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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235/434)

제235화

데이지 꽃이 만연한 화단.

커다란 나무 밑에선 아델라와 레온 그리고 소피아에게 비앙카의 교장 첼레스테는 진심으로 축복이 임하길 기도했다.

“비앙카에 머문 제피로스의 바람이 그대들을 이끌 것입니다.”

연례 행사인 기도가 끝나자. 비앙카의 학생들은.

차악-

절도 있게 발을 모으고.

착!

가슴에 대각선으로 손을 얹어 제식을 맞췄다.

- 바람의 인도가 따르기를!

한마음 한뜻.

천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외치자. 파티장인 아델라는 집합한 학생들을 느릿하게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바람의 인도가 따르기를.”

“3명의 학생은 비앙카의 대표로서, 그리고 이탈리아의 대표로서 국가대항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이루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일.”

이제 중년을 앞둔 나이지만 비앙카의 교장인 첼레스테는 기껏해야 30대로 보였다. 그건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마나가 엄청나다는 증거.

하지만 산전수전을 겪어온 베테랑인 그녀조차 아델라의 파티를 존경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학생은 물론 이탈리아 전역의 헌터들에게 모범이 될 것입니다. 부디 저희들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주십시오.”

아카데미에서 하늘처럼 높은 존재인 교장이 상체를 숙여 인사를 하자. 소피아는 당혹스러운지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비앙카가 우, 우승할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확…….”

레온은 그런 비앙카의 입을 자연스럽게 가리더니 첼레스테를 보며 웃음으로 무마했다.

“아델라 님과 함께 부디 비앙카의 우승을 쟁취해오겠습니다.”

국가대항전은 아카데미에 입학한 1학년이 각각의 전투를 통해 국력을 겨루는 국가 전체의 축제였다.

그야말로 이제 남은 단 한 번의 전투에 국가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것이다.

“……아델라 학생? 비앙카의 파티장이자 이탈리아의 대표로서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까?”

미소를 머금은 첼레스테가 상냥한 목소리로 묻자. 아델라는 주변의 학생들이 아닌,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들에 눈에 깃든 감정은 하나 같이 동경의 마음. 그러나 아델라는 그 감정이 너무나 불편했다.

대체 왜일까?

지금 자신의 가슴에 피어오르는 감정은 무엇일까?

하지만 아델라는 이내 생각을 멈췄다. 말을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전. 당신들의 존경도, 동경도 그 무엇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아델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기를 택했다.

하지만 첼레스테는 그 답변에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다는 얼굴로 상냥히 물었다.

“의외의 말이군요. 아델라 양…….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끄덕.

아델라는 자신을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델라는 이들의 진심에 답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비앙카로 돌아오고, 국가대항전에 나가는 것엔.”

그래.

자신이 이탈리아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이었나.

“……아무런 대의도 없었습니다.”

그건, 순전히 자신을 위해서였다.

아델라는 이기적일 정도로 자신만을 생각했다.

메말라 버린 감정.

가슴이 뛰는 전투.

아델라가 무채색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름답게 빛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때는 강렬한 전투 안에서뿐이었다.

“강자와 싸우고 싶다. 전투를 하고 싶다……. 그 정도의 변덕으로 시작된 일.”

아델라는 고개를 돌려 포탈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던 학생들의 동경 어린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러니 전 당신들의 존경을 받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아델라는 자신이 비앙카를 이용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당장 이 국가대항전만 끝나더라도 아델라는 가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

그저 이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고국을 돌아온 자신에게 비앙카의 학생들이 보내는 진심은 너무 무거웠다.

“음, 그렇군요.”

하지만 첼레스테 교장은 옅게 미소를 짓더니 뒤를 돈 아델라에게 나긋하게 말을 걸었다.

“서기인 소피아 양의 말이 맞았네요. 아델라 양이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싱긋.

“모두의 뜨거운 진심이 닿을 정도로. 당신의 얼어붙은 마음은 확실히 녹고 있군요.”

움찔.

포탈에 들어서던 아델라가 멈춰 섰다. 교장인 첼레스테의 목소리는 나긋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아델라 양?”

첼레스테가 아델라를 불렀다.

첼레스테는 돌아보지 않는 아델라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무겁고 진심인 감정만이 전부인 건 아니랍니다. 미지근함도. 차가움도 모두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랍니다.”

아델라에게 첼레스타의 말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수께끼 같았다.

그 때문일까. 아델라는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말을 읊조렸다.

“……바람의 인도가 따르기를.”

제피로스의 인도에 따라 축복의 바람이 당신을 이끌길 바란다는 비앙카의 인사.

첼레스테는 아델라의 뒷모습을 보며 어느 때보다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바람의 인도가 따르기를.”

그 뒤 메아리처럼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목소리. 아델라는 포탈을 통과하며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내 모든 걸 쏟아내는 거야.’

아델라는 다시는 후회가 없을 만큼 이번에 모든 불꽃을 태울 생각이었다.

*     *      *

마천루 아카데미.

100층이 넘는 거대한 건물 꼭대기에서 검신은 파이프를 물며 비릿하게 웃었다.

“국가대항전의 마지막. 류진 너는 알고 있겠지? 내가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걸?”

텁- 후우-

파이프를 문 검신이 길게 연기를 뿜어내자, 류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최고의 결과란 무엇일까? 국가대항전의 우승?

아니. 절대 아닐 것이다.

류진은 스승을 알았다.

겨우 그 정도의 결과가 검신의 목표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중국 최고의 헌터? 아니면 검신조차 아직 닿지 못한 검술의 극의?

그게 무엇이 됐든.

류진은 인정 할 수 없었다.

[잘 생각해. 설령 잘 풀려서 검신 그 양반의 욕심을 이루어줬다고 해도…… 그때 네 동생이 몇 살일까? 응?]

류밍에겐.

아니, 류진에겐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류밍은 기계에 의지하여 1분 1초를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은 이 끔찍한 현실을 버티고 미룰 수 없었다.

‘류밍은 고통받고 있다.’

대체 무얼 위해서?

그 가련하고 작은 아이가 고통을 받고 있는 이유는 걸까?

[대체~ 그 중요하고 아까운 시간을 몇 년이나…… 병실에서 보내게 할 거냐고?]

그래.

그건 세상을 구한다는 거창한 대의를 위해서도 아니었고. 방법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

리벨리온의 빌런 말이 맞았다.

8급 헌터였던 검신에겐 류밍을 치료할 힘이 있다.

[아픈 사람을 두고 말이야. 으응~? 더럽고 치사한 녀석들…….]

그렇다면 왜 아직도 류밍은 그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단 한 사람만 허락한다면.

단 한 사람만 생각을 바꾼다면.

류밍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승님.”

좀처럼 담지 않는 스승이란 단어로 류진이 검신을 불렀다.

“그래. 후우우-.”

류진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 걸까. 숨을 뱉어낸 검신은 비릿하게 웃었다.

“얼른 말해 보거라. 기껏 스승이라고 불렀는데 들어주어야지.”

마치 무슨 부탁을 할지 이미 예측한 얼굴.

“……어제 전 리벨리온이라는 단체로부터 정보를 받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너무나도 충격적인 류진의 이야기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류진!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이 말은 좀 오해의 소지가 있겠는데!?”

파티원인 웨이린과 한설아가 멀리서 소리쳤지만 류진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단 한 번도 꿇은 적 없는 무릎을 꿇으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부디. 류밍의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검신은 그런 류진의 행동이 참 신기했다.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굽히지 않을 자존심 강한 녀석이 동생의 일에는 왜 이리도 아파하는 걸까?

“리벨리온의 정보라…… 지금 이 행동도 그 부탁 때문이더냐?”

스읍-

숨을 들이 마신 검신은 연기를 뿜으며 핏- 하고 류진을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그 정보가 옳다고 생각해보자꾸나. 내가 류밍을 낫게 한다면 내게 넌 무엇을 줄 수 있지?”

무릎을 꿇은 류진이 자신을 올려다보자 검신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해 보거라. 류진 넌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지?”

검신이 마치 인정하는 듯 태도를 보이자. 참지 못한 웨이린은 자신도 모르게 둘의 사이에 끼어들고 말았다.

“거, 검신님! 그럼 류밍을 살릴 힘이 있으시다는 건 정말…….”

“야! 어딜 끼어들어 이리와!”

한설아는 사색이 된 얼굴로 웨이린을 말렸지만 검신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냥 그런 가정을 해보잔 이야기다. 만약 네가 그런 힘이 있다 해도. 넌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지.”

검신은 톡톡- 파이프의 재를 털어내더니 흥미가 없는 얼굴로 말했다.

“……기껏해야 약속? 하지만 그래서야 값이 맞지 않지.”

검신은 류진을 내려다보았고.

류진은 검신을 올려다보았다.

검신의 눈은 류진이 본 어떤 눈보다 차가웠다.

“들리지 않느냐? 넌 나에게 뭘 줄 수 있느냐 물었다.”

류진은 검신에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검신의 말대로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약속에서 그칠 단편적인 이야기뿐.

검신은 그런 류진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지금 이 순간 류진이 할 수 있는 대답은 그저 긴 침묵 뿐.

“그렇군. 그 침묵이 네 대답인 게냐?”

검신은 무릎 꿇은 류진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떠나며 읊조렸다.

“……좋다. 이야기는 국가대항전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     *      *

가온의 부실.

김은아는 언젠가 설치한 포탈존을 작동시켰다.

위이잉!

평범한 부실에서 포탈존이라니.

이건 국가급 기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평소대로라면 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포탈을 통해 대회로 떠나야 했지만.

신유성. 김은아. 스미레

3인방을 배웅해주는 건 배웅해주는 건 보모를 자처한 에이미와 벨벳이 전부였다.

“교장 선생님도 참 대단해. 가온의 학생들 전체를 관중으로 참관시키겠다니. 은근히 통이 크단 말이야. 자 벨벳~ 다들 잘 다녀오라고 말해야지.”

쿄쿄- 하고 에이미가 웃으며 손을 흔들자. 오르카를 옷으로 입은 벨벳은 힘껏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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