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37화 (237/434)

제237화

[포탈에 입장하셨습니다.]

사아아-

푸른빛의 입자가 눈앞에서 흩날리자. 김은아는 혹시 적이 있을지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보이는 건 어두운 방의 정경일 뿐이었다.

‘아니 여긴…… 객실?’

[시작 장소-고스트 크루즈]

[안내-육지 근처에서 난파한 거대한 크루즈입니다. 심령 현상일까요?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김은아의 생각이 맞았다.

여긴 크루즈의 객실 그것도 이름에 ‘고스트’가 붙은 굉장히 수상한 시작 장소였다.

‘주변에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김은아가 조용히 움직이자.

삐그덕!

무언가를 밟았는지 밑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윽그?”

움찔.

몸을 떤 김은아가 슬며시 시선을 내렸다. 김은아가 밟은 건 정체불명의 인형.

“이, 이거 먼데…….”

더러운 것을 잡아 올리듯 김은아는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인형을 잡아 올렸다.

덕분에 전원이라도 켜진 걸까.

지직, 지직-

머리가 깨진 인형은 라디오처럼 이상한 소리를 냈다.

“아, 지직- 침에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아- 아- 아- 아- 아…….”

고장이 났는지 인형은 기계음에 가까운 이상한 소리를 반복해서 냈다.

툭!

김은아는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인형을 떨어트렸다.

“아- 아- 아아- 으으--…….”

배터리를 전부 소모했는지 소리를 내는 걸 멈춘 인형.

“하, 진짜 여기 뭐냐…….”

김은아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긴 참 특이한 장소네? 라고 여유도 부렸다. 하지만 김은아의 눈시울은 평소보다 유독 붉어져 있었다.

‘지, 진짜 뭐냐고……. 난 그냥 싸우러 온 건데…….’

김은아는 어린 시절부터 공포의 집은 질색이었다. 놀이 공원에서도 롤러코스터는 물론이고 바이킹도 타지 않았다. 물에 빠진 이후 겁이 많아졌으니 당연한 일.

“그, 그리고…… 설정된 시간이 밤이야? 왜 이렇게 어두워?”

혼잣말이 많아진 김은아는 괜히 중얼거리며 창가를 찾았다. 하지만 크루즈의 특성상 김은아가 있는 객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일단 여기를 나가야겠어.’

더 이상 인형을 밟고 싶지는 않은 듯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온 김은아.

스루루- 물끄덕-

마치 수영장에 몸이 잠겼을 때 들었던 기묘한 물소리에 김은아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보이는 기분 나쁜 풍경.

‘여긴…….’

깊은 바다.

칠흑 같은 시야.

그 틈 사이로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육지의 빛.

김은아가 있는 객실의 층은.

‘바닷속이잖아?’

고스트 크루즈의 선체는 일부가 바다에 잠겨 있었다.

[안내-고스트 크루즈의 선체는 물이 들어올 수 없도록 결계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선체에서 나가기 위해 결계를 파훼하세요.]

‘결계?’

하지만 무작정 결계를 파훼하라니 김은아는 신유성처럼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것도. 결계를 파훼할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막막하기만 한 그때.

끼이익! 철퍽!

보란 듯 김은아의 앞에 매뉴얼이 떨어졌다.

[고스트 크루즈는 승객들을 위해 결계의 파훼법과 안전수칙을 제공합니다.]

도대체 누가 준건지 모를 매뉴얼은 비록 물에 젖었지만 잘 코팅된 덕분에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1. 실수로 결계 안에 들어왔다면 선장실을 찾으세요.]

[이건 내부 지도입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이걸 보고 선장실까지 올라가면 된다는 거지?’

심지어 매뉴얼에는 내부 지도까지 첨부되어 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뉴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 저희 크루즈에 숫자 4가 들어가는 객실은 없습니다.]

숫자 4?

왜 이런 안전수칙이 매뉴얼에 들어 있는 걸까 김은아는 오싹해지는 느낌에 자신이 나온 방의 번호를 확인했다.

[102호]

다행이 매뉴얼에 적힌 대로 숫자 4가 적혀 있진 않았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방은?’

꿀꺽, 침을 삼킨 김은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103호]

예상대로 객실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103호의 옆에 있는 방은 뭘까?

저벅저벅.

김은아는 조심스럽게 방을 향해 다가갔다. 창가 너머로 일렁이는 칠흑의 바다. 김은아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객실을 확인했다.

[104호]

“으, 으우…….”

사악.

김은아가 찔끔 눈물을 흘리며 매뉴얼의 다음 장을 넘겼다.

[3. 특히 104호란 객실을 발견하셨다면 절대 들어가지 마십시오.]

주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김은아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4. 만약 그럼에도 104호를 발견했다면 문을 열지 마십시오.]

김은아는 이런 공포를 느끼러 온 게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기권을 외치고 싶은 공포.

끼이이익.

기름칠이 덜 된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객실의 문이 열렸다. 김은아가 지금 의지할 수 있는 건 이 매뉴얼뿐이었다.

사락.

[5. 문이 열려있다면 절대 104호의 내부를 확인하지 마십시오.]

저벅.

저벅.

104호? 아니면 103호?

어딘지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6. 104호에서 여자가 나온다면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마십시오. ]

김은아는 매뉴얼의 안내에 벌벌 떨며 고개를 돌렸다.

‘이, 이게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실은 자신이 들어온 건 가상 포탈이 아니라. 잘못된 공간이 아닐까? 만약 이 모든 게 주최 측의 오류라면 지금이라도 기권을 외치고 탈출하는 게 맞지 않을까?

누군가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면 대회에서 이런 장소가 있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김은아의 몸을 지배하는 건 ‘이야기의 공포’.

“끄그그그그-”

괴상한 신음을 내며 누군가 문을 걸어나오고 있었다.

사륵.

[7. 104호에서 여자가 나온다면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세요. 그녀는 이 장소에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당신에게 조언을 해줄 겁니다.]

김은아는 매뉴얼에 적힌 7번의 안전 수칙을 보며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여자가 나온다니? 가만히 기다리라니?

그리고 이 죽죽 그어둔 취소선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어어어- 아, 아아, 아- 아침에는-”

정체 모를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수칙을 따르고 싶어도 점점 떨리는 김은아의 몸.

사륵.

“히끅…….”

김은아는 우으으-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매뉴얼의 페이지를 넘겼다.

[7. 만약 크루즈에서 배회하는 수상한 여자를 발견했다면 도망치세요.]

제대로 페이지를 넘기지 않은 걸까? 분명 7번은 방금 전에 읽은 수칙이었다. 심지어 내용도 달랐다.

‘방금 전은 분명 가만히…….’

김은아는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내용을 확인했다.

[이것과 충돌하는 이야기는 거짓입니다. 만약 그녀가 당신을 발견했다면……. ]

주르르르륵.

매뉴얼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흘러나오며 김은아의 손을 물들였다.

“아, 우, 우으으…….”

김은아는 진동하는 쇠의 비린 냄새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매뉴얼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다름 아닌 누군가의 피라는 걸.

도망쳐

그 피가 만들어낸 건 딱 3글자의 메시지라는 걸.

다다다다다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아다다댜댜댜댜-!”

브릿지 자세를 한 여자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사족 보행의 자세로 다다다- 달려왔다.

“유성아아아-! 엄마아아-!”

크루즈가 떠나가라 고음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김은아.

“아댜댜댜댜-!”

마치 거미처럼 브릿지를 한 자세로 엄청난 속도를 내는 여자.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울며불며 뛰어가는 김은아가 이리저리 손을 뻗자.

번쩍! 콰앙!

엄청난 파괴력의 번개가 주변을 박살냈다.

번쩍! 쾅! 번쩌억!

하지만 겁에 질린 김은아의 적중률은 낮아도 너무 낮았다.

“아댜댜댜댜~!”

자신감이 오른 여자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쫒아오자. 울먹이는 김은아의 오른팔의 빛났다.

“주, 죽! 죽어어어어헝헝-!”

번쩍-!

다행이 이번에는 적중이었다.

직격으로 여자의 몸에 내려치는 김은아의 푸른 번개.

“갸갸갸갹-!”

번개에 맞은 여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저벅저벅저벅저벅.

크루즈의 객실에선 여러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고.

끼이이익.

닫혀 있던 모든 문이 열렸다.

“아댜댜댜!”

“그륵, 그르르…….”

이건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     *      *

‘제약의 펜.’

그리고

‘이야기의 공책.’

소피아가 이 능력을 유용하다고 생각하게 된 건 7살의 일이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원했던 소피아는 방에서 제약의 펜으로 이야기의 공책에 글을 썼다.

[제약과 보상]

[조용한 장소에선 이해도와 성취도가 올라간다.]

특성과 스킬의 힘은 시전자의 마나와 이해도에 비례한다. 덕분에 아직 어린 소피아가 제약의 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의 제약과 보상 정도였다.

그 다음 소피아는 공책에 그럴싸한 이런 이야기를 적었다.

[이야기 : 말수가 적은 소피아를 가족들은 불편해하고 찾기를 꺼렸다. 덕분에 소피아는 언제나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공부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제약의 펜과 이야기의 공책에 힘은 대단했다. 절대적이진 않고 대단한 내용은 적을 수 없었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흐른다고 해야 할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강물을 만들 순 없지만 강이 흐르는 방향 정도는 정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제약과 보상]

[김은아의 공포가 강할수록 소피아의 힘이 강해진다.]

이런 식의 설정도 가능하다.

대상이 직접적일수록 제약의 펜은 더욱 강한 힘을 발휘했다.

[이야기 : 김은아는 가장 무서운 장소에서 기이한 일을 겪는다. 그녀가 얻게 된 정체불명의 매뉴얼은 괴담의 일종이었다.]

그래 이렇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건 독서광인 소피아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소피아에겐 타고난 분석력과 소식통에게 얻은 정보력도 있었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취합한 결과. 김은아라는 사람이 겁쟁이일 확률 99.73%.’

그를 토대로 소피아가 생각하는 자신의 승률은 9할. 겁쟁이에게 괴담으로 승부를 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