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처음 신하윤이 스미레를 보았을 때 떠올린 이미지는 손톱도 발톱도 없이 풀을 뜯는 초식 동물. 그래, 유약한 토끼 정도였다.
조금만 겁을 주고.
조금만 압박하면.
물고 있던 소중한 걸 내려놓고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미레는 신유성을 위해서라면 결의에 찬 얼굴로 신하윤에게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하윤은 그걸 허락할 수 없었다.
“……너 지금 누구 앞에서 건방을 떠는 거야?”
감히 자신보다 약한 주제에 이렇게 잘난 듯 설교를 하다니. 신하윤은 약자의 용기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약육강식의 삶을 살아온 신하윤에겐 인간의 가치란 ‘강함’이 전부였다.
“경고하건데. ……더 이상은 날 자극하지 마.”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짓누르는 압박감. 신하윤은 스미레를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더니.
“그래. 맞아.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핏- 하고 웃었다.
“너희가 파티랍시고 하는 소꿉놀이. 그걸 부숴 놓으면 유성이를 다루기 더 쉬웠을 텐데.”
“어떻게 그런…….”
스미레는 신하윤의 중얼거림을 듣고 깨달았다. 이 사람에겐 가족의 가치 같은 걸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다. 신하윤은 처음부터 신유성의 입장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유성이에게서 떨어져. 우리 회의에 너는 방해밖에 안 되니까.”
오히려 스미레가 본 신하윤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신유성의 소중한 것을 부숴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스미레는 그걸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아뇨. 생각을 잘못한 건 제 쪽이에요.”
신오가문이 처음부터 이런 곳인지 알았다면. 신유성에게 이런 과거가 있는지 알았다면. 스미레는 신유성이 신오가문에 오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5살의 신유성을 버리고. 이제야 자신들만의 사정으로 신유성을 찾는 인간들이었다
여긴 신유성이 만나야 할 어떤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고. 서로 나누어야 할 어떤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면…….’
생각에 빠진 스미레는 괴로운 얼굴로 입술을 질끈 물었다.
“……여기엔 유성 씨가 마주 볼 과거 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유성 씨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까요.”
정말이지 왜 몰랐을까.
스미레는 그렇게나 신유성의 옆을 지켰으면서 이런 어두운 면은 하나도 바라보지 못했던 자신이 밉기만 했다. 자신은 언제나 신유성의 밝은 면만을 바라보고 동경했을 뿐이었다.
‘조금도……. 유성 씨의 도움이 되지 못했어.’
스미레는 코끝이 찡- 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눈시울을 붉히며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일에서 빠지라는 신하윤의 압박에도 단호하게 맞섰다.
“과거를 마주 보고 반성해야 하는 건……. 당신들 쪽이에요.”
꿈틀-
어떻게든 무표정을 유지하던 신하윤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건 분노로 인한 동요의 징조였지만.
“……그래?”
반면에 신하윤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가웠다.
“그럼 그 고집이 어디까지 유지되나 확인해볼까?”
사아아-
신하윤을 통해 발현 되어 초록으로 빛나는 마나의 힘. 스미레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마나로 발현 된 무언가’를 피하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부웅-!
신하윤의 특성인 [염동력]의 힘은 투사체의 형태가 아니었다. 마나를 발현한 순간 정해둔 좌표의 공간에 즉각적으로 힘을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쿵!
“흐극! 윽-!”
스미레는 염동력의 힘에 목이 졸린 채로 벽에 부딪혔다. 스미레는 괴로움에 발버둥 치며 어떻게든 목을 조른 신하윤의 염동력을 풀어보려 했지만.
“흑!”
그건 무의미한 발악으로 끝났다.
목을 조르는 염동력의 힘을 파훼하려면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염동력의 작동을 멈추게 할 마나의 성질이 필요했다.
“풋-”
신하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괴로워하는 스미레를 비웃었다.
“잘 들어. 가주의 실수는 쓸모없는 돌덩이를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돌 속에 감춰진 원석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꽈악-
“……가족이니 반성이니. 너 같은 녀석들은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잘도 하지. 하지만…… 네가 말하는 건 모두 약자들의 생각.”
꾸우욱-
염동력이 목을 조르는 힘이 강해지자. 스미레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
“으욱…….”
하지만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눈빛은 더욱 신하윤을 화가 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나 약한 주제에 지배자로 태어난 자신에게 대들 수 있는 걸까.
“너흰 그런 쓰레기 같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신하윤은 스미레와 신유성이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을 쓰레기라 불렀다.
“너희들의 얄팍한 가치에 비해. 우리들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아. 약한 쓰레기는 버리고. 강자는 거둔다. 그게 무엇이 그리 나쁘지?”
하지만 신하윤은 절대 만족하지 않았다. 약자에게는 신념조차 사치. 신하윤에게 힘으로 스미레를 꺾는 건 의미가 없었다. 신하윤은 스미레가 스스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마음을 굽히게 만들고 싶었다.
“응? 잘 봐 현실을.”
그 대답을 들을 때까지 신하윤은 목을 조르고 있는 염동력을 조절했다. 스미레가 절대 정신을 잃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잘난 듯 말했는데. 네 파리 같은 목숨은 내 손에 있잖아?”
신하윤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더 고통스러울까?
어떻게 해야 완전히 마음을 꺾을 수 있을까?
꾸우욱-
신하윤은 스미레가 아예 숨을 쉴 수 없도록 손가락으로 염동력을 조종해 천천히 기도를 압박했다.
“흐그윽! 윽!”
신하윤은 발버둥 치는 스미레의 모습에 만족한 듯 웃고 나서야. 기도를 조르던 염동력의 힘을 낮추었다.
“어때? 네가 말한 얄팍한 가치들이 너를 지켜줄 수 있어?”
방금 신하윤이 스미레에게 심어준 것은 죽음의 공포. 신하윤은 확신했다. 켁켁- 거리는 숨을 고르면 스미레는 자신에게 굽힐 것이라고. 자신이 건방졌음을 인정하고. 잘못을 빌 것이라고.
하지만.
스미레의 얼굴에 깃든 건, 절망도, 공포도, 분노도. 좌절도. 무엇도 아니었다.
오히려 신하윤을 바라보는 눈빛에 깃든 건 차분하기까지 한 감정.
“흐으, 후…….”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즐거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 스미레는 그중 무엇조차 알지 못하는 신하윤을 진심으로 동정하고 있었다.
“불, 쌍한…… 사람…….”
누군가에게.
그것도 자신에게 목을 졸리며 생사를 오가는 사람에게 동정을 받다니.
“……내가 불쌍해?”
이건 신하윤 인생 최대의 굴욕.
팟-
화아악-!
신하윤의 손에서 더욱 환하게 초록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꽈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