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김준혁의 허상에 구멍을 내는 모습을 보며 소피아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움찔.
“이, 이럴 리가…… 파랑새가 물어준 정보에는 분명…….”
수정구 속 김은아는 그런 소피아가 들으라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 어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너 듣고 있지?
허공에 말을 걸다니.
설마 내 정체까지 안 걸까?
‘아니 그럴 리 없어.’
지금 벌어지는 일이 특성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그냥 막연한 추측일 것이다.
‘……일단 지금은 제약을 통해 충분히 마나를 얻지 못했어. 힘이 모자라니 이곳을 벗어나는 게 승리에 유리해요.’
빠른 판단으로 수정구와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소피아. 하지만 언제 올라온 건지 밑층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디 어디 숨었나? 아, 설마 선장실?
몸을 숨기려면 기회는 지금뿐.
‘어, 언제 이렇게 빨리!’
짐을 챙긴 소피아는 재빠르게 복도로 달려갔다. 하지만 선장실의 옆은 막다른 길. 크루즈의 계단은 김은아가 올라오고 있는 쪽 단 하나였다.
‘……지금 내려가면 무조건 들킬 수밖에 없어.’
짐을 챙긴 소피아는 일단 옆 칸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선장실의 옆에 있었던 건 다양한 물자들이 정리된 깜깜한 창고.
콜록- 콜록!
먼지에 기침을 한 소피아는 다급하게 자신의 입을 가렸다. 이런 상황에선 작은 숨소리조차 상대에게 추적의 단서가 되기 마련이었다.
‘일단……. 이 위기만 넘기면. 다른 이야기를 쓰면 되요. 그럼 분명 다시 기회가…….’
콰앙!
저 멀리서 발로 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소피아는 더욱 숨을 죽였지만 김은아는 이곳에 누군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발소리 들었거든? 쥐새끼마냥 숨어 있기는…… 하, 내가 못 찾을 거 같아?”
‘드, 들킨 건가?’
콜록-
먼지에 짧게 기침을 한 소피아는 다시 입을 가리고 더 확실하게 숨을 곳을 찾았다. 물건이 가득찬 창고에서 그나마 소피아가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더러운 캐비넷.
‘조사 결과 이런 녹슨 캐비넷에 1제곱미터당 세균의 수는…….’
결벽증이 있는 소피아에겐 끔찍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지금만 참는 거예요. 어차피 여긴 가상 포탈…….’
하지만 소피아가 느끼는 감각은 진짜였다. 비릿한 녹의 냄새와 곰팡이가 서린 퀴퀴한 냄새.
그렇게 잔뜩 인상을 찡그린 소피아가 숨을 참고 있을 때.
콰아아앙!
바로 옆 칸 선장실을 박살 낸 김은아는 소피아가 들으라는 듯 싸늘한 목소리로 크게 떠들었다.
“난 말이지. 보기보다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
그래.
비록 10년도 넘은 일까지 기억해냈지만 그건 기억력이 좋은 것일 뿐 김은아는 자신이 뒤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니 어떤 수단을 쓰든 다 이해하려고 했어. 이건 경기고,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니까.”
끼이익.
김은아는 창고의 문을 부수지 않았다. 오히려 느릿하고 확실하게 천천히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넘으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선이란 게 있어.”
김은아는 주먹을 쥐자.
푸른 번개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하지만 이건 전류로 상대를 감전시키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의 신체 능력을 강화시킬 목적이었다.
더욱 빠른 발.
칫직!
더욱 강한 주먹.
치직!
더욱 정확한 동체시력.
치지직-!
평소보다 몇 배는 강화된 신체로 김은아는 자세를 잡았다.
“내게 넘으면 안 되는 선이란. 멋대로 떠올리기도 싫은 내 상처를 헤집어 놓는 일이야.”
김은아가 심호흡을 했다.
몸을 웅크린 소피아는 속으로 제발제발-을 중얼거리며 숨죽였다.
“더 넘으면 안 되는 선은. 나의 소중한 사람을 건드리는 일이야.”
펀칭 자세를 잡으며 김은아는 이렇게 외쳤다.
“하지만 넌 자신을 위해 그 선을 모두 넘었지!”
파앗!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낡은 캐비넷을 후려치는 김은아.
쾅!
“꺄아아악!”
찌그러진 캐비넷의 구멍으로 소피아는 다급하게 기어 나왔다.
후다닥-
사족보행으로 땅을 기어 순식간에 일어난 소피아가 복도로 달려 나가자. 김은아를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내가 놓칠 거 같아!?
“꺄아아아아악-! 죄,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소피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뽈뽈 복도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신체를 강화한 김은아를 따돌리는 건 무리.
다다다다-!
무서운 눈초리를 한 김은아는 매섭게 따라 붙으며 검지를 총처럼 만들어 전기를 쐈다.
치지직! 칙!
“하. 왜 이렇게 안 맞아?”
“꺄아아아악-!”
하지만 맞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상대가 나보다 느리다면 상대를 붙잡으면 되는 거니까.
“넌 죽었어.”
탁.
결국 김은아는 소피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
인생의 마지막에서.
사람은 지금까지의 삶을 주마등처럼 떠올린다고 하던가?
지금 소피아도 그러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공포를 선사할 소재로 오빠를 선택한 것? 아니면 바보처럼 막 다른 길에 숨은 것?
‘그래. 차라리…….’
1초가 수천 갈래로 쪼개졌다.
찰나가 영원 같은 지금 이 순간.
소피아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후회하고 있을까?
스윽.
‘거대 뱀장어나. 메기로…….’
하지만 후회해도 늦은 상황.
지지지지지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