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22화 (222/434)

제222화

약속 시각까지 남은 시간 52분.

신유성과 스미레는 이른 시간에 신오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저택을 둘러보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툭.

정장을 입은 길드원이 문을 열어주며 정중하게 부탁했지만 신유성은 짤막하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아무리 이 저택을 떠난 지 십여 년이 지났어도 신유성에게 안내원은 필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신유성은 길드원이 떠나자. 스미레와 천천히 저택을 걸었다.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신오가문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들어온 이들을 맞이하는 사자 동상. 저택의 벽을 왼편으로 따라 걸으면 보이는 작은 연못. 그 연못에 살고 있는 색색의 잉어.

“와…… 잉어가 엄청 크네요.”

스미레는 저택에 온 이후 도통 입을 열지 않는 신유성을 보며 일부러 말을 걸었다. 그러나 신유성은 옅어진 목소리로 응 이라고 답할 뿐, 평소의 상냥한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벅저벅. 탁.

신유성이 연못 옆 커다란 나무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였다.

하지만 멈춘 듯 보이는 건 이곳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스윽.

신유성이 커다란 나무에 손을 올리며 눈을 감았다. 사아아- 기분 좋게 부는 바람들 사이로.

[어째서…….]

이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검은 ‘무언가’들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지직- 지직- 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7급 헌터들 사이에서 저런 불량품이 태어난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 운이지.]

어렸던 신유성에게 어른들의 이야기는 절대적이었다. 신강윤의 줄어든 말수가. 유민서의 차가워진 시선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 느끼게 만들었다.

만약.

자신이 더 뛰어났다면. 불량품이라고 불리지 않을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랬다면…….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신유성은 이 나무 밑으로 도망쳤었다.

커다란 나무의 뒤에 몸을 숨기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조용해진 세상에서 아늑한 기분을 느꼈다.

“스미레.”

나무에서 손을 떼며 스미레를 부르는 신유성. 그저 가만히 신유성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스미레는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유성 씨!”

“미안. 나도 모르게 생각이 깊어졌나 봐. 이곳에 돌아온 게…… 그래. 12년 만이거든.”

그렇게 신유성이 평소 같은 미소를 지어주자 안도한 스미레는 평소처럼 눈이 커지며 놀랐다.

“허억! 12년이요?”

그래. 12년.

자신의 특성을 알게 된 것이 12년 전이었고. 고아원으로 버려진 게 12년 전이었으며. 그런 신유성을 스승인 권왕이 거둬준 것이 12년 전이었다.

눈치가 빠른 스미레는 신유성의 표정을 살피더니 한결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군요. 12년…….”

하지만 스미레는 그 말을 끝으로 왜 신유성이 12년간 단 한 번도 신오가문에 돌아오지 않았는가에 대해 묻지 않았다.

12년 간 가족이 보고 싶지 않았냐는 말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참 스미레 다운 배려였다.

“무척 오래전이었는데도 여긴 그대로네. 특히…… 난 이 나무 밑에 기대앉아서 책을 읽곤 했거든.”

신유성이 웃으며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과 비교하듯, 나무 옆에 앉자. 스미레는 헤헤- 하고 웃었다.

“후후, 지금은 몸이 전부 가려지시진 않는 거 같은데요?”

스윽.

스미레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옆에 앉자. 신유성은 최대한 평소 같은 어투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겠지. 5살일 때보다 엄청 컸으니까.”

조심스럽지만 섬세한 태도.

신유성은 최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피하는 스미레의 말 속에서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유성은 그런 스미레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스미레. 너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야?”

이미 신유성은 스미레의 가족들을 보았다. 그들의 식탁에 끼어 스미레에게 가족들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했다.

그럼에도 신유성은 스미레의 입을 통해 스미레가 생각하는 가족의 존재를 알고 싶었다.

“으음…….”

하지만 스미레는 신유성의 질문이 어려웠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저에게 가족은……. 제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언제나 제 편인……. 완전한 제 편! 같은 거예요!”

그리고 그 대답으로 인해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언제나 스미레의 편이 되어준 든든한 가족들의 존재가, ‘그 사건’의 상처 속에서도 스미레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라는 걸.

‘알 거 같아.’

스미레의 대답으로 신유성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확실해진 모양이었다.

힐끔.

스미레가 신유성의 얼굴을 살폈다. 아까보다 한결 나아진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스미레는 안도했다.

“……아직 가을인데도 날씨가 쌀쌀하네요.”

“응. 그러네.”

신유성은 추위를 타고 있는 스미레의 손등에 손을 올려주었다.

“어…….”

눈이 동그랗게 변한 스미레가 화악- 신유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러운 손길에도 절대 피하지 않는 스미레. 신유성은 그런 스미레를 마주보며 상냥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스미레.”

꽈악-

손등 위로 스미레의 손가락 틈 사이에 깍지를 낀 신유성은 평소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넌 나에게 가족인가 봐.”

신유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스미레와 파티원은 자신에게 손을 뻗어줄 완전한 내 편이라고.

그 마음이 통한 걸까.

스미레는 움찔- 잠깐 입가를 떨더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유성 씨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 언제든 유성 씨 편이에요!”

팟!

고개를 들어 신유성을 마주한 스미레는 오늘만큼은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소리쳤다.

“유성 씨와 저는 가족이에요!”

반짝 반짝.

스미레는 오늘따라 유독 눈이 빛났다. 언제나 강인했던 신유성이 오늘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스미레는 오히려 그런 신유성을 지켜주겠다는 마음이었다.

“……스미레.”

마음의 짐을 비우고 미소를 짓는 신유성과.

“유성 씨!”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슬금슬금 다가가는 스미레.

*     *      *

약속 시간 10분 전.

스미레는 신오가문의 저택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순수한 감탄을 터트렸다.

“와아, 엄청나네요…….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아티팩트가 이렇게나 진열되어 있다니…….”

입구의 유리 진열장에는 어떤 미술품이나 귀금속보다도 귀중한 아티팩트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아티팩트들을 어디서 얻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분류가 어지간한 박물관보다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다소 과시적이긴 하지만 신오 길드가 헌터계에서 가진 위업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네. 엄청 늘었어.”

신오가문은 원래도 ‘4대 길드’로 불리며 대단한 권력을 자랑했지만 신유성이 떠났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부유하진 않았다.

이건 당대 가주인 신강윤이 엄청난 수완을 가졌다는 증거였다.

“심지어…… 이 대리석!”

탓!

스미레는 신기한지 검지로 바닥을 가리켰다. 저택의 안에 깔린 건 빛을 반사하는 대리석. 하지만 얼핏 보기엔 평범한 대리석이 스미레의 눈에는 어딘가 달랐다.

“마나의 성질을 품고 있어요! 거기다 돌에 불과한데 항온을 유지하는 걸 봐선……. 포함하고 있는 걸 봐선…….”

생각에 빠진 스미레의 모습에 아까 전 리무진을 운전했던 길드원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안목이 대단하시군요. 맞습니다. 이건 골렘의 몸에서 나온 암석으로 만든 대리석이죠. 덕분에 차갑지 않고 늘 따뜻하답니다.”

골렘의 암석으로 만든 대리석은 기껏해야 온도가 유지되는 것치곤 가격이 엄청 비쌌다. 저택의 바닥에 깔린 대리석을 모두 합친다면 이런 저택을 하나 더 세울 정도의 높은 가치가 있었다.

“와아, 그걸 이렇게나 많이…… 정말 굉장하네요!”

길드원은 반응이 좋은 스미레 덕분에 흥이 돋았는지 신이 나서 더욱 떠들어댔다.

“이건 신오 길드가 가진 전리품의 일부일 뿐입니다! 길드의 산하에 운영하는 박물관만 12개가 넘고! 협회에서 보관 중인 국보급 아티팩트만…….”

하지만 신나서 떠들고 있는 길드원을 누군가 제지했다.

“그만.”

터벅터벅.

2층에서 나선의 계단으로 내려오는 건 이젠 익숙한 얼굴인 신하윤이었다.

“설명도 좋지만~ 유성이도 이곳까지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일단 자리에 앉히도록 하죠?”

싱긋.

신하윤은 그 말과 함께 그저 웃어 보였을 뿐임에도 길드원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 죄, 죄송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에요. 근데 이제 유성이는 제가 안내할 테니 가보세요.”

웃는 얼굴로 길드원을 보낸 신하윤은 계단을 오르며 신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다시 이곳에서 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반가운걸? 내 동생.”

“피하는 걸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 직접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렇게나 가까이 있음에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

“나는 뭐든 좋아. 근데…… 이 아이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신하윤은 싱긋 웃으면서도 차가운 시선으로 스미레를 훑었다. 신하윤은 의외의 인물이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당황한 스미레가 죄송함을 표시했다.

“아, 유성 씨의 가족 분들을 뵙고 싶은 마음에 제가 멋대로 부탁해서…….”

신하윤은 살랑살랑 손을 저었다.

“아니야 상관없겠지~ 식사 전에 반가운 얼굴도 있을 테니. 이야기나 나눠 봐.”

그러나 신하윤은 그 감정을 신유성 앞에서 내비칠 만큼 하수는 아니었다.

터벅터벅.

신하윤의 말처럼 나선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오자. 신유성에게도 하나 둘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유성이니?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지?”

부채를 쥐고 입을 가린 신미향은 기껏해야 신강윤보다 4살밖에 어리지 않으면서도 20대 후반의 미모를 자랑했다.

10년이 넘게 시간이 지났음에도 외모만큼은 신유성이 떠났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

하지만 신유성을 향한 신미향의 태도는 이전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정말 커갈수록 유민서 님을 똑 닮았네? 핏줄은 못 속인다더니~!”

신미향은 F급 특성을 가진 신유성에게 7급 헌터들 사이에서 왜 저런 불량품이 나왔냐는 말을 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이젠 180도 변해버린 태도.

“하하하! 그래? 내가 보기엔 이 기세며 분위기며! 딱 봐도 우리 신강윤 가주님을 닮은 것 같은데!”

남편인 박병준까지 두 부모를 언급하며 신유성을 치켜세우자.

“어머 유성이가 우리 오빠를 닮다니 무슨 소리야. 얼굴이 그냥 유민서 님을 쏙 빼다 박았는데~”

점점 굳어가는 신유성의 표정에 스미레는 말없이 신유성의 손을 움켜쥐었다.

꾸욱.

그리곤 스미레는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 찮. 으. 세. 요?’

스미레는 이 드넓은 저택에서 굳어가는 신유성을 신경 써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스미레 덕분에 신유성은 굳은 표정을 풀고 이곳에서도 웃을 수 있었다.

“네.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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