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큰 비용을 지불해야 앉을 수 있는 개인용 라운지에서 신하윤은 이혁과 함께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대망의 최종 결승전! 국가 대항전을 우승하여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최후의 참가자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진행자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학생들.
- 첫 번째 주자는 한국의 대표! 가온 아카데미! 파티장은 권왕님의 제자로 참가 때부터 주목을 받은 신유성 학생입니다!
안내에 따라 들어오는 신유성. 김은아. 스미레. 가온의 파티에는 단 1명의 S급 특성도 없었다. 이번 국가대항전에 최대 파란이라 불리는 존재들.
하지만.
신하윤은 알고 있었다.
신유성과 그 파티에겐 특성의 등급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권왕의 제자인 신유성. ‘편린’을 가진 스미레. 잠재력 하나는 S+ 등급인 김은아.
“흐음~”
신하윤이 보기에도 저 3인의 포텐셜은 짐작하기 힘들었다.
“내 동생의 파티 말이야. 꽤 강한 거 같더라? 내가 생각한 거보다 훨씬.”
“그래? 하윤이 네가 그런 말을 할 정도라니…….”
이혁은 그런 신하윤의 말에 짐짓 놀란 모양이었다. 권왕의 제자인 신유성이야 신하윤의 인정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까다롭기도 소문난 신하윤에게 1학년이 실력으로 인정을 받는 건 드문 일이었다.
“유성이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야. 후훗.”
신하윤은 턱을 괸 채 스미레를 내려다보았다. 스미레는 F급 주제에 마녀의 편린을 가진 변칙적인 존재.
“덕분에 참 고생이 많아.”
스으윽.
신하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검지로 테이블을 훑으며 말했다.
“뭉쳐 놓은 실은 가위로 자르기가 힘들잖아?”
신하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미레가 편린을 얻은 건 운이 아니다. 어쩌면 이건 마녀의 운명.
계속 놔둔다면 엉망으로 뭉쳐버린 실처럼 서로를 옭아맬 것이다.
“지금 떼어 놓지 않으면. 곤란해질 거 같은데.”
신하윤은 검지와 중지를 가위처럼 들어 스미레의 몸에 겨눴다. 그리곤 싹둑- 끊는 시늉을 했다.
“네가 초조해 할 필요는 없을 거야. 그래봤자 이제 1학년. 하윤이 넌 아티팩트도 벌써 4개나 입수 했잖아.”
이혁의 말에 신하윤은 싱긋 웃었다. 포식자의 그것과 같은 강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웃음.
“그래. 지금은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지.”
그래. 당연하지.
그 어떤 변수를 더하더라도 신유성의 파티는 자신에게 이를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그냥 귀찮은 일이 싫을 뿐이야.”
그때가 온다면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을 테니까.
* * *
- 두 번째 주자는 일본의 대표! 쵸텐 아카데미! 비록 가온전에서 패배를 기록했지만 패자부활전에서 놀라운 성적으로 돌아온 불굴의 팀입니다! 특히 파티장인 세이지 학생은…….
탈락한 잇신을 제외하고 일본팀의 소개와 함께 사쿠라와 세이지가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와아아아!”
“세이지다!”
“사쿠라! 여기 좀 봐줘!”
아이돌에 버금가는 가히 열광적인 인기. 특히 사쿠라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관람을 온 남학생 중 하나는 만족한 얼굴로 엄지를 들며 기절을 해버렸다.
‘시우는 정말 못 오는 건가?’
사쿠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시우가 못 온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스미레와 김은아의 전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판단이었고, 경기장에 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 녀석.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해주고.’
그건 비밀이다.
그냥 가족의 일이다.
자세한 건 말 할 수 없다.
이시우는 사쿠라의 집요한 질문에도 이런 단순한 대답만 로봇처럼 뱉어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시우가 자신에게도 말 못 하는 비밀이 뭘까? 사쿠라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이내 떨쳐버렸다.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은 이 경기야. 나에겐 궁도장과 아버지. 그리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하핫!
세이지는 그런 사쿠라를 보며 자신 있게 웃었다.
“사쿠라. 긴장돼?”
“조금? 물론 세이지 넌 바보라 괜찮겠지만.”
사쿠라의 말에 세이지는 파핫- 하고 웃었다. 그러나 순순히 그렇지! 라고 말할 줄 알았던 세이지는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사쿠라가 놀랄 정도로 소리쳤다.
“아니-!”
“힉! 아이 놀래라…….”
사쿠라는 얘가 또 왜 이래? 라고 묻는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세이지는 너무나 기쁜 얼굴로 눈을 빛냈다.
“사쿠라! 나도 긴장돼서 죽을 거 같아!”
“아, 알았어…….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사쿠라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세이지는 어딘가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너…….”
사쿠라는 그제야 세이지가 손을 흔드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세이지를 응원하는 건 액자를 든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액자 속의 사진은 다름 아닌 류코.
“저 사람은…….”
질끈.
괴로운 듯 입술을 문 사쿠라는 다급히 세이지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사쿠라의 걱정과 달리 세이지는 환하게 웃으며 액자가 있는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 들! 나를 응원해줘서 고마워-! 열심히-! 최선을 다 할 게!”
그리곤 관객석을 향해 목청이 터져라 소리친 세이지는 사쿠라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난 말이지 사쿠라. 정말 이번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 가능하다면 내 모든 걸 바칠 수도 있어.”
어떻게 저런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을까? 저런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세이지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쿠라는 그런 복잡한 생각과 감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참 대단한 바보라니까.’
* * *
아일랜드.
블린 아카데미의 대장.
붉은 머리의 디안.
그는 거추장스러운 성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였다. 아카데미에서도 아일랜드에서도 디안을 상징하는 호칭은 오직 ‘재림의 불’이라는 단어였다.
저벅저벅.
아델라 오르텐시아.
이번 EU 연합의 핵심.
그녀와 비앙카의 파티원이 옆을 지나치자. 디안은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스윽- 파-
손아귀에서 흩어지는 불꽃.
‘연합이라.’
3명이 전원 생존한 가온과 마천루. 잇신을 제외한 2명이 생존한 쵸텐. 그들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인원수와 전력에서 불리한 국가에서 연합을 맺은 건 당연한 판단이었다.
‘다만. 나의 목표는 우승이다.’
유럽 연합에서 최후의 최후에 아델라가 살아남는다면 과연 자신이 이길 수 있을까? 심지어 비앙카에는 레온과 소피아가 남아 있었고.
디안이 속한 블린 아카데미는 제외한 전원이 탈락한 상태였다.
‘아델라와 내가 둘만 남아도. 나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디안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검게 그을린 오른손은 적법한 소유자만 사용 할 수 있다는 ‘편린’의 힘을 아티팩트로 일체화 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물건보다는 술식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저주.
독과 독을 섞어 가장 끔찍한 독을 만든다는 주술 고독(蠱毒)처럼 이 술식은 사람의 몸을 타고 계속해서 전해 내려온다.
처음은 작은 불씨로.
그 다음은 성냥 같은 불씨로.
꺼지지 않고 영원히 옮겨가는 봉화의 불처럼. 부서지면 재료를 가져와 새롭게 고치는 테세우스의 배처럼. 그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이 불씨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져 나갔다.
스윽-
그리고 지금.
디안은 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바통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이 술식의 끔찍한 점은 가끔씩 찾아오는 통증 같은 게 아니었다.
이 술식을 이어받은 사람은.
최후의 순간이 기록된다.
그리고 다음 불씨를 받아든 사람에게 전승된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이 술식에는 몇 번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는가? 몇 번을 더 기록할 것인가?
[더 이상은… 마나가!]
선대의 누군가는 힘을 제어하지 못해 불길에 휩싸이고.
[먼저 가. …곧 따라갈게.]
누군가는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술식은 마치 살아 있는 유전자처럼 다음 세대로 그 모든 최후를 빠짐없이 기록해주고 있었다.
그건 마치.
다음 최후는 이런 형태가 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같았다.
불길한 오른손.
재앙의 불길.
화신의 저주.
계속해서 이름을 바꾸며 전승된 술식은 어느새 이렇게 불리고 있었다.
브리이드[bʲɾʲiːdʲ]의 불씨.
신화에 등장한 영원한 불.
어느새 불길함이 아닌 성스러운 존재로 칭송받게 된 것이다. 아직 헌터라는 개념조차 설립되지 않은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술식의 주인들은 몇 번의 최후를 맞았을까?
재앙이라 불린 이름이 숭고함과 성스러움을 뜻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디안에겐 물러설 장소가 없었다.
‘난 혼자가 아니야.’
설령 팀원들이 탈락해 혼자가 되었지만. 디안은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짊어진 봉화에는, 점점 강렬하게 타오르게 된 불꽃에는 꺼져간 불씨가 있었으며. 떨어진 별들 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었다.
‘그 짐을…… 그 불꽃을 짊어진 내가 진다면…….’
그래.
혼자만의 짐을 짊어진 자들에게 패배한다면.
‘이 희생에 의미는 없다.’
디안과 술식.
그리고 지금까지 저물어간 모든 이들의 희생을 부정당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통 속에서 모두의 오른팔을 타고 내려온 이 불씨가. 아델라의 차갑게 일렁이는 천재성 앞에서 힘을 잃는다면. 디안은 더 이상 이 고통을 타인에게 물려줄 필요가 없었다.
자신과 선대의 희생은.
헌터에게도.
인류에게도.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무패.
디안은 매 순간 자신의 인생과 의미를 걸었기에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매 순간을 불태울 수 있었다. 그건 패배는 곧 죽음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던진 결과.
‘그러니.’
태양보다 뜨겁고 강렬한 눈빛으로. 하지만 얼음보다 차갑고 냉정한 마음으로 디안은 아델라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자신과 선대의 의미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디안은 어떤 선택이든 개의치 않았다.
‘설령…… 그게 연합 간의 배신이라도…….’
이건 술식을 받아든 순간부터 갈고 닦아온 비수. 디안은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하며 조용히 포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