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모든 것을 끝내는.
마지막 악단 Finale(피날레).
주위를 삼키는 얼음 폭풍에 스미레는 질끈 눈을 감았다.
[스미레 안심하거라. 내 곁에 있는 동안은 안전할 것이다.]
마나의 주인 드래곤.
그런 종족의 뼈로 소환된 본 드래곤은 높은 항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광범위한 폭격을 막는 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은아 씨는…….’
그러나 김은아는 이 얼음폭풍을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비교적 아델라와 거리가 멀었던 건 다행이지만 이 광대한 범위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리고 한차례의 폭풍을 버텨낸다고 아델라의 연주가 끝나는 건 아니었다.
‘폭풍은 멈췄지만…… 이 추위…… 평범한 한기가 아니야.’
평범한 추위는 헌터가 몸에 마나를 두르면 대부분 신체에 대한 간섭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델라의 마나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한기.
‘마나를 둘러도 몸안으로…….’
스미레는 추위에 떨며 몸을 움츠리는 게 전부였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기상변화 같은 재앙에 필적하는 마법이군.]
쏴아아아-
더욱 강렬하게 몰아치는 혹한의 바람. 언데드에게 가장 치명적인 공격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스미레는 아델라가 자신의 적이 될 것이라고 상정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걸 뒤덮을 듯 몰아치는 눈보라에 굳어가는 언데드를 보며 스미레는 알 수 있었다.
‘……모두 얼어붙고 있어.’
혹한의 추위는 사제의 신성력만큼이나 언데드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딱, 따닥…!”
“그, 그르륵…….”
언데드의 장점은 일부가 파괴당하고 부서지더라도 계속 전투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
그렇기에 언데드에게 전투 불능의 상황은 누적된 데미지로 역소환이 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추위로 언데드를 물리적으로 얼려버린다면?
사아아아-
새하얗게 더욱 새하얗게.
아델라에게서 뿜어진 냉기는 아름다운 눈으로 변해 스미레의 시야를 차단했다.
그 눈보라 사이로 보이는 건 동상처럼 굳어버린 수없이 많은 언데드들. 마나에 대한 내성이 없는 언데드들은 스미레의 곁에서 동상처럼 굳어있었다.
[스미레. 두려운가?]
본 드래곤은 텔레파시로 진중한 목소리를 뽐내자. 스미레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본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스미레의 떨리는 목소리에 본 드래곤은 몸을 낮추었다.
[아니면 포기하고 싶은가?]
스으윽-
본 드래곤이 날개로 스미레를 감쌌다. 뼈밖에 남지 않은 날개로 누군가를 감싸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있을까?
그러나 스미레는 조금은 추위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전, 두렵지도……. 포기하지도 않아요.”
스미레의 손등이 보라색 빛을 내뿜자. 뜨거운 열기가 온몸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특성의 힘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마나를 단순히 열기로 치환하다니. 이건 효율이 없는 너무나도 무식한 방식이었다.
[그렇군.]
본 드래곤이 벨벳의 마나를 빌어 열기를 일으켰다. 스미레와 반응한 열기는 붉은빛을 내며 따뜻한 온기를 내뿜었다.
만약, 이 온기로 주변에서 얼어붙은 언데드들을 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쏴아아아-!
하지만 스미레는 더욱 강하게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몸의 온기를 보전하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했다.
지금이 눈보라를 버틴다면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면 더욱 눈보라가 강해지기 전에 아델라를 찾아내야 할까?
하지만 지금 사령술사인 스미레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언데드가 모두 얼어붙은 이상. 지금은 이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나는 너와 계약된 소환수. 언제나 주인이 된 너를 따른단다. 하지만 계약에는 크나큰 맹점이 있지.]
본 드래곤이 고개를 숙이자. 목 뒤편에서 빛을 내뿜으며 기다란 실이 스미레의 손등과 이어졌다.
[보렴 나와 너는 이렇게 실타래 같은 마나로. 서머너 링크를 통해 이어져 있단다. 하지만 전투 중에는 그 교감이 오히려 발목을 묶게 되는 순간이 온단다.]
스미레는 본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서머너 링크로 이어진 지금 스미레는 본 드래곤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영향을 받고…… 계신 거죠?”
쏴아아아-
더욱 강해진 눈보라가 붉은 보호막을 깨트릴 듯 강하게 몰아쳤다.
[나는 네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무엇이 두려운지 알아야 한단다. 적당한 이야기는 신뢰를 깨트리고 말지.]
본 드래곤에겐 심장도 몸도 머리도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건 오직 단단한 뼈와 정신. 하지만 지금 본 드래곤의 정신은 스미레의 감정에 따라 혼란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치지직-
그 때문일까.
본 드래곤이 만든 배리어는 몰아치는 눈보라에 조금씩 상쇄되어 버리고 있었다. 서로의 교감이 무너지며 본 드래곤의 힘이 약해진다는 증거였다.
[내게 말해주거라 스미레. 무엇이 지금의 너를 그렇게 두렵게 만들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단다. 우리를 이은 이 얇은 실타래도 의미가 없지.]
꾸욱.
본 드래곤의 말에 입술을 지그시 깨문 스미레가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 씨에게……. 패배할까 봐 두려워요. 지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담긴 스미레의 솔직한 이야기에 본 드래곤이 내뿜는 열기가 조금씩 강해졌다. 스미레는 냉기에 저려오던 손발이 한결 나아졌다.
[스미레여. 패배하는 게 그리도 두려운가? 이곳의 패배는 죽음조차 아닐 터인데?]
본 드래곤의 말이 맞았다.
이곳의 전투는 현실이 아니다. 가상 포탈에서 벌어지는 가짜에 불과했다.
“그건…… 제 욕심 때문이에요.”
화아악-!
본 드래곤의 열기가 강해졌다. 열기는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욕심이라…….]
펄럭-!
본 드래곤이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순식간에 확장된 붉은색 배리어는 냉기를 몰아내며 언데드의 몸을 녹였다.
“딱, 따닥?”
“그륵?”
본 드래곤은 뼈가 된 육신으론 표정을 지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만약 자신이 뼈다귀만 있는 게 아닌 멀쩡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분명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었을 것이다.
감정을 교감하는 본 드래곤은 알 수 있었다. 욕심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자신의 작은 주인은 누구보다 이타적이며 희생적이었다.
“이젠 더 이상 지고 싶지 않아요. 의지하기만 하는 것도 싫어요.”
스미레의 손등에서 쏟아진 보라색 빛은 본 드래곤과 공명했다. 스미레는 절대로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이젠 바뀌고 싶을 뿐이었다.
더 이상 의지하고, 나약한 자신을 비관하며 제자리에서 머무는 자신이 아닌.
“소중한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래.
“유성 씨, 처럼요!”
미소를 지은 스미레가 결의를 다졌다. 전학을 왔던 당시와 비교하면 믿을 수 없이 강해졌지만 상대는 아델라였다.
[나의 작은 주인이여. 네가 원하는 건 곧 내가 원하는 일.]
지이이잉-!
하늘 높이 뜬 단 하나의 점을 노려본 드래곤은 자신의 아가리를 쳐들었다.
보랏빛.
붉은빛.
푸른빛.
본 드래곤의 쩍 벌린 입 앞으로 여러 빛깔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서로 부딪힌 마나가 굉음을 냈다.
기이이잉! 즈즉, 직-!
3가지 서로 다른 마나가 모여 이루는 스파크. 이건 스미레와 본 드래곤. 그리고 둘의 공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힘이었다.
“본 드래곤 씨-!”
본 드래곤은 솟구치기 시작한 마나를 발사하기 위해 입을 조준했다. 주변을 뒤덮은 눈보라 속에서 아델라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델라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아델라 씨는 자신의 마나로 결계를 전개하고 있어.’
스미레가 지금 노려야 할 건, 이 결계의 중심지. 그곳에서 마나를 내뿜고 있는 정체 모를 누군가였다.
“저곳이에요-!”
콰아아앙-!
[문 브레이크]
본 드래곤이 입에서 뿜어낸 브레스는 혼자선 절대로 뿜어낼 수 없는 마력의 덩어리였다.
촤아아악!
이건 스미레의 마나와 본 드래곤의 마나. 그리고 벨벳의 마나가 뒤섞여 만들어낸 절호의 일격.
문 브레이크의 빛은 눈보라를 환하게 비추며 결계의 중심지로 직격했다.
아니나 다를까.
충격파의 힘으로 눈보라가 걷히고 비교적 맑아진 풍경. 그 속에서 아델라는 서 있었다.
그러나 평소의 얼굴이 아닌.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읽은 듯, 지루함을 견딜 수 없다는 얼굴로.
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