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32화 (232/434)

제232화

프슛! 팍! 

프슈슛! 파바바박! 

체구가 상당한 장정부터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한 소녀, 머리를 넘긴 남학생에 이르기까지 궁도복을 입은 6인이 줄을 맞춰 활을 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도장에 사람이 전보다 더 많아진 거 같네. 이제 꽤 붐빈다?” 

홀짝. 

이시우는 사쿠라가 따라준 차를 마시며 궁도복을 입은 도원들을 바라보았다. 

“다~ 내가 국가대항전에서 활약한 덕분 아니겠어? 후훗, 내 인기가 보통 많아야지.” 

사쿠라는 웃으며 이시우의 톡톡 볼을 건드렸다. 

“근데~ 시우 넌 왜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그렇게 항상 같은 표정이야?” 

스윽. 

이시우의 옆에 앉은 사쿠라가 고개를 가까이 가져오며 신기하다는 듯 묻자. 이시우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내, 내가?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사쿠라는 그런 이시우의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바짝 다가가 이시우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지금. 너 엄청 기쁘잖아.” 

같이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이젠 기분마저 읽을 수 있는 걸까? 

홀짝. 

다시 찻잔에 입을 댄 이시우는 여전히 활을 쏘는 궁도원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냥 좀 여기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거 같아.” 

사쿠라는 이그- 하고 미간을 좁힌 뒤, 좌우로 고개를 움직였다. 

“잇신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이렇게 솔직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아서야……. 좀 풀어서 말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사쿠라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이시우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예를 들어~ 쵸텐의 아이돌에 엄청 예뻐서 언제나 인기 최고인 나랑 있어서 기쁘다. 라거나?” 

이시우는 가볍게 무시했지만 사쿠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면. 여긴 사람들도 많고 북적거려서 외롭지 않다던가?” 

“외롭긴 무슨.” 

“허……, 그것도 부정할 생각이야? 너 외로움 엄청 타거든?” 

고개까지 돌린 사쿠라가 입을 가리며 질색하자. 이야기를 들었는지 사쿠라의 아버지는 이시우의 편을 들었다. 

“하하, 그래? 시우 군이 외로움을 탈 성격은 아닌 걸로 보이는데?” 

“겉으로는 그렇죠. 근데 한 달만 같이 있어도 알 수 있어요. 어른스러운 줄 알았는데 은근 애 같고.” 

“……무슨.” 

“또 은근히 집착하고…….” 

“그런 적 없어.” 

“그런 주제에 같이 있는 걸 좋아해서. 얼마나 따라다니는지…….” 

인기가 많은 것도 곤란하다며 사쿠라가 한숨을 쉬자. 아버지는 사쿠라를 보며 웃었다. 

“솔직하지 못한 건. 너도 마찬가지구나. 사쿠라 너도 시우 군에게 고마워하는 점이 많잖니?” 

“네? 저는 전부 인정해요. 같이 훈련해주는 것도 고맙고……. 다시 저희 도장을 시티가드의 훈련소로 등록해준 것도 고맙고…….” 

말을 하던 사쿠라는 흐응- 소리를 내며 여우 같은 얼굴로 웃더니 시우의 볼을 만졌다. 

“이렇게 은근히 놀리면 발끈하는 것도 귀엽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주제에 부끄러워하는 것도 귀엽고…….” 

도중에 무언가 주제가 바뀐 것 같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쿠라의 이야기. 사쿠라의 아버지는 그런 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쿠라. 시골의 도장을 운영하는 게 전부인 나와는 다르게 너와 시우 군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단다.” 

“앗~ 이건 시우가 제일 민망해하는 진지한 칭찬 세례!” 

사쿠라가 으악- 하며 고개를 돌리는 리액션을 해도 사쿠라의 아버지는 꿋꿋이 칭찬을 이어갔다. 

“그러니 내가 이곳을 지키며 기다리는 동안…….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어주렴. 너흰 분명 그렇게 할 수 있단다.” 

평소라면 민망하게 느껴 피했을 이야기지만 이시우는 인자하게 웃는 사쿠라의 아버지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사쿠라는. 

스윽. 

자연스럽게 이시우의 손을 잡더니 마찬가지로 장난기가 빠진 너무나 온화한 얼굴로 답했다. 

“응 더 강하고 훌륭한 헌터가 되어서 일본의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우리 도장의 이름을 널리널리 알릴 거야. 세상을 바꾸는 건 그 덤이고!” 

활기차게 이야기하던 사쿠라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그때까지 아빠는…… 궁도장을 잘 지키고 있어 줘야 한다? 다음…… 관장은 나니까…….”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쿠라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이시우는 언젠가 사쿠라가 직접 짜준 손수건을 꺼내 아무렇지 않게 건넸다. 

“넌 울보냐?” 

“요즘은 그럴지도…….” 

사쿠라의 아버지는 하하- 하고 인자하게 웃더니. 

“그래. 꼭 그러마.” 

옆에 앉아 눈시울이 붉어진 사쿠라를 위로해주었다. 

눈치가 빠른 이시우는 두 부녀의 시간을 위해 자연스럽게 일어나 자리를 비워주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는 법. 

[이시혁 : 시우야. 아버지가 부르신다. 네 부탁도 들어주셨으니 돌아오라는 명령이셔.] 

[이시혁 : 워낙 강경한 입장이시니 어떻게든 돌아오는 게 좋을 거 같아.] 

오랜만에 도착한 장남. 

이시혁의 메시지에 이시우는 사쿠라가 있는 궁도장을 돌아보았다. 

‘……그래.’ 

사쿠라의 말처럼 자신은 솔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게 온전히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사쿠라와 보낸 시간 동안 느낀 감정을 온전히 전달한다면 혹시 다가올지 모를 이별의 날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은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지루했건만. 왜 달콤한 시간은 이리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사쿠라. 네가 맞아.’ 

그러니 모든 일을 정리한다면. 

[2siwoo: 지금 돌아갈게. 그러니 아버지한테 궁도장에 대한 약속만 지키라고 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는 것도.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      * 

피크닉을 마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부실로 돌아온 탓에 김은아는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했다. 

“……나 여기 좀 누워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아니지, 아주 큰 일 있으면 깨워.” 

그렇게 말한 김은아는 안마의자에 누워버렸다. 전원을 틀자 에이미가 최고로 꼽은 안마의자답게 금방 노곤해지는 기분. 

“은아 씨가 피곤하신 모양이니까. 벨벳 오늘은 조용히 해야 해요.” 

“웅! 근데 아빠는 어디 가써?” 

“기숙사에 옷을 갈아입으러 가셨어요. 그럼 그동안…….”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주방의 문을 여는 스미레. 하지만 너무나 달라진 주방의 모습에 스미레는 몸이 굳고 말았다. 

[상급자 용 베이킹 쿠킹 세트! - 59,000원] 

[벚꽃 그릇 4종- 152,000원] 

[브라보 스테인리스 증류기 - 131,970원] 

[프리미엄 테이블 스푼 10인 세트 - 320,000원] 

[리온 특제…….] 

[…….]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 물건들의 향연. 아니 그 이전에 물건들이 많은 건 둘째 치고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만 이렇게 구매되어 있을까? 

하지만 역시 해답은 간단. 

스미레는 쭈욱- 주방에서 자신과 시간을 보냈던 벨벳을 돌아보았다. 

“벨벳? 이 물건들…… 어떻게 된 거예요?” 

스미레가 자신을 찾자 벨벳은 눈을 빛내더니 칭찬해달라는 얼굴로 손을 들었다. 

“은아 엄마한테 벨벳이 사달라고 부탁해써! 벨벳은 천재야! 스미레 엄마가 갖고 싶어 한 물건은 절대 까먹지 않아!” 

종종종 걸어온 벨벳은 잔뜩 기대한 얼굴로 스미레를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을 해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스미레는 칭찬은커녕 자세를 낮춰 벨벳과 마주 보더니 엄한 얼굴로 말했다. 

“벨벳. 사고 싶은 물건을 항상 모두 살 순 없어요. 이렇게 사는 건 과소비에요. 그리고…… 자신이 필요하거나 원한다고 해서 그 물건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건 나쁜 행동이에요.” 

동생을 여럿 둔 스미레는 벨벳을 차분한 목소리로 가르쳤다. 스미레는 교육에 앞서 언제나 칭찬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상식을 벗어난 김은아의 재력과 벨벳의 엉뚱함이 시너지를 낸다면 분명 한 번은 대참사가 벌어질 게 분명했다. 

스미레가 생각하기에 이건 벨벳이 꼭 겪어야 하는 성장통. 

“……벨벳. 유성 씨도 은아 씨도. 저도. 모두 벨벳의 소중한 가족이지만 이런 일방적인 부탁은 나쁜 거 예요.” 

그러나 당연히 칭찬을 받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벨벳은 당황한 얼굴로 스미레를 보았다. 

“베, 벨벳. 나빠? 하, 하지만…….” 

벨벳이 김은아에게 부탁해 주방 도구를 주문한 건, 모두 스미레를 위했기 때문. 

“벨벳으은…… 스미레 엄마를 위해서…….” 

그러나 이럴 때 스미레는 단호했다. 성장통을 겪더라도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고, 좋은 버릇이 드는 게 중요한 법. 

“벨벳. 돈은 모두에게 소중한 거 에요. 그렇게 은아 씨의 소중한 돈을 벨벳이 펑펑 쓰게 만드는 건 나중에 서로 상처를 받게 될 수 있어요.” 

한평생을 아끼며 살아온 스미레의 경제론. 물론 벨벳의 소비는 김은아와 신성그룹의 재력에 모래 한 톨의 영향도 주지 못하겠지만. 이번에도 스미레는 물러서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동생들을 길러온 장녀로서의 교육관인 것이다. 

“우, 우으…….” 

하지만 그런 스미레의 교육이 벨벳에겐 일렀던 건지. 평소보다 커진 벨벳의 눈이 촉촉해졌다. 

“캬하아앙……. 캬흥…….” 

그리곤 축 처진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던 벨벳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은아 엄마……. 돈도 많아서 잔뜩 시켜도 갠찬타고 했는데……. 스미레 엄마 나빠…….” 

어깨가 축 처진 벨벳은 언제 준비해둔 건지 모를 작은 가방을 하나 메고 왔다. 

“스미레 엄마 벨벳 마음 알아주지 못해……. 벨벳은…….” 

척. 

벨벳은 결연한 얼굴로 스미레를 바라보더니 결심했다며 종종걸음으로 주방을 달려 나갔다. 

“떠날 거야!” 

다다다! 

“벨벳!” 

스미레는 달려 나가는 벨벳을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지만 벨벳은 해츨링에 불과해도 드래곤. 순식간에 포탈이 열리며 벨벳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똑똑하고 영리한 아기 드래곤. 

벨벳의 첫 반항기인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