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30화 (230/434)

제230화

해가 저물고 밤이 되자.

드르륵-

김은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지금까지 많은 풍경을 보았지만 투명한 유리 너머는 마치 별 세상 같았다.

칠흑처럼 어두운 잔잔한 호수.

그 위를 밝히는 환한 보름달.

“보름달이라…….”

역시 이렇게 좋은 풍경을 보면 쉬이 감성적인 기분에 취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감상이 허락되지 않았다.

“흠, 역시. 내 생각이 마자써……. 범인은 처음 집에 찾아온 경찰이어써!”

김은아의 침대.

그곳에선 이해는 하고 있는 건지 벨벳이 다리를 흔들며 추리소설을 신나게 읽고 있었다. 김은아의 온전한 혼자만의 공간이 침해 받은 것이다.

‘이 녀석 시끄럽긴…….’

하지만 김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벨벳은 손이 많이 가고 수다스러운 아이였지만 김은아는 귀찮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뭘 그렇게 재밌게 읽어?”

팟-

김은아가 침대에 뛰어들어 벨벳을 껴안자. 책을 놓친 벨벳은 몸을 비틀어대며 캬캬캬- 소리 내어 웃었다.

“캬, 캬항-! 은아 엄마 간지러!”

하지만 벨벳을 괴롭히는 것도 잠시. 김은아의 머릿속은 금방 오늘 들었던 이야기로 복잡해졌다.

‘유성이의…… 약속 상대라는 게 신오가문이었구나.’

자신의 트라우마가 담긴 곳에서.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기억과 마주한다.

그 끝에 홀가분해진 신유성의 얼굴을 보며 김은아는 생각이 많아졌다. 무엇이 그렇게 신유성의 마음을 강하게 만드는 걸까? 김은아가 본 신유성은 참, 강했다.

‘나였다면……. 절대 상상도 못할 일이야.’

김은아에겐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것도. 그들을 찾아가는 것도 모두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 때문일까.

김은아는 그 모든 일을 마주하고도 오히려 후련해졌다며 웃는 신유성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유성이가 약한 소리를 하는 적을 본적이 없네.’

그래. 분명 신유성이라도 언제나 괜찮진 않을 것이다. 비록 아직까진 자신처럼 우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지만…….

‘그 녀석도…… 분명 혼자 우는 날이 있었겠지.’

김은아는 자신이 신유성에게 의지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신유성에게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물론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건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장소를.

그런 두려운 장소를.

스미레와 단 둘이 갔다는 건, 분명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스미레에겐 지금까지 김은아가 보지 못했던 신유성의 모습이 있는 게 아닐까?

꼬리를 물고 점점 깊어진 김은아의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후우- 하고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어, 엄마…… 무슨 일 이써?”

결국 착한 벨벳이 그런 김은아를 걱정 하자.

“아니. 그냥 생각이 많아서 그래.”

김은아는 더 자신의 품으로 벨벳을 껴안았다. 김은아는 혼자라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포근함과 체온에 안정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잠깐의 생각 끝에.

너무나도 차분한 목소리로 벨벳에게 물었다.

“저기. 벨벳?”

평소와 다른 김은아의 너무나도 무거운 분위기.

“캬, 캬항……?”

김은아는 벨벳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김은아의 바람과 달리 해츨링에 불과한 벨벳의 능력은 그 정도로 뛰어나지 않았다.

“베, 벨벳은 천재지만…… 아직은 기분밖에 알 수 없어!”

흐음-

김은아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한참을 고민 끝에 알겠다는 얼굴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그럼…… 날 볼 때 유성이 기분은 어때?”

“침대처럼~ 편안해!”

벨벳은 뭐 그리 당연한 질문을 하냐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나 김은아는 그 정도 대답으론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펴, 편안해? 막 가슴이 뛰고 두근거리고…… 그러진 않고? 그냥 편한 거야?”

긴장 되고. 가슴이 뛰고.

괜히 시선을 피하게 되고 그런 불안정한 감정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기만 하다니. 김은아는 괜히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스미레는?”

꼴깍.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 김은아가 진지하게 벨벳을 바라봤다.

벨벳은 검지를 턱에 가져다대며 흐음- 하고 고민을 하더니. 아하!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아빠에게 스미레 엄마는 담요처럼 따뜻해!”

“야! 그게 뭐야! 침대니 담요니! 우리가 무슨 침구 세트야?”

“캬! 캬, 캬항…….”

하지만 벨벳을 괴롭혀도 바뀔 건 없었다.

‘……유성이는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그렇다면…….

김은아는 질문을 바꿨다.

이번에 물어볼 상대는 신유성이 아닌.

“난 어때?”

바로 자신.

“나는 유성이를 볼 때, ……어떤 기분을 느껴?”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묻다니.

벨벳의 얼굴을 마주본 김은아는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벨벳은 그저 빙긋 웃어주었다.

“캬항~ 하지만 엄마는 이미 알고 있는 걸!”

이미 답은 자신에게 있다.

그 간단한 말에 김은아는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말을 웅얼거렸다.

“짜즈으은나아아-”

*     *      *

바스락-

부서진 나뭇가지가 발에 밟히는 소리. 촉촉한 흙을 밟으며 신유성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신유성을 이끄는 건.

단 한 점의 빛.

삐이-

신유성은 숲속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새소리를 지나쳐 목적한 장소에 도달했다.

‘도착했어.’

눈앞에 보이는 건 잔잔히 흐르는 호수와 만월의 달. 신유성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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