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어두운 병실.
이곳에서 빛이란 심박수 모니터가 간헐적으로 뿜어내는 초록색 불빛이 전부였다.
툭-
헬멧을 벗은 치트는 가만히 류밍을 내려다보았다.
“……흠.”
마치 편안히 잠이 든 모습.
하지만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류밍은 기계에 자신의 생명을 의지하는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스윽-
치트가 몸을 낮췄다.
치트는 류밍의 근처에서 빤히 얼굴을 바라보더니 의식도 없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참 불행하구나? 억울하겠다. 그렇지?”
당연히 류밍의 대답이 없음에도 차트는 마치 류밍과 대화하는 것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뭐?”
치트는 무언가를 들은 것처럼 류밍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대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뭐 그런 당연한 말을 하니.”
치트는 그건 당연한 이야기라며 한숨을 내쉬더니 미친 사람처럼 의식이 없는 류밍에게 자신의 인생론을 펼쳤다.
“원래 인생은 말이지, 불공평한 거야. 아니, 세상이 불공평하지.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절레절레.
치트는 그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 진짜~ 나도 다 겪어봐서 하는 이야기야.”
류밍을 바라본 치트는 이를 드러내며 눈을 크게 떴다. 너무나도 뾰족한 이빨과 초점이 흐릿한 눈빛은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어라, 안 믿네? 진짜라니까. 난 말이야. 알아주는 빈민가에서 태어났거든?”
그때의 하루하루는 치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눈을 감아도 그곳의 풍경이 생생했다.
“우리 판자촌의 옆에는 말이야. 목이 빠져라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고. 물론 걔네들은 우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겠지만…….”
치트가 살던 곳은 부서진 건물들과 판자를 덧대어 만든 허름한 집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물이 새어들어 왔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돌풍에 벽이 무너지던 곳이었다.
“불공평하지 않아? 겨우 100미터도 안 되게 가까운 장소인데. 난 그 녀석들이 먹다 남긴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야 한다는 게?”
물론 그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것에도 순서가 있었다. 판자촌에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강한 사람이 남의 것을 빼앗는 게 당연한 야생의 세계.
그곳에선 미래에 대한 꿈이라거나 생각 같은 건 사치였다.
하지만 치트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운명이 바뀌었다.
‘그래.’
그날도 치트는 먹을 것을 도둑질하기 위해 특성인 블링크를 사용했었다
[이 자식! 죽여버린다!]
블링크를 사용한 도둑질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똑같은 가게에서 도둑질을 시도한 게 문제였다.
[또 당할 줄 알았냐? 기다리고 있었지!]
몽둥이를 든 가게 주인은 평소처럼 치트가 블링크를 한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는 이딴 짓을 못하게 팔다리를 분질러 주지!]
덕분에 가게 주인은 치트를 잡아 당장이라도 몽둥이를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판자촌의 아이군요. 음, 먹을 것이 없어 도둑질을 한 모양이니. 부디 이걸로 용서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갑자기 그 남자가 나타났다.
평범한 갈색 머리.
자애롭게 웃고 있는 얼굴.
그 남자는 척 보기에도 부티가 나는 모습으로 가게 주인에게 돈다발을 건네주었다.
[모자라시면 더 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으, 음식 값으론 충분합니다!]
어린 치트는 강자의 앞에서 순식간에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가게 주인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웃다니. 신기하구나. 무엇이 그리 웃기니?]
남자의 질문에 어린 치트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저 사람도 이 판자촌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모두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지. 그게 참 웃기잖아 그치?]
그때 치트가 만난 남자가 바로 리벨리온의 대장 3017.
통칭 네임리스.
그는 치트에게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낮춰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그럼 넌 강해지고 싶니?]
강해지고 싶냐니. 왜 그렇게 당연한 말을 물었을까?
[응. 강해지고 싶어. 강해져서 내가 가지지 못한 건 전부 빼앗을 거야.]
[빼앗는다고?]
[당연하지. 잡아먹히는 것보단 잡아먹는 게 나아.]
다만 리벨리온의 대장이 될 그 남자는 치트의 대답에 아주 만족한 듯 보였다.
[똑똑하구나. 약한 사람은 설령 불공평한 일을 당하더라도 투정조차 할 수 없단다. 정의란 사실 강자를 위한 법칙이지.]
3017은 그렇게 치트를 향해 손을 뻗었고. 치트는 3017의 손을 잡았다. 그날부터 치트는 음식이나 도둑질하는 빈민가의 아이가 아니라, 공포의 존재인 리벨리온의 멤버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니까…… 빨리 인정해야 하는 거야. 이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슨 수단이든 사용해야지 안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뜬 치트는 자그마한 광석 조각을 꺼냈다. 그리곤 보랏빛을 뿜어내는 수상한 광석을 류밍의 입안에 넣었다.
“흐끅-!?”
그와 동시에 잠들어있던 류밍은 눈을 부릅뜨며 몸을 비틀었다.
괴로운 듯 목을 부여잡으며 끄으윽- 하고 내는 소리와 함께 온몸에 돋아나는 푸른 핏줄.
“걱정 마. 고통스럽지만 죽진 않을 거야. 금방 끝나니까. 그나저나 역시 다른 차원에서 온 물건인가? 효과가 확실하네.”
치트는 발악하는 류밍을 둔 채, 신기하다는 얼굴로 광석 조각을 바라보았다.
마석(魔石)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이 물질은 헌터들의 불법적인 능력 각성제로 많이 사용되는 물질이었다.
다만 지금 치트가 류밍에게 먹인 광석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 차원이 달랐다.
이건 3017의 능력인 이터널 디멘션을 통해 정말로 다른 차원의 마족과 계약을 통해 받은 광석이었다.
그들은 흔히 헌터들이 생각하는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종족, 마족이었다.
우당탕!
몸을 비틀던 류밍이 침대에서 떨어졌다.
“어라. 그렇게 아파? 이상하다 난 참을 만하던데.”
치트가 그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내려보자. 류밍은 괴로운 얼굴로 치트의 발을 붙잡았다.
“끄으윽, 사, 살려주세요…….”
치트는 그런 류밍의 모습에 곤란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오히려 자신이 부탁을 했다.
“너 아무리 아파도 죽으면 안 된다? 그럼 네 오빠가 우리를 죽이려고 할걸?”
치트는 한숨을 쉬며 무감한 얼굴로 바닥에 엎드린 류밍에게 담담히 말했다.
“그럼 우리도 네 오빠를 죽일 수밖에 없어.”
말 한마디로 느껴지는 섬뜩함.
긴 잠에서 깬 류밍은 영문 모를 고통에 몸을 떨며 간절하게 류진을 찾았다.
‘오빠…….’
* * *
전 가온의 1위.
아델라 오르텐시아가 강하다는 사실은 레온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람…… 더 강해진 건가?’
하지만 이번 전투는 정말이지 압도적이었다. 아델라는 준결승에 진출한 팀을 혼자서 궤멸시키는데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쩌적! 쩍-!
얼어붙었던 참가자들이 산산 조각나고.
사아아!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광경을 보며 아델라는 담담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아까 소피아가 보낸 좌표로 이동하죠.”
띠링!
하지만 곧 이어 등장한 메시지에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비앙카 아카데미]
[소피아 탈락]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소피아는 이미…….”
아델라는 소피아가 탈락한 사실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잠깐의 침묵 끝에.
“……그렇군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뭐 이미 저쪽에서도 마중을 나온 것 같으니. 상관없겠죠.”
순식간에 암운이 몰려와 어두컴컴해진 하늘. 레온은 아티팩트인 태양검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성스러운 빛이여…… 대지를 내리쬐라!”
화아악!
태양검을 든 레온의 주위에는 밝은 빛. 그 구역을 제외한 지역에는 어두운 암운이 전개됐다.
쿠그긍-
“운명인가? 방금 막 비앙카를 탈락시키자마자. 또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무엇을 믿고 있는 건지 너무나 자신만만해 보이는 김은아의 모습. 곧이어 암운 속에서 등장한 ‘무언가’의 등장에 레온의 얼굴은 곧 파랗게 질려버렸다.
“저, 저건…….”
암운이 걷히며 보이는 건 본 드래곤을 탄 스미레와 그 주변을 호위하는 언데드 군단의 모습.
스미레는 아델라에게 고개를 숙여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델라 씨!”
아무리 경기라도 목숨을 건 전투는 아닌 이상, 오랜만에 만난 스미레는 인사를 했다.
꾸벅.
그런 스미레의 인사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답하는 아델라.
“이번 경기가 끝나면…… 가온으로 돌아오시는 거죠? 벨벳이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하긴 벨벳이 보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긴 했지.”
스미레와 아델라의 말에 방금 까지만 해도 참가자 3명을 처참하게 탈락 시켰던 아델라는 눈이 커져 고개를 끄덕였다.
“벨벳이 저를……. 당연히 갈 생각입니다.”
정말이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아델라의 모습. 스미레는 빙긋 웃더니 잘 부탁한다며 인사 대신 당당하게 스킬의 이름을 외쳤다.
“서머너 링크!”
[소환사의 마나가 소환수에게 이전 됩니다.]
[소환수 : 본 드래곤]
[보유하신 마나의 87%가 본 드래곤의 에너지로 변환 됩니다.]
사아아!
처음은 스미레가 가진 보랏빛 마나가 힘을 발했다. 하지만 이내 마나는 붉은색으로 변해 본 드래곤을 향해 스며들었다.
이건 바로 아델라가 죽고 못 사는 벨벳의 마나. 평범한 헌터의 마나와는 근본부터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동화율이 높은 마나가 이전 되었습니다.]
이건 스미레가 준비한 가온의 전 랭커 아델라를 위한 최강의 공격. 지금까지 사용했던 다크 브레스와는 차원이 다른 벨벳표 마나였다.
지이잉-!
덕분에 구체를 만들어낸 본 드래곤의 주변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듯 공간이 일그러지고. 농축된 마나가 대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다크 브레스!”
콰아아앙-!
본 드래곤은 스미레의 명령과 함께 그 순수한 마나 덩어리를 아델라를 향해 최대 출력으로 내뿜었다. 숲은 물론이고 지역 전체를 초토화시킬 마나 폭탄.
“이, 이건!”
거리가 멀었던 레온은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다크 브레스는 정통으로 아델라를 휩쓸어버렸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피부가 저릿저릿해지는 마나 농도.
‘저런 공격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 레온조차 전의를 상실하고 몸이 굳어버렸지만, 기다리던 탈락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쿠웅!
먼지 폭풍이 걷히고 천천히 드러나는 결과. 그곳에는 얼음으로 다크 브레스를 막아낸 아델라가 스미레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