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높은 나무들 때문에 그늘이 무성하고 반경 시야가 좁은 숲. 하지만 신유성은 눈을 감고 다른 시각으로 풍경을 보고 있었다.
생물이 아닌 것들의 소리.
바위의 마나.
나무의 마나.
해변의 모래알보다 작은 차이지만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가령…….’
자연물보다 보유한 마나가 월등하게 높은 헌터들은 일종의 버릇이 있었다. 그건 바로 기습에 대비해 몸에 마나를 두르는 것.
물론 발현된 마나는 곧 공중으로 흩어져 형체를 잃지만 신유성에겐 희석된 마나가 선명히 보였다.
‘이 마나는 헌터의 것이다. 자연의 것이 아니야.’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찾은 것처럼 신유성은 흔적을 따라 추리를 시작했다.
‘발자국은 물론이고 사소한 흔적조차 모두 지웠지만. 마나는 숨길 수 없었겠지.’
그래 평범한 헌터는 인지조차 못하는 미세한 마나다. 보이지 않는 흔적을 어떻게 지우겠는가?
하지만 신유성은 그 흔적을 따라 한 나무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 앞을 지나가라며 자연스럽게 인도된 샛길 사이에 놓인 나무를.
‘상대의 진입로를 예측해. 함정을 파둔다. ……좋은 솜씨군.’
신유성은 숲에 진입한 순간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감각을 일깨웠다. 애초에 그는 이런 함정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저벅.
눈치를 채지 못한 듯, 평소와 같은 박자의 발걸음.
쿵!
하지만 순식간에 발을 땅에 딛으며 신유성은 나무를 향해 반대편 손을 뻗었다.
투웅-!
신유성이 한 손으로 쏘아낸 건 고도로 압축된 마나 덩어리.
쐐액!
가속한 마나 덩어리는 맞기만 한다면 나무는 물론이고 순식간에 배리어를 박살 낼 공격이었다.
팡!
“큭-!”
세이지는 타고난 순발력으로 치명타는 피했지만 마나 덩어리에 다리를 맞고 말았다. 물론 세이지는 굳건하게 버텼다. 오히려 신기하다는 얼굴로 여유롭게 질문까지 던졌다.
“매복을 하고 먼저 기습을 당하다니……. 어떻게 알아챈 거야?”
“마나는 흔적을 남기거든.”
휘발된 마나로 상대의 위치를 알아냈다니 보통의 헌터라면 미친 소리였지만 세이지는 신유성의 말을 믿었다.
“하하! 그게 정말이라면 이미 인간의 범주가 아니겠는데?”
탓!
공중으로 점프한 세이지.
찌익!
세이지가 웃으며 품에서 두루마리를 찢자. 바닥에서 시작된 불길이 신유성을 덮쳤다.
화아아악!
그러나 두루마리로 발휘한 불길의 본질 또한 결국은 마나.
‘마나 공명.’
신유성은 불길과 똑같은 수치로 마나의 파장을 맞춘 채 힘의 축을 비틀었다.
파르륵!
원래 가려던 방향 대신 반대편을 향해 불길이 솟구치자. 세이지는 네 명의 그림자로 변해 품에서 암기를 던졌다.
사방에서 한순간에 던지는 암기.
이건 세이지가 그림자를 이용한 특기였다. 다른 쪽을 막더라도 결국엔 공격을 허용하게 되는 비기.
하지만.
신유성은 손바닥으로 허공을 짚으며 원을 그려 회전했다.
화아아악!
흑룡회천.
한순간에 회오리치는 마나와 함께 암기는 오히려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
퍼억!
덕분에 그림자에 숨어있던 세이지는 암기에 팔이 꿰뚫렸다.
[배리어가 87% 남았습니다!]
[데미지 13%]
시스템의 경고에도 팔을 다친 부상에도 세이지는 멈추지 않고 신유성을 향해 칼을 내려찍었다.
“비검(飛劍)!”
스윽.
신유성이 몸을 틀어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가볍게 피하자. 세이지는 횡으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짧은 거리에서 검보다 빠른 건 손.
“이 거리에선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거야.”
신유성은 담담한 얼굴로 사형 선고와 같은 말을 뱉었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순식간에 손에 응축된 마나.
세이지의 눈에 폭룡암쇄장의 힘은 마치 수천 수만 개의 칼날이 작은 구처럼 모인 것 같았다.
자신의 몸 같은 건 간단하게 조각내고 일대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
‘공격을 회수해야 해! 저걸 맞으면 다음은 없다!’
세이지는 찰나의 판단으로 물러났지만 자세가 무너진 상황에서 평소의 속도가 나올 리가 없었다.
콰아아악-!
‘그림자를 먹이로 줄 수밖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흑룡암쇄장의 힘에 그늘에서 솟아난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쏴아악-!
마치 바다 회오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룻배처럼 폭룡암쇄장은 세이지가 꺼낸 수백 수천의 그림자를 삼켰다.
‘준비해둔 그림자의 절반 이상을 벌써…….’
단 한 합에 이 정도 그림자를 소모하다니 이런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만일의 만일.
이번 전투를 이긴다고 해도 우승 할 수 있을까?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세이지는 알고 있었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신유성을 이기거나, 국가대항전에서 우승을 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탓-
안전한 거리까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난 세이지는 신유성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스으으-
“신유성.”
천천히 세이지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일어났다. 세이지는 천천히 몸이 그림자에 잠식당하는 순간에도 웃으며 신유성을 불렀다.
“너에게 패배한 그날. 정말 분했어. 눈물이 날 정도였지.”
“……세이지?”
신유성은 스미레의 일로 세이지와 교류한 적이 있음에도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사각- 사가각-
그림자는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처럼 세이지를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잠식했다.
이제 다리까지 그림자에게 삼켜진 세이지는 한숨을 쉬었다.
“미안. 너무 못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하- 하고 세이지는 평소처럼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 담긴 감정은 담담해보였고 결연해보였다.
“그래도 모든 수를 사용해도 너에게 털끝조차 닿을 수 없었잖아.”
자신의 약함을.
상대를 강함을.
“너는 정말 강해. 네가 부러워.”
그 모든 사실을 인정 할 수 있는 건 강자의 전유물.
“……내가 아닌 너라면 분명 류코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거야.”
세이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그림자는 몸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수십 수백의 그림자가 세이지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지직- 지직-
“……넌 내가- 인, 정한 최강. 널 상대로. 이 기술을 보일 수 있어서 기뻐.”
세이지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음이나 누군가의 음성이 섞인 듯 혼돈스러웠다.
꽈악-
주먹을 쥐고.
술법을 위해 인을 맺고.
“간다!”
환영강신(幻影降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