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29화 (229/434)

제229화

기분 좋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돗자리 위에서 즐기는 평화로운 피크닉. 김은아는 나무에 기댄 채 책을 내려다보며 푸욱- 하고 한숨을 쉬었다.

“……육아를 위해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이웃 세계 먼 세계! 걸어서 포탈 속으로! (드래곤의 생태 편)]

세상에 과연 누가 육아를 위해서 이런 책을 읽을까? 일단 기본적으로 이런 공략집은 전투에 나서는 헌터들이 읽는 책이었다.

파앗-

“……진짜 도움이 되려나.”

김은아가 못미더워 하는 얼굴로 두꺼운 책을 펼치자. 책의 내용에는 드래곤에 대한 목차가 주르륵- 끝없이 이어졌다.

1p. 드래곤이란 무엇인가?

16p. 드래곤과 리자드맨의 차이!

62p. 폴리모프 마법에 대한 이해

102p. 각 일족별 특징

162p. 드래곤과의 계약

199p. 레드 일족의 사도닉스

233p. 골드 드래곤 전설

301p. 드래곤의 수명

333p. 용언

366p. 드래곤의 마나 성질

………….

‘뭐가 이렇게 길어…….’

겉보기에도 두껍던 책은 무려 700페이지를 자랑했다. 독서와 가깝지 않은 김은아가 700페이지의 책을 모두 완독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

결국 김은아는 최고로 중요해 보이는 목차를 하나 골랐다.

452p. 드래곤 해츨링에 관하여

[이전 목차에서 설명했듯이 드래곤 1살에서 100살의 드래곤은 해츨링이라고 부른다. 호기심이 무척이나 왕성한 이 시기의 드래곤은 반항심이 심하다.]

‘반항심이 심하다고?’

스윽.

김은아는 눈을 돌려 놀고 있는 벨벳을 보았다.

“캬항~ 은아 엄마가 날 빤히 보고 있어~ 벨벳은 인기쟁이야!”

지금은 물론.

평소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 책에 적힌 것과 달리 벨벳은 반항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흐음…….”

[특히 갓 태어난 해츨링은 편식이 심하며 육식을 꺼리기에 드래곤들은 용과 같은 달콤한 과일을 위주로 해츨링에게 먹인다.]

‘……육식을 꺼리고 편식이 심하다?’

스윽.

김은아는 책에서 고개를 떼고 다시 벨벳을 바라보았다.

“카드라는 건 정말 체고야! 아무리 먹어도 음식이 산더미야! 캬항~ 벨벳은 정말 행복해!”

이 책.

뭔가 이상했다.

분명 드래곤의 연구에만 30년을 몰두한 헌터가 썼다고 했는데 도통 내용이 틀린 것뿐이었다.

‘어떤 돌팔이야.’

하지만 직접 학교 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빌린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일까. 김은아는 속는 셈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보았다.

[해츨링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며 재능의 척도는 폴리모프다.]

‘재능의 척도가 폴리모프?’

김은아는 영 책이 미덥지 못했지만 일단 페이지를 넘겼다.

[드래곤들이 폴리모프를 배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20년이 걸린다면 둔재이며 10년이면 범재. 5년이면 천재. 로드였던 레드 일족의 사도닉스는 1년이 걸렸다.]

‘응? 평범한 드래곤은…… 20년이 걸린다고?’

스윽-

김은아는 다시 벨벳을 바라보았다. 아직 꼬리와 뿔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벨벳이 폴리모프를 사용한 건 20년도 10년도 5년도 1년도 아닌, 그냥 첫날이었다.

‘대체, 폴리모프까지 5년이나 걸리는 게 천재라면 벨벳은 뭐란 말이야…….’

책을 읽는 김은아의 눈에는 의심만이 가득했다.

우물우물.

김은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돗자리에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 벨벳.

‘……그러고 보니 쟤 유성이랑 나한테 공간이동도 하지 않았나?’

물론 벨벳의 공간이동이 모두에게 사용 가능한 기술은 아니었다. 일단 마나의 파장이 맞고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 사람에게만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외형만 변하는 폴리모프보다 몸을 이동시키는 공간이동이 상격의 마법인 건 상식 중의 상식.

‘……원래 드래곤이 전부 대단한 거 아니었나?’

김은아는 문득.

벨벳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캬항! 벨벳은 천재야!]

[벨벳은 최고의 드래곤이야! 불도 잘 뿜어! 하트모양 불 뿜기!]

‘……으음.’

확실히 벨벳은 몇 번이나 자신의 천재성을 강조하긴 했다.

‘그냥 하는 말 아니었나?’

하지만 김은아는 틀린 이야기가 대부분인 책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김은아가 내린 벨벳의 평가는 ‘그냥 좀 다른 드래곤보다 똑똑하겠거니.’ 정도였다.

그 순간.

“어! 이거!”

벨벳은 놀란 얼굴로 큰 덩어리의 고기를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왜 그래!? 설마 체했어!?”

놀란 김은아는 책도 내팽개치고 벨벳에게 달려왔지만. 벨벳은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벨벳! 지금 느껴지고 이써! 이 마나는…….”

도대체 뭘 감지한 건지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던 벨벳은.

팟!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싱글싱글 웃고 있는 스미레와 신유성의 모습.

“어? 유성이? 그리고 스미레?”

처음은 반가운 감정에 불과했지만 김은아는 발견하고 말았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꾸욱- 붙잡고 있는 스미레와 신유성의 손…….

‘은아 엄마. 왠지 눈이 무서워.’

눈치가 빠른 벨벳은 곧 일어날 폭풍을 예견한 건지 슬그머니 큰 치킨 바비큐를 집어 들고 김은아에게서 멀어졌다.

“스미레~ 유성아~?”

김은아의 얼굴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지만 벨벳은 알고 있었다.

‘……은아 엄마 엄청 화나써!’

“아, 은아 씨!”

“은아야! 벨벳!”

뒤늦게 스미레와 신유성이 기쁜 얼굴로 달려오자 김은아는 빨리 앉으라며 톡톡 돗자리를 두드렸다.

“오늘 아침 약속이 있다고 한 게 이런 건지는~ 내가 몰랐네?”

꽈악.

기분이 상한 김은아는 자신을 바라보라며 신유성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 와중에도 치킨을 재주 좋게 우물거리는 신유성.

“저, 그…… 마침 유성 씨의 식사를 차려드리러 간 김에. 같이…….”

결국 옆에 있는 스미레가 어떻게든 변명을 하자. 김은아는 그러시겠지~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같이 가는 김에 하루 종일 손잡고 다녀오셨다 이거야?”

도끼눈을 뜬 김은아가 신유성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벨벳은 치킨을 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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