어 몸 전체를 불태우는 검은색 불꽃. 디안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유증기처럼 몸이 변했고. 그중 일부인 검은 조각인 바람을 타고 아델라의 몸에 부착시켰다.
평범했던 몸을 한 조각의 검은 찌꺼기로 변화시키다니. 과연 상대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
이건 절대 쉬운 방법이 아니었다.
아무리 가상 포탈이라도 몸이 타오르는 고통과 이 스킬로 소모되는 마나는 엄청나다. 한 번의 기습으로 사용하기에는 디메리트가 더 많은 스킬이었다.
‘하지만.’
디안은 아델라 오르텐시아의 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술식으로 강해지고 전승되며 이어진 자신의 불꽃조차 그녀의 냉혹한 한기를 버틸 수 없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델라 오르텐시아.’
아덴 오르텐시아의 손녀.
S+급이라 불리는 냉기 특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재.
‘하지만. 승부에서 널 이길 방법이 없더라도. 냉혹한 전쟁에서 널 이길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디안은 더더욱 기습을 택했다. 선조부터 저주라 칭해진 자신의 명예는 아름다운 순백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었다.
진흙과 같은 더러운 오물로 범벅되어 과정은 더럽지만 결과로 쌓여진 명예였다.
‘내 명예를 지켜주는 건 결과뿐이다. 패배는 허용되지 않아.’
사람의 형체조차 포기한 디안은 아델라의 어깨에 붙은 채, 때를 기다렸다. 김은아와 스미레가 나타난 이후 결착의 순간은 많았지만 계속 기다렸다.
[흥분한 당신은 절 맞출 수 없습니다. 물론…… 맞춰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당신의 번개는 제 얼음을 뚫을 수 없으니까요.]
결국 때는 찾아왔고 아델라가 김은아를 제압하고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그 순간.
콰악-!
자신의 몸으로 실체화한 디안은 불길을 검처럼 만들어 아델라를 찔렀다. 만약 자신이 정정당한 승부를 고집했다면 이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아니, 그건 과신이다.
그건 과정을 중요시 여기고도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강자들의 여유다. 자신에게 중요한 건 결과.
‘과정이 어떠하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니까.’
그 증거로 평소라면 범접도 못할 천재의 배리어를 직접 박살내지 않았는가?
[이건…….]
[오래 기다렸다. 너라면 절대 이 한 번의 기습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염원의 술식.
꺼지지 않는 불길은 디안의 의지를 따라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래.
설령 명예를 더럽힌다 하여도.
배신자라 하여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최선.
“너…….”
아연실색한 김은아의 시선에 디안은 차가운 눈초리로 김은아를 훑어보았다.
“그만하지.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아델라 오르텐시아였다. 더 이상은 서로에게 손해다.”
“그래? 그게 비겁하게 끼어든 놈이 할 말인가?”
찌릿-
흩어지는 번개와 함께 김은아가 꽉 주먹을 쥐자 디안은 피식- 조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비겁함이 아니었다면 탈락하는 쪽은 아델라 오르텐시아가 아니라 너였을 텐데?”
디안의 말은 김은아를 단번에 침묵하게 만드는 정론이었다.
디안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탈락하는 쪽은 김은아 자신. 솔직히 지금은 약간의 안도감마저 느끼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 김은아를 멈칫하게 만드는 건.
“……그리고 마나가 바닥난 건 서로 마찬가지다. 너도 이미 한계일 텐데?”
아델라와의 전투로 신체에 남은 마나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라. 나도 변신으로 대부분의 마나를 소비한 지금. 다른 녀석들이 온다면 어쩔 생각이지? 설마 이렇게 탈락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쯤되면 디안의 말에 발끈할 만도 했지만 김은아는 스미레와 링크 한 덕분인지 쉽사리 흥분하지 않았다.
다만 김은아는 평소와 달리 너무나 차가운 시선으로 디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네 방식이야? 너흰 연합까지 맺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덕분에 쉽게 접착할 수 있었지.”
“너…….”
김은아의 경멸이 담긴 시선에 디안은 오히려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약자가 최선을 다하는 게 나쁜가? 무기를 사용하고, 작전을 사용하고, 필요하다면 거짓말까지 해서라도…….”
화악-
디안은 불길을 꺼트렸다.
이건 마치 싸울 생각이 없다는 의지로 보였다.
“어떤 수를 사용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쓰는 것이 나쁜가?”
이제 이곳에서 전투를 할지 자리를 옮겨 재정비를 할지는 김은아의 몫. 디안은 그 선택권을 넘겨주며 말했다.
“원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불공평하지. 아델라 오르텐시아보다 몇 배를 노력하더라도. 대부분의 인간은 그 10분의 1조차 보답받지 못한다.”
툭.
나무에 등을 기댄 디안은 원망 섞인 눈초리로 김은아를 노려보았다.
“그럼 패자는 영원히 패자로 남아야 하는가?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가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나쁜가?”
신랄하게 쏟아내는 디안의 말에 김은아는 기가 눌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들어주기만 할 순 없었는지 크흠- 기침을 하며 김은아는 디안을 노려보았다.
“그, 그래도……. 배신은. 약속을 어기는…….”
“그래. 배신은 비열한 일이지. 하지만 그것조차 나에겐 잘난 놈들의 배부른 소리다.”
촤악-!
디안은 자신의 오른팔을 감싸고 있던 옷을 뜯었다. 그곳에 있는 건 색이 검게 물든 팔과 흉측하게 겉으로 돋아난 붉은색 핏줄.
움찔.
흉측한 모습에 김은아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자. 디안은 피식- 하고 웃었다.
“이게 내가 강해지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고. 영원히 짊어져야할 무게다.”
디안이 자랑스럽게 팔을 들자 김은아는 윽-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저 끔찍한 팔의 몰골을 본다면 누구라도 이렇게 반응 할 것이다.
“난 너희 천재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 너희들이 태어난 순간 가졌던 무언가를, 난 모든 걸 포기했음에도 갖지 못했다. 잘난 척 설교를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워. ……나에겐 그것조차 너희 천재들의 기만이니까.”
팟-
디안은 방향을 돌려 천천히 숨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명심해둬라. 다음에는 너와 파티장 차례라는 걸.”
꾸욱.
김은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과연 마나가 있었다면 지금 자신은 디안을 공격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과는 이 경기에 임하는 무게가 달랐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거대한 무언가에 의지가 꺾여버린 기분.
김은아는 후우- 하고 기다란 한숨을 내쉬더니.
‘일단……. 유성이부터 찾자.’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 * *
부실.
“캬아아아아하-! 아델라 엄마가아아아-!”
스크린을 보며 충격을 받은 벨벳이 괴성을 질렀지만 에이미는 반응해주지 못했다.
“아, 아델라가 타, 탈락?”
얼마나 놀랐는지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린 에이미. 물론 전투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김은아와 스미레의 눈물 겨운 연대와 합공에 아델라는 엄청난 마나를 잃었고. 결국 숨어있던 디안에게 기습까지 당했다.
이건 사실상 3대1에 버금가는 전투였다.
“아무리 그래도 우승 후보인 아델라가 탈락이라니…….”
단순히 전투력만으로 보면 신유성 그리고 류진과 함께 아델라는 상위 3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남은 우승후보는 누구일까.
신유성.
류진.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디안.
“흐, 흥미진진하긴 하네. 이렇게 흘러 갈 줄이야…….”
놀란 에이미가 와작와작- 과자를 먹자. 벨벳은 눈물을 훌쩍거렸다.
“배, 배가 뚫려써……, 흑, 흐욱, 벨벳은 너무 슬퍼! 아델라 엄마 죽어써…….”
잠깐 신경을 못 써준 사이 벨벳은 펑펑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 뻗어 오열하고 있었다.
“안대, 아델라 엄마…… 흑, 도라와 벨벳은……. 벨벳은…….”
흐아앙- 하며 온 동네가 떠나가라 벨벳이 우는 탓에 에이미는 다급하게 벨벳을 달랬다.
“무슨 말이야. 아까 스미레도 탈락하는 거 봤으면서? 그냥 저 장소를 떠날 뿐이라니까?”
“캬, 흑, 캬흐응…… 떠나? 벨벳은 아기 아니야. 벨벳은 훌쩍! 천재 드래곤이야. 이럴 때 떠난다고 하는 거 죽는 거라는 거 이미 다 알고 이써…….”
패앵!
코를 풀며 엉엉엉- 부실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벨벳.
“아니 비유가 아니라…….”
“아델라 엄마, 흑, 배가…… 벨벳이…… 벨벳이 복수할 거야!”
투지를 불태우는 벨벳의 모습은 이미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드래곤은 원수의 얼굴을 평생 기억한다고 했던가?
‘이대로 놔뒀다간…….’
에이미는 어른으로 자란 벨벳이 꿰엑- 하고 혀를 내민 디안을 업어들고 돌아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충분히 가능해…….’
이렇게 벨벳을 방치했다간 언제 [흉포한 드래곤 도심지 출현!]으로 뉴스에서 만날지도 모를 노릇.
에이미는 결국 벨벳을 달래려 비장의 수를 꺼냈다.
“그, 그러지 말고? 우리 아델라를 찾으러갈까?”
솔직히 에이미에게 아델라는 상성이 좋은 상대는 아니었다. 아직도 무표정한 얼굴을 볼 때면 경기장에서 얼음으로 변했던 순간이 떠오르며 오한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벨벳을 위해서!’
오늘만큼은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기로 택한 에이미.
“후, 훌쩍! 아, 아델라 엄마-?”
벨벳은 그제야 흥분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푹 퍼져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래! 너 아델라의 마나를 느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나랑 같이 찾아가면 되잖아! 그렇지?”
에이미는 한숨 놓은 듯 벨벳과 눈높이를 맞추고 살살 달래주었다.
“마나…….”
벨벳은 그제야 마나에 대한 생각이 들었는지 정신을 집중하고 아델라의 기척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마치 레이더처럼 신호를 잡은 듯 어떤 방향을 향해 갑자기 양손을 뻗는 벨벳.
“아, 아델라 엄마 저기써-!”
잔뜩 눈물로 젖은 벨벳의 눈이평소보다 커졌다.
“좋아 그럼 가볼까-?”
금방 짐을 챙긴 에이미가 포탈존을 타고 경기장을 가려고 하자. 벨벳은 고개를 저으며 선을 그었다.
주으윽-
“아냐! 이쪽이 빨라!”
그와 동시에 공간이 갈라지며 열리는 푸른색 포탈. 정말이지 상상을 뛰어 넘는 벨벳의 퍼포먼스에 에이미는 멋쩍게 웃었다.
“으, 으으응~ 그래. 거기로 가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