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38화 (238/434)

제238화

김은아가 있는 객실의 바로 윗층.

객실의 복도와는 가깝지만 충분히 안전이 확보된 곳에서 소피아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에겐 이 수정구가 있으니.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죠.’

사아아-

소피아가 사용중인 건 레어급 아티팩트인 투시의 수정구. 반경 100m의 안이라면 원하는 곳을 볼 수 있는 마법의 수정구였다.

- 꺄아아아! 흐윽! 저리 꺼져! 꺼지라고오오-!

덕분에 소피아는 울며불며 소리치는 김은아를 수정구로 지켜보며 오- 하고 작게 감탄했다.

신성력도 아닌 전기로 직격당한 귀신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다니.

그건 타고난 마나의 순도가 높은 건 분명하고, 그 마나를 투영하는 특성의 수준도 상당히 높다는 증거였다.

‘……이 사람. 하는 행동은 어설프지만 엄청 강하네요.’

비록 겁에 질린 탓인지 적중률은 형편없지만 김은아의 번개의 파괴력은 상상 초월.

‘지금의 전력으로 싸운다면 승산은 제로. 이대로 제약과 이야기의 힘을 충분히 활용하는 게 좋겠지만…….’

그저 귀신을 보여주는 단순한 공포만으로 확실한 승기를 잡는 건 비전투요원인 소피아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저 파괴력을 상쇄시키려면 조금 더 마나가 필요해. 그러려면…….’

소피아가 지금 걸어둔 제약은 공포. 김은아가 두렵다는 감정을 느낄 때마다 소피아는 강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귀신으로 놀라게 만드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조금 더…… 근원적인 공포.’

그런 공포를 느끼게 하기 위해선 시너지가 필요했다.

‘예전에 겪었던 일을 안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후우욱-

“파랑새.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기억을 물어다 주세요.”

소피아는 손바닥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나가 담긴 호흡은 푸른 파랑새로 변해 하늘을 자유로이 날았다.

짹 째잭!

휘익!

제자리에서 화려하게 공중제비를 돈 파랑새는 어느새 입에 쪽지가 물려 있었다.

‘이게 키워드인가.’

소피아가 원하는 정보.

즉 김은아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물어온 것이다. 소피아는 느긋하게 쪽지를 펼쳤다. 쪽지에 담긴 키워드는 딱 2개였다.

[김은아-오빠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질까 두려워. 더 이상 소중한 사람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 건 너무 싫어.]

[김은아-난 깊은 물이 너무 무서워. 허우적거려도 움직일 수 없는 느낌이 무서워.]

‘그렇군요. 친지의 혼수상태. 그리고 깊은 물……. 익사란 정말 끔찍한 형태의 죽음이죠.’

정보를 취득했다면 이제 남은 일은 이 정보를 통해 이야기를 짜내는 일. 소피아는 펜을 들었다.

‘이야기란 자유로운 것. 물을 두려워한다고 굳이 물에 빠트릴 필요는 없겠죠.’

슥- 스스슥-

소피아는 아무렇지 않게 제약의 펜으로 이야기의 공책에 글자를 채워내려갔다.

[김은아는 오컬트적인 존재에게서 도망친다.]

그래. 전기를 내뿜으며 김은아는 도망치고 있다. 그건 수정구로도 볼 수 있는 사실.

[겁이 많아 귀신을 무서워하지만 김은아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공포는 그게 아니었다.]

소피아는 슥슥- 펜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야기란 것이 원래 그렇다. 순전한 허구보다는 진실을 섞을수록 이야기의 힘은 빛을 발하기 마련이었다.

[김은아는 막다른 길. 계단에서 내려오는 자신의 오빠를 만나게 된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오빠.]

한 번 생각해보자.

김은아는 소중한 사람이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더 공포를 느낄까?

자신이 물을 두려워하는 만큼.

소중한 사람도 똑같은 일에 당했을 때 더 공포를 느끼지 않을까?

슥슥-

[김은아의 오빠는 물에 젖은 채로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온다. 초점이 없는 비통한 얼굴로.]

툭.

이야기를 마친 소피아는 제약의 펜을 놓았다

“……정말 완벽한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대로 상황이 진행된다면 저의 승률은 99.97%. 이미 승리한 것이나 마찬가지.”

소피아는 자신의 이야기에 공포에 질릴 김은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죄송하다는 듯 간단히 목례를 했다.

“악감정은 없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 죄송할 따름이군요.”

그렇게 혼잣말을 마친 소피아는 진정한 적으로서 김은아를 맞이하기 위해 선장실로 올라갔다.

모든 준비를 끝낸 것이다.

*     *      *

국가 대항전의 모든 경기는 참가자만의 개인 채널을 통해 스크린으로 시청 할 수 있었다.

“캬, 캬항…….”

지금 벨벳이 보고 있는 건 김은아의 채널.

-유성아아!

김은아는 괴상한 비주얼의 귀신들에게 쫓기며 죽어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캬항. 김은아 엄마. 아빠를 엄청 부르고 이써…….”

벨벳은 김은아가 부끄럼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크나큰 착각!

‘이럼 모두가 알게 될 거야!’

김은아는 자랑스럽게 신유성을 온 동네방네 아니 전 세계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건 부끄러움이 많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

‘김은아 엄마는 진정한 사랑꾼이어써!’

벨벳은 포크로 냠냠쩝쩝- 케이크를 먹으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김은아를 지켜보았다.

*     *      *

타다다다!

얼마나 비명을 지르며 크루즈의 복도를 얼마나 달렸을까? 김은아를 제외한 크루즈의 복도는 마치 극의 클라이막스를 준비하듯 잠잠해져 있었다.

“……끝난, 건가?”

그러나 소피아가 준비한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저벅저벅.

차분한 구두소리.

물에 젖은 하얀 정장과 어딘가 공허한 눈. 상대는 김은아에게 너무나 익숙한 김준혁의 얼굴로.

“……안녕. 은아야?”

상냥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뚝-

덕분에 계단 앞에서 김은아는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이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그냥 평범한 스테이지가 아니구나?”

김준혁.

너무나 소중하고 반대로 너무나 깊은 트라우마를 심어준 존재. 심지어 그런 오빠를 물까지 잔뜩 적셔서 오다니 상대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이상했어. 하나하나 누군가 짜둔 이야기 같잖아?”

계속되는 김은야의 말에 김준혁은 슬픈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은아야. 무슨 말이야. 혹시 오빠를 잊은 거니?”

저런 대사를 던지면 자신이 슬퍼할 것이라 생각한 걸까? 김은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야, 잊었겠니?”

그래 상대가 짜둔 이야기에는 결정적인 맹점이 있었다.

“우리 오빠는 일주일 전에도 만났는데?”

김은아에게 김준혁은 이미 해결된 트라우마라는 것.

“무슨, 소리야 은아야……. 오빠는 혼수상태에서 막 일어난…….”

뜻밖의 반응에 김준혁의 허상이 말을 더듬자. 김은아는 우드득- 손을 풀었다.

“이거 어쩌지? 난 이제 오빠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은아야. 나, 나는 네…….”

허상은 계속 김준혁의 흉내를 내며 발악했지만 김은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됐어. 차라리 거대한 메기나 뱀장어로 나타나지 그랬어. 그게 더 무서웠을 텐데.”

파앗!

푸른 전기가 주변을 감싸며 김은아의 몸이 사라졌다.

쩌억!

순식간에 등을 발로 찬 김은아.

데굴데굴!

“캬으, 아아악! 어떻게에에 가족으으을!”

허상이 손가락질을 하며 악을 쓰자 김은아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리고 그 얼굴로 오면 못 팰 거라고 생각했나 본데. 그건 단단히 착각한 거야. 우리 오빠가 병자라 못 갚아준 거지. 난 쌓인 게 많거든?”

퍼억!

주먹으로 배를.

퍽!

간결하게 다리를 걷어차고.

김은아는 넘어지는 허상의 몸을 그대로 엎어뜨렸다.

쾅!

“케엑!”

개구리처럼 엎어진 허상이 비굴한 표정을 짓자.

“역시 체술로는 안 되나? 생각보다 끈질기네.”

김은아는 하늘로 검지를 들었다.

지직! 직!

지지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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