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본 드래곤의 엄청난 비행 속도.
스미레는 시끄러운 파공음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정말 높죠! 은아 씨? 섬이 한눈에 다 보여요오-!”
굳이 함께 날고 싶다고 말하기에 뒷자리에 타긴 했지만 겁이 많은 김은아는 이런 경험은 사양이었다.
“우, 우리, 이제 내려갈까?”
김은아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얼굴로 스미레에게 물었다.
“막 날아 올랐는데…….”
반면 본 드래곤과 교감하는 스미레는 이제 고공비행이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였다
“오히려, 전부 작게 보여서 그렇게 무섭진 않아요!”
이렇게 스미레가 직접 제안까지 하자 김은아는 슬쩍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그 거대했던 고스트크루즈는 마치 장난감처럼, 거대한 섬과 그걸 둘러싼 바다의 모습은 마치 풍경화처럼 느껴졌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전경.
“정말. 멋있죠?”
김은아는 그제야 스미레의 등에 몸을 더욱 밀착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 멋있긴…… 한데에에에에엑!”
부우우웅-!
본 드래곤이 지상을 향해 순식간에 하강하자 김은아는 스미레를 더욱 꽈악- 껴안았다.
“꺄아아악-!”
하강을 끝낸 본 드래곤은 지상의 근처에서 몇 차례의 날갯짓을 한 후, 스미레와 김은아를 내려주었다.
“아하하, 장난을 쳐서 죄송하시대요. 괜히 은아 씨를 놀려주고 싶었다고 하시네요.”
덕분에 김은아는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도끼눈을 떴다.
“……이 뼈다귀가 진짜 장난치나.”
하지만 지금 놀랄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근데 너 본 드래곤이랑 말이 통해? 얜 뼈다귀라 소리도 못내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스미레는 본 드래곤과 소통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마나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텔레파시도 가능하세요.”
“지, 진짜?”
언데드인 본 드래곤이 지성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런데 말까지 통한다고?’
김은아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못 믿겠다는 얼굴로 본 드래곤을 바라보자.
사아아-
본 드래곤의 눈에 푸른 불빛이 일렁였다.
칙- 치직-
마치 오래된 텔레비전이 전파를 잡는 듯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본 드래곤은 입을 열었다.
[스미레가 아닌 인간과 인사를 하는 건 처음이군. 아까는 내가 장난이 심했었군. 미안하네.]
심지어 본 드래곤의 말투는 무척이나 신사적이었다. 이젠 놀라고 싶지도 않을 지경.
다만 김은아는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었다.
“근데 본 드래곤은…… 드래곤 하트가 없어서 마나를 못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아까 보니까. 날개에도 마나를 두르던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 맞아요! 심지어 드래곤의 마나 체계는 인간과 다르니까요.”
본 드래곤은 어디까지나 흑마술의 힘으로 일어난 언데드. 드래곤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제가 주는 마나로 텔레파시 같은 고도의 활용은 불가능해요.”
스미레의 말은 지금 본 드래곤이 사용하고 있는 게 자신의 마나가 아니라는 이야기.
“네 마나가 아니라면 그럼 설마 이 본 드래곤…….”
그렇다면 본 드래곤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마나를 준 게 누구일까?
“네! 본 드래곤 씨는 지금 벨벳에게 받은 마나를 사용하고 계세요!”
삐- 끄덕끄덕.
본 드래곤은 스미레의 말에 거대한 고개를 움직였다.
[그 아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츨링이라고 했나?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야.]
인간으로 치면 할아버지.
아니지, 뼈다귀에 마나를 불어넣어 살려 놨으니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김은아는 벨벳이 걱정되는지 본 드래곤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그 아이의 마나를 걱정하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네. 그 아이가 가진 마나의 량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에이션트 드래곤과 비견 될 정도일세.]
벨벳은 7급 재앙룡. 사도닉스가 남긴 알에서 태어났으니 재능이 비범하다고 해도 놀랄 건 없었다.
‘그 녀석…….’
[벨벳은 드래곤이야!]
[벨벳은 천재야!]
[벨벳은 불도 뿜어!]
김은아는 시간만 나면 자신의 천재성을 어필하던 벨벳의 모습이 겹쳤다. 처음에는 그냥 귀엽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쯤 되니 괜히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진짜, 엄청나네…….’
생각보다 금방 배우는 걸 보면 성장도 빠른 것 같았다. 그럼 정말 나중에는 엄청난 드래곤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커다란 드래곤이 되어서 같이 하늘을 난다던가…….’
물론 지금은 멀고도 먼 이야기.
아직 벨벳의 역할은 스미레에게 마나를 선물해주는 정도였다.
[애당초 나를 언데드로 소환한 것도 그 아이의 마나가 있었기 때문이니 말일세.]
“그래도 교육에 안 좋으니 벨벳 앞에선 너무 치켜세워주진 마.”
그래. 너무 칭찬을 해줬다간 벨벳은 자신을 천재! 천재! 드래곤이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근데 다들 어디에 계신 걸까요? 좀처럼 보이지가 않네요.”
스미레가 주변을 둘러보자.
김은아는 흠- 하고 짧게 생각한 후 말했다.
“공중에서도 안 보이던 걸 생각하면…… 숨어 있는 거 같은데? 뭐, 예를 들어 숲이라던가.”
확실히 김은아의 말처럼 눈앞에 펼쳐진 숲은 몸을 숨기기에 너무나 좋아보였다.
스미레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듯 평소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무서운 말을 뱉었다.
“그럼 이 숲. 날려버릴까요?”
“으, 으응? 수, 숲을?”
당황한 김은아가 한 걸음 물러나며 되묻자. 본 드래곤은 자신 있게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내 브레스 한 방이면 이 숲 정도는 깨끗하게 청소 할 수 있다네.]
“아니 근데…… 여기 누가 있을지 알고…….”
어쩐지 과격해진 스미레의 모습에 오히려 김은아는 상식인 포지션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누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저는 유성 씨에게 언제나 안전하게 최선을 다하라고 배웠는걸요?”
아무리 그래도 본 드래곤의 브레스로 숲을 날려버리겠다니. 스케일에 정도란 게 있지 않을까?
“그리고 유성 씨가 숲에 계셨다면 이 정도 거리에선 저희를 진작 발견 하셨을 테니까요.”
“음, 그건…… 맞긴 하네.”
결국 김은아를 설득한 스미레는 자신 있게 숲을 향해 검지를 뻗으며 외쳤다.
“서머너 링크.”
[소환사의 마나가 소환수에게 이전 됩니다.]
[소환수 : 본 드래곤]
[보유하신 마나의 55%가 본 드래곤의 에너지로 변환 됩니다.]
서머너 링크를 통해 스미레가 본 드래곤에게 마나를 전달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드래곤 하트로 만들어진 정순한 벨벳의 마나와 스미레 자신의 마나를 섞는다.
사아아-!
그 다음 계약을 통해 맺어진 관으로 전달.
쩌억-
본 드래곤이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입을 벌렸다. 본 드래곤에게 전달된 마나는 목을 타고 올라와 입에서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구체를 형성했다.
“다크 브레스!”
구우우웅-!
스미레의 외침과 함께.
파앙!
발사된 본 드래곤의 다크브레스는 주변에 엄청난 광풍을 일으키더니.
지이잉!
브레스에 닿은 물체들을 입자로 분해 시켰다. 거대했던 숲을 단숨에 평야로 만든 것이다.
띠링!
[배리어가 0% 남았습니다!]
[데미지 100%]
[누적 데미지가 100%를 채워 포탈 밖으로 퇴출됩니다!]
[비트라 아카데미]
[알키논 탈락]
[비트라 아카데미]
[일라미자 탈락]
마치 그 결과를 증명하듯 눈 앞에 떠오르는 푸른 홀로그램을 보며 김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감탄했다.
“진짜 있었네…….”
심지어 1명도 아니고 2명을 스미레와 본 드래곤은 브레스 한 번으로 지워버린 것이다.
“그럼 다음으로 갈까요!”
싱긋- 어쩐지 평소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스미레의 미소.
“으, 으응…….”
김은아는 그런 스미레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빠졌다.
‘스미레는…….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야?’
시작점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김은아는 가온의 랭킹 2위.
반면 스미레는 최하위권. 하지만 지금의 스미레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해버렸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자신보다 강하지 않을까? 본 드래곤과 함께 숲을 향하는 스미레의 뒷모습을 보며 김은아는 생각에 빠졌다.
생각해보면 스미레 뿐만이 아니었다. 신유성은 새로운 투신류를 배우며 매 순간 놀라보게 강해졌고 활을 버리고 다시 총을 들게 된 이시우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적어도 어제의 자신보단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파티원들 속에서 자신은 정체된 게 아닐까?
멈춰선 김은아가 오지 않자 스미레는 뒤를 돌아보았다.
“으, 은아 씨 괜찮으세요?”
굳은 김은아의 표정에 걱정이 되는 모양. 하지만 김은아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그냥 잠깐 생각이 많아져서.”
* * *
불꽃?
정말 이걸 불꽃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쿠라는 눈앞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디안의 오른팔에서 뿜어진 검은 불꽃은 마치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었다.
“해내겠다는 의지로 넘치는 생기. 그래. 눈만 봐도 알 수 있지. 하지만 너와 난 처음부터 짊어진 무게가 다르다.”
촤아악!
마치 채찍이나 촉수처럼 순식간에 길어진 불꽃.
“어딜!”
즈으윽- 파앙-!
사쿠라는 바람을 실어 화살을 쏘았다. 서로의 마나를 상쇄시켜 불을 끌 생각이었지만.
츠즈즉-!
검은 불길은 마치 의지를 가진 듯 여러 갈래로 산개해 사쿠라에게 작렬했다.
“이, 이건!”
움직임을 눈치 채고 피하거나 막아낼 새도 없었다. 어떻게 그 짧은 찰나에 발사한 불을 수족처럼 조종 할 수 있었을까.
[배리어가 0% 남았습니다!]
[데미지 100%]
[누적 데미지가 100%를 채워 포탈 밖으로 퇴출됩니다!]
사쿠라에게 쇄도한 검은 불꽃은 총탄처럼 배리어를 꿰뚫었다.
“……놀란 얼굴이군. 어떻게 내 불꽃이 화살을 피했는지 궁금한가?”
“……크윽윽!”
분한 얼굴로 노려봐도.
온몸이 꿰뚫린 사쿠라의 몸은 푸른 입자로 변하고 있었다.
“내 불꽃은 제 각기 의지를 가지고 있다. 헌터들의 염원이 이어져 내려온 술식이지. 말했지 않은가? 짊어진 무게가 다르다고.”
점점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
[쵸텐 아카데미]
[사쿠라 탈락]
사쿠라는 결국 질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